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73)
사실, 그렇다고 원래 추기경이 악한 쪽이었단 건 아니다. 그저 가치관이 다른 편이었다고 해야겠지.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자가 실질적인 힘을 갖고 직접 행동할 만한 실행력까지 갖고 있었단 거다.
아무튼,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교황이 뭔가 발표한 건 없어?”
“네? 음…… 뭐 딱히 없는데요. 혹시 이번 사건 얘기하시는 거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는 분위기 같아요. 굳이 숨길 것도 없지만, 굳이 크게 만들 것도 없다는 느낌이랄까.”
“그래?”
이번 사건을 얘기한 건 아니지만, 저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 발표’는 아직 인가 보다. 나름 역사에 남을 만한 큰 이슈인데, 일어났다면 저리 무미건조하게 반응할 리가 없으니까.
하긴, 워낙 일이 크게 터졌으니 당장은 그걸 수습하는 데만도 급급하긴 하겠지.
어찌 됐든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대부분 해소했다.
나는 슬슬 몸을 완전히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리나가 그런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 가시게요?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쉬시는 게…….”
“움직이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 없어. 애초부터 너무 호들갑 떤 거였지. 그냥 침 바르면 금방 낫는 거 가지고.”
“……무슨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시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아리나가 나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가려는 데가 어딘데요? 화장실만 아니면 저도 같이 가드릴 수 있는데.”
“분향소.”
“……네?”
장난스럽게 덧붙이던 녀석이 내 대답에 곧장 동작을 멈췄다. 나는 그 반응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옷장으로 다가갔다.
일단 뒤져 보긴 했는데, 검은색 양복은 임명식 때 입을 뻔했던 불편하고 화려한 장식이 붙은 한 벌뿐이다.
한숨을 쉬며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전부 손으로 일일이 떼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정한 차림의 상복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걸 겉에 걸치며 다시 한 번 아리나를 보고 말했다.
“분향소, 혹시 어디 있는지 알면 잠깐 안내 좀 해 주라.”
* * *
거듭해서 상기하게 되지만, 패러사이트는 게임 내에 설정으로만 나오는 존재다. 원래대로라면 교단 금지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게 다라는 소리다.
그런 녀석이 일어나게 된 것은…… 역시 나의 영향이 컸겠지.
만약 내가 키탄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든가 애초에 여길 오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란 뜻이다.
“…….”
그 사실에 죄책감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어쩌다 보니 나비효과가 발생했을 뿐이지,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으니까.
‘재앙’이 봉인되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금지 관리를 소홀히 한 교단에 2차 책임이 있고, 당연히 사건을 주체해서 일으킨 추기경의 아들, 살바토르에게 1차 책임이 있다.
곰곰이 따져 보면 내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점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래를 알고 있던 사람의 입장으로서, 혹은 순수한 인간의 관점으로서 알게 모르게 드는 책임감까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신관들의 죽음에는 분명 내가 일조한 것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
나는 단 위에 올려진 초상화들을 세었다. 모두 마흔셋. 밖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사망한 것까지 전부 합친 숫자다.
일어난 일의 규모에 비하면 적다고 볼 수도 있는 수였지만, 그 밑에 짤막하게 적힌 몇 줄의 말들이 그런 생각이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드레 다윈, 내가 사랑했던 친구.
애봇 휴버트, 존경스러웠던 아버지.
에반 에스더, 빈민을 위했던 진정한 어머니.
그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이름을 익히고 있는데,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설마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슬쩍 시선만 돌려 왼쪽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익숙했다.
“회장에 계셨던 주교님이시군요.”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녀석과 싸우는 와중에 저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주교님 한 분뿐이었으니까요.”
“……혹시 그게 방해가 됐었다면 지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로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도 전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기도 했고.”
로이드 아쉘, 마카이오 바르나, 오스카 패밀리. 마흔세 명 전부 외웠다.
나는 명패에서 고개를 돌려 주교를 마주 봤다.
“교단의 장례식에는 원칙적으로 신도들만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 녀석과 같이 싸웠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은 있을 거라 제멋대로 판단하였습니다. 저도 혹시 방해가 되었던 거라면 지금 사죄드리죠.”
내 말에 주교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탓하려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반쯤 유명무실한 규칙이기도 하고…… 뭣보다, 보십시오.”
주교가 말을 멈추고 주위를 가리켰다. 조문객들이 있는 자리였다. 그들 하나하나의 시선이 전부 다 나를 향해 있었다. 존경과 감사의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저 사람들이 상실을 슬퍼하고 있는 대상은 원래 죽었을 인물들이 아니니까.
순간,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체가 위선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신도가 아니라고는 하나, 저들 중 그 누구도 리안 님을 외부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잠시.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혹시 보상에 관해 논하려는 거라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교의 눈을 마주 보며 똑똑히 물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가족분들을 직접 만나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 * *
확실히 위선은 위선이다. 죄책감 같은 거 안 가지고 할 때는 언제고, 행동하는 짓은 딱 가해자 꼴이니.
하지만 그걸 인식하고 있음에도 말이 먼저 튀어 나갔다. 머리로 판단한 일이 아니었다.
주교는 내 물음에 의아해하면서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나를 이끌었고, 나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소정의 금화를 건넸다. 이유 없이 받을 수 없다며 흔들어 대는 손에 억지로 말이다.
그러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비난이 아니라 도리어 감격의 시선이 되돌아와서일까.
“…….”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내가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런 문제가 두려워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려는 것이니까.
나는 고개를 털어 상념을 떨쳐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본청에서 가장 큰 독실, 교황의 방.
그렇다고 해서 뭔가 화려하거나 커다란 장식이 붙어 있는 건 아니다. 지구든 이쪽이든 종교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검소함인 것은 똑같았으니까.
임명식 때 그 옷은…… 뭐, 행사용 그런 거였겠지.
그때, 방의 주인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성녀님의 방보다 휑해서 놀랐소? 크기는 더 크지만, 정작 실속이 없기는 하지. 딱 지금 교단의 상황과 어울린다고 볼 수는 있겠소만.”
겉으로 보이는 권력은 교황인 본인이 더 크지만, 실권은 성녀인 아리나가 잡고 있다는 걸 돌려서 말한 거다.
어쩐지 내용에 살짝 뼈가 섞인 느낌이다.
임명식에서 줄곧 아리나의 편을 들었던 모습이라곤 보기 힘들지만, 원래 교황이란 저런 자리다. 자신의 의사야 어쨌든 신의 뜻에 따라야 하는 위치.
만약 수정 구슬이 끝내 빛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다.
하나, 동시에 교황은 개인적으로도 성녀가 탄생하는 데 그리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하는 건…… 그가 성녀에게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시험해 보고 싶은 거겠지.
평상시였다면 대강 원하는 태도를 보여 줬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런 데 신경 쓰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오대 종교 통합은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까?”
“그대가 그걸 어떻게……!”
교황이 순식간에 안색을 바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가 리안 상회 주인이라는 걸 잊으셨나 보군요. 저희도 정보 조직 정도는 있습니다.”
“……오대 종교 교황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던 일일세. 왕국들이나 연합에서도 모르게 하고 있던 건데…….”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분석해서 결과를 내놓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니까요. 마침 수백 년 만에 탄생하는 성녀 임무를 직접 수행하게 됐고, 거기 의문을 가져 뒤지다 보니 몇 가지 의아한 점이 나왔을 뿐입니다.”
“……지금 나를 떠봤다는 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교황이 오묘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대가 이상한 점 몇 가지를 발견한 건 그렇다고 치지. 몇몇 정보 조직에서 그 정도 눈치채는 거야 우리도 예상하고 있던 바니까. 하지만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안 것은 대체 어떻게 한 건가?”
“임명식에서 나온 교황님의 반응과 얻은 정보를 조합해서 추론한 겁니다.”
“……내 반응?”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사실 추기경…… 그러니까, 전 추기경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키탄 교에 성녀가 생김으로써 힘이 강해지고, 그로 인해 왕국의 경계를 사게 될 테니까요.”
“……해서?”
“교황님께서 아무리 신의 뜻을 따른다 하나, 인간의 감정마저 거세해 버린 건 아닐 것입니다. 한데 그 얘기를 듣고도 교황님의 표정엔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떠오르지 않더군요.”
“……단지 그것만으로 오대 종교의 통합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건가?”
“예. 저도 비약이 강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교황님께서 왕국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딱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앞에 놓인 차를 들이켜며, 교황의 떨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고 말했다.
“바로 왕국만큼 강해지는 것 말입니다.”
“…….”
교황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말없이 나만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슬쩍 흘리며 차의 향기를 맡았다.
뭔가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다.
아르곤에서 샀던 것처럼 고급진 느낌은 없지만, 오히려 수수해서 안정되는 감각이라 해야 하나.
내 능청스런 모습에 허무해졌는지, 교황이 다시 한 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보로 그런 결론까지 도달하는 것이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맞춰 버렸으니 뭐라 할 말이 없군. 더 시치미 떼지 않겠네. 어차피 곧 도시가 안정되는 대로 발표할 내용이기도 했고. 하나, 본인이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굳이 이렇게 찾아와서까지 얘기한 이유는 뭔가? 설마 뽐내기 위해서는 아닐 테고.”
당연히 교황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다.
일반 신도들은 단순히 이번 사건으로 나를 좋아할 수 있어도 지도부는 단지 고마움만으로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을 만큼 순진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저 물음은 자칫 경계를 살 수도 있는 일을 뭐 하러 얘기했냐는 의문임과 동시에, 갓 청년의 나이인 나를 당당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 존중에 살짝 안도하면서, 찻잔을 탁, 내려놓고 답했다.
“그 발표를 조금 더 뒤로 미루시라 조언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