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34)
……진짜 미친놈인가?
순간, 예전에 데이크가 말했던 아카데미의 훈련이 떠올랐다.
분명 높은 곳에서 줄도 없이 번지시켜 버린다 했었지. 아마 이유는 그냥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했던 거 같다.
처음 들었을 땐 그게 무슨 무식한 짓거린가 싶었는데, 설마 그 화살이 나한테까지 날아올 줄이야.
나는 바로 절벽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뛰어내릴 생각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왜 제자를 받자마자 바로 죽이려고 드세요? 역시 아직 꽁해 있는 거죠?”
“꽁해 있다니?”
“아는 체는 엄청 해 놓고 정작 알려 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빈정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런 자각은 있었나 보구나.”
아이언은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절벽 쪽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너, 지금 본인 신체 능력이 웬만한 거인족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런데도 무게는 걔네보다 훨씬 덜 나가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뛰어내리고도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당연히 맨몸으로 뛰면 그렇겠지. 하지만 마력으로 강화하고 뛰어내린다 치면?”
그 말에 다시 한 번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확실히, 마력으로 신체 강화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역시 굳이 내 몸으로 실험해 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뭐, 일단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이 훈련의 과학적 근거가 대체 뭔데요? 혹시 용기를 길러 준다 이런 거면 절대 할 생각 없어요.”
“용기? 그런 게 갑자기 왜 나와?”
“기사 아카데미에 이거랑 비슷한 수업이 있다더라고요. 스스로 위험에 떠밀림으로써 용기를 길러 준다나.”
“세상에 별 미친 수업도 다 있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댁이 할 소린 아닌 거 같은데.
내가 한마디 하려는 찰나, 아이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내용은 비슷한 거 같기는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훨씬 실용적인 거야.”
“……실용적인 거요?”
“그래.”
여기에서 뛰어내린다고 생기는 실용적인 이점이 대체 뭐가 있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 게임 속 설정들을 떠올려 봤다.
혹시 크게 다친 뒤 신체가 재생하는 과정에서 더 튼튼해지는 걸 노리는 건가?
아니, 내 특성도 모르면서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초인은 그런 식으로 강해지지 않는단 건 둘째 치고, 그렇게 해 봤자 마력패스가 좁아질 뿐이라 여기고 있을 것 아닌가. 지금 내 몸이 어딜 가든 꿀릴 정도도 아니고.
그럼 역시 남은 건 하나뿐인데……. 설마 아니겠지?
보통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땐 여지없이 그 생각 그대로 이루어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미처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한 채 아이언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그거일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 뭔지 짐작이 가나 봐?”
아이언은 그런 나를 보더니 해맑게 웃었다. 마치 너에게 희망 같은 건 사치라는 듯이.
“아마 네 생각이 맞을 거야. ‘마력회생’.”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단정 지었다.
역시 이놈은 진짜 미친 새끼가 맞다고.
* * *
마력회생.
사실 그렇게 드문 설정은 아니다. 창작물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름만 봐도 대충 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그래도 굳이 설명해 보자면, 주인공 버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압도적인 적에게 처절하게 밀리다가 각성해 버리는 거 말이다.
그럴 때 나오는 이유가 대표적으로 이거다.
죽음의 위기를 겪었더니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던가?
진짜 우스워서 말도 안 나온다.
이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전개란 말인가. 긴장감은 긴장감대로 줘 놓고, 사이다는 사이다대로 퍼붓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편리하잖아.
솔직히 그런 걸 볼 때마다 속으로 욕을 날리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강해지는 주인공보단, 착실하게 힘을 키운 악당에게 감정 이입하게 됐었으니까.
만약 내가 창작을 하게 된다면 그런 설정은 만들지 말자 다짐도 했었던 것 같다.
“…….”
진짜 오만한 생각이었지. 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하던가.
정작 정말로 제작자가 되어 버린 나는, 그동안 그토록 욕했던 각성과 비슷한 설정을 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위기에서 일발 역전하는 것만큼 폼나고 재미있는 전개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마력회생’이라는 것이다.
“하아…….”
애초에 회생이란 단어가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닌가. 거의 죽어 가다가 다시 살아남. 요컨대, 일단 반 죽여 놔야 뭐라도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언이 하려는 건 그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자는 거고.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라곤 생각할 수가 없다.
그때, 무서운 짐작이 한 가지 더 떠올랐다.
게임 내엔 묘사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설마 여태까지 제자들한테 그런 살인적인 훈련을 시켰던 것도 전부 그 마력회생 때문인가?
그런 내 질문에 대한 아이언의 답은 간단했다.
“그런 목적도 있기는 했지. 겸사겸사에 가깝긴 하지만.”
“……거의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 죽어 버렸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 같은 거야. 세상에 안전하고 편하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잖아.”
사고는 개뿔, 그냥 네가 죽인 거잖아 이 살인마야!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이언의 킬 전적에 나를 더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죠? 리스크에 비해 효율이 너무 나쁘잖아요.”
“리스크? 지금 리스크라 한 거야?”
아이언은 나를 보며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다.
“진짜 세상 좋아졌네. 강해지는데 리스크 같은 걸 따지는 경우도 있고. 마물의 숲에선 숨 쉬는 것 하나도 리스크였는데.”
“……그건 세상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그냥 장소가 아예 다른 거 같은데요. 마물의 숲은 사람이 못 들어가는 금지잖아요.”
“그러니까 더욱더 이런 훈련을 해야지. 생명의 위협 없는 곳에선 아무리 단련해 봤자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얘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저길 뛰어내려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태의 아이언에겐 무슨 소리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품하더니, 역시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뭐 해? 이제 이러는 이유도 친절히 설명해 줬으니 그만 뛰어내리지? 혹시 손이 필요한 거면 거들어 줄 수도 있고.”
순간 저 녀석 얼굴에 죽빵을 놓고 달아났을 때 살아남을 확률과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렸을 때 살아남을 확률을 비교해 봤다.
계산이 끝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 누가 봐도 명확한 문제였으니까.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높지 않겠는가. 전자는 언급할 것도 없이 가능성이 제로다.
나는 결국 절벽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뛰긴 뛰겠는데, 딱 한마디만 하고 뛸게요.”
아이언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만약 나중에 제가 진짜로 강해지면, 그땐 바로 스승님 얼굴부터 칠 거예요.”
그리고 곧바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평상시엔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중력의 힘이 나를 거세게 끌어당긴다.
그렇게 한참을 추락하는 와중에, 위에서 아이언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개자식.
나는 아이언의 입 모양을 읽으며, 등 뒤쪽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설마 진짜 본인이 뛰어내릴 줄은 몰랐네. 계속 반항하면 그냥 내가 밀어 버리려고 했는데.’
아이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저 아래 널브러져 있는 단테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그도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게 정상적인 훈련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여태까지 전혀 써 본 적 없는 방법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것 말곤 저 제자 놈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갈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괴물 같은 몸인지.’
대륙인 모두가 괴물이라 하는 아이언이 할 만한 생각은 도저히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그것 말고는 단테를 수식할 만한 단어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제로 괴물 같은 몸 아닌가. 심지어 이미 탐색한 바에 의하면 저런 신체로도 마력 패스가 인간의 것을 초월한 상태였다.
게다가 어디 몸만 뛰어나던가? 알고 있는 정보 하며, 대륙에 이름난 미친개인 그 앞에서도 당당한 기개 하며. 조금 강압적으로 나서게 되더라도 제자 삼고 싶은 인물이었단 소리다.
‘선택은 잘한 것 같네.’
아이언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절벽을 뛰어내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완전히 떨어지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만한 높이였지만, 그는 마치 근처 마실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편안한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언의 발이 바닥에 닿고.
콰아아앙!
여유 가득한 아이언의 안색이 거슬리기라도 한 걸까.
중력은 단테가 떨어질 때 보다 그가 떨어질 때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한 듯했다. 적어도 발생한 충격만 보면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을 거다. 바닥에 남은 자국이나 일어난 흙먼지가 단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으니까.
“무게를 너무 늘렸나? 그냥 좀 빨리 내려오려고 한 건데.”
하지만 아이언은 그런 충격에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뭔가 특별한 기술을 쓴 것이 아니라, 단지 신체를 조금 강화시킨 것만으로 그걸 버틴 거다.
그는 마력으로 근처의 흙먼지를 날려 버리고 단테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음……. 조금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웬만한 일에는 태연한 아이언조차 그런 생각을 떠올릴 정도로 단테의 모습은 처참했다.
팔다리가 전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고, 근처에는 이게 사람 한 명에게서 나올 수 있는 양인가 싶을 정도로 피가 흥건했다.
간헐적으로 들썩이는 배만 아니었어도 꼼짝없이 시체인 줄 알았을 거다.
“일단 치료부터 해 둘까.”
다시 뛰어내리려면 정상으로 되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불쌍한 것과 별개로, 아이언은 이 수련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제일 효과적이란 것도 분명했고, 아무튼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가 미리 준비해 온 포션을 뿌리려는 순간. 단테의 몸이 그보다 먼저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야. 회복 능력까지 있었던 거야?”
아이언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건 회복이라기보다는 재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고위급 사제들만 만들 수 있는 상급 포션 정도는 뿌려야 저렇게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인지.’
아이언이 피식 웃으며 단테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되돌아오고 있는 그를 보고 생각했다.
‘어쩌면 네가 내 얼굴을 때릴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