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92화 (92/225)

너의 코드가 보여 (92)

[갱장한 업적! / #첫 마물 사냥&]

[당신은 처처처음으로 거위등급 마물을 사냥해 냈습니다!]

[다다다당신에게 포포포포인트 2,000점이 부여됩니다.]

“…….”

뭐지? 고장 났나?

나는 멀뚱히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봤다.

항상 나오는 타이밍도 제멋대로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 심란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맛까지 완전히 가 버렸나 보다.

일단 빠르게 코드와 명령 창 기능부터 확인했다. 당장은 문제없어 보인다. 포인트도 제대로 들어왔고.

“이게 대체 뭔 지랄이지.”

안 그래도 항상 의문은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 포인트를 획득했던 것은 타냐를 구했을 때다. 스토리 분기라며 500점을 받았지 아마. 그 이후에 받은 포인트도 타냐와 관련된 거다. 녀석이 재능을 개화하자 다시 스토리 분기라며 1,000점을 받았다.

그 외에는 혼원공을 완성했을 때 업적이라며 나온 5,000점 정도. 이건 종류가 좀 다르니 넘어간다 치고.

문제는 저 ‘스토리 분기’다.

말만 들으면 분명 원작에서 뭔가 달라졌을 때 지급되는 거 같은데, 정작 주는 건 타냐와 관련된 순간뿐 아닌가. 그것도 겨우 2번.

물론 녀석이 스토리상 굉장히 중요하고, 상당히 큰 변곡점이긴 하지만…… 그리 따지면 다른 인물들도 만만치 않다.

우선 ‘마녀 시르케’. 녀석은 원래 흑색 탑의 탑주가 되어 인류 재앙 중 한 축을 차지한다. 시르케 본인이 직접 죽인 인간만 수천은 될 테고, 흑색탑의 멤버들이 죽인 것까지 합하면 수만은 넘을 거다.

분명 나는 그 미래를 바꿨다. 결코 타냐에 비해 중요도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정작 지급되는 포인트는 전무했다.

게다가 바이론은 또 어떤가. 녀석은 원작에서 이름난 중간보스로, 후반까지 끌고 가면 열이 넘는 2급 기사를 부하로 거느리고 나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쟁, 전쟁. 직접적으로 끼친 피해는 알 수 없지만, 못해도 수백만 명이 녀석 때문에 고통받았을 거다.

나는 그런 놈을 크기도 전에 치워 버린 거고.

굉장히 커다란 문제라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지급되는 포인트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1기사단까지 오면 이제 그 타냐라는 기준도 완전히 애매해지는 거다. 그 둘은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애초에 내가 타냐를 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 1기사단 아닌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복수하다 죽어 버리는 녀석들 관리 좀 해 보려고.

이거는 아직 완전히 끝난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는 냈다 자부한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조용히 있지 않나.

하지만 이 또한 조금의 포인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타냐와 1기사단이 만나는 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의문들에 이어 이제는 저런 괴상한 문자들이나 뱉어대고 있으니……. 누가 쓰는 건지 몰라서 항의도 못 하겠고.

“…….”

고개를 털어 상념을 털어 냈다. 어차피 풀리지 않을 의문에 집중하느니,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 아니겠나.

나는 검을 들고 일곱 존재가 싸우고 있는 격전지로 향했다.

* * *

나름 팽팽하게 지속되던 접전은 미르가 합류하는 동시에 끝을 맞이했다. 4대4에서 5대4가 되자 발록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 후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데, 실베스터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여어. 정말로 3급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구먼 그려.”

속으로 쓰게 웃었다. 3급 아닌데.

“이래저래 인연이 닿아서 좋은 무공을 손에 넣은 것뿐이오.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지.”

“확실히. 나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버렸제.”

실베스터가 호쾌하게 웃었다.

“설마 그 ‘망국의 초신성’이 무려 3급의 고수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 말이여.”

그러더니 나를 힐끗거리며 히죽인다. 뭐 어쩌란 거지.

“나한테 뭐가 묻었소?”

“……아니, 니 ‘망국의 초신성’ 아니가?”

“그딴 게 뭔지도 모르오.”

실베스터는 당황한 기색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연기는 아닌 거 같은디. 정말 리안 상회의 리안 아니가?”

……저거 진짜 듣기 거슬리네.

아무튼, 나는 순순히 수긍하기로 했다. 어차피 발록 등장할 때 라이놀이 당황해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아무리 작게 말했다지만, 그 거리에서 S급 용병의 귀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맞아요.”

“……말투가 갑자기 변했구먼.”

“이제 딱히 연기할 필요 없으니까요. 어쨌든, 리안 상회를 운영 중인 건 맞아요.”

“그런데 ‘망국의 초신성’은 왜 아니라 했나?”

“……그게 내 얘기에요?”

누구야 나한테 그딴 거 붙인 사람.

실베스터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크게 한숨 쉬었다.

“진짜 모르고 있었구먼. 요즘 대륙에서 꽤나 유명한 칭혼디, 어찌 본인이 몰라서야…….”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그 망국의 초신성이니 뭐니 하는 거. 언제였더라…….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아르곤 국가기사 제안받은 날. 그때 몇몇 기사들이 날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던 거 같다.

설마 날 칭하는 거라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 넘겼는데, 진짜 날 칭하는 거였을 줄이야…….

나는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그냥 리안이라고 불러 줘요.”

“와? 칭호가 마음에 안 드나?”

“네.”

“흐음…… 망국의 초신성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인디. 혹시 레이튼의 성자 쪽이…….”

“리안이요.”

제발 이상한 거 붙이지 좀 말라고.

그런 심정을 담아 단호하게 말하자, 실베스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거, 알겠다 마. 그리 째려보지 말그라. 나는 일단 고맙단 인사하러 온 거니께.”

“인사요?”

“그랴. 무슨 마법으로 외형을 바꾼 건진 모르겠지만, 어제 만났던 모습이 본체 맞제?”

“본체라고 하니 좀 이상하긴 한데…… 맞아요.”

“오늘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목숨을 구한 거나 다름 없으니께, 일단 마음의 빚으로 달아 놔라. 나중에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나가 도와줄꾸마.”

“…….”

사실 나도 발록은 상상도 못 했다. 실베스터가 죽는다는 사실은 아니까 거기 대충 소설을 써넣은 것뿐이지. 원래는 칼페온 쪽과 유물을 두고 다투다 죽은 건 줄 알았는데.

뭐, 결과적으론 구한 게 맞으니 상관없나.

유적에 빠삭한 인물인 만큼 언젠가 도움도 될 테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보다 아재는 괜찮아요?”

“뭔 재?”

“어떻게 보면 제가 혼자 유적 홀라당 먹은 거잖아요.”

“아니, 그보다 아재가 뭔…… 어휴 됐다.”

실베스터는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기야 진작 끝난 얘기 아니가. 유물의 선택을 받으면 소유권도 갸한테.”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뭐, 아쉽지 않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닌디, 애초에 그건 내가 소화할 만한 물건도 아니니께. 저놈들도 마찬가지고.”

실베스터가 칼페온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발록의 시체를 이래저래 건드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나도 잊고 있던 문제가 떠올랐다. 이릴 산맥에 발록이 있다는 설정은 없을 텐데……, 역시 ‘그 녀석’인가?

원작대로라면 아직 활동 시기가 아닐 테지만…… 일단 염두에는 둬야겠다. 설정 틀린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기사와 마법사가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번에는 신세를 졌다.”

마법사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멈춰 서서 말했다. 혹시나 기습당해도 영창해 둔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위치. 아까와 달리 이쪽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말 경지를 속일 수 있는 무공이 있을 줄은 몰랐군. 아예 마력이 없는 것처럼 감추는 것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동방엔 신비한 무공이 가득하지.”

“원래라면 개소리라 여겼겠지만…….”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직접 봤으니 그런 말도 못 하겠군. 그런 괴물을 1 대 1로 이기는 실력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경지는 4급이라니……. 차라리 저 발록이란 놈이 나와서 다행이라 해야겠어. 유물 사냥꾼과 함께 상대했으면 우리가 졌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모르는 게 아니라 그쪽이 졌을 거요.”

“그렇다 치지.”

마법사가 피식 웃고는 내게 사각형 모양의 뭔가를 던졌다.

“이게 뭐요?”

“칼페온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패다. 어느 도시든 입구에서 제시하면 무기한 체류를 보장받을 수 있지.”

“덤으로 윗선에 보고까지 가겠군.”

“그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거래목적으로 왔다면 바로 높은 선과 연락이 가능할 테니까.”

거래 목적이라…….

“배는 포기한 거요?”

“할 수밖에 없지. 이제는 우리 쪽 전력이 현저히 아래라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야. 혹시 기회주의자는 싫어하나?”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오. 어떻게 나올지 계산하기 쉽거든.”

“그럼 다행이군. 여기서 살인멸구라도 당하는 줄 알았는데.”

“아까 밖으로 보고용 사역마 날리는 거 다 봤는데 뭘.”

내 말에 마법사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알고 있었나?”

“내가 눈이 좀 좋거든.”

“……헌데 왜 잡지 않았지? 사역마를 없애고 우리까지 죽여 버리면 저런 유물을 얻었다는 사실도 같이 묻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

“그렇소.”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마법사는 나를 별종이라도 되듯 바라봤다.

“혹시 유물에 눈먼 자들에게 습격받는 걸 즐기나?”

누굴 변태로 보나.

“그런 건 아니오. 그냥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해 두지.”

“……변장이군. 그 모습.”

……진짜 눈치 빠른데?

이 세계에선 드문 기술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미 확인해 뒀지만, 다시 상대의 코드를 바라봤다. 아까와 같은 단순한 범용 코드다. 웬만한 네임드보다 판단력이나 결단력이 좋은데도. 이래서 코드만 믿을 수가 없다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동료란 자들은 전부 복면을 쓰고 있는데, 본인만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그런데 태도까지 보니…… 그쪽밖에 생각이 안 나더군.”

그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복면을 쓰면 될 걸 굳이 변장까지 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혹시 뭔가 원하는 게 있나?”

이래서 똑똑한 기회주의자들이 좋다니까.

나는 마법사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보다 아직 이름을 묻지 않았군. 당신 이름이 뭐요?”

“……데이먼 리그너스다.”

“좋소. 데이먼 리그너스. 아직도 내게 신세를 졌다 생각한다면, 부탁 한 가지 들어줄 수 있겠소?”

데이먼은 떨떠름한 얼굴로 내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부탁? 뭐지?”

“아까 나한테 유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묻고 싶지 않냐 물었는데, 실은 그 반대요. 나는 그 얘기가 널리널리 퍼져 나갔으면 좋겠소.”

“……오히려 알리고 싶다, 이 말인가?”

“그렇소.”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부디 미친개 아이언의 제자, 단테가 ‘오리진’에 맞먹는 유물을 얻었다는 소문을 온 대륙에 퍼뜨려 주시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