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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113화 (113/225)

너의 코드가 보여 (113)

나는 한동안 말없이 입구 쪽을 응시했다.

여기서 2급이 한 마리 더 추가된다면 유리했던 전황이 순식간에 뒤집어질 거다. 이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발록이 동급 기사 대비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급수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놈 혼자 3급 기사 열댓 명은 상대가 가능할 거라는 소리다.

적어도 지금 전장에 그 정도의 전력 공백을 메꿀 만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형은 순식간에 붕괴되고, 기사단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겠지.

단 한 마리의 발록이 추가되는 것만으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무려 2급짜리 괴물을 단 한 마리라고 표현하긴 조금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머리를 털어 잡생각을 떨쳐 냈다. 지금은 일어난 현상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 대책에 대해 떠올릴 때지.

나는 다시 한 번 전장을 훑어봤다.

지금 상태에서 최대로 뺄 수 있는 전력은…… 3급이 넷 정도.

젠장, 생각보다 빠듯하네.

저 숫자로 2급을 이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을 끄는 정도라면…… 어찌어찌 가능할지도 모른다.

판단을 마치고 재빨리 목에 마력을 담았다. 작은 소리여도 뚜렷하게 들리게 해 주는 잡기술이다.

“데이크, 지금 당장 3급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을 모아 와라.”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전투 중이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재촉할까 생각이 들 때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테 경,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전부 싸우고 있어서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요.”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입구를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2급이 한 마리 더 온다.”

“……예?”

목소리만 들어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데이크의 얼굴이 눈에 훤했다.

그만큼 충격적일 내용이기는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아해하는 음성이 뒤를 이었다.

“2급은 두 마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안에 있는 2급이 두 마리라 했지. 전부 합쳐 두 마리라 한 적은 없다.”

“그건…… 그렇지요.”

어느새 데이크가 심각해진 안색으로 곁에 다가왔다.

“혹시 그 외의 전력은 없습니까?”

“당장은 2급 하나밖에 안 보이는군.”

“다행이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그러기엔 2급 하나의 존재감이 너무 크군요.”

데이크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2급 기사님들이 이길 때까지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3급 넷을 모아 오라 한 거다.”

“하지만 넷으로는 시간 끌기도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기사 몇을 미끼로 던져 주는 수밖에…….”

“나도 참여할 거다. 그럼 얼추 시간 끄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내 말에 데이크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테 경이 말입니까? ……경이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으실 텐데요.”

굳이 위험한 일에 끼어들 필요가 있냐는 질문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여기서 외부인일 뿐이니까.

데이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단테 경께 그런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희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고, 저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요. 이미 주신 도움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뒤돌아선다. 아마 자진해서 희생할 결사대를 모집할 생각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본인도 포함되어 있겠지. 내가 아는 녀석의 성격이라면 그렇게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 뒤통수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크는 내가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 내게도 그럴 이유는 충분했다.

안 그래도 빠듯한 대륙의 전력이다. 이런 곳에서 기사 오백 명을 날려 먹었다간 ‘문’을 닫는 계획은 또 한 걸음 멀어지겠지. 그런 사태만은 어떻게든 피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뇌며, 데이크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상관없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전투에 참여하도록 하지.”

* * *

결사대를 모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택은 자율에 맡긴다고 했으나, 사실상 여기서 빼는 인간은 나중에 기사 취급도 못 받을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모인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처음 보는 이름 모를 두 명은 그런 것처럼 보였다. 불만 가득한 얼굴을 굳이 숨기려고 들지도 않았으니까.

“2급이 한 마리 더 있다는 게 사실인가?”

그들과는 달리 결연한 표정의 베리안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다가오는 코드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저 속도면 공동까지 1분도 남지 않았을 거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실없는 소리나 내뱉을 성격으로 보이나?”

“그렇진 않지.”

베리안은 굳은 얼굴로 뒤쪽을 힐끗거렸다. 2급 기사와 2급 발록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나, 저분들이 이기려면 앞으로 5분은 더 필요할 거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 그 정도라면 우리끼리 버틸 만할지도 몰라.”

“버틸 만할지도 몰라?”

베리안의 말에 이름 모를 기사가 인상을 구긴 채 답했다.

“붙은 지 1분도 안 돼서 한 명이 사망할 거요. 2분이면 셋, 3분이면 전멸이겠지. 겨우 3급 다섯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적어도 4급 쉰 정도는 불러오는 게…….”

“그러면 진형이 붕괴됩니다.”

데이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4급의 구멍을 5급이 막고, 5급의 구멍은 채울 사람이 없어 금세 붕괴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기사단은 거의 괴멸입니다.”

“전멸보다는 괴멸이 낫지 않나!”

“……저희가 3분이라도 버틴다면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3급 두셋 정도 더 죽고 끝이겠지요.”

본인들 목숨은 애초에 놔 버렸다는 투다. 이름 모를 기사가 빽 소리를 질렀다.

“3급이 일곱, 여덟 죽는데 피해가 크지 않아? 4급, 5급 백여 명을 주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거다!”

“……그리 생각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빠지시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굳힌 데이크의 말에, 이름 모를 기사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 상황 자체가 강요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빠지면 앞으로 기사단 생활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래서 대체 뭐 어쩌란 겁니까?”

어지간해선 화를 내지 않는 데이크도 기가 찼는지 목소리가 올라갔다.

솔직히 나는 저 정도로 끝내는 녀석이 신기했다. 나였으면 바로 검이라도 꺼내 들었을 텐데.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 뭔 아가리가 저렇게 기냔 말이다.

이름 모를 녀석은 그 와중에도 영양가 없는 내용을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꺼내 들었다.

“당장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거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보면 당연히 4급을 내보내는 게…… 지금 뭐라고 했지?”

녀석이 그제야 나를 돌아봤다. 어찌나 본인 얘기에 정신이 팔렸는지 나름 크게 말했음에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친절히 대답해 줬다.

“당장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거라 했다.”

“…….”

이름 모를 기사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지금 내게 한 소린가?”

“지금 너 말고 따로 떠들고 있는 인간이 있나?”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금방 분노해서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녀석은 의외로 얌전했다.

아니. 정확히는 씩씩거리긴 하는데, 내 말을 못들은 척 무시하고 있다.

저거 왜 저러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죽니 사니 하는 상황에서도 명예는 중요한가 보지? 4급한테 졌다는 칭호는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그런 게 아니다.”

“맞든 아니든 그만 닥치는 게 좋을 거다. 한마디만 더 하면 일이 끝나는 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투 신청을 걸어 줄 테니까. 어디 촌수도 모를 친척이 사망했다는 변명도 할 수 없도록 말이야.”

“…….”

설마 통할까 했는데, 녀석은 정말로 입을 다물었다. 진짜 나와 싸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하긴, 이기든 지든 치욕스러운 일일 테니 이해는 간다. 이거 단테 얼굴 하고 있을 때는 3급 기사들 전부 닥치게 할 수도 있겠는걸.

녀석이 조용해지자,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베리안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아르곤의 기사란 자가 보기 민망할 정도의 추태를 보이는군. 정작 이해관계자도 아닌 사람도 자진해서 나선 상황에 말이야.”

그가 싸늘한 눈으로 이름 모를 기사를 노려봤다.

“제논 경,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그대에게는 바로 징계가 내려질 거요.”

이름이 제논이었나 보다. 나도 일단 기억해 뒀다. 나중에 또 부딪힐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베리안은 한동안 그 말 많던 녀석을 노려보다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는군.”

그 말에 나도 들어오는 통로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발록들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키.

그에 반해 극한으로 압축되어 오히려 더 슬림해 보이는 근육까지. 누가 봐도 3급 이하의 녀석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녀석이었다.

그놈은 밀리고 있는 공동 내부의 상황을 보더니, 그저 씨익 웃었다.

“……여유가 넘치는군요.”

“짐승의 몸으로 2급에 올랐으니 세상이 다 제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저놈들은 4급만 되어도 태도가 오만하기 짝이 없더군.”

데이크의 떨리는 목소리에, 베리안이 덤덤히 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하지만 그도 그 직전 순간 몸이 멈칫거리는 걸 숨기지는 못했다.

“……젠장.”

“이제 와서 뺄 수도 없군.”

제논과 아직 이름 모를 기사도 인상을 구긴 채 각자 무기를 들어 올렸다.

“…….”

나도 말 없이 검을 꺼내 녀석에게 겨눴다. 생각보다 압박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저 발록의 힘이 생각보다 약해서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특성들 덕분일 거다.

초인과 부동심.

그 둘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까.

적어도 나보다 강한 녀석을 상대로 해도 기백에서 밀릴 일은 없겠지.

―그르르르.

여유롭게 전장을 구경하던 발록의 시선이 이쪽으로 닿았다. 녀석도 우리가 본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다. 놈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더니,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저놈이 지금 뭐 하는 거지?”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라고 하는 거 같군.”

그 말대로, 발록은 여유 가득한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오만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제논이 그걸 보고 안심한 듯 웃었다.

“저러고 있으면 우리야 좋지. 어차피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니까. 이거 생각보다 쉽게 풀리겠군. 하여튼, 누가 멍청한 몬스터 아니랄까 봐.”

그러더니 피식 웃기까지 한다.

다른 기사들도 웃지는 않았으나, 그 의견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다들 갑자기 긴장이라도 풀린 건지 분위기가 순식간에 느슨해졌다.

“그냥 이렇게 공격하지 않고 4분 정도만 버티면…… 지금 뭐 하는 거요?”

신나서 말을 잇던 제논이 나를 보고는 경악해서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꾸하지 않고…….

쾅!

발록에게 마력을 담은 칼집을 집어 던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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