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108화 (108/225)

너의 코드가 보여 (108)

[대단한 업적! / 「첫 마물 사냥」]

[당신은 단시간에 고위등급 마물 100마리를 사냥해 냈습니다!]

[당신에게 포인트 1,000점이 부여됩니다.]

막 도착한 5급 발록들을 전부 베어 내자, 저런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언제 이상을 일으켰냐는 듯 정상적인 문자열이다.

그보다 발록은 고위 등급이 아니었던 건가. 그건 좀 충격인데.

“…….”

농담은 이쯤 하기로 하고 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저번에 오류가 났던 이유는 제쳐 둔다. 지금 내가 그에 대해 판단할 근거가 너무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궁예질 해 봤자 결국은 가설로 남을 뿐이다.

그러니 우선은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것부터 집중하자.

일단 포인트 습득과 마물이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번에 얻은 것도 발록을 해치우면서였으니까.

물론 발록만 잡아 본 게 다기에 그냥 녀석들이랑만 연관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엔 메시지 창이 ‘마물’이라고 굳이 언급해 두지 않았을 거다.

지금 당장은 마물과 포인트 획득이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는 편이 옳겠지.

그럼 다음은 몬스터와 마물의 차이점이다.

여태까지 고블린이나 오우거는 수도 없이 베어 왔는데도 포인트를 습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역시 포인트 획득 조건은 마물을 사냥하는 것에만 해당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거다.

여기 사람들도 잘 혼동하는 사실이지만, 몬스터와 마물은 엄연히 전혀 다른 분류다.

몬스터는 태곳적부터 이 세계에 살고 있던 토착 생물이다. 지구에서 야생 동물 같은 위치라 볼 수 있다. 뭐, 그보다 많이 난폭하고 강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물은 다르다. 놈들은 500년 전 이계에서 침공해 온 존재들. 즉, 본래 이 세계에 속한 생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일단 그 정도인데…….

역시 이 세계의 존재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건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또 타냐가 걸린다.

여태 스토리 분기니 뭐니 하면서 포인트를 줬던 건 전부 녀석과 관련됐을 때뿐인데, 걔는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의 후손이긴 해도 명백히 이 세계에 속한 존재 아닌가.

음…… 아무래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조만간 이종족 관련된 일을 하나 처리하기는 해야겠네. 녀석들도 500년 전 넘어온,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건 똑같으니까.

뭐, 그것도 전부 이쪽 문제를 제대로 끝마쳤을 때의 얘기다. 생각은 여기까지만 정리해 두기로 하고, 검을 허리춤에 수납했다.

당장은 포인트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만으로 큰 수확 아니겠나. 여기 수년을 있었는데도 정확히 알지 못하던 참인데.

―……3급 한 마리, 4급 네 마리, 그리고 5급 스무 마리를 해치우는 데 전투 시간이 정확히 20분 34초가 걸렸습니다.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스바가 뱃머리를 반짝이며 말했다.

―4급의 몸으로 이런 기록은 제가 주로 가동하던 시기에도 불가능했습니다. 이건…… 솔직히 괴물이라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군요.

“내가? 쟤네가?”

땅에 널브러져 있는 발록들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스바는 뭐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여상하게 답했다.

―마스터를 말하는 겁니다.

“너무하네. 나는 네 장점도 엄청나게 찾아 줬는데, 나보고 저런 괴물딱지라고?”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알아.”

기지개를 켜며 말을 끊자, 뱃머리가 서너 번 반짝거렸다. 저건 아마 황당하다는 표현일 거다.

나는 피식 웃고 발을 박차 갑판에 올라탔다.

“그보다 이제 충전 몇 프로 남은 거지?”

―25프로입니다. 포신 수리에 들어가면 10프로가 소모되기 때문에 15프로가 남게 됩니다만…….

“응, 그거 수리하지 마. 당분간은 쓸 일 없겠더라.”

―……예.

어딘가 시무룩해진 목소리다.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더 깊숙이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둥지 찾으러 가는 거지.”

―둥지는 방금 파괴하지 않았습니까.

스바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다. 아까 저 하나만 보고도 지금 세계엔 저런 괴물이 득실거리냐고 물었던 애니까.

“둥지가 하나라고 한 적은 없잖아.”

―……저런 게 하나 더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난간에 걸터앉으며 덧붙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3개는 더 있을 거야.”

* * *

이 시기에 있을 둥지의 숫자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쓴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1부와 2부 사이의 공백기 아닌가. 그래도 뭔가 일은 터져야겠다 싶어서 몇몇 사건들을 끼워 넣은 거지, 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바포메트가 풀려났다.

발록들이 새끼를 많이 깠다.

둥지도 지었다.

그냥 저 정도로만 표시했을 뿐. 정확히 몇 마리인지, 둥지를 몇 개나 만들었는지는 서술한 적 없다는 소리다.

누가 대체 본편엔 들어가지도 않는 사건에 그리 열정을 품느냐 이거다. 또라이도 아니고.

“…….”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또라이까진 아니어도 미친놈 정도는 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와서 둥지 숫자에 놀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설마 7개나 될 줄은 나도 몰랐지.”

예상외다. 끽해야 5개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그중 하나는 규모가 다른 곳들과 차원을 달리했다. 지키는 발록도 등급이 무려 2급. 아무리 내가 날고 기어도 이길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원래는 빼먹기 전략으로 두세 개 혼자 처리하고 나머지 알려 주면서 생색 좀 낼 생각이었는데, 이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겠다.

그 짧은 새에 성장하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갑자기 놈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 재앙도 그만한 재앙이 없지 않은가.

결국 아르곤 기사들이 활동해야 한다는 소리다.

―크아아악!

구석에서 발광하고 있는 발록을 바라보았다. 사지를 끊어 둬서 움직이진 못하고 있지만, 그 몸뚱이만으로도 힘이 얼마나 강한지 배가 이리저리 파인다.

괜히 3급으로 생포했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려면 저 정돈 돼야 할 거 같아 그런 건데, 이제 와서 보니 조금 오버였나 싶기도 하다.

“스바야, 일단 수복하지 말고 내버려 둬 봐. 저거 발버둥 칠 때마다 수리하면 충전해 둔 연료가 남아나질 않겠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판이 회복을 멈춘다. 설정대로라면 스바는 무생물인 배이면서도 고통을 느끼지만, 오히려 저런 외부 상처에는 크게 상처받지 않을 거다.

아마 누가 피부 각질 긁어 주는 정도의 감각이지 않을까.

실제로 나에게 걸어오는 목소리도 차분했다.

―마스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여기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불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스터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제가 알맞은 조언을 드리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딱히 조언 필요 없는데. 어차피 얘가 나보다 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리도 없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하긴 미안해서 듣고 있자니, 스바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굳이 따지고 보면 아르곤은 마스터와 관계도 없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고 딱히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고요.

“…….”

―그런데 마스터는 자진해서 둥지를 찾아다니시지 않나, 혼자서 둥지를 처리해 버리지 않나. 거기다 이제는 설득하겠다며 3급까지 생포해 가는 중이죠. 이건 마스터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확실히, 저놈만 유인해 오는 게 생각보다 힘들긴 했지.”

―그러면, 어째서 이득도 없는 일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흠…….”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하나.

내가 얻는 이득은 있다. 발록을 잡으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전에는 그런 걸 몰랐음에도 아르곤을 도우려 한 게 사실이긴 하다.

그야 그냥 두면 사태가 어찌 흘러갈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말을 고르다가, 그냥 대놓고 나가기로 했다.

“만약 이번 일로 아르곤 전력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다고 하면, 믿을래?”

―아니요.

스바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아르곤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발록의 둥지가 저렇게 많다고 해도 여기 있는 기사들조차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보통 동급이라 해도 마물은 기사보다 약하니까.”

기사와 용병보다도 더 큰 차이라 보면 된다. 용병은 적어도 실전으로 갈고닦은 검술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에 반해 마물은 그저 강한 힘을 믿고 본능으로 싸울 뿐이다.

물론 종족마다 차이가 크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게 놈들의 전력이 아니라면?”

―……혹시 아직도 둥지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까?

뱃머리에서 빛이 빠른 속도로 점멸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니. 아마 둥지는 우리가 발견한 7개가 전부일 거야.”

―그러면 대체…….

“처음 얘기했던 거 있잖아. 발록은 어떤 미친놈이 키우던 애완동물일 뿐이라고.”

사실 키운다기보다는 방치에 가깝긴 하다. 관상용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저것들이 뭐가 귀여워서 그러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지금은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지만, 얼마 안 지나 돌아올 거야. 그러면 아르곤 쪽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을걸.”

―……여기 모여 있는 기사만 오백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한 개체만으로 전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겨우’ 기사 오백이지.”

―……예?

“심지어 그 대부분은 5급으로 이루어진 쭉정이들일 뿐이야. 발록에 더해 그 녀석이 합류한다면 금방 무너져 내릴 거다.”

―…….

스바는 그저 말없이 한참을 침묵하더니, 이내 반신반의하는 기색으로 물어왔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어차피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냥 여기서 얼른 도망치시는 게…….

“대책은 이미 마련해 뒀어.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통할 거란 확신이 없다는 말은 빼 뒀다. 어차피 얘기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내가 워낙 단호했기 때문인지, 그 이후론 스바도 뭐라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그 화제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그렇게 서로 말없이 한참을 비행하다가, 나는 아래쪽에서 보이는 코드들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직도 갑판에서 발광하고 있는 발록에게 다가갔다.

―……마스터? 뭐 하시는 겁니까?

“이거 괜히 데려온 거 같다.”

스걱! 바로 녀석의 목을 베어 버렸다. 떨어진 머리통을 대충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난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습격받고 있을 줄은 몰랐네.”

아래쪽에 위치한 도시에서는, 이미 백여 마리에 가까운 발록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기사들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