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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218화 (218/225)

너의 코드가 보여 (218)

이계의 존재들이라고 전부 이상하게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평범한 모습에 가깝지. 지금 대륙에 자리 잡은 이종족들도 전부 이계에서 건너온 후손들 아니던가.

하지만 적어도 현재. 침입 초기만큼은 그 이론이 들어맞지 않았다. 지성이라곤 1도 없는 기괴한 생김새의 생명체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키히히힛!

문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은 곧바로 보이는 미궁에 아무런 의문점도 가지지 못한 듯 발톱을 들이댔다. 그러다 흠집도 나지 않는 그 모습에 그제야 고개를 갸웃거렸다.

―끼릭?

선두에 있던 건 신체 마디마디가 기괴하게 일그러진 이름 모를 괴물이었는데, 녀석은 몇 번 더 벽을 공격해 보다가 그냥 미궁 안으로 몸을 향했다.

어차피 무생물 상대론 재미도 못 볼 거 생명체나 찾자는 심정이었겠지.

여기까진 예상대로긴 한데……. 문제는 다른 쪽이었다.

나는 마법사가 허공에 설치해 둔 수정구에서 눈을 떼고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문의 윗부분에.

―키리리링.

그곳에는 이제 비행이 가능한 생명체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비교적 귀여운 울음소리완 별개로 역시 지상형 괴물과 같이 끔찍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익룡에다 사람 얼굴을 가져다 박아 넣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꿈에 나타날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저 녀석에겐 미로의 효과가 전무하다는 거였다.

“비행을 방해하는 마법진은 이미 완성됐다고 들었습니다만.”

내가 뒤돌아보며 묻자, 마법사가 곤란하단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분명 완성도 됐고, 성능 실험도 끝냈습니다. 드래곤은 몰라도 와이번 정도는 바닥에 처박을 수 있을 정도였죠.”

와이번은 공중의 오우거라 불리는 비행형 몬스터 중 최강의 존재다.

“그런 것 치곤 너무 가뿐하게 날고 있는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믿긴 힘들지만, 저 녀석들 전부 와이번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겠죠.”

“흠…….”

그래서 미리 주문할 때 효율 같은 거 생각 말고 무조건 최고 성능으로 만들라 한 건데.

뭐, 지나간 일이야 어쩔 수 없나.

사실 마탑은 시간 열흘 더 끈 것만으로 제 몫을 다했으니까.

비행 방해 마법진이야 나중에 손봐도 상관없겠지.

“저 녀석들 처리는 기사들이 맡겠습니다. 여러분은 기운을 좀 아껴 두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마법사와 신관들이 준비하던 주문을 취소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향했다.

사실 총책임자가 나로 돼 있기는 한데, 마탑과 신관은 명령권이 내게 없는 만큼 기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제일 편했다. 오랜만에 친정집 온 거 같달까.

아무튼, 내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검을 뽑아 들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

나도 말없이 흑철검을 뽑자, 대표 격인 부단장 클라우스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마법사와 신관들 쪽에 호위를 좀 배치해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몇몇 놓치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죠. 제일 중요한 건 전력을 최대한 집중시켜서 기운 소모를 최소화하는 겁니다.”

덤덤히 답하자 그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봉대치고는 숫자가 꽤 많아 보이긴 하군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닫고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계의 침공이 이 경험 많은 기사도 저렇게 착각할 만한 수준이긴 한가 보다. 보통 선봉대 전에 보내는 건 따로 있을 텐데.

“저것들은 딱히 선봉대가 아니에요.”

“네? 선봉대가 아니라면, 설마…….”

클라우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날아오고 있는 비행형 괴물들에게 돌렸다. 얼핏 보기에도 최소한 수천은 되는 숫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로 검을 겨눴다.

“맞아요. 저건 선봉대가 아니라 그냥 정찰병일 뿐이죠.”

모두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겉으로 순식간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방심하지 말아요. 물량에 깔려 죽을 수도 있으니까.”

* * *

게임에 썼던 대로라면 2부 이계의 침공은 이런 순서다.

1단계. 저들 세계에서 야생 짐승 같은 취급을 받는 혼합종들의 투입. 일명 쓰레기 방출이다.

어차피 지성 없는 놈들인지라 어디 써먹기도 힘든데, 신체 능력 하나는 먹어 주니 상대 전력이나 까먹으라는 거지.

상당히 효율적인 선택이었고, 엄청나게 잔혹한 결정이었다.

혼합종들은 대게 생명체에 극한의 악의를 가지고 덤벼들곤 하니까.

잡아 놓은 상대의 사지를 뜯고 논다든가 하는 건 얘깃거리도 아니다.

만약 현대 지구 같았으면 저런 걸 키우는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 핵폭탄 세례를 받았겠지.

하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고, 적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감내하는 수밖에.

―끼아아아악!

그때, 선두에 있던 비행형 혼합체가 드디어 전선 근처까지 도착했다.

나름 귀염성 띠던 울음소리가 바로 괴성처럼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에 맞춰 사람과 닮은 얼굴도 악귀 같은 형상을 띠었다.

서걱!

2급 중 한 명이 곧바로 놈의 머리를 베어 버렸지만, 그 자리를 다른 놈이 곧장 꿰찼다.

온 사방에 그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베고, 교체되고, 베고, 교체되고.

그렇게 한 절반쯤 줄었을까.

처음에는 기름칠 된 기계처럼 일을 수행하던 기사들이 점차 삐걱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는 그들보다 훨씬 약하지만, 애초에 기준이 이상하지 않나. 여긴 사실상 대륙 최강들을 모아 놓은 집합소인데.

지금은 무슨 날파리처럼 썰리고 있지만, 밖에 나가면 혼자 오우거 대여섯 마리는 가뿐히 해치울 놈들.

처리하는 데도 그만큼 힘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저들이 겨우 저것도 감당 못 하진 않겠지만, 아직 지상 쪽은 미로를 뚫느라 오지도 못했다는 게 문제다.

그 뒤의 선봉대, 본대는 더더욱 문제고.

벌써 힘을 빼선 안 된단 소리지.

나는 내게 달려드는 놈 하나를 마저 베어 낸 뒤, 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대기 중인 리카르도가 있는 방향이었다.

“단장님! 2조랑 3조를 번갈아 가며 교대해서 좌익과 우익을 좀 맡아 주세요! 그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다시 모을 때까지요!”

“1조…… 가운데는?”

“제가 최대한 버텨 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는 기사단 절반을 뒤쪽으로 빼냈다. 이곳은 안에서 돌려 가며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다.

그만큼 내게 가해지는 부담이 더 커지겠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혼원력은 회복력도 마력보다 압도적으로 좋으니까.

어쨌든 난 기사들이 빠지는 순간 바로 권능을 이용해 수십 개의 흑철검을 만들어 냈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기는 한데, 달리 말하면 아끼다 똥 된다는 소리다.

아무튼, 만들어 낸 흑철검들은 빠진 기사들의 빈자리를 착실히 채웠다. 공격력은 당연히 비할 바 못 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버티는 게 더 중요한 때니까.

스가각!

―끼에에엑!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비행형 혼합종이 목숨을 거두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기사들이 땀을 닦으며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다음 전투가 있기 전까지 얼른 회복해 두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보충되던 비행형 혼합종들을 전부 해치우는 데 대략 8시간.

빠르고 감이 좋은 놈들이라면 슬슬 미로를 통과했을 시간이다.

―키아아악!

그런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때마침 놈들이 하나둘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2차전의 시작이었다.

* * *

지상 혼합종들은 비행형과는 다른 의미로 까다로웠다. 움직임 자체는 충분히 예상이 됐는데, 가진 기운이나 신체 강도가 놈들보다 훨씬 뛰어났던 거다.

덕분에 정신적 피로감은 훨씬 덜했지만, 기운 자체는 더 많이 소모해야 했다.

“후욱…… 후욱…….”

거의 스무 시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전투에 지쳤는지 기사들도 가쁜 숨을 계속해서 몰아쉬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이렇게까지 쉬는 타이밍 없이 싸운 적은 드물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건 아까부터 공격 마법을 퍼붓던 마법사와 기사들 기운을 북돋아 주던 신관들도 마찬가지.

아직도 절반 넘게 남았는데, 벌써 반쯤 탈진한 상태다.

최상위권 같은 경우엔 아직 쌩쌩하지만, 딱히 그들 손발이 4개씩 달린 것도 아니니 큰 의미가 없고.

역시 슬슬 그걸 써야 하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면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원래 예상했던 지점도 이쯤이니까.

“클라우스 경.”

스각!

“예!”

클라우스 부단장이 달려드는 혼합종 한 마리를 베어 내며 크게 대답했다. 나 역시 한 마리 더 처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사람들끼리 감당 가능하겠습니까?”

“안 돼도 해야지요! 지금까지 혼자만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내가 쉬려고 간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별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굳이 정정해 줄 이유도 없다.

나는 그에게 잠시 감사를 표한 뒤, 내려올 때 썼던 계단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뒤쪽의 숨겨져 있던 마법진에 다가갔다.

이 역시 해방왕이 준비해 둔 거다.

녀석이 마지막 역량을 짜내 완성해 낸 역작. 어떻게 보면 최후의 유산 같은 거라 할 수 있겠지.

“…….”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녀석 욕은 속으로만 해야겠다. 어쨌든 이번 침략에 녀석 덕을 본 게 많기는 하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그 순간 엄청난 고주파 소리가 지하를 가득 채웠다.

삐이이이잉―.

경지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듣는 것만으로 내상을 입을 만한 굉음.

마침 이에 해당하는 혼합종들이 몸을 내팽개치며 괴로워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할 테지만,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분분히 공격을 날렸다.

거의 단단한 허수아비에 가깝게 된 녀석들이라 그런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잡는 속도나 효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녀석들 전부를 해치우기엔 많이 부족했다. 이미 정신을 차리고 있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저건 마법진의 부가적인 효과……혹은 부작용에 불과한 거였으니까.

“어? 이건…….”

그때 때마침 달라진 점을 눈치챈 건지 기사 한 명이 뭔가를 집으며 눈을 크게 떴다.

“마석이잖아? 이게 대체 왜 여기에…….”

“뭐? 어디 봐봐.”

“굳이 보여 줄 것도 없어. 지금 근처에 널린 게 마석이잖아.”

“……진짜잖아? 이상하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건데.”

그들은 이상하단 듯 중얼거리다 설마 하는 눈으로 혼합종들이 쓰러진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석이 있는 곳과 혼합종이 쓰러진 곳이 같다는 걸 알아챈 거겠지.

그들은 지친 몸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들고 있던 마석을 툭, 떨어뜨렸다.

그만한 베테랑들이 저질렀다기에는 상상도 못 할 실수.

하지만 그만큼 놀랄 일이긴 하다.

마석은 여태까지 땅에서 나오는 것만이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사실 저건 그냥 마석도 아니긴 하지. 그보다 압도적으로 효과가 좋은 거의 새로운 에너지원이랄까.

나는 피식 웃으며 근처의 마석을 하나 집어 이리저리 굴렸다.

그래.

해방왕이 준비해 둔 마지막 수는 바로 여기 지하에서 죽은 생명체를 다른 연료로 전환시켜 주는 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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