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89화 (89/225)

너의 코드가 보여 (89)

끼기기긱.

열린다기보다는 찢어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굉음을 내며 문이 제 속살을 활짝 드러낸다. 공동에 있던 군중의 시선들이 하나 같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혹여나 함정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곧바로 유물이 보일 거라는 기대로 눈을 말똥말똥 뜬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거기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점 하나는 완전히 똑같았다.

이내 문이 완전히 개방되고.

“…….”

사람들의 눈은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저게 뭐여?”

“뭐고 자시고…… 아무것도 없잖어?”

그렇다. 문 안쪽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어마무식하게 크고 길게 뚫린 통로에, 한참 건너편의 구멍에서 포근해 보이는 하늘색 하늘이 모습을 보일 뿐. 말하자면, 저건 방이라기보다는 도로에 가까워 보였다. 마차 타고 저길 달렸다간 자유낙하 속도가 몇이나 되는지 제 몸으로 체감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멀찍이서 보고 있던 마법사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유물 사냥꾼, 네가 말해 봐라. 이런 형태의 유적지엔 유물이 어디에 있는 거냐?”

“나도 몰러, 이런 유적지는 처음 보는구먼.”

“정말 도움 하나 안 되는 말밖에 지껄이지 않는군. 쓸모없는 녀석.”

“…….”

내가 왜 너한테 도움이 돼야 하는데 씹새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실베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저 둘이 무서워서는 아니고, 유물이 어딨을지 상상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숨겨진 방을 놓쳤을 확률은 낮다.’

이 짓만 20년째다. 숨겨진 방이니 뭐니 하는 건 이제 제집 안방 찾아가는 것보다 더 쉽게 발견할 자신이 있었다. 이미 머릿속엔 이 유적지의 대략적인 지도도 완성된 뒤다. 그중에서 빈 공간이라 할 만한 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수수께끼가 틀렸나?’

방에서 내주는 문제들은 대부분이 난해했으며, 풀고 나서도 이게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게 상당수다.

대부분의 오답은 끔찍한 함정으로 여기가 정답이 아님을 강조했지만, 슬쩍 정답인 것처럼 둔갑해 사람을 아무것도 없는 이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전무하진 않다.

‘……아니. 그건 아닐 거여.’

그는 유적지만 돌아다닌 지 20년째. 그런 만큼 ‘제작자’의 의도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이처럼 과도할 정도로 한 가지 컨셉에 집착하는 경우엔, 의외로 다른 부분에서 상식적이었다.

‘정답을 맞추면 상을, 못 맞추면 벌을.’

이 단순한 명제는 깨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제작자’의 자존심 같은 문제니까. 틀린 답인 줄 모르고 계속 가는 걸 보며 비웃는 건, 이런 유적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그럼 정말 여기 어딘가에는 있다는 건디…….’

실베스터가 주변을 다시 자세히 살폈다. 벽부터 바닥까지 구석구석. 만에 하나 놓쳤을 수도 있는 숨겨진 방도 염두에 뒀고, 혹시나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눈에 마력도 주입했다.

‘……안 보이는군.’

혹시 누가 이미 털어 간 건가? 실베스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허나, 그렇다고 치기에는 이 유적지가 너무 깨끗했다. 사람 손 한 번 탄 적 없는 것처럼.

결국 풀리지 않는 문제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 말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배.’

상상력이 갸륵하기도 하구나 하고 넘겼는데, 갑자기 떠오른 이유가 뭐지? 실베스터는 문 건너편을 힐끗 쳐다보았다.

‘역시 방보다는…… 잘 깔린 도로 같은 모습이제.’

굳이 따지자면 출입구랄까. 길고 넓직한 통로하며, 하늘로 통하는 큼지막한 구멍하며. 진짜 ‘하늘을 나는 배’가 있다면 저기로 나가기 딱 좋아 보인다. 있다면, 말이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공동의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긴, 있을 리가 없제.’

갑자기 무슨 망상을…… 실베스터가 다시 고개를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잠깐이지만, 시야의 한구석에 무언가 보였다. 그는 그걸 놓치지 않고 재빨리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배?’

매우 작은 골드 정도의 크기지만, 분명 배의 형태를 띤 무언가가 천장 여기저기를 떠다니는 중이었다.

‘……그 말이 진짜였다 이거가?’

그리 생각한 것도 잠시. 실베스터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슬쩍 자리를 박찼다. 아무 소음도 없는 도움닫기 후에, 그의 손엔 이미 그 작은 배가 들어와 있었다.

“지금 뭐 한 거지?”

씹새가 눈치는. 실베스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체조.”

“……이런 상황에, 이런 순간에, 그런 요상한 체조를 말인가?”

“이런 상황에 이런 순간이라 해 보고 싶은 것도 있는 법이제.”

그는 당당하게 나갔다. 갑자기 천장 높이까지 점프하는 걸 상식적으로 변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미친놈처럼 보이는 편이 그냥 넘어갈 확률이 더 높다는 계산이었다.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손을 내밀어 봐라.”

“나가 왜? 싫은디.”

“어째서지? 꿀릴 게 없다면 당당히 보여 줘도 될 텐데.”

“손을 내밀면 내 손등에 입술을 박을 생각 아니여?”

……입술? 너무 갑작스런 헛소리에 기사가 얼빵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런 거 많이 봤는디. 손 내밀면 기사가 무릎 꿇고 손등에 입술 박는 거.”

“……그건 마음에 둔 레이디에게만 하는 것이다. 네놈 같은 아저씨가 아니라.”

“암튼, 그 장면이 생각나서 영 별로여. 다른 데 알아봐.”

기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게 분노 때문인지, 수치심 때문인지는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굳이 그 감정의 실체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장난으로 넘기려 하면 정말 공격하겠다.”

실베스터가 그 눈을 보았다. 저건 진심이다.

그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싸우면 둘 중 하나는 데리고 갈 자신이 있다. 하지만 본인의 목숨도 같이 내줘야 할 거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 결국 실베스터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내밀었다.

“자. 봤제?”

“그건 뭐지? 배인가?”

“사실 내 고향은 바닷가거든. 가끔 집 생각이 날 때 보려고 들고 다니는 미니어처라 할 수 있제.”

“……두둥실 떠오르고 있다만.”

“잘못 본 거여.”

실베스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젠장, 이거 어떻게 조종하는 거야. 기사는 그 꼴을 보고 있다가 쯧, 혀를 찼다.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게 고작 날아다니는 장난감 하나라니. 헛짓거리 했군.”

고작 날아다니는 장난감 하나라……. 실베스터는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어 버렸다. 저 기사는 칼페온 소속이면서도 마법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걸 보고 저렇게 말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 이거는 우리가 가져가도 불만 없제?”

“그건 안 되겠는데.”

말한 건 마법사였다. 그는 태연하게 다가와 기사의 뒤에 자리 잡았다.

“스스로 날아다니는 유물…… 겨우 장난감 크기인 건 아쉽지만, 연구 가치는 넘쳐나지. 아직까지 부양마법 각인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견본이 있다면 그쪽 수준을 30년은 끌어 올릴 수 있을 거다.”

실베스터는 감탄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유익한 정보로구먼……. 경매장에 등록할 때 그대로 적어 제출할 테니, 부디 입찰에 성공하길 빌제. 그럼 이만.”

그렇게 발걸음을 돌린 순간이었다. 쾅! 그의 앞에 작은 포격 마법이 날아와 바닥을 때린다. 실베스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뒤돌아섰다.

“진짜 붙어 보자는 기가?”

“그건 별로 현명하지 못한 처사겠지. 우리도 유적지에서 유물 사냥꾼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하지만.”

마법사가 씨익 웃었다.

“사람은 때때로 멍청해지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야. 실베스터, 네놈이 이런 상황을 자주 겪었을 거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면 이럴 때 해야 할 올바른 행동도 알고 있지 않나?”

“협상하자 이거가?”

“그래. 경매장에 내놓는 것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피를 흘리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거다.”

“……금액은?”

“경매장에 제출했을 때의 절반은 보장해 주지.”

절반이라. 평상시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이야기다. 이래저래 뻗대면서 7할까지는 올려쳤겠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베스터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목소리가 있었다.

‘분명 그때가, 아저씨 생사의 기로일 거예요.’

하늘을 나는 배와 같이 개소리로 치부해 버렸던 그 말. 이제는 그걸 마냥 헛것으로만 취급할 수 없게 됐다. 그도 그럴 게, 진짜 하늘을 나는 배가 나타난 상황 아닌가. 아무리 그라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절반도 나쁘진 않다. 오히려 초안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다. 그동안 겪어 왔던 바로는 왕국에 진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라 말하는 종자들도 있던 판국이니까.

마음을 정리한 실베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근데 저건 어째서 혼자 날아가는 거지?”

마법사의 중얼거림에 실베스터가 황급히 손을 펼쳤다. 없다. 분명 손에 쥐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하늘을 나는 배는 어느새 공동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몇 바퀴 빙글빙글 돌더니, 갑자기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근원’에서 파생된 힘의 존재를 확인. 본 함, 스키드블라드니르의 활동을 개시합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실베스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유물이 말을?’

그런 물건이 없던 것은 아니나, 여태껏 확인된 바로는 하나뿐이다. 아르곤 왕국의 국보급 타이탄 ‘오리진’.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보물이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점이 많기는 하제.’

수수께끼로 가득한 유적지 하며, 커다란 공동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하며. 거의 같은 제작자가 만들었다 해도 믿을 수밖에 없겠다.

‘문제는 저게 오리진 만큼의 가치를 가지느냐는 것인디…….’

스스로 부양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하나, 그것만으론 결국 연구 가치 좀 있는 장난감일 뿐이다. 국보로까지 지정된 오리진과 비교하기엔 아무래도 손색이 크다.

그 순간, 그의 상념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거 왠지 커지는 거 같지 않냐?”

“왠지가 아니라 커지고 있는 거 맞아 병신아.”

실베스터가 황급히 다시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커지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로 크기를 키워 가고 있다.

“저게 무슨…….”

마법사 역시 그 광경을 보았다. 허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물체의 크기와 질량이 제멋대로 변할 수 있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저건 마법의 법칙을 깨뜨리는 일이다.

‘아공간 마법의 일종도 아니고…….’

겉으론 작아 보이지만, 안을 커다랗게 만드는 마법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그건 결국 ‘고정’되어 있는 거니까. 변하지 않는 건 그 식을 짜 넣기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최근엔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기도 하고.

하지만 저 배는 지금 ‘변화’하고 있다. 저런 게 가능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계산이 필요할지 마법사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단순히 물체만 염두에 둘 것이 아니다. 변동하는 공간의 좌표값부터, 움직이는 시간 축까지. 그 모두를 하나하나 맞대응해 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현재 마법사들은 흉내조차 불가능할 기예.

마법사의 두 눈이 경탄으로 가득 찼다.

‘저건…… 마도구가 아니라, 예술작품이다.’

공동 안이 갖가지 생각으로 차 가는 와중에도, 배는 묵묵히 크기를 키워 갔다. 곧이어 그 모습이 중형선 정도에 도달했을 때. 다시금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제작자에 대한 탐색…… 실패. 소유주에 대한 탐색…… 실패. 현재 유효한 명령권자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1순위 계승자를 탐색 시작합니다.

핑. 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파도치듯 흘러나왔다. 마법사는 그걸 느끼고 다시 한 번 감탄을 내뱉었다. 마력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순수한 에너지다. 저걸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근방에 ‘근원’을 품은 인간이 있는지 검색 중…… 검색 완료. 해당되는 인물 1인. 그에게 임시 소유권을 부여합니다.

뱃머리가 돌아간다. 방향은 그들이 들어온 미로 쪽이다.

‘……저긴 아무도 없을 건디?’

실베스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건너왔던 방을 쳐다봤다. 마력을 집중하자, 그제야 미세한 기운 두 개가 느껴진다.

‘대체 언제부터…….’

그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새에도 배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공동의 모든 사람들은 그 날아다니는 유물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고. 입구 근방에 도달한 배가 뱃머리에서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향한 곳에는 성격 깐깐해 보이는 중년인 하나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를 확인한 스키드블라드니르가 곧이어 완전히 멈춰 섰다. 그리고 무미건조하지만, 똑똑한 발음으로 정확히 말했다.

―부디 소유권의 확정을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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