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22화 (22/175)

022 다가오는 그림자 (3)

“뭐, 뭐여 이게!”

“으으으……”

농노들이 두려워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청동 덩어리는 푸른빛과 함께 그 형상이 변해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처럼, 청동 덩어리는 변이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것은 완벽한 형상을 갖춘, 신장 3m가량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가 됐다.

‘헉!’

그리고 조르주와 휴고는 그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5년 전, 묵시록 종단의 교주이자 샤펠 제국의 황제인 프랑수아 4세는 새로운 장로를 임명하고자 모든 구성원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조르주와 휴고는 프랑수아 4세에 의해 새로이 임명된 장로가 보여준, 그만의 권능을 볼 수 있었다.

‘디에고 공작?’

묵시록 종단 3대 장로 중 하나이자 제국 북부의 맹주이며 황실의 사돈인 알베르토 데 디에고 공작.

그의 권능 중 하나이자, 그의 충실한 도우미인 청동 골렘을 바라보며 휴고와 조르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쿵-!]

청동 골렘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족히 15m나 점프한 청동 골렘은 자신을 두려움과 의혹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농노들 위로 이내 떨어져 내렸다.

[콰득-!]

청동 골렘의 하강에 그대로 노출된 한 농노가 터져 죽었다.

시뻘겋게 터져나온 피와 내장을 밟고서 청동 골렘은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죽여라.”

싸늘한 남성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때렸다.

그 즉시 청동 골렘은 농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 흐아아아아……!”

청동 골렘은 빠른 움직임으로, 무자비하게 농노들을 찢어 죽였다.

[쿵-! 쿵-!]

순식간에 농노들을 찢어 죽인 청동 골렘은 천천히 조르주와 휴고가 있는 남문 어귀로 다가왔다.

마치 자기들을 쳐다보는 것만 같은 청동 골렘의 텅 빈 안구 가리개를 바라보며 조르주와 휴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무엄한 것들, 감히 그딴 수작질을 부리려 해?”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청동 골렘의 앞으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호리호리하고 길쭉한 체형을 한,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디에고 공작 알베르토의 등장에 조르주와 휴고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공작님을 뵙사옵니다.”

“장로님을 뵈옵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알베르토는 냉소를 머금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황제 폐하께서 내게 이곳으로 가보라 하시기에 왔더니, 어찌하여 날 이곳으로 보내셨는가를 알게 되는구나.”

알베르토의 말에 두 사람은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젊은 놈이 게으름을 피우다 나까지…….’

‘늙은이가 게으름에 동참을 하다니…….’

두 사람은 속으로 서로를 탓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알베르토는 혀를 찼다.

“못난 것들. 자치령의 관료인 너희들에게 황태자 전하께서 내리신 명령은 곧 황제 폐하의 명과도 같거늘…… 어찌 그리 게으르단 말이더냐.”

“송구하옵니다.”

“용서하여주소서.”

“듣기 싫다!”

알베르토의 일갈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황금 갑옷이 우리 종단의 예언에 나오는 존재라면 이는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요 제국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그깟 은퇴와 커피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려고 해!”

“……”

“마음 같아서는 황제 폐하께 너희들의 게으름과 직무 유기를 고하고 싶지만, 지금은 징계보단 황금 갑옷을 추적하는 것이 더 급한 만큼, 너희의 비위에 관한 징계 논의는 추후로 미루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하옵니다.”

알베르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휴고와 조르주는 자신들의 능력 사용에 필요한 에너지가 회복됨을 느꼈다.

“서둘러라. 서둘러 황금 갑옷을 추적하라. 그리고 황금 갑옷을 찾는다면, 이 스크롤을 찢어라.”

알베르토는 품에서 조그만 스크롤 하나를 꺼내 두 사람의 머리맡에 던졌다.

조르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스크롤을 받아 챙겼다.

“너희가 그 스크롤만 찢는다면, 그 이후의 일은 황제 폐하께서 다 처리하실 것이다.”

“반드시 의무를 다하겠나이다.”

조르주의 대답에 알베르토는 콧방귀를 뀌었다.

조르주와 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못마땅함이 얼굴 전체에 가득 퍼진 알베르토를 향해 한 차례 허리 숙여 인사한 후 휴고의 능력을 이용해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쯧쯧쯧. 하필 제일 게으른 것들이 이 일을 맡게 돼서…… 후우…… 이것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마치 공간이동을 하듯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 차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알베르토.

이내 그의 시선이 불에 그을린 아믈리에 가문의 성채와 저 멀리서 자신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농노들에게로 향했다.

“천한 것들, 감히 고귀한 자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댄 만큼,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겠지.”

알베르토는 손바닥을 쫙 편 채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 끼워져 있던 여섯 개의 반지가 스르륵 빠지며 허공에 떠올랐다.

반지는 이내 강철, 돌, 물, 얼음, 화염, 번개의 덩어리로 변했다가 각자 외형에 개성이 가득한 골렘으로 변했다.

“가거라. 가서 저 천한 것들을 모두 죽여라.”

알베르토의 명령에 일곱 골렘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아믈리에는 농노들이 내지르는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끔찍해!’

‘내가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시도를…….’

조르주와 휴고는 골렘에 의해 찢어지고 뭉개지는 농노의 비명을 들으며 빠르게 이동하여 고블린산맥 중턱에 있는 아믈리에 가문의 사과농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조르주는 가만히 농장 땅에 손가락을 댄 채 눈을 감고 능력을 발휘했다.

곧 조르주의 눈에 닷새 전 아딘과 로제가 이곳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보였다.

[로제]

[네, 스미스 씨.]

[너 그냥 내 동생해라.]

[네?]

[내 동생하라고.]

[하, 하지만 스미스 씨. 저는…… 저는 스미스 씨의 노예입니다.]

[아니. 난 너를 노예로 삼은 적이 없어.]

노예인 로제를 동생으로 삼겠다는 아딘의 선포.

그 인간적인 모습이 제법 아름다워보였지만, 조르주에게는 그것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빨리 그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 그리고 난 존 스미스가 아니야.]

[네? 그럼……]

[내 이름은 아딘.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이야.]

그 대목에서 조르주는 숨을 죽여야만 했다.

‘콘스탄틴? 아딘 콘스탄틴?’

너무 뜬금없다시피 튀어나온 그 이름.

[벨로디나 왕국 제18대 국왕 블라디미르 2세의 장남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 그게 내 이름이자, 진정한 신분이야.]

조르주는 너무도 황당하고 놀라워 그만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닷새 전, 황금 갑옷이 스스로를 아딘 콘스탄틴이라 밝히며 노예 소녀를 콘스탄틴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준 곳을 바라보며 조르주는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모습을 보며 휴고가 물었다.

침을 꿀꺽 삼킨 조르주는 다시 눈을 감고 땅을 짚었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아딘 콘스탄틴이 여기에 왜?’

아딘과 로제가 붉은 말을 타고 고블린산맥을 따라 북부로 가는 것을 확인한 조르주는 다시 눈을 뜬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르주 전도자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휴고의 물음에 조르주는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 모습에 휴고도 긴장하게 됐다.

“서둘러야겠소이다. 황금 갑옷은 산맥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소.”

“하…… 북쪽 말입니까?”

점점 험한 곳으로 간다고 투덜거리며 서둘러 능력을 사용하려는 휴고를 바라보며 조르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끝끝내 조르주는 휴고에게 황금 갑옷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 * *

“흐음…….”

델로이 성채.

발스를 다스리는 델로이 백작 가문의 거처이자 발스의 관청 역할을 하는 곳.

이곳의 서재에서, 발스 백작 파스텔 드 델로이는 털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털보야.”

“네, 백작님.”

“거 자치령이니 서부니 하는 이야기는 너무 나갔다.”

“네?”

털보는 의아한 눈으로 파스텔을 바라봤다.

파스텔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여기 촌놈들은 너를 그냥 경비대장 정도로만 알고 있잖냐.”

“그렇죠.”

“경비대장이란 놈이 제국의 사정에 빠삭하면 뭐 이상하지 않겠냐?”

파스텔의 말에 털보가 피식 웃었다.

“난 또 뭐라고…… 그런 걱정일랑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담긴 뜻도 제대로 파악 못 하는 돌대가리인데.”

“아니야. 항상 조심해야 해. 특히 너나 나는.”

“걱정 마십쇼. 어차피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동네에서 묻힐 것들 아닙니까.”

“그렇지. 그놈들은 그렇게 묻힐 놈들이겠지. 그 실버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외지인만 빼면.”

파스텔이 말을 마치고 물을 마시자 털보는 그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제가 한 번 뒤를 캐볼깝쇼?”

“네가?”

“네.”

“어떻게?”

“뭐, 적당히 맥주 한 잔 사주면서 취하게 한 다음에 물어보는 거죠.”

“취하게 한다고?”

“맥주 한 3통만 먹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파스텔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털보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조금 더 깊게 파였다.

“털보야.”

“네.”

“골드밖에는 안 들고 다니는 놈이, 처음 보는 산적처럼 생긴 털복숭이가 술을 사준답시고 꼬드기면 퍽이나 넘어가겠다. 그치?”

파스텔의 말에 털보는 즉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파스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을 한 모금 쭉 넘긴 후 털보에게 이야기했다.

“가서 데려와. 내가 보자 했다고 하면서.”

“백작님이요?”

“그래. 뭐 적당히 차나 한잔 마시자고.”

“올까요?”

“산적처럼 생긴 놈과는 달리 그래도 난 귀족처럼 생겼잖냐.”

“그놈이 백작님 얼굴을 어떻게 압니까. 참 나.”

“시끄럽고, 저녁 먹고나서 데려와.”

“네, 네.”

털보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로 돌아 서재를 나가려 했다.

그가 막 문고리를 잡았을 때, 파스텔이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너도 슬슬 촌놈들한테 암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털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봤다.

“뭘 말입니까?”

“네가 내 조카라는 거.”

털보는 씩 웃었다.

“아무 암시도 없이 네가 갑자기 내 작위를 물려받으면 다들 혼란스러워하지 않겠냐?”

“어이구. 앞으로 30년은 더 사실 것 같은 분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참 설득력 있습니다.”

털보는 낄낄 웃으며 서재에서 나섰다.

파스텔도 실실 웃으며 주전자를 들어 잔에 물을 채웠다.

* * *

<릭 드 델로이>

<광명력 958년 12월 3일생.>

<발스 백작 파스텔 드 델로이의 조카.>

<현재 파스텔 드 델로이 아래에서 후계자 수업 중이다.>

<경비대장이라는 위장 신분으로 백성들과 어울리며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다.>

로제와 함께 털보의 뒤를 따르며 아딘은 달빛에 의지해 두루마리에 나타난 털보의 정보를 읽어보았다.

“거 아무래도 여기에 찾아오는 외지인이 드문 만큼, 영주님께서도 관심이 생기신 모양이외다.”

털보가 뒤로 돌아보자 아딘은 자연스럽게 뒷짐을 지며 두루마리를 숨겼다.

“워낙에 조용한 동네라 외지인이 나타나면 소문이 빠르게 퍼져서…… 내가 경비대장이니까 또 보고를 안 할 수도 없고. 너무 탐탁잖게 생각하진 마시라고 하는 소리외다.”

“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그럼 다행이구.”

털보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아딘은 슬그머니 손을 앞으로 돌려 두루마리를 말아 품에 넣었다.

‘딱히 두루마리가 별다른 경고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위험한 인물은 아니란 건데……. 정체를 숨기는 건 약간 좀 오버하는 수준이고. 흐음…….’

아믈리에에서 겪은 일이 트라우마가 된 만큼, 아딘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 여차하면 로제를 안고 튀면 되겠지. 뭐 먹으라고 주면 먹는 척만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아딘은 가만히 자기 곁에서 걷는 로제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딘과 마찬가지로, 지난번 아믈리에에서의 일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던 로제는 아딘의 체온을 느끼며 불안을 한결 덜어낼 수 있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델로이 성채 서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섰다.

“아, 미리 이야기해두겠는데, 너무 놀라지는 마쇼. 우리 영주님이 좀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계셔서.”

영주 서재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털보는 아딘에게 이야기했다.

아딘이 움찔하며 털보를 바라보았고, 털보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윙크한 후 문을 열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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