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201화 (201/225)

너의 코드가 보여 (201)

일행에서 빠져나온 애꾸눈은 곧바로 허름한 술집을 하나 찾기 시작했다. 뒷골목 조직에 대한 정보는 대게 그런 곳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지않아 적당한 가게를 찾아 들어선 그는, 막 일을 끝낸 노동자처럼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주인장! 여기 맥주 한 잔!”

“예!”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빠르게 나와 맥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애꾸눈은 곧장 떠나려 하는 남자를 붙잡고 말했다.

“잠시 뭐 하나만 좀 물어봅시다. ‘심부름’시킬 일이 조금 있는데, 어디로 가면 되겠소?”

“……심부름? 외지인이셨나?”

“외지인은 아닌데, 여기 서쪽 구역은 오는 게 처음이라 그렇소.”

그 말에 가게 주인이 콧방귀를 꼈다.

“서쪽 구역이 처음이긴 무슨. 딱 봐도 외지인이구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오?”

애꾸눈은 남자의 태도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행색부터 행동까지 그가 실수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애꾸눈을 보고 쯧쯧 혀를 찼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기는. 아직도 레이튼에 뒷골목 조직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외지인이란 증거니까 그렇지.”

“……설마 레이튼엔 뒷골목 조직이 없다, 이 말이오?”

애꾸눈은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세상에 그런 도시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아무리 잘사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늘 속에서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조직이 아예 없다기보다는……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쪽은 아마 없을 거라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이오?”

“대부분 합법적인 범주 내에서 일을 하거든. 아슬아슬하게 독한 술을 만든다거나, 쓰러진 취객들을 집까지 옮겨 주고 수고비를 받는다거나.”

“…….”

그게 대체 무슨 범죄 조직이지? 오히려 모범 시민에 가깝지 않나?

애꾸눈은 잠시 얼이 빠져 있었다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긴 자경단이란 조직이 있다던데, 놈들이 내리는 처벌이 굉장히 강한 모양이오? 뒷골목 놈들이 그렇게까지 사리는 걸 보면.”

“그것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성자 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신 덕이 크지.”

또 성자. 애꾸눈은 레이튼에 도착한 지 하루가 채 안 됐음에도 저 리안에 관한 얘기를 벌써 수십 번은 들은 상태였다.

“살길을 열어 주다니? 범죄를 허용하기라도 했다는 거요?”

“아니. 범죄는 확실하게 처벌하되, 거기 쏟을 여력을 비교적 합법적인 곳에 쓸 수 있도록 유도하신 거지. 예를 들면…….”

처음엔 귀찮아하는 기색이던 가게 주인이 신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 설명을 계속했다.

“마약을 제조해서 팔면 20실버를 얻고, 술을 제조해서 팔면 15실버를 얻지. 그럼 자넨 여기서 뭘 선택하겠나?”

“그야 당연히 술을 제조해 팔겠지.”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은 제쳐 두고, 전자는 잡혀가고 후자는 잡혀가지 않는다.

위험 대비 5실버의 이득밖에 얻지 못하면 당연히 합법적인 일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맞네. 성자님께선 무턱대고 범죄를 뿌리 뽑진 않으셨어. 그래봤자 또 다른 조직이 생겨날 뿐이라는 걸 아셨던 거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이론이야 그럴싸하지만, 마약 대신 술을 판다고 15실버나 벌 수는 없을 텐데?”

보통 마약으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20실버라면 술은 5실버쯤 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그 돈으론 사람이 생존할 수 없다. 자연히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타당한 질문에도, 가게 주인은 그저 웃으며 맥주잔을 가리켰다.

“한번 마셔 보게. 맛이 어떤지.”

“……이 타이밍에 갑자기?”

“마셔 보면 알 걸세.”

너무 자신만만한 주인의 태도에 애꾸눈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맥주를 꿀꺽 들이켰다. 그리고 곧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맛있지?”

주인이 피식 웃었다.

“다른 도시의 돼지 오줌 섞은 맥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야. 그야 이건 한 잔에 50쿠퍼나 하는 진짜배기니까.”

“……50쿠퍼? 평민들이 그런 사치품을 사 먹을 수는 없을 텐데?”

50쿠퍼면 괜찮은 식당에서 고기도 썰 수 있는 돈이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맥주 한 잔에 쓰긴 과하다.

“레이튼에선 가능하지. 요즘 리안 상회 덕분에 이 도시에 쏠리는 상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이제 웬만큼 돈 없는 자들도 이 정돈 사 먹을 여력이 있어. 그러니 합법적으로 사업해도 먹고 살 수 있게 된 거지.”

“……그래서 뒷골목 조직들이 전부 전향을 했다는 건가?”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 일원이었는데, 1년 전에 이 술집을 차린 거야. 위험하게 뒷골목 쏘다니느니 안전하게 맥주나 만드는 게 낫겠더라고. 흑기사님들도 무섭고.”

……흑기사? 그 오글거리는 이름은 또 뭐지?

묻고 싶었지만, 주인이 새로 들어온 손님을 상대하러 떠나서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 더 얻을 정보가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애꾸눈이 씁쓸한 얼굴로 맥주를 들이켰다.

‘맛있긴 또 더럽게 맛있군…….’

* * *

가게를 나온 애꾸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형편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뒤처지는 자들은 항상 있는 법이니까. 숫자가 줄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거의 소망에 가까운 생각이었지만,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겨우 남아 있는 범죄 조직 하나와 접견할 수 있었다.

“외부인이 우릴 찾은 건 처음이군. 그래. 대체 얼마나 다급한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고생한 건가? 살인? 납치?”

“간단한 일이다. 그냥 소문만 조금 내 주면 되지.”

“소문?”

커다란 흉터를 가진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우릴 처음 찾은 외부인이 맡기는 의뢰가 소문 퍼뜨리기라니. 흥미롭군. 하지만 이거 미안한걸.”

“왜지?”

“우린 그런 시시한 의뢰는 맡지 않으니까.”

흉터남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릴 찾았다는 건 지금 레이튼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봐도 되겠지?”

“……범죄 조직이 정말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하기 힘들긴 하더군. 이런 짓 안 해도 먹고 살만해서라고 하던데.”

“그것도 그거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흑기사 때문이지.”

흑기사. 또 저 단어가 나왔다.

“그놈의 흑기사가 대체 뭐야? 뭔 애들 장난치는 이름도 아니고…….”

“뭐 이름이 좀 오글거리는 건 인정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갈걸.”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치안대의 무력 조직 중 하나인데, 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 그나마 원래는 대충대충 일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1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고 일주일 만에 큰 조직들을 죄다 해체시켜 버렸어.”

애꾸눈이 눈을 크게 떴다.

“일주일? 그게 가능한 이야긴가? 겨우 일반인이나 모인 치안대가 대체 어떻게…….”

“일반인이라고 누가 그랬나?”

“……설마 기사급이란 얘긴가?”

일단 물으면서도 애꾸눈은 전혀 그럴 거라 믿지 않았다. 기사급 전력은 굉장히 귀중하니까. 그리고 그에 비례해 자존심도 높았다.

저 법이 엄격하다는 아르곤에서조차 기사가 치안대에 속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맞아. 정확히 몇 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모기 잡듯이 치워 버리더군,”

“그건 정말…… 믿기 힘들군.”

아연실색한 애꾸눈의 말에 흉터남이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이미 일어난 일인 걸 뭐 어쩌겠어. 아무리 살 만해졌대도 그런 사정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조직이 궤멸됐겠나?”

“……그것도 그렇군.”

기사급이 한낱 범죄자 잡이에 나서고 있다는 건 역시 믿기 힘들지만…… 애꾸눈은 일단 수긍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너희가 시시한 일은 안 받는다 한 이유는 이제 알겠다. 나서는 것만으로 위험해지는데 액수마저 적은 의뢰를 하고 싶진 않다는 거겠지?”

“잘 아는군. 소문 퍼뜨리기는 기껏해야 50골드 정도니까.”

“그보다 액수가 훨씬 크다면 어쩌겠나? 마음이 좀 변할까?”

“액수가 달라지면 당연히 마음도 달라지긴 하겠지.”

흉터남이 히죽 웃으며 탁자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얼마나 줄 건데? 70골드? 80골드? 솔직히 그것도 좀 부족하긴 하지만, 내용에 따라 못 받을 것도 없긴 하…….”

“500골드.”

순간 책상에 기댔던 흉터남의 몸이 삐끗했다.

“……얼마라고?”

“500골드라 했다. 내가 진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제시하는 금액이란 것만 알아 둬.”

“그야 그렇겠지. 나도 네가 혹시 시세도 모르는 병신 호구 머저리 새끼였나 고민 중이니…….”

중얼거리던 그가 간신히 정신을 되찾고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대어라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 정도 금액이면 내일 당장 아르곤 왕이 사실 게이였다고 온 대륙에 퍼뜨릴 수도 있어. 혹시 그걸 원하나?”

“그것도 조금 끌리긴 하지만, 다른 쪽을 의뢰하고 싶군.”

“뭔데?”

“리안.”

말이 끝나자마자 흉터남의 몸이 빳빳이 굳었다. 일국의 왕을 주제로도 농담하던 상대라고는 믿지 못할 변화다. 애꾸눈이 재빨리 덧붙였다.

“힘들단 건 알고 있어. 그러니 500골드나 제안한 거고.”

“……일단 묻지. 퍼뜨리려는 소문이 좋은 쪽이야 나쁜 쪽이야?”

“앞에선 선량해 보이는 척 사실 뒤쪽으론 고아원 아이들을 인신매매하고 있다는 소문이니…… 나쁜 쪽이지.”

순간 심각해진 사내의 태도에 잠시 당황했지만, 애꾸눈은 설마 그가 거절할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겨우 소문 하나 퍼뜨리는 데 500골드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바가지 요금이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왕이 게이라는 소문도 대륙에 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애꾸눈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흉터남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

“뭐, 뭐?”

“나가라고 이 병신 호로 새끼야.”

난데없는 계약 파기 선언에 애꾸눈이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300골드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 걸 확실히 하기 위해 500골드로 높여 부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의뢰 비용을 더 높여 보려는 생각이면, 방금 그게 내 전 재산…….”

“간 보려는 거 아니고, 시험하는 거 아니니까 나가! 나가라고!”

“대체 왜 그러는 건데?! 500골드면 왕 상대로도 소문 퍼뜨릴 자신 있다며!”

애꾸눈이 억울해서 소리쳤다.

뒷골목 생활 20년. 그 경험 하나로 일반인임에도 칼페온 고위직까지 올라갔건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여기 레이튼에서 성자님은 신성불가침이야. 왕 이상의 존재라고. 알겠어? 새끼가 누구 장사를 쳐 망하게 하려고…….”

“자, 잠깐 기다려 봐. 내가 돈을 조금 더 융통해 볼 테니까…….”

“천 골드고 만 골드고 나가!”

이번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두 개 튀어나오더니 그를 번쩍 들어 바깥에 내팽개쳤다.

애꾸눈은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닫힌 문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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