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09)
“기사가 아닌 자들은 활을 쏘지 마라! 어차피 무기에 마력을 담을 수 없으면 피부를 뚫지도 못 해!”
데이크가 하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근육질에 박쥐 날개를 가진 이름 모를 몬스터들. 일반 병들이 쏜 화살은 저놈들에게 맞고 튕겨 나가 애꿎은 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저래서야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뿐이다. 데이크의 판단은 빨랐다.
“병사들은 당장 건물로 복귀! 상황이 끝나기 전까진 밖으로 나오지 마라!”
그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이 갑옷 입은 군인들이 바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도 여기 있어 봤자 개죽음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던 탓이다.
“으아아악!”
그렇게 도망치던 병사 중 한 명이 허공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갑옷의 무게까지 합친다면 백 킬로는 훌쩍 넘는데, 저 날아다니는 괴물들은 사람을 무슨 솜털처럼 잡아챘다.
데이크는 놈이 그렇게 내려온 틈을 노려, 바로 발을 박찼다.
촤아아악!
“가,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다. 바로 건물로 복귀하도록.”
“예, 예!”
죽기 직전 상태에서 살아난 병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데이크는 그 모습을 일별하고 두 동강 난 괴물을 바라봤다.
‘직접 붙으면 그리 강한 녀석은 아니다.’
5급 수준은 될까. 약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상대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저놈들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
기사들에게 날개라도 솟아나지 않는 한 저 괴물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다.
유일하게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은 먹잇감을 사냥할 때뿐인데, 저렇게 생겼어도 최소한의 이성은 있는 건지 절대 기사들을 노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약한 병사들이나 민간인들만을 노릴 뿐.
‘……미끼 작전을 펼쳐야 하나?’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배치해 놓는다면 방금 전 상황처럼 놈들을 벨 수도 있을 거다.
데이크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안 될 생각.’
아무리 그래도 위험도가 너무 높다. 저 괴물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니까. 아까 그 병사는 운이 좋았을 뿐이지, 사실 잡히는 순간 허리가 끊어졌어도 이상할 게 없다.
결국 그의 선택은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기사들만 두고 저것들이 물러나길 기다리는 거다.
‘……무력하군.’
데이크는 기사가 된 이후로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 봤다.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적어도 피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바깥에 남은 건 기사들뿐이었다.
‘이제 물러나겠지.’
데이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저들은 5급 수준에 불과하고, 땅에서는 기사들의 상대가 못 되니까.
실제로도 계속 그들을 피해 오지 않았나.
그런 행동들을 고려해 볼 때, 녀석들이 그만 도망치는 건 당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바로 틀려 버렸다.
그것들 중 일부가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크는 그 사실에 유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저놈들과 싸우는 건 바라던 바니까.
때마침 그에게 다가오는 녀석도 한 마리 있었다. 그는 곧장 검을 뽑아 들고 그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
그의 공격은 아무렇지 않단 듯 괴물의 팔에 막혀 있었다. 녀석은 히죽 웃더니, 반대편 손을 들어 거세게 휘둘러 왔다.
“크윽!”
그 주먹을 간신히 피했다. 힘과 속도. 어떻게 봐도 5급 수준은 아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상대의 경지를 탐색해 봤다.
‘……3급?’
그렇게 나온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그와 동일한 레벨의 상대인 것이다.
데이크는 저런 몬스터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고, 개체 간에 저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지금 처음 보았다.
‘……이거, 방심해선 안 되겠군.’
생각하며 긴장된 얼굴로 검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괴물이 있던 자리에서 먼지 구름이 퍼져 나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데이크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곧이어 먼지가 완전히 개고, 그 안에는 괴물의 머리를 든 채 한 흑발의 남자가 고고히 서 있었다.
그를 본 데이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게 변했다
“단테 경!”
* * *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있는데, 데이크가 밝은 안색으로 다가왔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무언가 놓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촌장이 이상하다고 했던 게 걸려 잠시 그쪽을 보고 왔다.”
내 말에 데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동쪽은 몬스터가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인데 그쪽에서 유독 많이 몰려온 게 특이하다더군.”
“아……! 그거라면 저희도 듣긴 했습니다.”
그러더니 녀석이 나를 부담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저희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만 건데, 거기까지 직접 가서 확인을 해 보실 줄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별일 아니다.”
진짜로 그런 게, 사실 이런 걸 확인해 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기사단들이 놓친 이유는, 그냥 정말 별일이 아니라 생각해서일 거다.
고블린 몇 마리, 오우거 몇 마리 나온 것이 뭐 대수냐는 심정이었겠지. 여기 모인 기사만 수백 명 아닌가.
만약 나도 둥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굳이 조사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니까 그거.
“그래서 단테 경, 뭔가 본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다시 돌아오지도 않으셨겠죠.”
호들갑 떠는 목소리에 덤덤히 발록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저놈들의 둥지를 찾았다. 아마 몬스터들은 저 녀석들에게서 도망쳐 온 것 같더군.”
“둥지…… 말입니까?”
“그래.”
데이크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혹시 그 안에 몇이나 있는지도 짐작 가능하신가요?”
“대부분은 100마리 정도지만, 가장 큰 건 300마리 남짓은 있겠더군.”
무심하게 말하자, 녀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둥지가 하나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확인한 건 일곱 개였다.”
“…….”
대답은 한참 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말한 내용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요약하자면 저런 괴물이 천 마리 가깝게 있다는 소리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하지만 데이크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마치 그런 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쩐지, 이번 웨이브는 이상할 정도로 전력이 많이 투입됐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왕국 측에선 이런 상황을 대충 알아챈 건지도 모르겠네요.”
“걱정이 되지는 않나? 기사 급에 맞먹는 괴물이 거의 천 마리라는 건데.”
“음…… 저희들만 있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지휘관님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니까요.”
데이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어차피 그 둥지에 관한 것도 보고드려야 하니 단테 경도 한 번 뵙고 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에 조금 고민했다.
어차피 둥지 일 때문에 한 번은 만날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는데.
뭐, 언제 만나든 별 상관은 없지.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크가 환히 웃었다.
“잘됐군요. 단테 경에게도 좋은 경험일 겁니다. 아르곤의 기사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니까요.”
말하면서 데이크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별말 없이 그 뒤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3층짜리 건물.
길 가던 누구한테 물어도 본부라고 할 것 같이 생긴 건축물이다. 오히려 본부가 아니면 이상할 것 같은 모양새라 해야 하나.
“지휘관님과 접견을 허락받았습니다.”
입구에서 경비병과 대화를 나누던 데이크가 다가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순식간 아닌가?
“빠르군.”
“무기 검사, 암살 모의 등등 빠진 검사가 많으니까요. 강한 상관을 두고 있으면 이런 점이 편하지요.”
데이크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녀석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검색을 할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막을 수 있는 인간이 그 당사자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납득하고 데이크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에 크게 딸린 독방. 그곳으로 걸음을 향하다, 중간에 잠시 멈춰 서고 말았다. 이 세계 와서 두 번째로 보는 등급의 기사라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이다.
[NPC-1-183-4]
아르곤 4개의 검 중 하나. 1급 기사 빈센트 그레고릭이, 바로 저 방 안에 있었다.
* * *
“발록이군.”
단정 짓는 빈센트의 말에, 데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록…… 말입니까?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만.”
“모습을 감춘 지 수백 년은 된 마물들이니까. 다들 멸종됐다 생각하고 관심을 안 가진 거지.”
빈센트는 대수롭지 않단 듯 중얼거리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자네가 놈들의 둥지를 발견했다고?”
“그렇습니다.”
별로 특별한 대답도 아니었는데, 데이크가 내 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문제지?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건지 빈센트가 녀석을 향해 물었다.
“뭔가 잘못됐나?”
“아, 아니요. 별건 아니고…… 단테 경이 다른 사람에게 존댓말 하는 건 처음 봐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
쟤는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내 전생 현생 합한 것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인간에게 반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받은 유교 교육이 몇 년인데.
빈센트가 피식 웃었다.
“과연, 아이언의 제자라던가? 그래도 상대는 가리는 거 보니 그 스승보다는 훨씬 제정신이 박힌 모양이군.”
“저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만, 아이언 경이 그렇게나 괴짜십니까?”
“괴짜는 그를 너무 좋게 표현해 주는 방식이지.”
“……그 정도로군요.”
데이크의 중얼거림에 빈센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이 으레 그렇듯 부풀려진 점도 있고, 오히려 축소된 부분도 있네. 사실 나는 그 정도면 정상적인 인간이라 보는 편이야. 적어도 테오도르 같은 미친 살인귀는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보고는 잘 들었네. 매우 귀중한 정보를 주었어. 혹시 바라는 보상이 있으면 말해 보게. 최대한 챙겨 주도록 하지.”
대가라면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물었다.
“혹시 둥지의 처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토벌대를 만들어서 소탕할 생각이야. 놈들에게 제공권을 주면 너무 피해가 크니까.”
“그럼 저도 그 토벌대에 합류할 수 있겠습니까?”
“토벌대에?”
빈센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보상을 얘기하라고 한 거 같은데.”
“바라는 보상은 당연히 따로 있습니다. 3급 이상의 발록을 잡으면, 제가 직접 죽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혹시 발록을 죽였다는 명예를 노리는 건가?”
그럴 리가. 그냥 실질적 이득을 원하는 것뿐이다.
빈센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점도 스승과 닮지 않았군. 어쨌든, 그런 거라면 아무 상관없네. 피치 못할 때에는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자네가 놈들을 직접 죽일 수 있게 해 주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씨익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에겐 사실상 거저먹을 수 있는 포인트 획득 방법이 생긴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