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05)
스바에 200명 정도의 사람이 타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크기 조절 마법이 폼으로 걸려 있는 건 아니니까.
뭐 어떻게 꾸깃꾸깃 집어넣으면 300명까지도 어떻게 가능은 할 거다.
진짜 문제는 박살 나 버린 연비였다.
원래 하늘을 난다는 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이다.
자동차는 땅이 받치고, 배는 물이 띄워 주는데, 하늘엔 그런 게 전혀 없지 않은가.
하늘을 난다는 건 결국 아무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상황에 단 몇 킬로그램이라도 무게가 추가되어 버리면 순식간에 연비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거다.
스바도 그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법의 힘으로 난다고 마법 같은 일을 기대해선 안 되는 것이다.
수백 명의 기사를 태운 시점에서 녀석은 예전 설명했던 연비의 반의반도 못 내게 되었다.
그동안 틈틈이 혼원력으로 스바를 충전시켜 놨지만…… 내가 그렇게 찔끔찔끔 넣어 둔 연료는 배를 띄우고 겨우 10분 지난 시점에서 오링이 나 버렸다.
말은 길었지만,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 10킬로미터 상공에서 추락하고 있다.
“으아아아악! 단테 경! 어떻게 좀 해 보십쇼!”
데이크의 비명을 들으며, 나는 태평히 난간에 앉아 가까워지는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행보다 방어마법으로 돌리는 연료가 우선순위인지 이렇게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하나도 없다.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격렬한 공기저항은 잘 보이는데, 정작 느껴지는 건 평온한 산들바람이 전부다.
이건 스바가 일부러 마법을 조금 느슨하게 해서 풀어 준 거 같은데. 센스 좋은걸.
“단테 겨어어엉! 저희 진짜 다 죽습니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나.”
계속 시끄럽게 굴길래 퉁명스레 답했다.
거 오우거도 단칼에 벨 수 있는 놈들이 오버는. 저들 중 대다수는 만약 스바가 진짜 이대로 추락한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배가 바닥에 닿기 직전 뛰어올라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면 끝 아닌가. 뭐, 5급들은 조금 다치기야 하겠지만.
“단테 겨어어엉!”
거참.
“스바야”
―네. 마스터.
“조금 이르지만, 긴급 제동 걸자. 가능하지?”
―네. 다만, 작동 가능 시간은 1분이 한계입니다. 그 시간을 넘어가게 되면 그나마 걸려 있던 방어마법마저 해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진짜 속절없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안전장치 없이. 어차피 상공 백 미터 정도 되면 알아서 멈춘다고 말해 놨는데, 왜 저렇게들 난리인 건지 모르겠네.
열기구 찾는 것도 힘든 세계인 만큼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속으로 작게 한숨 쉬면서 입을 열었다.
“일단 30초만 작동시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긴급 제동 절차, 30초간 실행합니다.
스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추락하던 배가 뚝. 멈췄다. 아까까지의 격렬한 장면은 언제 있었냐는 듯 위쪽으로 구름들만이 잔잔히 흘러가고 있다. 세계의 종말이 온 것 마냥 소리치던 기사들도 그걸 보더니 그제야 겨우 좀 안정했다. 아직 저럴 때가 아닐 텐데.
“데이크.”
“허억…… 헉…… 네, 단테 경.”
“30초간 긴급 제동이라는 뜻을 아나?”
내 말에 데이크는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만.”
“30초 후엔 다시 떨어진다는 말이다.”
밑을 보니 하늘보다 땅이 더 가깝다.
“이제 10초 남았군.”
데이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럼 저희는 어떡해야 합니까?”
“기사 몇몇이랑 엔진룸에 가서 마력을 주입해라. 그게 연료지.”
나는 손목에 걸린 마학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곧 떨어질 거다. 지금 당장 달려가면 바닥과 키스하는 꼴은 면하겠군.”
슈우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 풍경이 격변하기 시작했다. 데이크는 안색이 창백하게 굳더니 기사 몇몇을 데리고 엔진룸으로 향했다.
원래는 땅에 착륙해서 혼원력 다 쓰고 마력 충전시키려 했는데…… 쟤들 호들갑 때문에 안 되겠다.
직접 멈추는 것까지 보여 줘도 저 난리니 원.
“스바야, 미안하다. 아파도 좀 참아.”
―저는 괜찮습니다. 남은 혼원력이 극미량이라 마력과 충돌해도 그리 타격이 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 순간, 갑자기 배가 낙하를 멈췄다. 그리고 고도를 유지한 채 전진하기 시작한다.
벌써 충전을 했다고?
“스바야, 지금 충전율 몇 프로냐?”
―5프로…… 7프로…… 10프로……. 계속 상승 중입니다.]
심지어 차는 속도도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아니, 저 양반들 대체 얼마나 겁먹은 거야.
황당한 눈으로 갑판을 바라보자, 곧이어 기사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나 같이 기진맥진한 기색인 게,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 쓴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기사란 인간들이 자기 컨디션 조절도 못 할 정도로 공황에 빠지다니.
아르곤에서 탑승비로 500골드 준다는 거 그냥 안 받길 잘했다.
이번에 30만 골드도 받았으니 서비스 차원으로 해 준 건데, 돈 받고 태웠으면 저런 거 일일이 케어해 줬어야 할 거 아니야.
쯧쯧, 작게 혀를 차고 있자, 역시나 죽기 직전의 표정으로 데이크가 다가왔다.
“……이해 좀 해 주십시오. 다들 아카데미 생각이 나서 그럴 겁니다.”
“아카데미에 비슷한 훈련이라도 있나?”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그쪽과 관련된 설정은 거의 짜 놓은 게 없으니까. 이게 무슨 학원물 게임은 아니지 않나.
데이크는 내 말에 표정을 확 구겼다.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그냥 떠올리기조차 싫은 것 같다.
“……아카데미에는 적당한 크기의 탑이 하나 있습니다.”
데이크가 숨을 한 번 내쉰 후 말을 이었다.
“교관들은 거기서 저희에게 아무 안전 장비도 없이 점프를 시킵니다.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기라도 한다면 실격이죠. 그렇게 3번쯤 반복하면 겨우 통과시켜 줍니다.”
“……그럼 몸이 남아나나?”
“밑에 신관이 상시 대기 중입니다. 어찌나 유능한지 다리뼈가 튀어나와도 금세 고쳐 버리더군요.”
데이크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쟤가 저런 식으로 감정 드러내는 건 처음 본다. 라키안 상대할 때도 못마땅한 기색 조금 내비치는 게 다였는데. 아무래도 떠민 교관들보다 치료한 신관들이 더 원망스러운 모양이다.
“대체 그 훈련의 목적이 뭐지? 얻을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뭐든 겁내지 않는 용기를 키워 준다더군요.”
용기는커녕 트라우마만 생길 거 같은데.
“아무튼, 솔직히 그런 일도 겪었으니 하늘은 당연히 무섭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데 전혀 그렇지 않군요……. 오히려 그때의 기억만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래에 떠오르는 코드들을 바라봤다. 원래는 기사 수백 명과 다 같이 점프해서 내려가려 했는데, 저런 과거가 있다면 그러긴 무리겠다.
하는 수 없지, 나 혼자 하는 수밖에.
나는 난간에 올라서며 입을 열었다.
“스키드블라드니르. 지금부터 빠르게 고도를 내려라.”
―네. 알겠습니다.
“……단테 경!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내 폼만 봐도 트라우마가 떠오르는지 데이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래에 습격받고 있는 마을이 있다. 어차피 본부도 근처니, 저길 구하고 걸어가는 편이 나을 거다.”
“……그건 참 기사다운 행동입니다만…… 제가 여쭤본 것은 난간에 서 계신 이유입니다.”
“뻔한 것 아닌가.”
아래를 보면서 땅과 남은 거리를 가늠해 봤다. 대충 아파트 15층 높이는 되는 것 같다. 저 정도면 뛰어내려도 몸에 무리가 갈 일은 없다. 특히 이젠 용의 피 재생 능력도 있으니.
“천천히 따라와라. 나는 먼저 가서 정리해 놓도록 하지.”
탓, 발을 박찼다. 위에서 단테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멀어진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콰아아앙!
나는 오우거 한 마리를 깔아뭉개며, 땅에 착지했다.
* * *
“저 새끼들 얼른 막아!”
“시X! 어서 방벽 안 세우고 뭐 해!”
“여기 화살 좀 보충해 줘!”
르니아 마을은 갑자기 몰려든 몬스터들의 습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웨이브가 터졌다는 소식에 급히 근처 도시로 피신하려 했지만, 그들에게는 차마 그럴 틈도 없었다.
바로 그 연락을 듣는 순간에 공격을 당한 것이다.
여태까지 몬스터 웨이브가 터진 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이렇게 거세고 험악한 기세로 오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도시에서 기사들이 올 거다!”
촌장은 그리 말했지만, 사실 본인도 그게 불가능한 소리임은 잘 알고 있었다.
마을에 소식을 알리러 왔던 전령이 달아난 게 바로 방금 전의 일이다. 만약 그에게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전멸하기 전까지 지원을 보낼 순 없을 거다.
사실상 이곳은 이미 무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아니면 잘 차려진 몬스터들의 뷔페장이던가
“거기 창 제대로 안 들어!”
“저기 구멍 뚫리는 거 안 보이냐! 누가 가서 좀 막아!”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내심 그 현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투지를 잃는 일 없이 계속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시간을 1초라도 더 끌면 가족들이 만에 하나의 확률이라도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젠장. 이대론 5분도 못 버티겠군.’
촌장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생각했다. 겉으론 침착함을 가장한 채다. 아무리 모두가 현실을 짐작하고 있다고 해도, 자각하는 것과는 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휘를 내리고 있는 그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면 그나마 버티고 있는 전의도 순식간에 사그라질 거다.
‘……뭐, 그래 봤자 5분의 차이인가.’
수프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일 시간이 남은 수명이라니. 아무리 언제 갈지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라지만, 고작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력을 한쪽으로 집중하는 게 좋겠군.’
방어한다고 살아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공세로 변경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그러면 대부분은 죽겠지만, 한둘이라도 살아 나갈지 모르는 것이다.
촌장이 그렇게 마음먹고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였다.
크어어어!
마을이 떠나갈 듯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를 들은 인간은 모두 공포에 몸이 굳었다.
그를 들은 몬스터 무리는 감히 제왕의 길이라도 막을까 황급히 몸을 피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 오우거의 등장이었다.
‘끝났군.’
촌장은 그걸 본 순간 두 번째 계획마저 포기했다. 저런 괴물이 나타났는데 일반인인 그들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차라리 홀가분해져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오우거란 그 정도의 존재였다. 걸어 다니는 재앙. 마을 학살자. 보는 순간 저항을 포기하게 만드는 몬스터.
쿠웅! 쿠웅!
단순한 걸음걸이만으로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사람들은 전부 눈을 감았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과는 별개로, 그걸 직접 인식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쿠웅! 쿠웅!
그렇게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재앙을 최대한 덤덤히 받아들이려 애썼다.
쿠웅! 한 발자국.
쿠웅! 두 발자국.
콰아아앙! 세 발…….
‘뭐지?’
촌장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아무리 오우거래도 발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니냔 말이다. 그는 눈을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으로 보이는 게 오우거 아가리라면 기분 편히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는 살짝 실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동그랗게 커졌다.
그들이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오우거가, 단 한 사람의 발아래 깔려 절명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