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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132화 (132/225)

너의 코드가 보여 (132)

드디어 바포메트와의 결전이 끝나고. 나에겐 천만다행스럽게도 아이언과 바로 대화에 들어가게 되지는 않았다. 녀석은 경악한 상태의 빈센트의 질문세례를 먼저 상대해야했기 때문이다.

아이언이 강하다는 건 알았어도 저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그야 10년 전인 제국전과 지금의 아이언은 다른 사람이라 해도 될 만큼 경지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아무튼 덕분에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최대한 녀석의 비위를 맞춘 답변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성심성의껏 준비된 나의 얘기를 전부 들은 아이언이 보인 반응은 매우 간단했다.

“또라이였나?”

아이언은 나를 바로 병신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봤다.

여기 온 뒤로 흔하게 받아 본 눈길이긴 한데…… 벨리아 대륙 공인 또라이한테 받아 보니 느낌이 또 색다르다. 굳이 반박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내가 뭐라 대답하려는 찰나, 아이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얘기를 요약해 보자면…… 네 진짜 이름은 단테가 아니라 리안이고, 굳이 내 제자라고 구라 치고 다닌 건 저 염소대가리가 나타날 걸 미리 예견하고 나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 이건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무슨 예언자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 모습도 유물로 꾸민 거라는 얘기는 빼놓으셨네요.”

“그건 처음 보자마자 알았으니 됐고.”

……모습 바꾼 걸 말하기 전부터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고?

타른헬름은 이래 봬도 1급인 빈센트를 완벽하게 속인 데다 칼페온이 자랑하는 마법 장막까지 완벽히 회피한 유물이다.

심지어 코드를 확인할 수 있는 내가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미세한 차이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은밀성 하나만은 갑인 물건이란 말이다.

아무리 아이언이라도 그걸 보자마자 파악했을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이거 그냥 잘난 척하려고 없는 말 지어내는 거 아니야?

그럴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의심이 들었다.

아이언은 내 표정을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그 정도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어. 그냥 척 보기만 해도 티 나잖아.”

“……무슨 티가 난다는 말이에요?”

진짜 몰라서 물어봤다. 외형도 좀 조각 같은 미남으로 설정했을 뿐이지 충분히 자연스러웠고, 연기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이게 나만의 착각도 아닌 게, 여태까지 의심하는 사람 하나 없지 않았나. 유물의 성능을 보든 인적 요인을 보든 빠지는 것 하나 없이 완벽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정작 아이언이 주목한 건 그 둘과 관계가 없는 부분인 듯했다. 그는 대수로울 거 없다는 사람처럼 담담히 말했다.

“자연스러움이 없잖아.”

“제 연기가요? 저는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최대한 티 안 나게 말도 별로 없는 캐릭터로 설정했고요.”

“연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스러움 얘기야.”

“…….”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명확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도 설정이 바뀐 건가?

내가 아무 대꾸 없이 쳐다보고만 있자, 아이언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도 그냥 느낌 같은 거라 뭐라 얘기하기 애매해. 뭔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인상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아이언은 더 말하기 귀찮다는 듯 주제를 돌렸다.

“아까 얘기했던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성의 있는 거짓말을 준비해 봐. 그럭저럭 내 마음에 들면 목숨 줄 정도는 붙여 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은 같은데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체 뭐가 부자연스럽단 건지 확실히 알아보고 싶기는 하지만,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밝히지 않은 게 있을지는 몰라도, 얘기한 것 중에 거짓말한 건 없어요.”

“그럼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네가 설계한 거라는 사실을 믿으라고? 내가 제대로 해석한 거 맞나?”

“정 못 믿겠으면 확인시켜드릴 수도 있고요.”

“어떻게?”

나는 슬슬 지루하다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태생부터 고아에 혼자서 성장함. 그 외에는 출생지도, 자란 곳도 불명. 20대 중반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밝혀진 바가 전혀 없음.”

“……지금 혹시 내 신변 읽기 하는 거야? 그런 건 지나가는 누구한테 물어도…….”

“하지만 실상은 금지 중 하나인 마물의 숲 유일한 생존자.”

아이언의 안색이 일순 굳었다.

“8살. 처음으로 마물의 숲에 들어온 인간을 만남. 이름은 체이스. 기사이자 사냥꾼인 그에게 제대로 된 언어와 생존 방식을 배움.”

“…….”

“11살. 유일한 대화 상대이던 체이스가 마물의 습격으로 사망. 심법에 대해 거의 익히지 못한 상태라 독자적인 방식을 혼자서 개발. 그리고…….”

이어 가던 말을 멈췄다. 아이언이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어때요? 이 정도면 대충 믿을 만한 근거는 될 거 같은데.”

“……너 뭐야?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듣긴 어디서 들어요? 누구한테 얘기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럼 대체 뭔데? 너 무슨 신이라도 되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아무리 신과 밀접한 세상이라지만, 저 아이언의 입에서 신 타령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 본 탓이다.

“그쪽이랑은 전혀 연관 없어요. 걔네보다 이 세상을 더 잘 알 수도 있겠지만.”

“……신보다 이 세상을 더 잘 알 수도 있다고?”

“네. 딱히 밝힐 이름은 없지만, 굳이 붙여 보자면…….”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악마라고.”

* * *

아이언은 나에 대한 판단을 잠시 보류하려는 듯했다. 그 뒤로 몇 가지 질문들을 더 하더니 대뜸 자리를 떠 버렸던 거다.

일단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낮은 확률이기는 했지만, 그냥 재수 없다고 바로 공격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너무 갑자기 사라진 게 조금 걸리긴 하는데…… 뭐, 이제 상관없겠지. 적어도 당분간은 볼 일 없을 거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얻은 성과나 정리해 볼까.

나는 바포메트를 해치우고 등장했던 메시지 창을 다시 띄워 보았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재앙의 소멸」]

[당신은 벨리아 대륙에 존재하던 재앙 중 하나를 해치우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포인트 정산 중…….]

[존재하지 않는 업적에 정산이 불가능합니다!]

[긴급 구제 포인트 5,000점이 지급됩니다.]

예전 혼원력 처음 익혔을 때 뜬 것과 비슷한 메시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내가 받은 보상 중에 가장 큰 5,000포인트다.

나는 그 메시지를 유심히 읽어 보았다.

솔직히 조금 의문이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혼원력을 개발한 것에 맞먹는 일인지. 포인트가 들어올 건 예상했지만, 믿을 수 없는 업적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바포메트를 해치우는 거 자체는 그런 평가가 어울리기는 한다. 무려 1급보다 강한 괴물인 데다, 이 세계에 최소 수만 단위의 피해를 입힐 예정인 녀석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내가 거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냐는 거다.

물론 그동안 상당한 신경을 기울이며 준비한 건 맞는데, 정작 바포메트를 쓰러뜨리는 데는 사실상 거의 한 게 없지 않은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말이다.

마족의 심장으로 녀석을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그건 단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기 위함이었을 뿐. 그런 게 없었어도 아이언은 바포메트를 이겼을 거다. 전투에 결정적인 역할은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역시 나오는 결론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메시지든 메시지를 보내는 놈이든 누군가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야기가 간단해진다. 내가 처음부터 아이언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는 걸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원래라면 오지 않았을 아이언을 끌어들였다는 건 충분히 바포메트를 해치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만하다. 직접적으론 관여하진 않았다고 해도, 녀석이 아니었으면 바포메트를 해치울 인간이 여기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사적인 감정이 담긴 메시지도 몇 번 본 만큼, 이쪽일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로 먹은 업적이라든가 거위 등급이라든가 하는 소리는 보내지 않았겠지.

문제는 다른 한 가지의 가능성이다.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존재가 내가 만든 ‘벨리아 대륙 전기’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가정 말이다.

“…….”

나는 여태까지 계속해서 게임의 내용을 토대로 일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메시지가 보상을 주는 것은 전부 그 게임의 내용에서 벗어났을 때뿐 아니던가.

타냐를 구한 것부터 지금 바포메트를 해치운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게다가 타냐를 구했을 때는 ‘스토리 분기’라는 말까지 나오며 대놓고 게임 내용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나.

그 당시에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역시 이상하기는 하다. 내가 설정한 바로는 게임의 내용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한 존재는 없으니까.

혹시 내 설정을 벗어난 신이라도 있는 건가?

신성력에는 코드가 안 보인다는 점이나, 놈들이 가진 능력을 생각해 보면 이쪽이 가장 가능성 높기는 하다. 이미 설정이랑 다른 게 한두 개가 아니기도 하고.

“…….”

나는 거기까지 떠올리고 나서 이마를 감싸 쥐었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머리 굴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이 될지는 몰랐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엄청 흔하게 널려 있지 않았던가. 게임이나 소설 속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내용 말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상태 창이나 메시지 창에 큰 의문을 가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게 암묵적인 룰 같은 거라 해야 하나.

이것도 그거랑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시스템 되어 있는 거지. 아침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뜨는 것처럼.

나는 당장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일단 제쳐 두기로 하고, 현실적인 고민에 들어가려 했다. 예를 들어 앞으로의 행보나 왕국 측에 요구할 보상 같은 거.

그렇게 자리에 앉은 순간.

쾅!

이제는 익숙해진 굉음과 함께 문이 박살 나듯 열려 왔다.

아니, 숙소 고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데이크겠거니 하고 고개를 돌렸던 나는, 그 자리에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요?”

“난 돌아간다는 말 같은 건 한마디도 한 적 없는데. 사랑스런 제자를 두고 혼자 어떻게 떠나겠어?”

흥겨운 목소리로 말하며 들어온 건 아이언이었다. 그는 당황으로 굳어 있을 게 뻔한 내 얼굴을 감상하듯 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럼 제자님, 지금부터 바로 훈련에 들어가 볼까?”

……예상했던 것 중 차악인 전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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