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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141화 (141/225)

너의 코드가 보여 (141)

“……말도 안 돼.”

자이어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한참 동안 비슷한 소리를 계속해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둥, 불가능한 소리라는 둥. 그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게 다가와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기세로 흥분해 외쳤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그런 것이 가능한 거냐! 그런 건 제국의 시조이신 해방왕께서나 가능한…….”

“그건 아니지.”

“……뭐가 아니라는 거지?”

잠시 말을 끊자, 자이어가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답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내가 그 해방왕 로이드 스트라우드보다 성장 속도는 더 빠를걸? 뭐, 그쪽은 마법까지 같이 썼으니 무조건 비교는 힘들긴 하다만.”

실제로 이건 단언할 수 있었다. 설정에 상술한 녀석보다 3급에 오른 나이도, 오를 때까지 걸린 시간도 내가 더 앞서 있으니까.

자이어는 의기양양해 있을 게 뻔한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곧 시선을 돌렸다.

“……너는 가끔씩 꼭 재수 없는 말을 당당히 하는군.”

“자주가 아니라 다행이네.”

나는 꽤 흔하게 썼다고 생각하는데. 본인도 예전에 의식하지 않고 그런 말을 했던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 기준치가 높은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러니까 내가 얘 상대로 이러는 거지만.

“그보다, 나 없는 동안 레이튼에 뭔 일 있었냐? 바깥에 저런 떨거지들까지 모여들고.”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일은 없었다. 저놈들이야 최근 레이튼이 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하이에나들이겠지. 저 정도야 네가 나서지 않아도 자경단 차원에서 해결 가능했을 거다.”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보내 준 자경단원들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거겠지.”

“네 소개로 왔다고 자경단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뭐,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나는 마른 입술을 살짝 핥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알아 둬야 할 만한 건 없다 이거지?”

“그렇다……고 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게 있긴 하군.”

“떠오르는 거?”

그냥 예의상 물어본 질문이었기에 저런 대답이 조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2부 시작 전이라 세세한 설정까지는 몰라도, 내가 알기로 지금 레이튼에서 일어날 큰 사건은 없을 텐데…….

달라진 게 워낙 많으니 확신은 못 하겠다. 원래대로라면 여긴 아직도 오물투성이에 진흙쿠키 같은 거나 만들어 먹고 있었을 때니까.

원작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당연히 일어날 일도 차이가 있지 않겠나. 마치 영화 같은 데서 자주 나오는 나비효과라는 것처럼.

그에 대해 경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문제는 그거 걱정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간 어차피 죽을 판이었다는 거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표현하는 게 맞겠다.

“정확히는 도시의 일이라고 하기에 뭐하긴 하다만…….”

자이어가 말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레이튼 자경단을 이끌고 있는 녀석이 저렇게 눈치 볼 집단은 하나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나온 얘기는 내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얼마 전 키탄교 본청에서 이곳으로 성기사 몇을 파견해서 상당히 시끄러워지긴 했었다.”

“키탄의 신전에서? 걔네가 왜?”

대상이 예측 안이었다고 일어난 일까지 짐작했다는 건 아니다.

지금 거기서 레이튼에 성기사 파견할 일이 없을 텐데? 애초에 반쯤 버려 둔 도시기도 하고.

혹시 부유해졌다는 소문 도니까 지금 와서 숟가락이라도 얹어 보려고 하는 건가?

그 정도는 마음속으로 염두에 두긴 했었다. 돈이 몰리는 곳에 사람도 같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신전의 힘이 제한되게 만들 대비책도 이미 짜 놨고. 문제는 없지.

하지만 자이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내 태평한 생각을 한참 초월한 얘기였다. 녀석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귀띔했다.

“이건 아직 소문일 뿐이다만…… 듣기로는 레이튼에 키탄의 성녀 후보로 지목된 사람이 있다는 거 같더군.”

“…….”

그 말에 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거 분명 2년은 더 있다가 터지는 일일 텐데?

* * *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이고 뭐고 일단 상회부터 들렀다.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니까.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꽤 기대하며 왔던 레이튼의 풍경 따윈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예전 제국 수도일 때보다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소문이 아마 사실일 거라는 거죠?”

“확신은 못 한다. 그쪽에서도 워낙 민감한 문제다 보니 보안이 철저하거든. 솔직히 레이튼이니까 그런 소문이라도 퍼진 거지, 다른 도시였으면 성기사 파견했는지도 몰랐을 거다.”

관심에서 철저히 벗어난 곳이라 오히려 관심을 받았다는 소리다. 다른 도시였다면 성기사 몇 파견되는 일로 이렇게 소란 떨지 않았을 테니까.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영감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성녀 후보란 자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건가요?”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느냐. 자그마치 대륙 최대 종교인 키탄의 성녀에 관한 정본데. 아마 교황이 오늘 입은 속옷 색깔보다 더 알아내기 힘들 거다.”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요.”

어쨌든 아리나가 성녀 후보란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단 거지.

조금 안심한 기분으로 소파에 편히 몸을 기댔다.

2년 후에나 터질 사건이 벌써 일어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상황 자체는 나쁠 거 없다.

키탄의 성녀가 여기서 나왔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레이튼에 대한 대륙의 인식이 훨씬 나아질 테니 말이다.

지구에서도 그런 거 있지 않던가. 누가 태어난 땅이니 어떤 분께서 탄생한 곳이니 하는 거.

벨리아 대륙은 실제로 신들이 기적을 벌이는 세계라 그런지 그런 데에 대한 환상이 더했다. 어쩌면 마침 내가 키워 둔 이미지에 더해서 레이튼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깔끔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키탄교 본청에서도 레이튼에 끊었던 지원을 다시 이어 갈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성녀가 탄생한 도시를 개판인 꼴로 놔둘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대륙 제일의 교단이니만큼 그 지원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할 거다. 사람들이 병이나 상처로 죽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 보면 의사가 확 늘어나는 꼴이니까.

물론 그만큼 내가 신전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조절할 자신도 있고.

지금은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만 생각하자.

나는 곧바로 상회의 실질적 지도자와 같은 베이크 영감님과 상의를 시작했다. 이 사태로 인해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이득과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워낙 중요한 안건이다 보니 회의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다.

내가 도착할 땐 하늘 정중앙에 해가 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위치에 달이 우두커니 떠 있는 거다.

베이크 영감님이 그걸 보고는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대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니 너는 이만 들어가 보지 그러냐? 오랜만에 온 건데 아직 집에도 못 가 보지 않았느냐.”

“괜찮아요. 제가 그래도 명색이 상회 주인인데, 영감님한테 전부 맡겨 버리긴 조금 미안하죠.”

내 말에 영감님이 코웃음 쳤다.

“언제는 전부 맡긴 적 없는 것처럼 말하기는……. 됐으니까 그만 들어가! 어차피 나는 이것 말곤 할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네놈은 다르지 않냐.”

“수련 얘기하는 거예요? 그거, 제가 자리 비운 동안 원 없이 하고 왔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수련 제외하고도 말하는 거다.”

나한테 수련을 제외하면 뭐가 남지.

곰곰이 떠올려 봤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아이언 훈련 방식의 부작용인가. 순간 나도 내 인생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베이크 영감님은 내 표정을 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네놈이 수련 말고도 이것저것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대체 뭔 짓을 꾸미는 건지는 도통 짐작이 안 가지만 말이다.”

“…….”

아마 내가 미래를 대비해 투자하거나 연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알려지면 또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나름 조용히 처리했는데, 역시 정보력 수준이 꽤 많이 올라왔네. 아직 노블레스급은 안 되는 것 같지만.

그제야 못 이긴 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말로 상관없었지만, 내가 문제가 아니라 영감님이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더 거절 안 할게요. 나중에라도 제 도움 필요하시면 바로 말씀하시고요.”

“네가 그런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얘기할 거다. 그만 들어가기나 해.”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하여간 만날 마음에도 없이 툴툴거리기는.

나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똑똑.

입구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막 나가려던 참이었기에 그냥 말없이 문을 열어 버렸다. 이럴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앞의 직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느,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리안 님에게 손님이 찾아왔다는 걸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손님이요? 이런 시간에?”

아까도 확인했지만, 밖은 이미 깜깜한 차다. 이 오밤중에 나를 찾을 사람이 대체 누가 있지?

직원은 내 눈길을 받더니,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지금 찾아오신 게 아닙니다. 도착은 한참 전에 했는데, 여태까지 기다리신 거지요.”

“한참 전이 언젠데요?”

“리안 님께서 여기 도착하신 지 한 시간 뒤입니다.”

꼬박 1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는 뜻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저한테 말 안 했어요?”

“그게…… 제가 중요한 일로 회의 중이라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그냥 기다릴 테니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래도 그게 몇 시간을 넘어가면 언질이라도 주셨어야죠.”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탓하는 어조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직원은 죽을죄라도 졌다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상회에 잘 들리지도 않는 놈이 주제에 주인이기까지 하니 대하기 어려운가 보다.

이래서 억지로라도 얼굴 좀 자주 비춰야 하는 법인데.

나는 애꿎은 직원을 탓하는 대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고개 들어요. 그래서, 저 찾아온 손님이란 게 누군데요?”

“그게…….”

직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키탄 신전의 정식 신관, 아리나 님이십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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