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91)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몬의 사도가 까득 이를 갈며 분개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을 향해 뻗었던 손을 우투레에게 향한다.
“이러면 어때! 능력 두 개면 아무리 너라도 저 덩치 놈을 지킬 순 없을 텐데?”
“확실히 말했을 텐데. 무슨 수를 써도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고.”
나는 태연하게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렸다.
“우투레, 미안하지만 이렇게 됐다. 혹시 유언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우투레, 죽음 두렵지 않다. 어차피 원래 숲에서 죽었을 목숨이다.”
“그렇다는군. 혹시 얌전히 목을 내밀면 고통 없는 죽음 정도는 약속해 줄 수 있는데, 어떡할래?”
“…….”
내 말에 녀석은 꽤 오랜 시간 침묵했다. 그리고는 다시 차분하게 돌아온 눈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음은 물론, 앞으로 네 눈앞에 띄지도 않겠어. 어차피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거라 큰 원한도 없으니 말이야. 그럼 그냥 보내 줄 건가?”
“아니. 그래도 죽일 건데.”
“왜 이 개새끼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암살자 말을 내가 어떻게 믿냐? 지금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모두 살리고 편안하게 죽느냐, 몇 명 더 길동무로 삼고 끔찍하게 죽느냐 하는 것뿐이야. 아, 참고로 후자를 고르면 나는 널 생포할 거다.”
“……생포한다고?”
녀석의 눈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아마 일단 살아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인 거겠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쉽지만 난 별로 고문에 재능도 없는 데다 취향도 아니라서. 하지만 그쪽에 정통한 친구를 한 명 알아서 여기 데려올 생각이야.”
“……고문에 정통하다고?”
“정확히는 고문당하는 데 정통했던 거지만, 뭐 당해 봤으면 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겠어? 친구가 마녀재판 생존자거든.”
눈동자에 담겨 있던 희망이 빠르게 사라진다.
녀석도 일개 교단의 사도. 신전에서 행하는 마녀재판 고문이 얼마나 처절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다. 그걸 10분이라도 당하느니 차라리 당장 죽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섰겠지.
결국 포기했는지 녀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손의 위치를 바꾸었다. 몰려 있는 사람들과 바깥 건물 외벽을 향해서.
“빌어먹을 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우지직.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양쪽에 균열이 일어났다. 우투레는 아예 포기해 버리고 사람들을 미끼로 삼아 도망치려는 속셈이다.
동료와 저울질하는 게 아니라면 잠깐이라도 망설이지 않을까 싶었던 건가?
나는 그걸 보고 곧바로 발을 박찼다. 목표는 벽을 향해 있는 녀석의 오른팔이다.
“고민조차 하지 않는 거냐! 이 쓰레기가!”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녀석은 황급히 사람들에게 향해 있던 왼손을 내게 뻗어 왔다. 예상대로다.
나는 씨익 웃으며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덕분에 나를 향한 ‘붕괴’가 발동하기 이전에 녀석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표적을 바꾸며 시간이 지체된 탓이다.
“뭣……!”
어느덧 당황한 녀석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악!”
우지끈. 외벽이 부서짐과 동시에 녀석의 왼팔이 허공을 날았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와 거리를 벌렸다.
그래도 암살자 짬밥을 날로 먹진 않았단 건가. 대처가 꽤 빠르다. 자만심 때문에 나에 대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온 시점에서 실격이기는 하다만.
“……설마 여기까지 노렸던 거야?”
어차피 이제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 여유롭게 거리를 좁히는데, 지혈하던 녀석이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물어왔다.
“뭐가?”
“내가 사람들 인질로 삼았는데 무심하게 군 거! 지금 이렇게 될 거라 계산하고 행동했던 거냐고!”
아, 그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꾸해 줬다.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 사람 몇 죽이는 것보다 본인 사는 게 더 우선일 테니까.”
“……처음 보여 줬던 모습은 허세라는 건가? 만약 내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네 동료와 사람들을 노렸다면 끝내 나를 놓아줬을 거야?”
“아니. 말했잖아.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고.”
조금씩이라도 거리를 좁히다 보니 어느새 코앞이다. 녀석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아래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만약 그 둘을 노렸더라도 나는 결국 너를 죽였을 거야.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라는 소리지.”
나는 그대로 검을 녀석의 목과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렸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라. 그냥 쓸데없는 희생이 줄어들었을 뿐이니까.”
스윽.
흑철검이 매우 부드럽게 살과 뼈를 통과했다. 녀석의 목은 몸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질 거다.
괜히 내 가게도 아닌 곳에서 피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신경 좀 썼다. 이미 수리비 낸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나는 검을 집어넣으며 혼원력을 이용해 녀석의 시체를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차단했던 소리도 원상 복구시켰다.
“리안 님!”
“성자님이 또 우리를 구해 주셨어!”
소리가 돌아오는 즉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런데, 뭐지?
대체 내가 리안이란 건 어떻게 안 건지 모르겠다. 아직 ‘타른헬름’의 효과는 유지되고 있을 텐데?
잠시 생각해 보다가 내 머리를 살짝 때렸다.
멍청한 새끼. 소리 차단하기 직전까지의 대화는 전부 엿들었을 테니 당연한 거 아니냐. 한 대 더 맞아라.
그렇게 혼자 자학쇼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살려줘서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런 거 아니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반쯤 포기하고 있기도 했으니 변명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계속되는 감사를 받으며 대충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그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투레, 그만 돌아가자. 더 있으면 오히려 민폐다.”
“그게 무슨 소린가? 아직 벽을 고치지 못했다.”
“그건 가게 주인이 알아서 해결할 거다. 내가 충분한 돈을 줬으니까. 문제는 시간이지.”
“시간?”
우투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봐라. 원래 인간은 어두울 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눈치만 보며 가게를 고치고 있지. 이게 왜인 거 같나?”
“음…… 우투레 잘 모르겠다.”
“바로 우리가 여길 안 떠나고 있어서다.”
정확히는 내가 안 떠나고 있어서겠지만.
“우리 눈치를 보느라 계속 일하고 있는 거지. 내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말이다.”
“인간은 어렵군. 집에 가고 싶으면 그냥 집에 가도 되는 거 아닌가?”
“인간은 원래 복잡해. 아, 이건 심화 편이니 애써 기억해 둘 필요는 없다. 인간 중에서도 못 지키는 인간이 많은 문제거든.”
나는 그렇게 설명하며 장시간의 노동 끝에 멀쩡해진 바닥을 가리켰다. 이 정도 했으면 일단은 충분하다 얘기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우지지직.
갑자기 오늘 하루 몇 번이고 들었던 소리가 나며 애써 고친 바닥이 다시 일그러졌다.
……뭐지? 설마 그 꼬맹이가 죽은 게 아니었나?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몬의 사도 시체를 옮겨 놓은 곳이다.
하지만 이쪽으로 손을 뻗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녀석의 시체는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목도 바닥에 떨어져 있다. 지나가던 누군가 툭 건드린 모양이다.
“그럼 대체 누가……?”
나는 당황해서 주변을 싹 훑었다. 그러나 의심 가는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일반 코드고, 몇몇 보이는 네임드는 전부 아는 사람이다. 애초에 ‘붕괴’는 아몬의 사도밖에 사용할 수 없기도 하고.
이러면 남은 답은 역시 하나뿐인데…….
떨떠름한 얼굴로 뻗었던 손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바닥에다가 ‘붕괴’를 쓴 것은, 아무래도 나인 모양이다.
* * *
가게 주인에게 추가 수리비를 지급하고 재빨리 집에 딸린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어디 보자…….”
잠시 심호흡을 한 뒤, 훈련용 허수아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가게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떠올리려 애썼다.
아마 분명 손바닥은 살짝 꺾고, 손가락은 이렇게 돌렸던 것 같은데…….
그 순간, 다시 한 번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돌아본 정면에는, 이미 허수아비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게 진짜 되네.
나는 살짝 얼떨떨한 심정으로 비슷한 행위를 몇 번 더 반복했다. 그렇게 십 회 정도 시도하자,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붕괴’는 다시 발동하지 않았다.
횟수 제한이 있다는 건가?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갑자기 내가 아몬의 사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웃기지만, 그게 뜬금없이 사라져 버리는 건 그보다 더 웃기는 일이니까.
“역시 키탄의 사도가 지니는 능력인 거 같은데…….”
신성과 관련된 것과 같이 코드나 메시지가 안 뜨는 것도 그렇고, 사도라는 공통점도 그렇고. 짚이는 곳은 그쪽밖에 없었다. 마침 이런저런 실험을 했음에도 뭐인지 밝혀내지 못하기도 하지 않았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대체 나한테 무슨 능력을 준 거냐…….
다른 사도의 권능을 빼앗는 능력이라니. 어딜 봐도 사기 아닌가. 아무리 횟수 제한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장 기억나는 사도 몇만 떠올려 봐도 먼치킨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녀석들이 많았다.
3초에 한정되지만 정확한 미래 예지부터, 거리 제한 없이 공간 이동할 수 있는 인간 택배까지.
그중 두세 개 정도만 내가 사용할 수 있어도 더 이상 이 대륙에 무서운 게 없을 거다.
“결국 조건이 문젠데…….”
만약 상대를 죽여야만 한다든가, 내가 그 능력을 얻으면 정작 당사자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든가 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사도들 중에는 메인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녀석들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대부분이 긍정적인 쪽이다. 아몬의 사도 같은 경우가 오히려 특이한 편이지.
“이런 줄 알았으면 그냥 살려 두고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건데…….”
잠시 한탄해 봤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다. 바로 단념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최우선적인 목표는 이 권능의 제한 조건을 알아내는 것. 그중에서도 당장 실험할 수 있는 것들부터다.
횟수 제한은 정확히 몇 번인지, 이 제한의 단위가 하루인지 한 주인지. 그리고 낼 수 있는 출력은 원본과 똑같은지 등등. 지금 당장 나 혼자서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전부 확인하고 나면 역시 새로운 사도를 찾아봐야 하겠지. 얻는 방법이나 다른 권능과 중복이 되는지 등등도 알아봐야 하니까.
“지금 레이튼 근처에 있으면서 협조적이기까지 할 사도가…….”
생각나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 이름을 떠올리면서, 훈련장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