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화 (1/175)

001 불칸의 신전 (1)

“아악-!”

아딘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미 부어오를 만큼 부어오른 발등 위에 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보랏빛 동체에 꼬리 없는 전갈같이 생긴 벌레를 털어낸 후 아딘은 힘겹게 품속에서 조그만 두루마리 한 장을 꺼냈다.

그가 두루마리를 펴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바탕 위에 그림 하나와 글자들이 나타났다.

조금 전, 아딘의 발등을 깨문 독충에 대한 설명서였다.

아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루마리의 그림과 설명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벌레의 독을 중화시킬 해독 열매에 대한 설명문이었다.

점차 마비돼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다리 한쪽을 대신하는 지팡이 한 자루에 의지한 채 아딘은 힘겹게 움직였다.

“이거구나.”

그리고 그는 곧 두루마리에 그려진 열매와 똑같은 것을 발견했다.

아딘은 두루마리를 품에 집어넣고 들고 있던 지팡이로 열매를 툭툭 쳤다.

2m가 조금 넘는 높이의 가지에 열려 있던 해독 열매는 이윽고 아딘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쓴맛이 나는 해독 열매를 먹으며 아딘은 나무에 기댄 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새로이 부어오르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다리의 마비 증세가 완화되며 차츰 감각이 회복됐다.

“후우…….”

한숨을 내쉰 후 아딘은 다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로도 세 차례 더 독충에게 물리고, 해독 열매 혹은 풀잎을 찾아 상처를 치료하는 작업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아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하늘의 구름이 완벽하게 비칠 정도로 맑고 깨끗한 수질의 커다란 호수.

너무나도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보며 아딘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호수를 보며 소리죽여 울던 아딘은 퉁퉁 부은 손등으로 눈물을 힘겹게 훔친 후 천천히 호수를 향해 다가갔다.

‘여기 호수 아래에…… 여기에…… 여기에…….’

아딘은 지팡이를 던지곤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그러자 두루마리 표면에 호수의 그림과 설명문이 떠올랐다.

<무저갱의 호수>

<너무도 맑고 아름답지만,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

<호수 바닥은 또 다른 물의 표면이다. 이곳을 지나면 불칸의 동굴로 갈 수 있다.>

<동굴 끝에 불칸의 신전이 있다.>

<불칸의 신전에 불칸의 갑옷이 있다.>

그것을 확인한 아딘은 두루마리를 말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는 다시 호수를 바라봤다.

너무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물고기는커녕 돌멩이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왜 하필 이딴 설정을 만들어서…….’

아딘은 과거의 자신을 탓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지나간 실수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휴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아딘은 그대로 호수에다 몸을 던졌다.

아딘의 몸은 호수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아래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 호수의 이름이 무저갱의 호수가 된 이유였다.

예언서에 나오는, 신들이 최후에 죄인과 악마를 가둬둔다는 무저갱처럼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수질로 치면 1급수 수준이었지만 인간은커녕 짐승조차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런 곳으로 아딘이 뛰어드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 무저갱 호수의 밑바닥, 또 다른 수면을 지나면 그가 목표로 삼은 불칸의 갑옷이 있기 때문이었다.

‘밑바닥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5분. 그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은 채 아딘은 생각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는 목숨이야.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그래서 불칸의 갑옷을 얻는다면, 허무하게 콘스탄티노바로 잡혀가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5분이라는 시간은 이 호수에서는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점차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줄어들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괜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오히려 두려움은 더 커졌다.

하지만 아딘은 참았다.

참아야만 했다.

그러나 의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 * *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

내 이름은 김현수다.

“내 조카야.”

내 아버지는 김철호 씨고 어머니는 이민주 씨다.

그리고 두 분 모두 형제가 없으시다.

즉, 내게 나를 조카라 부를 만한 삼촌은 존재하지 않는다.

“드미트리와는 달리 너는 내게 예의를 갖추었지.”

유리 일리치 콘스탄틴.

금빛 왕관을 쓴 채 오만한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는 저 늙은 백인 남자.

그는 나를 조카라 부르고 있지만, 그는 내 삼촌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내 창조물이다.

“하지만 이 삼촌에게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킨 것은 너나 드미트리나 똑같구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전장 한가운데였다.

자신을 따르던 군대가 전멸한, 폐허가 된 전장 한가운데에서 죽지 못해 살아 있던 벨로디나 왕국 첫째 왕자,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의 몸을 지닌 채.

“국법의 지엄함은 내 형이자 네 아비인 선왕도 그리고 나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선왕 블라디미르 2세의 붕어 이후 본래 아딘 콘스탄틴에게 갔어야 할 왕좌에는 엉뚱하게도 블라디미르 2세의 동생인 유리 일리치 콘스탄틴에게로 갔다.

첫째 왕자 아딘 콘스탄틴과 둘째 왕자 드미트리 콘스탄틴이 차기 왕좌를 두고 내전을 벌이는 사이 유리 콘스탄틴이 외국 용병을 불러들여 지칠 대로 지친 두 왕자의 군대를 기습한 결과였다.

“하지만 네게 명예롭게 죽을 권리를 주겠다. 추하게 국외로 도망치다가 국경수비대에게 붙잡혀 죽은 드미트리와는 달리, 너에게는 품위 있는 자결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벨로디나의 19대 국왕이 된 유리 콘스탄틴은 아딘 콘스탄틴에게 자결을 명했다.

문제는 죽는 게 아딘 콘스탄틴이 아닌 나 김현수라는 것이었다.

빙의.

그것도 내가 썼던 소설로의 빙의.

꿈같은 일이라 여겼지만, 꿈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란 것은 유리 콘스탄틴이 잘 알려주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감옥에 갇힌 채 모진 고문을 당하며 세상에 이런 고통이 다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줬으니까.

“특별히 겨울궁전에서의 죽음을 허락해 주겠다. 내 조카, 아딘 블라디미로비치 콘스탄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취준생이던 29세까지.

틈틈이 12년간 써왔던 나만의 소설.

영웅일대기.

총 8,250,235자, 6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 나만의 소설.

총 5부작에 달하는 소설 중 1부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

아딘 콘스탄틴의 패배와 프랭클린 다니엘 하이로드의 승리.

그 부분으로 나는 빙의했다.

“정중히 모시거라.”

문제는 내가 주인공으로 만든 존 크리스토퍼 하이로드의 아버지이자, 1부의 주인공인 프랭클린 다니엘 하이로드로 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나는 1부의 메인 빌런에 해당하는 인물인 아딘 콘스탄틴, 즉 패배자의 몸으로 빙의했다.

“그래도 한때 너희의 주군 아니었더냐?”

조소 가득한 유리 콘스탄틴의 명령으로 나는 아딘 콘스탄틴이 거주하던 겨울궁전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준비된 독약을 먹어야 했다.

그것이 영웅일대기 1부의 결말이었고, 아딘 콘스탄틴이란 캐릭터의 운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운명과 결말은, 내가 서술하지 않은 변수가 끼어들며 뒤바뀌게 됐다.

“전하! 신이 호위하겠나이다!”

안톤 르보프.

아딘 콘스탄틴의 비서이자 호위무사이며 벨로디나 왕국이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

그가 날 구원해주었다.

내전이 유리 콘스탄틴의 승리로 끝난 후 종적을 감췄던 소드 마스터의 등장에 병사들은 모두 도망치거나 숨기 급급했다.

겁도 없이 덤벼들던 일부 병사들은 안톤의 검이 뿜어대는 붉은 검기에 모두 썰려버렸다.

덕분에 나는 죽음 직전에 탈출할 수 있었고, 그가 미리 준비해둔 말에 올라타 황급히 수도 콘스탄티노바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 * *

[똑-! 똑-! 똑-!]

천장에 달린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중 일부는 아딘의 퉁퉁 부은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고, 또 일부는 그의 명치로 떨어져 내렸다.

“끄으윽…….”

아딘이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

해독 열매로 가라앉혔다곤 하지만 중첩된 독충의 공격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신경과 근육은 비명을 질러대며 아딘을 괴롭혔다.

“끄으으…….”

그렇게 한동안 누워 신음하던 아딘은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의 종유석과 그것들 사이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거대한 구슬을 보며 아딘은 피식 웃었다.

‘도착했구나.’

그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힘겹게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제법 넓은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앉아 있는 축축한 바닥에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깊은 동굴이 보였다.

아딘은 품에 손을 넣었다. 다행히 두루마리는 유실되지도 않았고, 파손되지도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딘은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곧 아무것도 없던 바탕에 동굴 그림과 설명문이 나타났다.

<불칸의 동굴>

<아주 오래전 근면의 신 불칸이 만든 동굴이다.>

<동굴 끝에 불칸의 신전이 있다.>

<불칸의 신전에 불칸의 갑옷이 있다.>

아딘은 두루마리를 말이 다시 품에 넣고는 바닥을 두 손으로 짚은 채 겨우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봐도 딱히 지팡이로 쓸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습기가 이래서 그런가, 버섯이 많네.’

문득 아딘은 굶주림을 느꼈다.

그는 예쁘장하게 생긴 버섯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곧 두루마리 위에 버섯의 정보가 떠올랐다.

독버섯이었다.

하지만 아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버섯 앞으로 갔다.

그때마다 두루마리는 버섯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먹을 만한 버섯이 나타났다.

<투구뿔버섯>

<흉악한 외관과는 달리 최고의 회복약이다.>

<불칸의 축복을 먹고 자란 버섯이다.>

<복용 후 3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회복되고 6시간이 지나면 원기가 회복된다.>

<단, 복용 후 5분 내로 잠이 들며, 원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깨어나지 않는다.>

설명을 읽은 아딘은 두루마리를 말아 품에 넣은 후 미소를 지으며 투구뿔버섯을 땄다.

설명대로 흉악하게 생긴 녀석이었지만, 최고의 회복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독버섯들과는 달리 김현수가 설정한 내용이었다.

‘투구뿔버섯은 내가 설정한 게 맞는데, 다른 독버섯은 그냥 독버섯이라고만 설정했지 따로 그 종류까지는 정해놓지 않았어.’

쓴맛이 나는 투구뿔버섯을 힘겹게 씹어 삼킨 후 조금 덜 축축한 바닥에 누워 아딘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 두루마리에는 각각의 이름과 세세한 정보까지 다 나와 있단 말이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최대한 머리를 짜내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어느 순간, 아딘은 자기도 모르는 새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잠든 사이 그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 * *

“살아남으소서! 어떻게든 살아남으소서!”

아딘의 충신 안톤은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돈주머니를 건넸다.

100골드가 든 돈주머니였다.

그는 내게 오체투지의 경배를 보인 후 눈물을 머금고 날 보내주었다.

그리곤 날 추적해오던 5백의 기병 앞을 홀로 막아섰다.

가죽 갑옷과 활로 무장한 벨로디나의 궁기병이 아닌, 강철 갑옷과 창칼로 무장한 용병의 중기병이었다.

나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말에 올라타 서남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의 여파로 제대로 싸울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일단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리 콘스탄틴과 내통한 귀족이 있을지 모를 게마인샤프트를 피해 엘프숲 외곽으로 우회했다.

울창한 삼림으로 가득한 숲을 바라보며, 왜 나는 저곳을 괴수와 인간을 혐오하는 지성체가 가득한 곳으로 설정했을까 후회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이건 뭐야?”

그리고 잠깐의 휴식과 생각 정리를 위해 방문한 버려진 신전에서 나는 신상 앞의 제단에 놓인 두루마리를 습득했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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