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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225화 (완결) (225/225)

너의 코드가 보여 (225)

문을 고정시킨 이후로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 전에 내가 보인 무력 탓인지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적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기 때문이다.

사실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도 이미 포인트로 올린 혼원력이 초기화 된 상태였으니까. 싸운다고 지진 않았겠지만, 이쪽도 반쯤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을 거다.

게다가 좋은 점은 한 가지 더 있었지.

바로 저쪽 세계에서 우리 차원의 전력을 과대평가할 여지를 남겨 뒀다는 것.

본인들에게도 다루기 힘든 ‘문’을 고정시켜 버린 차원인데, 초월자마저 단칼에 베어 버릴 수 있는 인간이 있다.

사실과는 많이 어긋난 생각이었지만, 그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으리라.

그 후로는 아니나 다를까.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심정으로 몇 번 더 공격해 오긴 했는데, 전력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것조차 금세 그만두었고. 못 이길 건 없겠지만, 득보다 실이 더 클 거라 판단할 걸 거다.

그리고 그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놈들은 추후 전략을 달리한 듯했다.

이곳을 무슨 재활용 센터처럼 이용하기로 마음먹기라도 했는지 그들의 세상에서 쓸모없는 짐승 취급받는 혼합종들을 계속해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녀석들이 죽으면 마석으로 변한단 걸 노린 것이겠지. 처리는 이쪽에 맡기고 본인들은 그 수확만 챙겨 간다는 얌체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에게도 딱히 손해 볼 게 없는 생각이었다.

놈들이 회수하는 것 이상으로 녀석들을 죽이고 우리가 얻어가는 마석이 더 많았으니까.

자연스레 인류의 최종 전투 장소였던 지하미궁은 사람들의 새로운 일터가 됐다. 바로 광부 혹은 탐험가라고 불리는 직업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혼합종을 죽여 마석을 캐는 직종이었는데, 그들이 획득한 마석 중 일부는 도시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세금으로 회수되었다.

그 금액이 정말 어마어마할 정도라 레이튼은 금세 대륙에서 가장 거대하고 번성한 도시로 성장하게 됐고, 지원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집단들은 모두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들었다.

뭐, 그쪽에는 별로 관심 없었으니까 전해 들은 게 다일 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과정들을 전부 거친 나는.

“마법진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시장님.”

현재 지구로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작동 가능한 건가요?”

“예. 물론입니다. 심지어는 안전 문제도 걱정이 없죠. 지하미궁의 차원문과 타냐 아가씨 덕분에 영혼 연구도 모두 마친 상태니까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마탑주가 갑자기 힐끗 내 눈치를 봤다.

“물론 돌아갔을 때의 시간이나 장소가 오기 전과 같을 거라고는 보장드릴 수 없습니다만…….”

“제가 누굴 보낼 거라 말씀드린 적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내가 퉁명스레 말하자, 마탑주는 무슨 대역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재빨리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제멋대로 판단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8성급이나 되는 양반이 어째선지 담이 좀 약하다. 오버 액션이 심하다 해야 하나.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일단 생각해 보겠다 말한 뒤 그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보다…… 마탑주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지긴 한 모양이지?

내가 사실 이세계에서 건너온 인간이고, 차원에 대해 연구시킨 건 본인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소문 말이다.

거기에 어째서 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모셔온 인재라든가, 임무를 마친 화신이 도로 승천하는 거라든가 하는 잡설까지 붙은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의 사실에 가깝긴 하다.

실제로 내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는 한 건지 확인해 보기 위해 연구에 투자한 것은 맞으니까.

솔직히 반쯤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진행했던 연구인데, 설마 이렇게까지 수월히 이뤄질 줄이야.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

어쨌건 이제 목숨을 걸어야 돌아갈 수 있다는 리스크도 없어진 셈.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로 복귀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혼원력은 세계를 이루는 근원의 힘이기도 하니, 현대에 간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겠지.

이곳에서 충분한 재력과 권력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그건 지구에 가서도 금방 얻을 수 있을 거란 소리다. 거기서도 거의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힘을 쓸 수 있을 테니까.

고로, 선택의 기준은 물질적인 것을 떠나 정신적인 것이 될 거다. 인간관계나 소속감 뭐 그런 것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이미 고민을 끝마친 상태다.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는 둘째 치고, 어느 쪽에 내가 더 필요한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지구에는 리안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벨리아 대륙에는 리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 않나.

마법진 연구는 말하자면…… 그래. 이 선택이 돌아갈 수 없을 거란 판단에서 나온 자포자기인지 아니면 온전한 나의 선택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진행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밖에서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제발 우릴 버리지 말아 달라는 시민들의 시위와 울먹거리던 몇몇 동료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완성된 마법진의 봉인을 명했다.

* * *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레이튼의 한 아카데미 안. 이제는 검과 마법을 넘어 모든 지식을 가르치게 된 그곳에서 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 저희 레이튼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정말로 많이 있죠. 사라졌던 제국의 검술을 완전히 복구해 아카데미에 기부한 제일 검 라이놀 경이나,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용을 부활시킨 용잡이 미르 경. 그리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마검사의 기틀을 잡아주신 카일 경 같은 분들 말이에요. 하지만.”

마지막에 강조하듯 억양을 높인 교사가 물끄러미 학생들을 바라봤다.

교양 시간엔 꾸벅꾸벅 졸던 녀석들이 역사 속 위인들 얘기를 하니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하다.

아마 현재 그들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기 때문이겠지.

“그 이상으로 믿기 힘든 놀라운 업적을 세웠으면서도 역사서에 전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분이 있답니다. 혹시 누구인지 아시겠나요?”

만족스레 웃으며 하는 교사의 말에, 여기저기서 손들이 번쩍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한 가지 이름을 연호했다.

“레이튼의 성자, 리안 님이요!”

예상했던 답에 교사가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그분께서는 제국의 시조, 대륙의 구원자, 해방왕 로이드 스트라우드 님과 맞먹는 업적을 세우시고도 역사서에 전혀 이름을 남기지 못하셨죠. 그 이유가 뭘까요?”

“역사가 아니라, 신화로 남았으니까요!”

“맞았어요.”

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말을 이었다.

“단순히 역사적 위인 중 하나로만 취급하기엔 아쉽다는 역사가들의 의견과 그에 격렬히 동의한 대륙인들의 호응 때문이었죠. 덕분에 여기 레이튼에는 그분을 모시는 신전까지 있을 정도예요. 뭐, 들어간다고 딱히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진 않지만요.”

교실 내에도 그곳에 다니는 학생이 몇 있었던 듯, 피식거리는 웃음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신성력을 받을 수 없는데도 신전에 다닌다는 것은 그들에게 흠이 아니라 자부심이었다.

그건 아무런 대가도 없는 믿음을 계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큼큼,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시킨 교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튼, 제가 오늘 모두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다시 또 하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그게 뭔지는 다들 아시겠죠?”

“그분의 후손이 전학 오는 날이어서요!”

한 학생이 흥분해서 대답한 말에 교사가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딱히 물을 필요도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일주일 전부터 아카데미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소문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분명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도 있었다.

바로 오늘 전학 오는 레이튼의 성자 리안의 후손이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과 각각 동방의 술법과 신성을 전공으로 해 신비를 전문해서 다루는 그들의 반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잠시 후 경악으로 번질 학생들의 표정을 기대하며, 교사는 두 후손이 있을 교실의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 * *

대륙과는 별개로 존재하지만, 사실상 거의 겹쳐 있다고 봐도 무방한 신계의 한구석.

오랜만에 지상을 둘러보고 있던 주신 키탄이 피식하고 웃었다.

“야, 너 계급제 같은 거 없애려고 하지 않았었냐? 저기 네 후손들 보니까 완전히 무슨 왕족 대우인데?”

“……그냥 지들이 저러는 걸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나는 할 만큼 충분히 했어. 귀족제도도 부활시킨 적 없고, 아카데미 교육과정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내용도 넣었으니까.”

“저런, 그게 문제였네. 만인은 평등하지만, 너는 신의 직위에 올랐잖아?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게 된 거지.”

얼굴 표정이 장난스러운 것이 분명 진지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놀리려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그를 모르지 않았으나, 리안은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를 계속했다. 이곳에는 저런 놈일지라도 말 상대가 귀했기 때문이다.

“신족도 아닌데 신은 무슨 신. 됐으니까 그만 네 신관들한테 신탁 좀 내려 주라. 제발 저 망할 놈의 신전 좀 때려 부숴 달라고. 괜히 저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돼서 여길 벗어나지 못하는 거잖아.”

리안의 말에 키탄이 능청스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거, 남들은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인 곳인데 말하는 뽄새 하고는……. 아무튼 난 그런 신탁은 곧 죽어도 못 내린다. 그렇게 하면 다른 도시들이야 어쨌든, 레이튼에는 내 신전 기둥도 못 박게 될걸? 꼬우면 네가 직접 신탁 내리든가.”

“그걸 나는 못 하니까 문제지……!”

할 수 있다면 이미 옛 저녁에 수백 번도 내렸을 것이다. 그들이 기도랍시고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쪽팔려서 뒈져 버릴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태생이 인간인 그는 신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불가능했고, 덕분에 매일매일 흑역사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친분 비슷한 거라도 있는 주신이란 놈은 만날 저런 식으로 놀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도움도 안 됐고.

결국 한숨을 내쉰 리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어디 가려고? 설마 또 다른 신들 들들 볶으러 가는 건 아니지?”

“걔넨 이미 포기했어. 너보다 더 말 안 통하는 놈들이 있을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그럼 뭐 하려는 건데?”

키탄의 물음에, 리안이 처음으로 얼굴 만연히 웃음을 띄웠다. 그를 본 키탄이 불길한 느낌에 순간 몸을 굳혔다.

“너 설마…….”

“맞아. 사실 얼마 전에 종족 변경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를 전부 모으는 데 성공했지. 방금 건 그냥 마지막 확인 차 한번 물어본 거야.”

“야! 자, 잠깐!”

키탄이 다급히 그를 붙잡았지만, 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야 헤아리기 힘든 기다림 끝에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온 참이니까.

그가 진정한 신족으로 바뀐 뒤 내릴 첫 신탁은, 당장 키탄의 신전에 구정물을 끼얹으라는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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