025 고대 종교 박물관 (3)
[츠츠츠츠츳-!]
뱀 우상이 혀를 낼름거렸다.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코, 결단코, 울지콰야님의 탄신일 축제에 방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츠츠츠츠츳-!]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울지콰야님의 신부가 될 여인과 그 시종들은 모두 안전한 경로로 모았습니다.”
[츠츠츠츠츳-!]
“그, 그럴 리는 없습니다. 레, 레베크는 결코 저와의 거래를 외부에 유출할 사람이 아닙니다.”
[츠츠츠츠츳-!]
“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울지콰야님 탄신일 축제는 차질없이 숲에서 진행이 될 겁니다.”
[츠츠츠츠츳-!]
“살펴 가십시오.”
곧 뱀 우상의 눈에선 생기가 사라졌다.
날름거리던 혀도 그대로 고정이 됐다.
잠시 곁눈질로 천장의 뱀 우상 상태를 확인하던 파스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털보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스텔은 주전자를 들어 잔에 물을 따른 후 쭉 들이켰다.
“후우…….”
파스텔이 한숨을 내쉬자 털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제사장께서 말씀하신대로 레베크가 유출이라도 한 겁니까?”
파스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설령 레베크가 우리의 거래를 어디서 불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겐 단지 노예 매매 정도로나 인식될 뿐이야. 레베크는 우리가 왜 사람을 구하는지는 몰라.”
“그건 그렇지만…… 혹시 압니까? 눈치챘을지?”
“뭘 어떻게 무슨 수로 눈치를 챈다는 거야? 그 수전노가!”
파스텔의 고함에 털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파스텔은 주전자에서 물을 한 잔 더 따른 후 잔을 쥔 채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여관을 감시해. 그 외지인 것들이 떠날 때까지, 혹시나 놈들이 외부와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취한다든가 하면 곧장 나한테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파스텔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털보에게 나가라 손짓했다.
털보는 가볍게 파스텔에게 고개 숙인 후 서재를 빠져나갔다.
홀로 서재에 남은 파스텔은 물을 쭉 들이켠 후 헝겊을 들어 다시 태양의 왕관을 닦기 시작했다.
‘그래. 외부로 기밀이 유출됐을 리가 없어. 레베크는 어디까지나 돈에 눈이 먼 장사치일 뿐, 내가 뭘 믿고 있는지, 구매한 노예는 어떻게 쓰는 지에는 관심이 없어. 그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우연이겠지.’
그렇게 파스텔은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기계적으로 태양의 왕관을 닦고 또 닦았다.
마치 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라 마음에 칠해진 불안감을 닦아내기라도 하듯이.
* * *
“왜 남의 방문 앞에 그렇게들 서 계시는 겁니까?”
아딘이 황당하단 표정과 함께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조르주와 휴고에게 물었다.
로제는 아딘의 뒤에 몸을 숨긴 채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 그게…….”
휴고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크흠.”
조르주가 아딘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고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여관에 방이 2개 뿐인데, 이미 1개를 그쪽에서 쓰고 있다길래 혹시 언제 비우나 물으려고 노크하려던 참이었소이다.”
조르주의 임기응변에 휴고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딘은 여전히 경계 어린 눈빛으로 조르주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크흠.”
조르주는 아딘의 시선에 헛기침을 했다.
“이틀 더 머무르다 떠날 생각입니다. 그러니 앞으론 방문 앞에 서 계시거나 하진 마십시오.”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로제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아딘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천천히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다.
“어후우……”
“십년 감수했습니다. 후우……”
두 사람은 모두 방안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르주는 다리에서 힘이 풀리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비틀비틀 움직여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휴고도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확실하오. 황금 갑옷이오.”
“저도 딱 보자마자 느낌이 왔습니다.”
“담갈색 머리와 눈동자 그리고 검은 머리 소녀…… 후우…….”
조르주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품에서 알베르토가 준 스크롤을 꺼내 펼쳤다.
알베르토에게 받은 후 단 한 번도 펼쳐보인 적 없던 스크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육각별 내외에 빼곡하게 차 있는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조르주와 휴고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고 조르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욱-!]
그대로 조르주는 있는 힘껏 스크롤을 양쪽으로 찢었다.
[파아앗-!]
곧 찢어진 스크롤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휴고와 조르주는 모두 눈을 감아야만 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두 사람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스크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할 만큼 했소이다.”
“그렇습니다.”
조르주와 휴고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이제 정말 끝이야. 은퇴만 기다리면 돼.’
‘돌아갈 수 있겠구나, 파세레빌로.’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웃음을 터뜨리며 안도했다.
‘이상한 늙은이야.’
한편, 1층 홀로 내려와 구석 테이블에 로제와 마주 보고 앉은 아딘은 주문한 돼지고기 요리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인공이 없다는 것 때문에도 복잡한데…….’
아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그는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곧 하이로드 가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마지막 혈족이 암살당하며 멸문했다는 기록만 있지, 왜 그랬는지는 없어.’
곧 두루마리의 내용이 하이로드 가문에 대한 설명에서 샤펠 제국 8대 황제 조르주 3세에 대한 설명으로 바뀌었다.
슈드 자치령 건설 및 자잘한 업적이 나열된 가운데 30건의 암살 목록에 하이로드 가문의 마지막 혈족, 로버트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물론 그 부분에서도 왜 암살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나는 이런 설정을 해둔 적이 없어. 내가 조르주 3세에 대해 설정한 내용은 그저 슈드 자치령을 건설했다는 내용뿐이었어. 그런데…… 이건…….’
순간 아딘은 조금 전 자기 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두 사람이 떠올랐다.
곧 두루마리 위로 두 사람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조르주>
<광명력 923년 1월 1일생. 광명력 992년 6월 16일 현재 69세.>
<슈드 자치령 플루슈드 시장.>
<슈드 자치령 총독 샤를 드 퐁피두의 밀명을 수행 중이다.>
<휴고 드 로이에르>
<광명력 951년 1월 5일생. 광명력 992년 6월 16일 현재 41세.>
<슈드 자치령 파세레빌 징세관.>
<슈드 자치령 총독 샤를 드 퐁피두의 밀명을 수행 중이다.>
아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슈드 자치령 관료들이 여기까지? 무슨 밀명이길래?’
하지만 두루마리는 두 사람이 수행 중이라는 총독의 밀명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오라버니.”
그때, 로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딘을 불렀다.
아딘의 시선이 로제에게 향했다. 로제는 조심스럽게 한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주방에서 여관 주인이 쟁반에 음식을 든 채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아딘은 두루마리를 말아 품에 넣은 후 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했어.’
입모양으로 그렇게 로제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로제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자, 여기 우리 발스 지방 특제 소스로 만든 돼지 목살 요리랑, 돼지 삼겹살로 만든 수프 대령입니다요.”
여관 주인은 곧 테이블에 요리를 세팅했다.
아딘은 주인에게 가볍게 감사를 표한 후 로제의 앞접시에 갈색 소스가 듬뿍 묻은 돼지 목살을 올려 주었다.
“아까 정말 좋았어. 그런 판단력 좋아.”
아딘의 칭찬에 로제가 배시시 웃었다.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아니지. 나야말로 고맙지. 괜한 의심을 안 사도 되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아딘은 미소를 지으며 삼겹살 수프를 떠먹었다.
‘그래, 뭐 공무원들이 출장 오는 게 여기라고 다르겠냐? 딱 이틀만 더 쉬다가 움직이자.’
그렇게 아딘은 로제와 함께 풍족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다.
* * *
광명력 992년 6월 16일.
석양의 붉은 노을이 바다와 산을 비추는 파세레빌.
징세관이 사용하는 관청 집무실에 앉아 가만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샤를 드 퐁피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음. 역시 렝고스에서 수확한 100% 자연산이라 그런가 맛이 깊고 그윽하군.”
샤를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커피를 음미하다가 이내 눈을 떴다.
“장인께서도 한 모금 드십시오.”
샤를의 말에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디에고 공작 알베르토가 가볍게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혀를 자극하는 쓴맛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곧장 내려놓았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도대체 이딴 쓴물을 왜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마시는지…… 에이…….”
알베르토의 모습에 샤를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베르토는 물로 입을 행군 후 손수건으로 입가와 수염을 닦은 뒤 샤를을 향해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현재 황금 갑옷은 발스에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제게도 텔레파시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 전권을 황태자 전하께 드리겠다는 말씀도 들으셨을 테고 말입니다?”
샤를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넘긴 후 입을 열었다.
“현재 하루 안에 발스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몇이나 됩니까?”
“하루 말입니까?”
하루라는 말에 알베르토는 난색했다.
“하루는 힘듭니다. 적어도 사흘 정도는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황금 갑옷의 패턴을 본다면, 놈의 목적지는 엘프숲으로 보입니다. 발스에 잠시 머무른다는 것은 숲으로 들어가기 전 몇 가지 준비를 하기 위함이겠지요.”
샤를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넘겼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 만에 준비를 끝마쳐야 합니다.”
“크흠…….”
알베르토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샤를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며 조용히 커피 맛을 즐겼다.
잠시 후, 샤를이 커피 한 잔을 다 비웠을 때쯤 알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발스 서북부에 우리 가문 소유의 대농장이 있긴 합니다. 거기를 지키는 병력이 중보병으로 1천 정도니까, 그들을 동원한다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면 하루 안에 발스 근처까지 갈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혹시 그중 우리 종단 교인은 없습니까?”
“중보병대장이 전도자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1천 명 모두를 내일 저녁까지 발스 근처에 집결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모두를 말입니까?”
알베르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샤를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황금 갑옷입니다. 중보병 1천 정도에 장인의 힘이 가세해야 안심하고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동부 지방에 민란이 일어난 상황입니다. 혹여 누군가가 딴지를 건다면 민란 진압을 사유로 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못마땅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하여간 욕심 많은 인간…… 어떻게든 자기 병력 안 잃으려고…….’
그 모습을 보며 샤를은 속으로 알베르토를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발스 주변에 군사 1천이 머물 만한 장소가 있습니까?”
“발스 서북쪽 10km 지점에 포루트란 이름의 버려진 요새가 있습니다. 우리 가문이 예전에 쓰다가 버린 겁니다. 한 100년 정도 방치됐지만 아직 쓸만하다 봅니다.”
“그럼 그쪽에 집결시키십시오. 저는 내일 오후에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전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알베르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른손 중지를 세웠다.
곧 중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스르륵 빠져나오며 허공에서 번개 덩어리로 변했다.
알베르토는 그대로 번개 덩어리 위에 올라탔다.
[파지직-!]
번개 덩어리는 한 차례 스파크를 튀긴 후 그대로 창밖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저 멀리 북쪽의 한 점으로 변한, 번개 골렘을 타고 사라진 알베르토의 흔적을 바라보며 샤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