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221)
“……뭐야? 너 지금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아까와는 확 달라진 표정으로, 오스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비아냥거리며 대답해 줬다.
“하긴 뭘 해? 만약 내가 뭘 했다고 쳐도,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네 잘못 아닌가?”
“…….”
대답은 없었지만, 녀석의 기분이 확 상했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 직감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눈에 직접 수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상의 감각 중 하나를 봉인하는 데 총 1,500포인트가 소요됩니다.]
휴.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다. 처음에는 무려 4천 포인트씩 먹고 그랬으니까.
대체 얼마나 괴물 같은 놈이길래 겨우 감각 하나 봉인하는 데 4천 포인트나 소모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끽해야 500 정도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내가 측정하는 것도 아닌데 나오는 대로 지불해야지.
아무튼, 다행인 점은 조건에 따라 요구 포인트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옛날 비밀 창고 열 때랑 비슷한 거겠지.
그럼 어디 더 신경 긁을 만한 것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던 차였다.
“……알겠네.”
표정이 굳어 있던 오스카가, 갑자기 씨익 웃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야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지?”
[대상의 감각 중 하나를 봉인하는 데 총 2,000포인트가 소요됩니다.]
……젠장, 너무 티 나게 도발했나? 이렇게 빨리 눈치챌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내 얘기에 대꾸해 주는 건 그냥 저들 치료를 위해 시간을 끄는 거라고 쳐도, 그렇다면 굳이 그리 띠껍게 나올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정보를 캐묻거나 호의적으로 나오는 게 더 효과적이지.”
“…….”
“여기서 묵비권이야? 그럼 또 너무 티 나는데.”
[대상의 감각 중 하나를 봉인하는 데 총 2,500포인트가 소요됩니다.]
일단 화제를 돌릴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그동안 모아 놓은 포인트가 꽤 되는 만큼 요구치가 올라간다 해도 해결은 가능하겠지만, 더 중요한 데에도 쓸 데가 있으니까.
아낄 수 있는 한 아끼는 게 좋지.
물론, 그 짧은 새에 저렇게까지 추측해 낸 녀석이 쉽게 걸려들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녀석이 알면서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화제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 분명 아까 전에 그 혼합종…… 아니,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했었냐고 물었었지?”
“그러긴 했지.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는―.”
“그 시체들, 전부 여기서 마석이 됐다 하면 믿을래?”
순간 오스카가 움직임을 멈췄다.
“뭐?”
“시체가 마석이 됐다고.”
“……무슨 말로 화제를 돌리려나 했더니, 이 새끼가 돌멩이로 금을 연성한다는 소리나 하고 있네? 네가 무슨 연금술사냐?”
오스카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해방왕이 만들어 둔 마법진이 어이없는 결과물이기는 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문’을 고정하는 것보다 더할 정도로.
나는 굳이 말로 설명하는 대신 챙겨 뒀던 마석을 하나 집어 녀석에게 던졌다. 오스카는 그걸 태연하게 받아 들곤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이게 그 쓰레기들이 변한 결과물이다?”
“못 믿겠으면 확인시켜 줄 수도 있고.”
“어떻게?”
“마법사들이 나중에 실험해 본다며 생포해 둔 혼합종이 몇 있거든.”
오스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마석을 유심히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저기 떨거지들 죽여서 확인해 봐도 될 거 같은데? 시체가 마석으로 변하는 거라면 너희 인간도 똑같을 거 아니야.”
새끼가 쓸데없이 예리하기는.
“만약 저기서 한 명이라도 더 죽는다면 대화는 여기서 끝이야.”
“이봐, 내가 뭐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안달 난 청춘 소녀라도 돼 보여?”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시체가 마석이 되는 방법에 대해선 영원히 알 수 없을걸. 장담하는데 지금 시대에선 오직 나만이 아는 정보거든.”
내 말에 오스카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되었다.
“……뭐, 좋아. 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확인시켜 줄 기회 정도는 줘 보지. 그리 오랜 시간이 끌릴 일도 아니니까.”
사실상의 동의다.
나는 곧장 마법을 사용해 숨겨 뒀던 혼합종을 하나 끌고 와 바로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마석이 통, 하고 떨어졌다.
그를 본 오스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무슨 트릭이 들어간 것은 아니겠지?”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긴 할 거고? 그냥 본인이 직접 판단해.”
“……흠.”
녀석은 꽤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잠시 동안 침묵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저 녀석들이 이 차원을 습격한 이유도 단지 마석 하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들 입장에선 거의 꽁으로 마석을 얻을 수단이 생긴다는 거니 저절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겉으론 그렇게 티 나지 않아도 분명 속으론 엄청나게 놀라고 있을 거다.
물론,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갑자기 차분해져서 하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증거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
“……뭐, 일단은 좋아. 적어도 내 눈으로는 트릭 같은 거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뭘 원해서 그런 얘길 나한테 꺼낸 거지? 지금 와서 우리와 거래라도 하고 싶은 건가?”
오스카의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니. 거래 같은 건 없어. 목적은 이미 이뤘거든.”
“……목적?”
“그래. 너는 네 기분이 나빠져야 내가 감각을 차단할 수 있다 여긴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달라. 그냥 생각난 방법이 비아냥밖에 없었던 거지. 원체 이런 식으로 살아와서 말이야.”
“……너, 설마……!”
오스카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조차 내가 의도한 결과였다.
원래 감정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터뜨려 줘야 더 충격 먹는 법이니까.
“맞아.”
[대상의 남은 감각 5개를 모두 일정 시간 봉인합니다.]
[총 2,500포인트가 소모되었습니다.]
“정확한 조건은 네 기분이 상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정이 깨지는 거였어.”
서걱.
순식간에 다가간 나의 흑철검이, 녀석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뭐, 어차피 이제는 듣지도 못하겠지만.”
게임 속 거의 끝판 보스의, 비교적 허무한 죽음이었다.
* * *
[불가능한 업적! / 「이계의 선봉장 사냥」]
[당신은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대륙에 비교될 바 없는 강자를 ‘사냥’해 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이루어 낸 당신에게 포인트 1만 점이 부여됩니다!]
오스카를 처리한 내가 리카르도에게 합류하자 나머지 두 따까리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둘은 오스카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경악하고 전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코드 능력 덕분에 겨우 이긴 거지. 원래 녀석이 그 정도 존재감이긴 하다.
괜히 셋밖에 안 보내는 선봉대에서 선봉장까지 맡았겠나.
하다못해 리카르도까지 나를 못 믿겠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로 자네가 그놈을 처리한 건가?”
조금은 이상한 일이었다.
녀석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경계심이야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는 리카르도가 저렇게까지 나올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뭔가 느낀 거라도 있으신가 보죠?”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째선지 내가 붙어도 절대 못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군.”
“…….”
왜 나한테는 저 직감이란 게 잘 발동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네. 웬만큼 경지에 오른 사람은 다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거 같던데.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리카르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솔직히 자네가 목숨 바쳐 희생하려고 하는 건 줄 알았네.”
농담도.
“그냥 상성 맞춰 배치했을 뿐이에요. 그보다 그만 돌아가서 재정비나 하죠.”
“벌써 말인가? 정찰대와 선발대의 텀을 생각해 보면, 그냥 맘 편히 쉬는 게 좋을 수도 있네. 긴장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한 가지 교정할 점이 있었다.
“본대는 앞서서보다 훨씬 빠른 주기로 올 거예요. 그러니 긴장을 풀 새는 없는 셈이죠.”
“어째서 그렇게 판단했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선발대라는 녀석들이 겨우 셋뿐이었으니까요. 전투도 아닌 전쟁에 그런 전력을 보냈다는 건, 상대 요인들을 먼저 죽여 놔서 혼란을 일으킬 생각이었단 거겠죠.”
“……그리고 혼란한 상대 쪽을 확실히 휩쓸어 놓으려면 본대를 빠르게 투입할 거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맞아요.”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리카르도가 잠시 고민하다 수긍했다.
“확실히 근거는 있는 소리야. 난 자네가 지금까지처럼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이는 예언 같은 건 줄 알았네.”
“…….”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정찰대까지만 해도 내 예상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선발대가 달라진 이상, 놈들 침략에도 변경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나.
나는 거기 맞춰 생각했을 뿐이다.
“아무튼, 자네 말대로 재정비나 하러 가 보지. 이번에 다친 사람이 워낙 많기도 했으니까.”
“네.”
* * *
사망자 13명. 중상자 43명.
그 짧은 새에 대륙 최정상급 전력이 입었다기엔 말도 안 되게 치명적인 상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중상자는 신관들이 전부 치료할 수 있다는 것과 제일 중요한 기사들은 건재하다는 것일까.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직속 부하들만 아무 피해 입지 않은 셈이다.
“…….”
그보다 저렇게 죽여 놓고 떨어지는 마석도 못 봤네. 덕분에 득을 좀 보긴 했다만.
그렇게 황당해하면서 일어나려는 때였다.
“어떻게, 떨어진 사지도 다 붙여 놓긴 했어요.”
불쑥 나타난 아리나가 반쯤 핏기가 가신 얼굴로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 쇼크를 우려해 며칠간 요양을 시키긴 하는데…….”
“지금 상황엔 불가능하지.”
“그렇겠죠.”
아리나가 폭,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본래 실력보다 떨어지는 건 감안해 둬야 할 거예요. 6성급은 5성급 마법밖에 못 쓴다든가, 신관은 타인밖에 치료를 못 한다든가.”
“염두에 둘게.”
“……그보다, 리안 님은 괜찮아요?”
이게 본론이었던 듯, 묻는 말투에 염려가 묻어 있다.
“너도 그동안 나랑 붙어 다녀서 알겠지만, 나 생각보다 내 몸 엄청 사려.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 같았으면 말 안 해도 내가 먼저 얘기했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라.”
“……그럼 됐고요.”
안도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결을 내뱉은 아리나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이 본대라고 했죠?”
“그렇지. 뭐.”
사실 그냥 본대라고 하기는 좀 뭣하다.
본대가 맞기는 한데, 그 뒤로도 그 본대라 할 만한 게 수십 부대는 더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미로의 본대라면, 이번이 마지막이 맞았다.
‘문’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병력을 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자그마치 차원을 넘는 일이다. 힘든 것이 당연하지 않나.
그때, 다시 한 번 염려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 이상으로 분전했지만, 저흰 결국 죽겠죠?”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말이라 나는 조금 의아했다.
“왜?”
“본대라면 지금까지보다 압도적인 전력이 올 게 분명한데, 저희는 오히려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잖아요.”
사기를 약화시키고 싶지는 않은 듯 나밖에 안 들릴 만큼 작은 개미만한 목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죽기 전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해라.”
괜히 사망플래그 세우지 말고.
“……하지만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내 몸 엄청 사리는 편이거든.”
나는 우리가 내려왔던 계단 쪽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분명 미리 요청해 뒀던 지원이 곧 도착할 거야. 문제는…….”
“제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다시 문에다 고정했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건 믿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전부 죽기 전에 지원이 도착할 거라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