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120화 (120/225)

너의 코드가 보여 (120)

“…….”

좌중이 순식간에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족의 심장이 여기 옵시디언 경매장에서 나올 거라곤 아무도 상상 못 해 봤기 때문이다.

이내 침묵을 뚫고 한 사람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마족의 심장? 그게 아직도 재고가 남아 있었나? 아니, 그보다 지르콘에 가야 할 물건이 왜 여기 나온 거야?”

“이번에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차원폭풍이 일어났다던데, 혹시 거기서 마족이 나온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그랬으면 왕가에서 이렇게 조용할까 봐?”

장내는 마치 누가 입을 열기만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졌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에 사회자가 당황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 진정들 하시지요! 제가 바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사회자의 말에도 소란은 한동안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 쉽게 사그라지기에는 그 사안이나 시기가 워낙 미묘했던 탓이다.

경매장에는 귀족이나 국가의 고위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그런 만큼 왕국에서 최대한 비밀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 ‘어느 정도’가 정말 대충에 불과해서, 괴담 같은 수준으로 소문이 퍼져 있었다는 거다.

제2의 제국 자리를 넘보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든가, 이참에 대사막을 완전히 정복하려 한다든가.

그런 괴소문들이 떠도는 와중에 수십 년간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던 마족의 심장이 경매 물품으로 나왔으니,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그를 어떻게든 말로써 멈춰 보려던 사회자는 결국 포기하고 방법을 바꿨다. 오히려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택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 같던 좌중의 소란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경매가 진행되지 않으니 하나둘 의아한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회자가 진땀을 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휴…….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워질 줄은 몰랐군요. 원래는 조금 오래 뜸을 들여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바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사회자는 그리 말하면서 수수한 장식의 상자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언뜻 매우 싸 보이는 함이었지만, 그 안에 새겨진 마법 주문이 몇 개나 되는지 알면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마력 차단의 술부터, 구매자만 열 수 있는 암호 마법까지. 못해도 세 개 이상의 각인이 들어간 물건이니 말이다.

“물건을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는 점,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마족의 심장은 잠시만 꺼내 둬도 그 기운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지다 보니 불가피하게 내리게 된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품질은 저희 경매장의 명예를 걸고 보증 드린다 약속하지요.”

그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옵시디언이 이런 일 하나로 신용을 잃고 싶진 않을 테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실 의문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어째서 마법 물품의 재료로 쓰일 마족의 심장이 지르콘이 아닌 옵시디언에 나왔는가, 이건 새로 발견된 마족에게서 뽑아낸 심장인가. 이런 것이 궁금하신 거겠지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최근 발견된 마족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요.”

사회자는 잠시 좌중을 살피더니, 생각보다 진정되어 있는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음으로 마족의 심장이 어쩌다 옵시디언에 나오게 되었는지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는 출품자의 신원이 달린 문제라 자세히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물건에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이 마족의 심장은 칼페온에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 말에 조용해졌던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칼페온에 판매를 못 해? 아니, 거기서 안 쓰면 저걸 대체 누가 산다고.”

“기사들이 영약으로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족의 심장을? 미쳤어? 저주라도 안 걸리면 다행이지. 저 마기 가득한 물건을 대체 누가 먹는다고.”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사회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장내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원래는 대수롭지 않게 슬쩍 넘기려 했던 얘긴데, 예상보다 반응이 심각하다 보니 이렇게 확실히 말하지 않고는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안은 그런 장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생각보다 싸게 살 수 있겠네.’

아무리 돈이 넘치도록 있다지만, 아낄 수 있다면 아끼는 게 좋지 않은가. 게다가 리안은 출품자가 칼페온에 재판매할 수 없도록 만든 이유도 알고 있었다.

‘그냥 경쟁자 견제지.’

설정상 이번에 마족의 심장을 내놓은 건 칼페온의 마법사다. 돈이 없으니 팔긴 팔아야겠는데, 다른 마법사들이 그걸 사 가서 연구 성과를 얻는 것은 꼴 보기 싫기에 내린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본인한테 손해가 돼도 남 이득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니. 진짜 마법사다운 결정이라고 해야 하나.’

리안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있자, 겨우 장내를 진정시킨 사회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럼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만, 바로 마족의 심장 경매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가는 오천 골드부터 시작합니다. 부디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억지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것이 명백한 목소리였지만, 그런 사회자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손을 드는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들이 가득한 아르곤에서 칼페온으로 판매도 할 수 없다면 마족의 심장은 그림의 떡 비슷한 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만이 감돌고, 사회자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감돌 때쯤.

“오천 골드.”

리안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시작가에 딱 맞춘 금액으로. 주변인들이 그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쓰고도 아직도 돈이 남았다고? 설마 여기서 30만 골드를 전부 써 버릴 셈인가?”

“그보다 검사가 마족의 심장은 왜 사려고 하는 거야? 딱히 쓸데도 없을 텐데.”

“저 정도면 그냥 돈 자랑하려는 거 아니야?”

“돈 자랑 좀 해 보려고 오천 골드를 태워?”

“삼십만 골드나 있잖아. 가능성 없는 건 아니지.”

“……가능성이 안 보이는 건 네 머리인 거 같다.”

“뭐 인마?”

잠시 장내 구석에서 말다툼이 일어났지만, 주변의 시선에 금방 제압되었다.

원래라면 농담 한마디 날려 분위기를 풀었을 사회자는 지금 그런 사소한 일에 할애할 정신이 없었다. 속으로 단테를 향해 감사 인사를 보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미 역대급에 가까운 실적을 올려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죽겠는데, 자칫 재고가 될 뻔했던 물건까지 구입해 주다니.

감동에 벅찬 사회자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을 하려 했다. 바로 경매를 빠르게 끝내 주는 거다.

“오천 골드 나왔습니다! 혹시 더 나설 분이 안 계시다면…….”

“잠깐.”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사회자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입을 크게 벌렸다. 그곳엔 아르곤에 몇 되지 않는 6성급 마법사, 엘로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자의 눈길을 받더니,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도 입찰하지. 칠천 골드 걸겠어.”

“아…… 아, 예! 칠천 골드 나왔습니다! 혹시 더 제시할 분은 안 계십니까?”

“팔천 골드.”

사회자의 말에 리안이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엘로이가 눈살을 찌푸리고, 사회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팔천 골드 나왔습니다! 제가 여기 선 세월이 꽤 됩니다만, 오늘처럼 흥미로운 경매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로이가 다시 손을 들었다.

“구천 골드! 이거 참, 제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와중에 단테 경! 만이천 골드 제시했습니다! 설마 끝내기 들어가나요! 혹시 만이천 골드 이상 투자하실 분, 계십니까?”

사회자가 말하면서 엘로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인상을 무섭게 찡그리며 단테를 노려볼 뿐이었다. 돈이 없군. 판단을 마친 사회자가 활짝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역시 없으신가 보군요! 뭐, 아무리 그래도 만이천 골드는 아무나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니까요. 그럼 마족의 심장은 단테 경이 낙찰받게 되겠습니다!”

탕. 탕. 탕.

망치 소리가 세 번 울려 퍼지고, 좌중을 침묵이 지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체 언제 조용했냐는 듯,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결국 저것도 사 버렸군. 오늘 저자가 총 구매한 금액이 얼마지?”

“마족의 심장까지 하면…… 12만 5천 골드일걸.”

“……옵시디언 경매장 단일 구매 최고 기록은?”

“11만 7천 5백 골드일세. 이젠 ‘전’ 최고 기록이 되겠지만.”

“……정말 부럽군. 저 재력.”

그렇게 한참을 단테에 대한 주제로 얘기하던 사람들이 이내 엘로이를 바라보았다.

“……한데, 괜찮겠나?”

“뭐가?”

“저 표정, 분명 뭐라도 저지를 거 같은데.”

“……확실히.”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이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저런 것 가지고 단테 경에게 시비라도 걸겠나? 4급이지만 3급 기사를 상대로 이긴 건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 말이야.”

“그게 문젤세. 내가 알기로 엘로이 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폐관 수련에 들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혹시 소문을 듣지 못했을 수도…….”

“에이, 설마. 만약 모른다 쳐도 뭐 어쩌겠나? 습격은 범죄 행위인데. 그냥 저러고 말겠지, 뭐.”

남자의 말에 동행이 찝찝한 얼굴로 엘로이를 힐끗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 *

경매가 끝난 이후 에르웰의 한 뒷골목. 나는 그곳에서 낙찰받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검토하는 중이었다.

세계수의 열매, 드래곤 하트, 최상급 만드라고라 뿌리……. 그 외에도 돈으로 구할 수 없는 수많은 보물들.

조금 과소비였나 싶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만족스럽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같은 선택을 내렸겠지.

“이거 다 정제해서 먹고 나면 3급에 오를지도 모르겠네.”

원래 못해도 2년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던 여정인데, 그보다 훨씬 빠르게 달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번에 돈지랄해서 얻은 것이 크니까.

나는 흡족한 얼굴로 쌓아 둔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스바를 살짝 키워 안쪽에 전부 넣기 시작했다.

진짜 인벤토리 부럽지 않다니까.

그렇게 수납이 모두 끝나고, 스바를 다시 작게 만들어 품속에 넣은 이후. 나는 몸을 돌리며 여상하게 말했다.

“그만 나와 봐도 된다.”

“……눈치는 빠른 녀석이군. 4급 주제에 말이야.”

통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역시 엘로이였다. 뭐, 예상 못 한 건 아닌데.

“내게 볼일이라도 있나? 경매장에서부터 계속 나를 쫓아오더군.”

“볼일이라면 있지.”

엘로이가 씨익.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네 목숨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마족의 심장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나?”

“원래라면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안 되겠어. 검사한테 필요한 물건도 아니건만 겨우 돈 자랑하겠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못하도록 한 거잖아.”

“어떻게 생각하든 그쪽의 자유다만, 나도 정말 필요해서 구입한 거다. 오히려 화내야 할 건 나지. 너 때문에 칠천 골드나 더 사용했으니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정 억울하면 저승길 노잣돈이라 생각해라.”

엘로이는 그 말을 끝으로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 양이 절대 위협용으로 내보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나를 죽일 생각이라는 거겠지.

결국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내뱉었다.

“이건 나도 얼마 전에 결심한 건데 말이야.”

내 말투와 목소리가 순식간에 변하자 엘로이가 살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검을 꺼내 녀석에게 겨눴다.

“이제 나 죽이려고 드는 놈들은 웬만하면 봐주지 않기로 했거든.”

그리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각오해 두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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