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29)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스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바포메트 존재감에 꼼짝없이 얼어 있더니,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드나 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던 존재감이 마격포와 부딪힌 순간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제 마격포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일단 진정해 봐.”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건지 말을 더듬더듬 거린다. 나는 잠시 후 녀석이 조금 안정된 기색을 되찾은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경매장에서 구입한 마족의 심장 있잖아. 그걸 썼어. 마족의 심장에는 저 녀석 힘을 억제해 주는 효과가 있거든.”
―……썼다니. 언제, 어떻게 말입니까?
“네가 마격포 발사하기 직전 슬쩍 앞쪽에 던져 놨지.”
내가 태연히 대답하자, 스바가 기겁을 했다.
―저 괴물이 마격포를 피하지 않고 맞설 확률은 일 프로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그렇게 썼다는 말씀입니까?
귀청…… 아니, 뇌세포 떨어지겠네. 음성이 머릿속에 크게 박혀 들어 연결을 조금 낮췄다.
얘가 이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본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만, 일단 이것부터 설명해 주지 않으면 계속 이 상태로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결국 나는 한 팔로 난간을 잡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내가 마족의 심장 던지는 거 눈치 챘어?”
―……못 챘습니다.
“왜? 네 평소 탐색 범위나 정확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솔직히 저 존재감 버티면서 마격포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따지려고 한 소리는 아니고.”
괜히 사람 미안하게 만드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바포메…… 저 괴물도 사정은 너랑 같아. 방금까지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벅찬 상태였거든. 허세 부리느라 별로 겉으로 티는 안 났겠지만 말이야.”
일명 변신 리스크다. 1페이즈에서 2페이즈로 넘어갈 때 생기는 폭딜 기회. 다른 게임들처럼 화려한 이펙트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만든 ‘벨리아 대륙 전기’에도 똑같은 기능이 있긴 했다.
바포메트는 그런 변신호구 중에서도 대표적인 보스 몬스터다. 페이즈 넘어가는 순간 거의 1분 동안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할 정도니까.
놈의 유일한 약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그 상태에서도 가지고 있는 힘은 그대로라 타격 주기 힘들다는 건 매한가지긴 하지만.
스바와 대화할 때 편한 점은, 굳이 뒤에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녀석은 잠시 침묵하더니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오만해서 피하지 않은 게 아니라, 피할 수 없었다는 소리군요.
“그렇지.”
―마격포가 맞을 확률은 일 프로가 아니라 백 프로였던 거고요.
“맞아.”
애써 구한 마족의 심장을 도박수로 날릴 수야 있나. 전부 계산하고 때를 기다린 것뿐이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노리면서.
―……저는 이제 마스터께서 대체 무엇까지 아시는 건지, 어디까지 예상하고 계신 건지 짐작조차 못 하겠습니다.
“내가 항상 하는 말 있잖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라고. 그보다…….”
나는 위를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납득 끝났으면 이제 그만 평형 좀 잡아 줄래? 별로 불편하진 않은데, 꼴이 워낙 우습잖아.”
지금 스바는 바로 아래로 마격포를 날리기 위해 땅으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즉, 하늘과 수직을 이루고 있다는 소리다. 나는 그 끄트머리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였고.
이제야 꼴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스바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보다 그만 평형 좀…….”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는 됐고 자세만 되돌리면…….”
―진짜 어떻게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러니까, 그냥 다시 제자리만 잡아 주면 된다고.
그러고도 스바의 사과는 계속되어서,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열 번 넘게 듣고 나서야 겨우 번데기 형을 피할 수 있었다.
* * *
―……네놈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빠드득. 바포메트가 이를 갈며 하늘을 노려봤다.
그런 곳에 배가 있다고 하면 그건 단테가 가진 것뿐이다. 그가 대체 뭘 한 건지는 빈센트도 몰랐지만, 저 마물이 그 배에서 나온 공격을 받고 약화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가만히 녀석의 기운을 측정해 봤다. 여전히 강력하기는 하지만, 아까와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글쎄. 본인이 직접 생각해 봐라. 다만, 그게 한 발로 끝이라 여기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빈센트가 허세를 부렸다. 상대의 주의가 조금이라도 하늘로 향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발사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같은 편인 그도 알지 못하는 걸 적인 저 마물이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 예상대로, 바포메트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노려봤다.
―재밌다, 재밌다 했더니 내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군. 아직 뿔이 한 개 남아 있다는 걸 잊었나 보지?
“그럼 마저 뽑아 보지 그래?”
빈센트가 도발하듯 물었다. 하나 바포메트는 여전히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손을 뿔 근처에 가지고 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본 빈센트가 피식 웃었다.
“역시 뭔가 제약이 있는 모양이군. 아무리 그래도 멍청하게 공격을 맞고 있는 게 이상해 보이기는 했지. 혹시 움직일 수가 없는 건가?”
―그럴 기회는 이미 지났다.
바포메트가 한 발자국 걸음을 떼었다.
―만약 기회를 잡았다 해도 나한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단언하기에는 이미 충분한 피해를 준 거 같은데.”
빈센트는 다가오는 상대에게 검을 겨누며 능청스레 말했다.
“방금 날아간 기운은 벌써 기억에서 잊어버렸나 보지? 몇백 년 넘게 봉인되어 있었다더니, 아직 머리가 덜 깬 것 아닌가?”
―……날아간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
“어쨌든 지금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같지. 안 그래?”
까드득. 이번에도 역시 바포메트가 이를 악물었다.
저 말이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해제된 기운의 3분의 2수준. 바포메트는 남은 3분의 1만으로 저 기사를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이런 공격을 다시 할 수 있다고 해도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아까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지만, 이번에는 그냥 피하면 그만이니까. 싸우면서 위에 조금 관심 두는 것 정도는 그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작 바포메트가 관심 가지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 뭔지 모를 봉인이 언제까지 가느냔 것. 수백 년간 갇혀 있던 존재라면 누구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정도로도 네놈을 죽여 버리기에는 충분하고 넘치지.
바포메트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이 봉인에 대해서는 너를 없앤 뒤, 직접 올라가서 묻도록 하겠다.
콰앙! 같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마물의 움직임이 더 빨랐으니까. 빈센트는 대꾸할 겨를도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와 맞부딪히려는 순간.
콰아아앙!
이번에는 진짜 굉음이 들리며 바닥에서 흙먼지가 솟구쳤다. 빈센트와 바포메트가 서로 맞닿기 직전의 모습으로 그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이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3급의 기운을 가진 사내가 중심에 서 있었다.
“굳이 위에까지 와서 물을 것 없다.”
리안…… 아니, 단테는 바람으로 흙먼지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왔으니까 말이야.”
이곳에서 가장 약할 인간의, 가장 강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 * *
―……재밌군.
바포메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놈이 나에게 그런 공격을 날렸다는 거냐? 겨우 그런 하찮은 실력을 가진 네가?
너무하네. 아무리 그래도 내 나이 대에 이 정도 실력 가진 인간은 없을 텐데. 확실히 저 녀석 눈에 차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빈센트는 나의 성장을 알아준 듯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자네, 대체 언제 3급까지 올랐나?”
“얼마 안 됐습니다. 기연을 만났지요.”
“……무슨 기연을 만나면 겨우 한 달 새에 등급을 올리지?”
“그런 게 있습니다. 그보다 조금 도울까 하는데, 혹시 실례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가끔 협공하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기사들이 있어서 일단 물어봤다. 내가 기억하기로 빈센트는 그런 쪽과 거리가 있었는데, 정작 내 예상과는 달리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자네가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닐세. 못해도 2급은 되어야…… 잠깐.”
빈센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분명 토너먼트에서 4급의 몸으로 3급을 이겼다고 했지. 그럼 설마 3급에 오른 지금은…….”
“붙어 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고 해 두죠. 그래도 해볼 만은 하다고 생각합니다.”
빈센트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바포메트가 나를 당장이라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이대론 혼자서 맞서야 할 판이다. 나는 흑철검을 꺼내 놈에게 겨눴다.
“그럼 이제 제가 도와도 문제없겠습니까?”
“……거절하지 않겠네. 솔직히 혼자서는 버겁던 참이었거든. 아무 이득도 없는 곳에 계속해서 나서 주는 은혜. 잊지 않도록 하지.”
나라고 그냥 자원 봉사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부 어느 정도 노리는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이제 대화는 전부 끝났나?
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바포메트가 말했다.
―2급이니, 3급이니 하는 게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버러지 하나 추가되었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글쎄. 나는 충분한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빈센트가 피식거리며 몸을 날려 내 곁까지 다가왔다.
“네놈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가 염소 한 마리 잡기에는 충분히 날카로운 칼이거든.”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바포메트는 염소란 소리가 기분 나쁘지도 않은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어디 실력 한 번 좀 볼까? 이 자리에 서도 충분할 날카로운 칼인지, 짐승 한 마리도 못 잡을 무딘 칼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이야.
휘익! 말이 끝나는 동시에 바포메트가 멀리서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끝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운 덩어리가 맺힌다.
[SK-3-78]
녀석에게 몇 안 되는 원거리 스킬이다.
주특기인 근접 공격만큼은 아니지만, 3급의 국가기사마저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 빈센트가 그걸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런 빈센트를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괜찮겠나?”
“어차피 저것도 못 막을 실력이면 도움은커녕 폐만 될 겁니다.”
“……알겠네.”
내 말에 납득했는지, 빈센트가 뒤로 물러났다. 바포메트가 이 모습을 보며 피식거렸다.
―저런, 보모 없이도 괜찮겠나? 지금이라도 다시 도움을 청하지 그래.
“잔말 말고 던져라. 슬슬 지겨워지려는 참이니까.”
―흠……. 배짱 하나만큼은 여기 끼어도 충분하겠군.
바포메트는 그렇게 말하며 거센 기운이 담긴 팔을 휘둘러 왔다.
―실력은 그렇지 못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 말을 싹 무시하고 다가오는 기운에 집중했다. 스킬 ‘SK-3-78’의 약점은 바로 중심부.
보통은 가장 강할 거라 생각하는 중앙 부분이 가장 취약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 적보다 오히려 돌진해 오는 상대에게 더 취약하다는 것까지.
나는 탓, 발을 박차 거대한 기운의 덩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흑철검이 그 가운데를 꿰뚫고.
파앗.
바포메트가 자신 있게 쏘아 보냈던 기운은 조금 맥 빠지는 모습으로 사라져 버렸다.
―……네놈은 대체 뭐지?
실실 쪼개고 있던 바포메트가 얼굴을 굳힌 채 내뱉었다.
―그건 절대 네놈의 기운으로 막을 수 있던 게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놈이 굳이 그런 걸 왜 묻나 싶다만…….”
나는 살짝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단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