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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0화 (10/175)

010 황금 갑옷 (4)

“어디 가려고? 이 야심한 새벽에?”

허공에서 르네는 아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딘은 굳은 표정으로 수통을 허리춤에 매단 후 천천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르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왜? 그 칼로 날 찌르기라도 하려고?”

르네가 마법 지팡이를 장난스럽게 휘둘렀다.

아딘은 아무 말 없이 르네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름도 거짓, 출신지도 거짓, 슈드 자치령에 온 이유도 거짓, 황금 갑옷을 못 봤다는 말도 거짓…….”

르네의 말에 아딘의 표정이 굳었다.

검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르네가 아딘을 바라보며 살짝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 거짓말이 나한테도 통한다고 생각해?”

르네가 마법 지팡이로 아딘을 가리켰다.

지팡이 끝에 달린 조그만 사파이어를 중심으로 마나가 모여들며 소용돌이쳤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공간의 일렁임이 달빛 아래 드러나며 제법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마법사랑 싸운다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딘은 바짝 긴장했다.

‘마법사랑?’

평생에 싸우는 걸 싫어하던 김현수로 잘만 살다가, 갑자기 아딘이 돼 팔자에도 없던 살육을 저지르게 됐다.

그러더니 이제는, 비단 김현수가 아니라도, 틈만 나면 술에 취해 이웃과 싸우는 동네 싸움꾼도 겪지 않을, 마법사와의 싸움까지 경험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운명의 장난에 아딘은 긴장한 와중에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웃음이 르네에게는 다르게 해석됐다.

‘비웃어?’

황금 갑옷을 보지 못했다는 거짓말.

그것만으로 아딘이 황금 갑옷인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거짓을 이야기했는지는 판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에 갑작스럽게 길을 떠나려 하던 모습이나, 지금 저렇게 검을 뽑은 채 여유롭게 웃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르네는 점차 하나의 확신을 품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야. 황금 갑옷. 저 녀석이 황금 갑옷이야.’

흑마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온 로브를 쓴 사내.

그리고 그가 저지른 거짓말과 지금 보여주는 저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르네로 하여금 아딘을 황금 갑옷이라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그럼 나 혼자서 저놈을 상대하기란 힘들어.’

르네는 오른손에 든 지팡이로 여전히 아딘을 겨눈 채 왼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어 주머니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주머니를 꺼내자 자동으로 끈이 풀렸다.

[흐어어어어-!]

[후우우우우우-!]

[구와아아악-!]

끈이 풀리고 입구가 열리자 그곳에서 음산한 비명과도 같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르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마법사가 너 같은 칼잡이랑 싸우려면 앞에 칼받이로 내세울 놈들이 필요하다는 거, 이건 상식이야. 너도 알지?”

귀신의 음산한 비명이 나오는 주머니를 들고서 씩 웃으며 주절거리는 르네.

‘선택지가 없어.’

아딘은 결국 불칸의 갑옷을 꺼내기로 했다.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

르네가 말을 이으려 할 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아딘의 복부에 벨트 하나가 나타났다.

곧이어 벨트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아딘의 전신을 휘감았다.

한 새벽에 지상에 강림한 태양과도 같은 그 모습을 르네는 눈을 부릅뜬 채 지켜봤다.

마나가 안구를 보호해주고 있었음에도 안구가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아…… 저게…… 저게……!’

하지만 그런 고통 따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빛은 찬란했다.

잠시 후, 빛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황급 전신 갑주로 무장한 아딘이 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너였구나!”

르네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그 순간, 주머니에서 음산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허공에서 여섯 갈래로 나뉜 후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연기로부터 여섯 구의 스켈레톤이 만들어졌다.

가슴을 가리는 흉갑과 투구, 시퍼렇게 날이 든 시미터로 무장한 스켈레톤은 눈구멍에서 보랏빛 귀화(鬼火)를 내뿜으며 아딘을 향해 무한한 적의를 뿜어댔다.

그 적의를 정면으로 맞이하며 아딘은 투구 너머로 스켈레톤과 허공에 뜬 르네를 바라보았다.

“한 번 놀아 볼까?”

르네가 그 말을 내뱉은 직후, 그녀의 지팡이에 모여 있던 마나가 한 줄기 번개가 돼 아딘을 향해 날아갔다.

[꽈르릉-!]

마차와 말을 동시에 태워버린 번개가 천둥소리와 함께 아딘을 향해 날아갔다.

[파지직-!]

번개는 그대로 불칸의 갑옷을 때렸다.

하지만 번개가 외피에 닿는 순간, 갑옷으로부터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순간 르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좋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그리고 아딘은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키아아아-!]

번개 공격이 그치자마자 스켈레톤들이 아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스란히 전달해주마.’

그대로 아딘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스켈레톤들을 향해 돌진했다.

[쿵-!]

[퍼서석-!]

정면에 있던 스켈레톤을 향해 이든은 그대로 몸통을 날렸다.

정통으로 아딘과 충돌한 스켈레톤은 그대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뒤로 쭉 밀려났다.

[키아아아-!]

[크아아아-!]

그 순간, 양쪽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동시에 아딘의 목을 노리며 시미터를 휘둘렀다.

[깡-! 깡-!]

그러나 시미터는 갑옷 외피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 채 허무하게 이만 나갈 뿐이었다.

아딘은 그대로 왼쪽에 있던 스켈레톤의 흉갑을 발로 차버린 후 오른쪽에 있던 스켈레톤의 목을 검으로 쳤다.

[뻐억-!]

아딘의 발에 정통으로 맞은 스켈레톤은 흉갑과 함께 흉부 골격이 박살 나버렸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던 스켈레톤은 목이 잘리기는커녕 오히려 아딘의 검이 이가 나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해버렸다.

‘젠장.’

건달들을 벨 때와는 달리 확실히 마법의 힘으로 강화된 스켈레톤이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검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딘은 그대로 검을 집어 던진 후 맨주먹으로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강타했다.

[뻑-!]

그대로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절반가량 박살이 났고, 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스켈레톤 3기를 재기불능 상태로 만든 아딘.

하지만 그사이 르네는 두 번째 마법 공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거나 처먹어!”

[꽈르르릉-!]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번개 다발이 아딘의 전신을 수십 차례 강타했다.

‘크헉!’

이번 공격은 그 충격이 상당했기에 아딘은 상당한 통증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이?’

순간 황금빛 투구 너머에서 외부를 관조하던 아딘의 눈빛이 변했다.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리고 번개 다발이 그치고, 그 모든 충격과 에너지가 불칸의 갑옷에 흡수됐을 무렵 아딘은 천천히 목을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이거지?”

아딘이 씩 웃었다.

그의 웃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음색 사이사이에 가시처럼 박힌 광기는 고스란히 르네에게 전달됐다.

‘이, 이건…….’

르네는 다급히 3차 캐스팅을 준비했다.

이미 두 번째 번개 다발 공격으로 인해 정신적 피로가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3차 캐스팅을 준비하는 사이 남은 스켈레톤 3구가 아딘에게 덤벼들었다.

“흐하하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스켈레톤의 두개골에 아딘은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재질의 건틀릿은 그대로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다.

그 상태로 아딘은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양발로 스켈레톤의 흉갑을 강타했다.

[뻑-!]

순식간에 스켈레톤의 몸통이 머리와 분리된 채 뒤로 수m를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딘은 그대로 허공에서 뒤로 한 바퀴 돌아 땅에 착지한 후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다른 스켈레톤의 머리통으로 손가락에 박혀 있던 두개골을 집어 던졌다.

[퍼석-!]

두개골과 두개골이 충돌하며 뼛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딘이 던진 두개골은 완파됐고, 거기에 맞은 스켈레톤의 두개골은 반파됐다.

[뻑-!]

그대로 아딘은 반파된 스켈레톤의 두개골 중 남은 부분을 주먹으로 갈겨 완파시켰다.

[키이이잇……!]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감정이 없다.

소환자의 공격 목표에 대한 이유 없는 무한한 적의를 제외하면, 언데드는 공포도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 언데드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소환자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언데드에게 전이되기 때문이었다.

[키이잇……]

홀로 남은 스켈레톤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아딘이 스켈레톤을 마치 장난감 부수듯 박살내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르네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준비하던 3차 캐스팅은 취소됐다.

[빠각-!]

그리고 마지막 남은 스켈레톤이 아딘의 주먹에 두개골 전체가 날아갔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상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단 도망가야 해. 조르주, 조르주 전도자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

[꽈르릉-!]

그 순간, 아딘이 르네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주먹에서 르네가 그에게 쏟아부었던 두 차례의 번개 마법이 모든 충격량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 그대로 그녀에게 날아갔다.

“커허억-!”

내장과 뼈, 근육 조직과 피부가 불타 녹는 통증을 느끼며 르네는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쿠웅-!]

“크허억-!”

땅으로 떨어지며 발생한 충격에 그녀는 검게 죽은 피를 토해버려야만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딘은 천천히 다가갔다.

르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황금빛 찬란한 전신 갑주를 바라보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사…… 살려……”

자기 머리맡에서 발걸음을 멈춘 아딘에게 르네는 화상 입은 성대를 가까스로 사용해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그런 그녀를 아딘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르네에게는 마치 황금 갑옷의 투구가, 금빛이 일렁이는 그 눈구멍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기에, 상당한 두려움을 그녀에게 안겨다 주었다.

“사…… 사……”

불칸의 갑옷.

이 신물은 단순히 방어력만 강화하는 방어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착용자의 힘과 스피드를 향상함은 물론, 이렇게 흡수한 마법 공격을 그 충격량과 에너지를 그대로 보존한 채 도로 돌려주는 것도 가능했다.

이미 그녀가 전투 불능의 상황임을 파악했기에, 구태여 아딘은 계속해서 불칸의 갑옷을 입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곧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갑옷은 도로 벨트가 됐고, 벨트는 다시 아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네 마법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리고 그걸 흡수한 불칸의 갑옷은 네 마법의 위력만큼의 반사 능력이 있었고.”

아딘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르네의 왼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번개로 인해 내장은 물론 피부까지 모두 검게 타버린 상황에서 주머니는 멀쩡했다.

아딘은 그것을 주운 후 그대로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곧 두루마리가 주머니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법 주머니>

<주머니 속의 공간은 무한한 공간이다.>

<필요에 따라 물건을 얼마든지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그 정보를 바라보며 아딘은 씩 웃었다.

그는 두루마리를 넣은 후 곧장 재에 뒤덮인 마법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상자 속에 있던 금을 몽땅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너 때문에 마차를 못 쓰게 됐지. 아무리 경량화 마법이 걸린 상자라 해도 저걸 계속 들고 다니는 건 거추장스럽겠지. 덕분에 좋은 물건 하나 얻게 됐어.”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딘은 르네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르네가 세상에서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자신이 쏜 번개 마법을 고스란히 되돌려받아 새까맣게 타 죽어버린 르네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딘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내 아딘의 시선은 르네의 시체에서 창가에 모여 자신과 르네의 싸움을 지켜보던 콜자크 저택의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에 단잠에서 깬 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전사와 마법사의 1대1 싸움이 준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아딘과 르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목격자는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그들을 바라보며 아딘은 씩 웃었다.

‘다 죽여 버리면 목격자도 없고 좋지 않을……’

그 순간, 아딘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딘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콜자크 저택 사람들을 올려다봤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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