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불칸의 신전 (3)
아딘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불칸 신상을 올려다봤다.
불칸 신상은 무심한 표정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아딘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조각된 것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아딘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불칸의 응답이자 시험의 시작이라는 것을.
‘과연 어떤 시험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3대 신물은 어디까지나 맥거핀이었다.
그것이 있다는 설정만 있었을 뿐, 6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자연히 설정도 구체적이지 않아서, 3대 신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소유한 신 혹은 그에 필적하는 존재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정도로만 설정돼 있었다.
그랬기에 아딘은 자신의 기도에 불칸이 응답한 것을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의 불안은 고스란히 불칸 신상으로 전해졌다.
“헉-!”
불칸 신상의 텅 빈 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번뜩였다.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그 광휘에 아딘은 눈을 질끈 감고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려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마 아딘이 눈을 뜨지도, 팔을 내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눈을 뜨게나.”
중후한 남성의 굵직한 중저음이 아딘의 귀를 때렸다.
아딘은 팔을 내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신전은 오간 곳 없이, 드넓은 초원 위에 아딘은 서 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말과 그 위에 앉은 남자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아딘은 잠시 멍하니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나는 이쪽에 있다네.”
다시 그의 귀를 때리는 중저음.
아딘은 그제야 시선을 소리의 진원지로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망치를 들고 있는 선량한 인상의 근육맨, 불칸을.
“당신은……?”
김현수가 만든 피조물, 그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서 있는 불칸을 바라보며 아딘은 말끝을 흐리면서도 명확하게 질문했다.
불칸이 씩 웃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뭘 그리 묻는가? 하하.”
그러면서 불칸은 아딘의 곁으로 와 두툼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은 후 망치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달려오는 말들이 보이나? 그 위에 앉은 사람도?”
아딘의 시선이 불칸의 망치를 따라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입니다.”
“눈에 익지 않은가?”
“네.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본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런 모순적인 느낌이 들겠지. 왜냐하면, 이건 자네,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의 과거니까.”
과거라는 말에 아딘은 흠칫 떨며 불칸을 바라봤다.
‘아딘 콘스탄틴의 과거라고?’
아딘은 다시 시선을 말을 타고 오는 두 남자에게로 돌렸다.
김현수가 1부 메인 빌런으로 만들어 둔 아딘 콘스탄틴의 과거.
“이 과거의 끝에서 그대는 내 시험을 통과해야 할 걸세.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동굴에서 외로이 늙어 죽겠지.”
그리고 불칸의 시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김현수는 적어두지 않았다.
설정을 짜던 도중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바람에 대충 두루뭉술하게 서술한 게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구체적으로 짜두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스워졌다.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여기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아딘은 자기 어깨에 올라온 불칸의 두텁고 단단한 손을 통해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의 과거를 차근차근 지켜봤다.
* * *
아딘 블리디미로비치 콘스탄틴.
아버지는 벨로디나 왕국의 18대 국왕 블라디미르 일리치 콘스탄틴, 통칭 블라디미르 2세.
그리고 본인은 벨로디나 왕국의 첫째 왕자이자, 유력한 왕위 계승자.
그런 만큼, 그의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자기애는 당연했다.
“그러게 내가 말로 할 때 침실로 왔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잖아. 안 그래?”
그랬기에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그가 얻기 원하는 것은 여자의 육체였다.
보통의 여자들은 다 그에게 넘어왔다.
그의 고귀한 신분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생긴 얼굴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가끔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아딘 콘스탄틴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자의 삶을 망가뜨렸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유부녀의 경우 남편과 자식까지, 그 모두가 아딘 콘스탄틴의 권력 앞에서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의 끝에서 아딘 콘스탄틴의 요구를 거절했던 여자들은 결국 그의 침실로 찾아왔다.
“지상의 필멸자들 중 자네처럼 권력을 지닌 이들은 대체로 그것을 타인이 아닌 자신을 위해, 정의가 아닌 사리사욕을 위해 쓰더군.”
불칸의 말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내가 아니다.
나는, 김현수는 저런 권력자들의 갑질에 맞서 싸워 정의를 구현시킨 사람이다.
저렇게 자신의 힘으로 유부녀의 육체를 강제로 취하는 호색한 따위가 아니다.
“뭐, 보통 저런 자들은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기 마련이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마땅한 심판을 받았어.”
아딘 콘스탄틴의 무수한 범죄 장면이 지나가고, 장소는 카판 대평원으로 옮겨졌다.
광명력 991년 10월 10일.
죽은 국왕 블라디미르 2세의 두 아들이 자신의 사병을 동원해 싸우는 내전의 현장이었다.
첫째 왕자 아딘 콘스탄틴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에 황금 사자가 그려진 깃발과 둘째 왕자 드미트리 콘스탄틴을 상징하는 푸른 바탕에 은빛 유니콘이 그려진 깃발이 우뚝 선 가운데 무의미한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양측 합이 5만에 달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3만에 달하는 사람이 신체 일부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과 부상은 결국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다.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 내 조카여.”
유리 일리치 콘스탄틴.
죽은 블라디미르 2세의 동생이자 아딘 콘스탄틴과 드미트리 콘스탄틴의 삼촌.
그가 제니스 공화국의 용병을 이끌고 카판 대평원에 나타나며 내전은 허무하게 종결됐다.
“그래도 자네는 자네 동생처럼 선을 넘지는 않았어. 적당히 삼촌으로서의 예우는 해주었지.”
지하 감옥에서의 끔찍한 고문, 드미트리의 공개 처형 소식, 유리 콘스탄틴의 배려를 가장한 능욕.
“그리고 자네의 참모, 안톤 르보프에게는 또 굉장히 잘 해주었지.”
안톤의 구출, 도망, 고뇌, 슈드 자치령으로의 이동, 독충과의 사투, 무저갱의 호수로 잠수.
그 모든 장면이 지나가고 마침내 나와 불칸은 구름 위에 서게 됐다.
서쪽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불칸은 내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뒷짐을 진 채 이야기했다.
“자네의 삶은 전체적으로 추악한 권력자의 삶 그 자체였네. 천계의 그 어떠한 신조차도 좋아하지 않는 그런 죄인의 삶 말이야.”
불칸은 날 등지고 있다.
하지만 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주제에 감히 내게 찾아오다니. 허!”
불칸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굳은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날 직시했다.
“나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그런 신이 아닐세.”
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 느껴보는 구름의 푹신함이 내 엉덩이를 받쳐줬지만 난 그 느낌을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난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채 빌어야만 했다.
“불칸이시여. 근면의 신이시여.”
불칸은 말해보라는 듯 차가운 눈으로 날 내려다봤다.
“저건…… 아딘 콘스탄틴의 행동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창조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아딘 콘스탄틴에게 내전 패배 후 죽음이라는 짧은 한 문장만을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대와 내가 방금 본 것은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건…… 그건……”
불칸이 망치로 가볍게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조금 전 그와 함께 보았던, 아딘 콘스탄틴이 불칸의 신전으로까지 오던 과정이 다시 재생됐다.
그리고 리플레이가 끝나자 나와 불칸은 숱한 별로 가득한 검은 하늘을 구름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도 그대는 그대의 삶을 부정한단 말인가?”
“저는 저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는 아딘 콘스탄틴이 아닙니다.”
“아딘 콘스탄틴이 아니라고?”
“저는…… 저는……”
나는 아딘 콘스탄틴이 아니다.
나는 김현수다.
아딘 콘스탄틴은 그저 나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니 난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
이것이 내 주장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된 아딘 콘스탄틴의 생을 바라보며,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딘 콘스탄틴의 인생 자체는 내 인생이 아니긴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는 것을.
아딘 콘스탄틴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색마로 온갖 갑질을 통해 원하는 여인을 품었던, 빌런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것은, 전적으로 그렇게 살도록 운명지어준 내 책임이란 것을.
다시 나는 불칸과 구름 위에 섰다.
별빛은 사라지고, 하늘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더불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질문을 바꿔보겠네.”
불칸이 나를 등진 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자네는 날 찾아왔나?”
“당신의 갑옷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 갑옷을 왜 얻으려 하는가?”
“복수를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에 대한 복수인가?”
“날 고문하고 죽이려 한 유리 콘스탄틴의 행위에 대한 복수입니다.”
불칸이 뒤로 돌아서며 날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
폭소하던 불칸이 두꺼운 손으로 내 양어깨를 짚었다.
그는 씩 웃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광명교에서 나를 따르는 이들,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알고 있나?”
“…… 노력하는 자입니다.”
“흐하하. 그래. 근데 자네, 거기서 노력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나?”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칸의 갑옷을 얻기 위한 시험과 마찬가지로 그것 자체도 구체적으로 만들어두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네처럼 높은 곳에 있다가 밑바닥으로 추락한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자.”
날 바라보던 그의 눈이 번쩍였다.
“그리고 이전의 악행을 모두 청산하기라도 한 듯, 깨끗한 영혼을 가진 자.”
그리고 갑자기, 발아래가 푹 꺼졌다.
나는 그대로 하염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런 자를 나는 노력하는 자라 부른다네. 그리고 나는 그런 자의 수호자고 말이야. 흐하하하하하!”
* * *
“헉!”
아딘은 눈을 떴다.
잠시 눈을 뜬 채 상황을 파악하던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거대한 동굴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전과 불칸의 신상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앞으로는 드넓은 무저갱의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뒤로는 독충이 우글거리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이게 무슨…….”
아딘은 황망한 표정으로 호수를 바라보았다.
‘꿈이었단 말이야?’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그를 울적하게 했다.
그 울적함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아딘은 다시 고개를 땅으로 떨궜다.
“…… 음?”
그리고 그의 눈에 벨트 하나가 들어왔다.
그와 호수 사이에 놓여 있는 벨트.
아딘은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그리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벨트를 들어 올렸다.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버클과 일반적인 가죽 벨트와는 달리 정체 모를 금속으로 만들어진 띠 부분.
그리고 버클 한 중앙에 선명히 양각된 망치.
아딘은 씩 웃었다.
그의 광대가 승천할 기세로 올라왔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서 벨트를 하늘 높이 든 채 하염없이 웃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 말을 남긴 후 아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대로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버클 옆의 결합 부위를 붙이자 벨트는 딱 그의 허리에 맞게 세팅이 됐다.
그리고 세팅이 되자 벨트는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었다.
황금빛은 하염없이 웃고 있는 아딘의 얼굴과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사라졌을 때, 황금빛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가 당당한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