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95)
아직 어둠이 찾아오긴 조금 이른 초저녁. 타냐는 리안의 제안에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본인이 직접?”
“응. 너도 아는 사람이 상대면 조금 더 마음 편하지 않겠냐.”
“당연히 불편하지! 그것도 훨씬 더!”
“왜? 뭐 잘못된다고 고소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도 되는데.”
“고소는 대체 어디서 누가 누굴 고소한다고……!”
레이튼에 자경단이라는 조직이 생기고 고소, 고발 같은 정책이 생긴 것은 맞다. 밖에 잘 나가지 않는 타냐의 귀에도 칭찬이 들려올 만큼 평판이 좋기도 했다. 생각 이상으로 공정하고 정의롭다든가.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그 자경단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게 누구던가? 바로 리안 상회다. 그리고 리안은 그 상회의 주인이고.
세상에 본인들 물주를 집어 처넣는 또라이들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만약 자경단이 그런 또라이들의 집단이라 해도 문제다. 리안의 기부는 단지 자경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괜히 ‘레이튼의 성자’라는 칭호가 붙은 게 아니라 증명이라도 하듯, 도시엔 리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작게는 사람들의 일자리 사업부터 크게는 고아원 운영까지. 그 모든 것에 전부 리안 상회의 돈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리안은 이 도시의 영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실제로 영주와 같았다. 그것도 주민들의 광신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영주.
아마 리안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주민들이 먼저 일어나 자경단을 반파시킬 거다.
‘……거기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나부터 무슨 일이든 신고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던 타냐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단호히 리안을 바라봤다.
“어쨌든 나는 리안 너 상대로 실험할 생각 절대 없어. 몇 번 말했지만, 진짜 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능력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더 나한테 실험해 봐야지. 나만큼 조건 좋은 실험체 찾기가 어디 쉬울 거 같아? 신체 튼튼하지, 젊지, 그리고 어…… 신체 튼튼하지.”
“자랑할 게 그거밖에 없는 거야?”
타냐는 더 생각나는 게 수십 개는 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아마 영혼도 강력할 거야.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으니까.”
“정신이랑 영혼은 큰 관계 없어 보이는데…….”
“그럼 네가 지금 한번 확인해 보면 되잖아? 희미한 연기 형태로 볼 수 있다며.”
“그게 진짜 영혼이라는 보장은 없어.”
“어쨌든 한 번 보라니까. 네가 그거 좀 힐끗거린다고 설마 내가 죽겠냐?”
막무가내 같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없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을 뿐이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결국 타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보는 것만이다?”
“응. 일단은.”
뒤에 붙은 말이 신경 쓰였지만, 타냐는 일단 수긍했다. 어차피 정말 아니다 싶으면 본인이 응해 주지 않으면 되는 문제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타냐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능력이라 이래저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흐르고. 타냐의 닫힌 눈꺼풀 사이로 희미한 일렁거림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단 영혼이라 지칭하고 있는 연기가 모습을 드러낸 거다.
‘……근데 뭔가 왜 이리 큰 거 같지?’
아직 눈을 감고 있었기에 확신하긴 힘들지만, 아무래도 시야를 꽉 채운 것 같다. 사람들의 영혼을 관찰한 게 몇 번 되진 않았으나, 그중에서 봐 왔던 것들 중 가장 클지도 모른다.
‘……설마 진짜로 영혼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건가?’
딱히 크다고 무조건 강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그 말이 성립되지 않던가.
타냐는 영혼도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에게서 비롯됐다는 점은 똑같으니까.
‘괜히 또 이대로 말해 주면 다음 실험까지 하자고 강짜 부릴 거 같은데…….’
오랜만에 본 모습에 조금 서운함을 느끼긴 했어도 리안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결국 타냐는 그리 내키진 않지만,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표정 관리만 신경 쓰면 돼. 실망……은 조금 그렇고. 그냥 보통이랑 별로 차이 없는 것처럼. 담담하게.’
후우, 심호흡을 내뱉은 타냐가 살며시 눈꺼풀을 열었다. 속으로는 계속해서 표정 관리에만 집중하면서. 그리고 깔았던 시선을 살짝 올렸을 때.
‘……뭐지?’
타냐는 그런 의문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리안의 영혼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눈꺼풀 뒤론 보였던 거 같은데…… 혹시 해제됐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본인조차 잘 모르는 능력이기도 하니까. 심지어 발동됐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연기가 보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왜? 뭐가 잘 안 돼?”
걱정스러워하는 리안의 물음에 타냐가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눈 뜨는 사이에 해제됐나 봐. 미안…….”
“미안은 무슨.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위험할지도 몰라서 최대한 쓰는 거 자제하고 있었다며.”
리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보다 다시 발동할 수는 있는 거야? 하루에 한 번뿐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야. 근데 이거 진짜 꼭 해야 돼?”
“어. 오늘 못 하면 내일도 찾아올 거야.”
“…….”
그건 좀 괜찮은 거 같은데. 타냐는 지금이라도 못 한다 말을 바꿀까 하다가 포기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너무 속 보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일단 시늉이라도 해 볼까.’
그러고 나서 안 된다 하면 뭐 어쩌겠나.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타냐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 할 때, 리안은 아까처럼 도로 창가에 앉았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앉아 기다리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불러온 파장은 그리 단순하지 못했다.
“…….”
타냐는 눈을 감으려던 것도 잊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정면을 응시했다. 표정엔 차마 감출 수 없는 경악만이 가득했다.
이상함을 느낀 리안이 창가에서 내려왔다.
“야, 너 왜 그래? 혹시 돌아가신 조상님 영혼이라도 봤어?”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영혼이…… 네 영혼이…….”
“내 영혼이 뭐?”
리안의 재촉에 타냐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닫힌 입을 억지로 뗐다.
“리안, 네 영혼이…… 저택보다 커서 오히려 눈치채지 못한 거였어…….”
* * *
지나치게 작은 것과 지나치게 큰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한눈에 담을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둘 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똑같다는 걸 빗댄 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맨눈으로 미세한 크기의 세포를 확인할 수 없지만, 반대로 우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 같지 않은가.
지금 타냐가 겪고 있는 상황이 후자와 비슷했다.
리안의 영혼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은 물론 저택까지 전부 뒤덮어 버려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다 착각한 거다. 그런데 그걸 리안이 움직이면서 일어난 일렁거림 덕분에 뒤늦게나마 눈치채게 된 거고.
“…….”
설명이야 간단하지만, 그리 간단한 현상은 아니었다.
타냐가 여태까지 봐 왔던 것 중 가장 큰 영혼이 끽해야 사람의 머리보다 조금 더 커다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만약 크기가 영혼의 강함과 비례한다는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리안은 보통 사람보다 수천, 수만 배는 더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위험할지도 모를 시험을 계속할 근거가 될 거고.
타냐는 일단 당황을 제쳐 두고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켰다.
“……겨, 겨우 저택보다 조금 큰 수준으론 역시 실험은 불가능하겠는데……?”
“너 연기 진짜 못하니까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라.”
리안이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느 정돈데? 몇 번 본적 없다 해도 대충 비교는 가능할 거 아니야.”
“……몰라.”
“그만 질질 끌고.”
“진짜 모른단 말이야. 그동안 봤던 것들이랑 비교도 안 돼.”
결국 숨기는 걸 포기한 타냐가 순순히 고해성사했다.
“그전에 봤던 것 중 제일 큰 게 사람 머리보다 조금 컸어. 리안 너는…… 솔직히 지금도 정확히 어느 정도 크긴지 가늠이 안 가는 상태고.”
“그렇단 말이지.”
리안이 씨익 웃었다.
적어도 차원을 건너도 손상이 거의 없을 만큼 영혼이 강하다는 키탄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그럼 바로 다음 시험으로 들어가도 될 거 같은데, 어때?”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원래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야.”
리안은 망설이는 타냐를 끌고 중앙홀로 이동했다.
“자, 여기라면 만약 무슨 일 생긴다 해도 리카르도가 바로 도착할 거야. 이제 좀 안심이 돼?”
“리카르도는 신관이 아니야.”
“어차피 신관도 영혼은 못 건드려. 그럴 거면 차라리 경험 많은 검사가 낫지.”
“……그런가?”
어딘가 설득력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냐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리안이 끝까지 밀어붙이면 자신은 거절하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그나마 재차 주의 주는 게 타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멈출 거다……? 그전에도 한 번 건드려 보려다 무서워서 금방 관뒀단 말이야.”
“알겠어.”
알기는 뭘 안다는 건지.
타냐가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며 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금세 손끝에서 실 모양의 하얀 선이 뻗어져 나갔다.
타냐는 그걸 영혼실이라고 불렀다. 본인의 영혼이 가느다랗게 압축돼 저런 모양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 때문이다.
굳이 그런 해석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영혼실은 나름 그 이름이 잘 어울리긴 했다. 그걸 상대의 영혼에 부착하지 못하면 애초부터 조종은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대체 어디에 붙여야 하지?’
이전에 한 번 써 볼 땐 최대한 안전한 곳. 이를테면 손바닥 같은 데 붙이곤 했는데, 리안의 영혼은 너무 커서 부위가 구분되지 않았다.
타냐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근처로 영혼실을 날렸다. 시야를 전부 가리고 있을 정도면 가장 넓은 배 정도가 아닐까 싶어서다.
‘가까이 있으면 잘못됐다 해도 회수하기도 쉬울 테고.’
그 외에도 나름 여러 가지 계산이 들어간 선택이었다.
하지만 타냐의 그런 신중함은 결과적으론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다.
바로 영혼실이 리안의 영혼과 맞부딪힌 순간, 엄청난 반발력과 함께 튕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저택을 전부 뒤덮을 만한 막대한 양의 한기를 덤으로 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