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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219화 (219/225)

너의 코드가 보여 (219)

뭐 어쨌든 저 반짝이는 돌멩이로 밝기나 비추자고 작동한 마법진은 아니다.

나는 손안에 굴리고 있던 마석을 힘주어 부쉈다. 그러자 내부에 머금고 있던 마력이 나에게 흡수되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었다.

애초에 한둘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갈 수준이기도 하고, 이렇게 바로 사용해 버리면 중간 과정에서 손실되는 게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 근처에 널린 게 저 마석이다.

대충 해치웠던 숫자가 수만이 넘으니 대충 마석도 비슷하겠지.

아무튼, 집히는 대로 박살 내 가며 다시 전선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손실됐었던 혼원력의 절반 정도가 차오른 후였다.

성능 확실하구만.

난 그대로 아직도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마석을 부수세요! 그러면 안에 든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내 목소릴 들은 몇몇 기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갑자기 마석이 나온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대체 어떻게 마석의 기운을 흡수한다는 겁니까? 마석은 부수거나 녹일 시 안에 든 기운 역시 사라진다는 걸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

저런 질문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마석은 그 자체로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까. 물론 지금까지의 상식대로라면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굳이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부숴서 확인해 보는 게 빠를 거 같네요. 전투 중이기도 하고.”

내 말에 1기사단원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아직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확인하더니, 콰직. 망설임 없이 마석을 부쉈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지, 진짜야! 마력이 회복됐어!”

나에 이어 단원까지 같은 말을 하자, 기사들의 시선이 점차 불신에서 반신반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로 마석을 부수는 것만으로 마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단 한번 해 보자고. 어차피 여기 널린 게 마석이니까. 리안 님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고.”

파삭. 콰직.

그렇게 시작된 돌 부서지는 소리가 곧이어 지하를 가득 채웠다. 부수는 사람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경악한 얼굴의 그들이 수십 개씩 한꺼번에 박살 내는 통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정말이야! 한 백 개 정도 부쉈더니 2할 정도는 마력을 회복한 거 같아.”

“아무리 신체나 정신적 피로도는 별개라지만…… 이러면 전투 지속력이 세 배는 올라가겠는데?”

“그리 잘 알면 와서 좀 도와라!”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들은 전투 중이던 동료의 외침에 재빨리 전장으로 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베테랑인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어찌 됐든 이제 저들의 물량 공세는 전혀 통하지 않을 거다. 혼합종들의 공격은 지금부터 우리를 소모시키는 게 아닌 그저 회복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아까까지는 끔찍한 괴물처럼 보이던 혼합종들이 갑자기 돈 뭉텅이…… 아니, 마력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루팅 기회는 놓칠 수 없지. 나는 아까와 달리 혼원력을 아끼지 않고 공격하면서 틈틈이 떨어지는 마석을 주워 스바의 안에 넣어 뒀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해서다.

* * *

마력을 아낄 필요가 없게 되자 현장 정리는 훨씬 더 빠르게 끝났다.

모두 아까와 달리 마력의 소비를 막는 것보다 신체, 정신적 피로도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실 저런 분위기가 너무 빨리 찾아올 것을 대비해 일부러 마법진을 조금 늦게 가동한 거다.

어디까지나 마석으로 회복할 수 있는 양은 해치울 때 쓴 마력보다 낮았으니까.

“휴우…….”

아무튼,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냐.

나는 체면이고 뭐고 챙길 새 없이 곧장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일단은 체력을 회복시켜 두는 게 최우선이었으니까.

‘초인’과 ‘혼원력’덕분에 남들보다 회복이 월등히 빠른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래,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나.

이렇게라도 해 두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할 거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선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푹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몸이 가뿐하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는데, 순간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저게 지금 뭐 하는 거지?”

시선에 들어온 건 입구에 쌓여지고 있는 시체의 벽이었다. 이미 사람 발목까지 오는 수준인 것이, 저러고 있던지 꽤 된 듯했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생각인진 알겠다. 무슨 생각인진 알겠는데……. 저래 봤자 하나 쓸모없다는 게 문제지.

어쨌든 지금이라도 가서 말려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할 타이밍에 저렇게 체력낭비 하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니까.

“혹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현장으로 다가가 묻자, 기사 한 명이 경례하며 대답했다.

“아, 리안 님. 일어나셨습니까? 보시다시피 방벽을 만드는 중입니다.”

“혼합종들의 시체로요?”

“혼합종…… 처음 듣지만, 적절한 이름 같군요. 아무튼, 네.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겠지만, 잠시라도 시간 끌기 정도는 될 테니까요.”

베테랑이라는 건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는구나.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알아서 척척하니.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냥 앉아서 체력이나 비축해 두죠.”

“네? 하지만 리안 님, 굳이 방벽을 쌓을 목적이 아니더라도 시체를 정리하긴 해야 합니다. 너무 쌓이면 저희가 움직이는 데도 장애가 생기니까요.”

“……제가 미리 설명드렸어야 하는데. 혹시 지금 제가 잠들고 얼마나 지났죠?”

기사는 내 말에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품에서 작은 회중시계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략 6시간 정도군요.”

“…….”

그냥 선잠 수준이 아니었구나. 어쩐지 몸이 지나치게 개운하더라니. 이건 거의 꿀잠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슬슬 알아서 없어지겠네요.”

“……없어지다니요?”

뭐긴 뭐야. 시체들이지.

하지만 내가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때마침 쌓여 있던 혼합종들의 시체는 물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들도 반짝이는 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토록 징그러웠던 놈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를 본 기사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마석화의 대가 같은 거예요.”

나는 반짝이는 빛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여기서 죽은 생명체는 마석을 남기죠. 하지만 대가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게 바로 저 신체라는 겁니까?”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남아 있는 생명 에너지를 전부 전환시킨다고 해야 하나……. 저도 정확한 이론은 모르지만, 대충 비슷한 느낌일 거예요.”

“……혹시 인간을 상대로도 똑같은 겁니까?”

기사가 살짝 굳은 얼굴로 물어왔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어디까지 생각하고 한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생각한 대로 마석으로 변하는 생명체에는 예외가 없다. 당연히 인간도 포함된다는 소리지.

실제로 2부에서는 이를 악용해 사람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인간 사냥꾼도 등장한다.

이처럼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만…….

“네.”

적어도 당장의 우리에겐 이만한 수가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 죽으면 시체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세요.”

* * *

생각보다 선봉대가 나올 기미는 쉬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혼합종을 죽이고 10시간 가까이 흘렀는데도 문은 열리기만 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상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덕분에 사람들은 상당히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서로 시답잖은 잡담까지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괴물들이라던 것 치고는 너무 시시하군 그래.”

마법사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하는 소리에 신관 하나가 그를 돌아봤다. 둘은 직업치곤 드물게도 친구인 사이였다.

“그냥 정찰대라지 않나. 그런데 저런 전력이면 밖에서라면 도시 서넛 정도는 가볍게 박살 냈을 거야.”

“흥, 그래 봤자 벌레들이지. 오우거보다 더 강한지는 몰라도, 멍청하긴 그보다 더 멍청해 보이더군. 저런 놈들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설마 인류가 멸망까지야 가겠나? 우리도 쌓아 둔 게 있는데.”

거기까지 말한 마법사가 다시 한 번 코웃음 치고 말을 이었다.

“역시 그동안 상대 전력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던 거야. 500년 전 시절이면 4급 기사 수준으로도 거의 영웅 취급받던 때라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었나 보군. 이렇게 되면 해방왕 그 작자도 다시 평가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까지 말하진 말게. 어쨌든 인류가 멀쩡히 살아남아 있는 건 그분의 공이 9할 이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그 9할이 저런 놈들을 상대로 쌓은 전적이니까 문제지. 이러다 세 왕국 지원까지 오면 우리가 역으로 저 세계에 쳐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저런 괴물 득실거리는 세상에 굳이?”

“그도 그렇군. 하하하!”

그렇게 그들은 그 뒤로도 한참을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전쟁은 둘째치고 여기서 생기는 마석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 연구할 가치가 있겠다 하는 태평한 얘기들.

이미 싸움이 끝난 것처럼 구는 꼴에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리카르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이 정도가 전부일 리 없다.’

그는 거의 그런 믿음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의 최고위급임에도 불구하고 ‘문’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생긴 믿음이었다.

‘나나 1기사단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면 황제 폐하께서 먼저 내게 얘기해 주셨겠지.’

하지만 제국의 황제는 그러지 않고 침묵을 택했다. 심지어 1기사단을 동대륙으로 보내는 무리수를 감행하면서까지.

이건 그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일 거다.

‘아마 진짜는 이다음부터일 거다.’

리카르도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리안보다도 먼저 문에서 뭔가 나오는 기척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뭐지?’

정찰대와는 다르게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나온 건 겨우 셋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외의 차이점이라면…… 모습이 익숙하다는 점일까.

딱 봐도 괴물 같이 생겼던 혼합종들과 달리, 상대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어떻게 봐도 선발대처럼은 안 보였다는 거다.

‘딱히 마력도 크게 느껴지진 않는데…….’

리카르도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피해!”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안이었다. 그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어째선지 앞이 아닌 뒤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앞섰다.

리카르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곧바로 마법사와 신관들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박찼다.

하지만 그조차 너무 늦었던 모양이다.

스가가각!

육편이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사들과 신관들의 몸이 쓰레기처럼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이제는 비어 버린 그 자리를 꿰찬 건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 앞에 있던 인간……. 아니, ‘인간형’ 생명체 셋이었다.

그들 중 가운데 있던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주변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었잖아. 야, 너희. 먼저 보내 놨던 그 쓰레기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한 거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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