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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3화 (13/175)

013 각성 직전의 마녀 (2)

아딘은 곧장 기둥으로 갔다.

기둥을 안은 채 손목이 밧줄로 묶인 소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상의는 벗겨진 상태였고, 맨살을 후려갈긴 채찍의 위력으로 인해 등에는 흉한 상처와 거기서 흐르는 피로 가득했다.

상처 사이로 흉터들이 보이는 걸로 봐선 하루 이틀 맞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딘은 곧장 소녀의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별로 세게 묶지도 않았는데 이 아이는 왜?’

너무나도 쉽게 밧줄이 풀리자 아딘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의문 이전에 그가 해야 할 것은 소녀의 벗겨진 상체를 가리는 것이었다.

아딘은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 소녀의 상체를 덮어 주었다.

조끼 사이즈가 제법 컸고, 또 소녀의 체구가 작았기에 조끼 한 벌로 소녀의 상체 주요 부위는 충분히 가릴 수 있었다.

피로 물들어가는 조끼 등판을 보던 아딘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채찍질을 하던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곁에 있던 다른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듯한 그들의 표정과 시선에 아딘은 속에 열이 순간 확 치고 올라왔다.

“뭐 하는 놈인데 사람을 묶어두고 채찍으로 때리는 거야!”

아딘의 목청이 제법 높았기에 순간 소년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소년은 얼굴 가득 조소를 머금은 채 아딘에게 이야기했다.

“넌 뭐냐?”

죄책감, 두려움 하다못해 부끄러움까지 그 어떠한 감정도 소년에게선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아딘은 그 모습에서 누군가가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김현수에게 갑질을 하던 금수저와 벨로디나 왕국에서 두루두루 갑질을 하고 돌아다니던 아딘 콘스탄틴이었다.

아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아딘의 모습에 소년이 채찍을 살짝 어깨에 걸치곤 말을 이었다.

“눈치 없는 노예한테 주인이 훈계 좀 한다는데 네가 뭔데 참견하고 난리냐? 엉?”

소년의 말에 아딘은 움찔했다.

‘노예?’

아딘의 시선이 바닥에 엎드린 채 파르르 떨고 있는 소녀에게로 향했다.

아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샤펠 제국과 슈드 자치령에는 노예제가 남아 있다고 설정을 해두긴 했는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 존 크리스토퍼 하이로드는 기존의 불합리한 세계를 부수고 신세계를 구축한다.

그 불합리한 세계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노예제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아딘의 눈앞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인간이 인간을 정당한 소유물로 다루는 모습으로 현실이 돼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딘의 마음에, 김현수의 영혼에 강한 죄의식을 심어주었다.

“내 노예가 눈치가 없어서 좀 훈계하는데 네가 왜 나서고 지랄이냐고!”

소년이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에선 재미있는 유희 거리를 만난 자에게서나 보일 법한 흥미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떠한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이, 말을 해 봐. 어? 네가 뭔데 나서고 지랄이야? 응?”

소년이 아딘에게 다가오며 채찍을 살짝 휘두르기 시작했다.

채찍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주, 주인님!”

그때, 바닥에 엎드려있던 소녀가 황급히 달려와 아딘과 소년 사이를 가로막았다.

소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주인에게 간청했다.

“저, 저의 잘못입니다. 버, 벌은 달기 받겠습니다. 부디 서, 선량한 시민을 해하지 말아 주……”

[촤아악-!]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연약한 등판을 강타했다.

아딘이 준 조끼로 가려져 있다곤 했지만, 여름용 조끼인 만큼 그 두께가 굉장히 얇았기에 별다른 방어력을 보장하진 못했다.

조끼 등판이 찢어졌고, 찢어진 부위로 드러난 소녀의 상처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은 채 몸을 바르르 떨며 두 손을 싹싹 빌 뿐이었다.

“망할! 노예년이! 감히! 주인의! 앞을! 가로막아?!”

[촤아악-! 촤아악-! 촤아악-! 촤아악-!]

소년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연거푸 소녀의 등판을 채찍으로 때렸다.

아딘이 준 조끼는 순식간에 너덜거리는 걸레짝으로 변했고, 소녀의 등판은 속절없이 다시 세상에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한 번! 죽어! 보……”

[탁-!]

소년의 채찍질은, 아딘이 그의 손목을 잡으면서 멈춰졌다.

순간 소년의 눈빛이 흔들렸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인상으로 변해갔다.

“놔.”

“……”

“이거 안 놔?”

소년은 아딘의 손아귀에서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마치 바위 사이에 박힌 것처럼 손목은 빠지지 않았다.

“이, 이 새끼가……”

소년의 표정이 점차 당혹감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당혹감의 한편에는 어쩌면 오늘 처음으로 자신이 때리는 쪽에서 맞는 쪽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감히 몸에 손을 댄단 말이야!”

그때, 가만히 뒤에서 기생충처럼 붙어 있던 다른 소년이 나섰다.

아딘의 시선이 그 소년에게로 향했다.

아딘의 표정에는 김현수의 영혼이 지닌 죄책감과 아딘 콘스탄틴의 뇌가 지닌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분노가 강렬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직면한 소년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분은 스틸레 요새 사령관 아테인 남작님의 차남 자크 드 아테인 님이시다!”

그의 말에 아딘의 시선이 채찍을 쥔 소년, 자크에게로 향했다.

“그, 그리고 나는 파, 파세레빌의 시장이신 로랑 님의 장남이자 자크 드 아테인 님의 친구인 올랑드다!”

기생충 소년, 올랑드의 말이 끝날 무렵, 자크의 표정에서 불안과 공포를 품은 당혹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그는 턱을 들어 세운 채 오만한 표정으로 아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올랑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이, 계속 잡고 있을 거야?”

자크는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는 아딘이 자신의 정체를 안 이상 손을 놓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아딘은 도리어 손에 더 힘을 강하게 주었다.

“아아악-!”

자크는 손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그만 쥐고 있던 채찍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딘은 발로 채찍을 밀어 별실 한구석에 몰아넣은 후 자크의 손목을 놔주었다.

자크는 그대로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올랑드는 그런 자크를 부축해주었다.

“너 미쳤어? 내가 누군지 알고도 힘을 줘?”

자크의 말에 아딘은 콧방귀를 뀌며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한 300년 전에야 아테인 가문이 제국에서 알아주던 명문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요새 사령관이라는 거창한 이름만 남은, 실상은 치안 유지 외에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몰락 귀족에 불과하지.”

아딘의 말에 자크와 올랑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파세레빌 시장도 기껏해야 주민 호구조사 정도나 할 수 있을 뿐, 별다른 권한이 없는 명예직 수준이고.”

아딘은 한 발짝 자크와 올랑드를 향해 다가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두 발짝 물러났다.

“파세레빌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총독이 직접 임명한 징세관뿐이야. 징세와 예산 집행 등 모든 것이 그에게 달려 있지.”

아딘이 턱을 세운 채 두 사람을 내려다보듯 바라봤다.

자크는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고, 올랑드는 고개를 숙인 채 아딘의 시선을 외면했다.

김현수가 만든 설정이 아닌, 아딘 콘스탄틴이 알고 있던 지식으로 두 사람의 기세를 누그러뜨린 아딘은 몸을 돌려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때까지 바닥에 엎드려있던 소녀의 등판을 보며 아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이 조그만 아이가 어디 때릴 곳이 있다고 이렇게 험하게…….’

아딘은 소녀의 등에 난 흉터와 끄 흉터 위와 주변으로 다시 생겨난 상처, 거기서 흐르는 핏물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응?’

소녀의 등에 난 상처를 쳐다보던 아딘의 눈에 일순간 전체 상처가 하나의 커다란 그림처럼 보였다.

마치 독사의 머리와도 같은 그 형상을 보며 아딘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등에 난 독사 모양의 흉터 모음……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 설마…….’

아딘은 흔들리는 눈으로 소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떨리는 손이 천천히 그녀의 흉터로 향했다.

“너! 두고 봐.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그때 자크가 아딘에게 다가오며 삿대질을 했다.

그리곤 발로 소녀의 머리통을 툭 차며 이야기했다.

“일어나. 돌아간다.”

소녀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별실에서 빠져나가는 자크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소녀.

그 소녀의 뒷모습을 통해 아딘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독사의 머리처럼 생긴 흉터 더미들을.

아딘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로제>

<광명력 977년 10월 1일생. 광명력 992년 6월 1일 현재 15세.>

<용을 아비로 둔, 용과 인간의 혼혈아.>

<현재 아테인 가문 소유의 노예 신분이며, 아테인 남작의 차남 자크 드 아테인의 전속 노예로 배정된 상태이다.>

‘피의 마녀 로제!’

아딘은 다급히 두루마리를 말아 품에 넣은 후 자크를 뒤쫓아 나갔다.

“이봐! 어이!”

아딘의 부름에 자크와 올랑드가 흠칫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고개를 숙인 채 그 뒤를 따르던 노예 소녀, 로제는 그만 자크의 등에 머리를 콩 박고 말았다.

하지만 자크는 그것을 의식할 수 없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아딘에게서 극한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소녀. 네 노예.”

“……”

“나한테 팔 생각 없나?”

“…… 뭐?”

“나한테 네 노예를 팔 생각이 없냐고.”

아딘의 말에 자크는 순간 당황하며 올랑드를 바라봤다.

올랑드가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자크는 헛기침한 후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아딘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짐짓 여유로운 어투로 말했다.

“조건만 맞는다면야.”

즉석에서 노예 거래를 시작했다.

아딘은 곧장 허리춤에 차고 있던 마법 주머니에서 금두꺼비를 꺼냈다.

금두꺼비가 또 나오자 입구에 서서 아딘과 자크를 지켜보던, 처음 그에게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종업원이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고, 자크와 올랑드 그리고 자신의 매매를 실시간으로 곁에서 지켜보던 로제도 마찬가지였다.

“1천 골드짜리 금두꺼비야. 이 정도면 충분하나?”

눈앞의 금두꺼비에 자크와 올랑드의 표정이 동시에 환해졌다.

자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제를 밀어내다시피 하며 아딘에게 넘겼다.

로제가 자신의 옆에 서자 아딘은 자크에게 금두꺼비를 건네주었다.

“번복하기 없기다?”

자크의 말에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번복할 이유가 없지.’

아딘은 자기 곁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의 마녀가 내 동료가 되는데, 번복할 이유가 없지.’

로제를 바라보며 아딘이 미소짓는 것을 자크와 올랑드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은, 아딘의 본의와 무관한 의미로 해석했다.

자크가 씩 웃으며 금두꺼비를 소매에 집어넣고는 아딘을 향해 이야기했다.

“아직 한 번도 남자 손길 거치지 않은 아이니까, 살살 다뤄.”

그 말에 아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딘은 마법 주머니에서 100골드 짜리 금괴 하나를 꺼내 자크에게 건넸다.

자크는 영문도 모른 채 금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뻐억-!]

아딘의 주먹이 그대로 자크의 왼쪽 광대를 강타했다.

“크아악-!”

자크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건 네 맷값이야. 받아 둬.”

아딘의 말에 자크가 광대를 손으로 문지르며 아딘을 노려봤다.

올랑드가 그의 귓가에다 대고 무어라 속삭였고, 자크는 이내 그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여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이!”

여관을 나가려는 자크를 아딘이 불러 세웠다.

자크가 떨리는 눈으로 아딘을 바라봤다.

“양도 증명서는 쓰고 가야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씩 웃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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