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각성 직전의 마녀 (1)
“의심되면 깨물어 보시든가.”
아딘의 조롱에 종업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금괴를 양손에 든 채 아딘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미처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종업원의 사과에 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손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야. 여기 종업원이 사과라는 것도 하네?”
“돈이 좋긴 좋나 봐.”
그 소리를 아딘은 물론 종업원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종업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이, 종업원 씨. 일어나 봐.”
아딘의 말에 종업원은 허리를 다시 폈다.
아딘은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금두꺼비를 꺼냈다.
“헉!”
“헙!”
식당 여기저기서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들은 물론 아딘과 종업원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다른 종업원들도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아딘의 손에 들린 금두꺼비를 바라보았다.
“이거 1천 골드짜리거든?”
“…….”
“종업원 씨가 이거 만지려면 얼마나 일해야 하지?”
“…….”
“한 20년은 일해야하지 않나?”
종업원은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갖고 싶지?”
아딘의 말에 종업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인에 의해 엄격하게 교육받아 천박해보이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아야 했건만, 1천 골드짜리 금두꺼비 앞에서 그런 교육과 지침 따위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종업원이 탐욕과 선망의 눈길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아딘은 조소를 얼굴 가득 머금으며 말했다.
“개처럼 짖으면서 내 신발을 핥아 봐. 그럼 이걸 줄 수도 있겠는데 말이야.”
아딘의 말에 종업원은 물론 손님들마저도 화들짝 놀랐다.
그의 과한 무례 때문이 아니었다.
“이야. 개처럼 짖으면서 신발을 핥기만 해도 저걸 줘?”
“나는 아예 개처럼 목줄을 차고 다닐 수도 있는데.”
손님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종업원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려 했다.
그 순간, 아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젠장!’
아딘은 주머니에 금두꺼비를 넣고는 종업원을 일으켜 세웠다.
“왜, 왜 그러십니까?”
당황해하는 종업원을 일그러진 인상으로 바라보며 아딘이 말했다.
“하란다고 진짜 하는 건 또 뭐야?”
“…….”
“됐고, 특실이나 안내해.”
종업원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금괴를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지배인에게 갖다 준 후 아딘을 특실로 안내했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여러 감정, 질투와 선망, 의문, 분노, 경멸 등이 섞인 시선을 받으며 아딘은 후드를 다시 뒤집어써야만 했다.
‘방금 건 안 좋았어. 내가 바라는 아딘의 자아는 단호한 결단 그런 거지 방금 같은 갑질이 아니었다고.’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아딘은 종업원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아딘은 여관의 최상층인 10층에 자리한 특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몰라뵙고 무례를 범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부디 머무시는 동안 우리가 제공하는 최상의 서비스를 만끽하시며 불쾌함을 누그러뜨리실 수 있길 바랍니다.”
자신을 향해 다시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는 종업원을 손짓으로 돌려보낸 후 아딘은 특실 문을 닫았다.
‘1박에 50골드씩 할 만하네.’
식당만 한 크기의 방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플루슈드에서 지내던 여관 침실만 한 크기의 침대에 포도주병으로 가득한 찬장과 순금으로 만들어진 원탁에 창밖으로 바다의 풍경을 보며 씻을 수 있는 거대한 욕조까지.
‘돈이 좋긴 좋아.’
아딘은 씩 웃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 한가운데에서 주위를 쭉 둘러보던 아딘은 벽에 붙은 유리거울을 보고서는 종업원이 자신을 무시한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누가 봐도 거지 직전의 몰골이니…… 내일 옷이나 몇 벌 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딘은 로브와 옷을 벗은 후 욕조로 들어갔다.
그가 욕조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욕조에 따스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해 순식간에 그의 어깨까지 모조리 덮었다.
‘어으…… 실용 마법 설정은 참 잘해둔 것 같아. 돈만 있으면 현대인으로서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서비스를 누리니까.’
딱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며 아딘은 실로 오랜만에 김현수가 만든 세계관 설정에 만족을 표했다.
* * *
갈색마을.
주변에 도시라 해봐야 마르탱뿐이었고, 그나마도 여관 하나 없이 민박이 전부인 소도시인 만큼 이곳은 시끄러움이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랬기에 촌장 콜자크의 아들 로베르는 큰물에서 놀고 싶다며 슈드아퐁으로 가 총독부 재무국 관료가 됐다.
하지만 콜자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와 여름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소의 울음소리를 즐기며, 자신의 소작농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거드름을 피워가며 기름진 음식으로 창자를 채우는 것이 그의 낙이었다.
아주 가끔, 예기치 못한 손님이 찾아오긴 했다.
예컨대 갑자기 초저녁 즈음에 불쑥 집으로 찾아와 마치 집주인처럼 행세하려 들었던 총독부 수석 마법사 르네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녀 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녀에 앞서 찾아왔던 남루한 차림의 검객에 의해 살해당한 후 그를 찾아온 손님은 그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시신을 장사지냈다고?”
금발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잘생긴 남자의 말에 죄인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가 땅에 닿을 지경으로 엎드린 콜자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 그, 그, 그, 그것이 수, 수, 수석 마법사께 대한, 그…… 그…… 예의라고 생각…… 하였사옵…… 니다…… 초, 초, 총독 각하…….”
콜자크의 말에 남자, 슈드 자치령 총독 겸 샤펠 제국 황태자 샤를 드 퐁피두는 깔끔하게 다듬은 금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샤를의 그런 반응에 콜자크는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어디다 묻어 두었나?”
“그, 그, 그, 그, 그 가, 가족 영묘에…… 모시어 두었사…… 옵니다.”
“가족 영묘라…… 허.”
샤를은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콜자크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10분 후에 영묘로 갈 테니 미리 가서 수석 마법사의 시신을 꺼내 놓도록.”
“아, 아, 아, 알겠사옵니다…… 각하.”
콜자크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후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저러다 넘어지지나 않을까 우려될 만큼 비틀거리며, 자기 서재를 나섰다.
그의 서재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샤를은 피식 웃었다.
“서신을 다시 줘 봐.”
샤를의 말에 그의 우측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총독 비서, 로이가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 공손히 건넸다.
샤를은 편지를 든 채 다시 처음부터 쭉 읽어 내려갔다.
총독부 수석 마법사 르네의 죽음을 알리며 수색을 호소하는 조르주의 서신이었다.
얼마나 급하게 썼는지, 몇몇 부분은 무슨 단어인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르네 드 페렛이 죽었다…….’
서신을 도로 참모에게 건넨 후 샤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저택을 사방에서 에워싼 자치령 군대와 어둠을 몰아내는 횃불, 저택 입구에 꽂혀 바람에 휘날리는 찬란한 태양이 수 놓인 백색 총독기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황금 갑옷을 추적하던 종단의 신도가 죽었다고…….’
샤를의 입가가 씰룩이더니 씩 올라갔다.
조소 가득한 표정으로 샤를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전도자 조르주의 상태는?”
그의 물음에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도 2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던 로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오늘 아침 도착한 서신에 따르면 스스로 볼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고 합니다.”
“똥오줌은 자기가 알아서 가리게 됐다?”
샤를은 코웃음을 친 후 로이에게 이야기했다.
“여기 조사가 끝나면, 플루슈드로 내려가야겠어. 그래도 명색이 황금 갑옷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내가 가봐야지.”
“준비해 두겠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샤를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황금 갑옷이 나타나면 남풍이 대지를 불태우고 석양이 강물을 메마르게 하리라.’
묵시록 종단에 전해지는 황금 갑옷에 관한 예언.
그 예언은, 그러나 모두에게 모든 것이 공개되진 않았다.
전도자와 수련자에게는 남풍과 석양에 관한 불길한 시적 경구만이 알려졌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조직에 딱 세 명뿐인 장로에게는 그 뒤의 예언 경구까지 공개됐다.
‘황금 갑옷을 쟁취하는 자, 만인의 숭배를 받고 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옥좌에 앉으리라.’
장로에게 공개된 예언 경구를 떠올리며 샤를은 그 잘생긴 얼굴이 기괴해 보일 정도로 괴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필 딱 내가 황태자일 때 황금 갑옷이 나타나네?’
그는 기괴한 표정으로 별의 파도가 일렁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다 나를 온 세상의 황제로 삼으시려는 당신네들의 뜻이겠지? 그 뜻, 감사히 받아들이지.’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던 샤를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푸흡…… 푸흐흐흐…… 프흐하하하하하하!”
이윽고 그는 고개를 젖인 채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이미 익숙히 봐온 로이는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 * *
흑장미여관 10층 특실을 숙소로 잡은 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굉장히 많았다.
실용 마법으로 귀찮은 절차 없이 곧바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거나, 침대 옆에 마련된 줄을 당기면 3분 안으로 전담 종업원이 달려온다거나 하는 등의 혜택은 일반 객실 이용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100개에 달하는 침실 중 특실은 오직 3개, 8층과 9층, 10층에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돈이 좋긴 좋아.’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가 목욕을 해 개운함을 느끼며 아딘은 천천히 특실을 나와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특실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저녁 식사를 위함이었다.
시끌벅적한 1층 식당으로 아딘이 내려오자 몇몇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딘이 처음 여관에 들어와 종업원과 실랑이를 할 때부터 죽치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남자들은 아딘의 재력에 대해 수군거렸고, 여자들은 그의 외모에 대해 수군거렸다.
공통적인 것은 그 수군거림에 모두 선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잘생긴 금수저들은.’
문득 아딘은 김현수가 고생 끝에 법정에서 정의를 구현했던 갑질 금수저를 떠올렸다.
‘그 금수저도, 아딘 콘스탄틴도 어릴 때부터 과분한 선망과 관심을 받아 왔으니 망나니가 됐던 거겠지.’
그리고 둘 다 그 대가를 치렀다.
금수저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아딘 콘스탄틴은 모든 지위를 잃은 채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한 상념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딘은 유리 콘스탄틴을 떠올렸고, 그의 비웃음 가득한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식당으로 내려왔던 아딘이 별안간 정색하며 주먹을 쥐자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돌렸다.
선망은 둘째치고, 어쨌건 그가 종업원에게 가했던 갑질을 본 입장에서 괜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딘은 특실 고객 및 추가 비용을 댄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고풍스러운 나무 벽으로 일반 식당과는 차단된 별실에 들어섰다.
“크하하하!”
[휘이익-! 짜악-!]
“이야 채찍 잘 다루는데, 자크?”
그리고 별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채찍을 휘두르는 소년과 그것을 지켜보며 맞장구쳐주는 다른 소년 그리고 기둥에 묶인 채 채찍을 맞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노예들 다루려면 채찍질을 잘해야지!”
[휘이익-! 짜아악-!]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아딘은 굳은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며 채찍질을 하던 소년에게 고함쳤다.
채찍질하던 소년과 곁에서 낄낄거리던 소년 그리고 채찍을 맞으며 기둥에 얼굴을 파묻듯 하고 있던 소녀의 시선이 동시에 아딘에게로 향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