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66)
뿌옇던 먼지가 개이고, 도시를 감싼 것과 비슷한 푸른색의 장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놀란 표정의 모자와 묘하게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그걸 본 마법사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검막?”
4급의 상징과도 같지만, 정작 같은 경지라 평가받는 A급 용병 대다수는 사용하지 못하는 기술이다. 어설프게 배운 심법으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했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귀찮아지겠는데. 마법사가 내심 한숨을 쉬었다.
“기사는 아니라 하지 않았나?”
멍하니 검막을 보던 용병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예. 기사는 아닐 겁니다.”
“근거는?”
“칼페온의 기사 중엔 검은 머리가 없습니다. 만약 아르곤의 기사라면 시장님 얘기를 꺼냈을 때 물러났을 테고요. 그들이 타국의 일에 참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타당하군.”
마법사가 다시 시선을 흑발의 사내에게 돌렸다. 때마침 장막이 사라지고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5성급 마법이었는데 꽤 여유롭군. 명문가의 심법을 익힌 모양이야. 혹시 몰락 귀족인가?”
“대뜸 공격해 놓고 질문하면 상대가 얼씨구나 대답해 줄 거라 생각하나?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빈정거리는 말에 마법사가 피식 웃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으니 됐네. 그럼 정중히 요청하지. 혹시 얌전히 끌려갈 생각 있나?”
“일단 묻자. 시장이 보낸 거 맞아?”
“말투가 조금 건방지지만…… 맞다.”
“그럼 빚도 갚았구만 왜 지랄인데?”
마법사의 말문이 막혔다. 그도 이유를 몰랐으니까. 애초에 물어볼 생각조차 없지 않았던가. 마법사가 용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인가?”
용병은 당황했다.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저도 잘…… 아마 복수가 아닐지.”
“복수? 돈을 너무 늦게 갚았기 때문인가?”
용병은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본 모양이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바르나울 시민이라면 모두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인데.
용병이 슬쩍 주변을 살피고 마법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저 여자 보이십니까?”
“하늘색 머리 말인가?”
“예. 릴리라는 년입니다. 제법 반반하지요.”
마법사가 여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도 같군. 그게 무슨 연관이 있나?”
“시장님이 15년 전. 그러니까, 시장이 아니던 시절에 저년에게 고백했다가 차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답니다.”
“……그게 다라고?”
“예.”
상상도 못 한 이유였고, 듣고 싶지 않았던 사정이었다. 아무리 연구 외엔 관심 밖인 마법사라도 저런 얘기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15년 지난 현재까지 이 지랄 떠는 게 고백을 안 받아 줬기 때문이라니.
“……뭔가 더 있겠지. 연구 중에 귀찮게 만들었다거나.”
“시장님은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래도 업무는 볼 것 아닌가.”
“제가 알기로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진짜 그게 전부라고?”
“예.”
단호한 대답에 마법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그딴 하찮은 이유로 본인을 부려먹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 버러지 같은 새끼가…….”
“……돌아가시겠습니까?”
용병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마법사는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이내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순 없지. 그런 이유로 놀아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아무튼 시장은 시장 아닌가.”
“마법사님은 시장님 부탁도 거절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명령’이 아닌 ‘부탁’. 용병은 마법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6성쯤 되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시 명령을 거부하는 게 가능하니까. 그 ‘합당한 이유’에는 배가 아파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등등이 포함된다. 그런 사유로 거절할 수 있는걸 보통 명령이라 하진 않는다.
마법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2년 전부터 조금 바뀌었다. 어떤 임무든 서류를 작성하고, 왕궁에 제출해야 하지. 거절하는 당사자도 마찬가지야.”
“저는 처음 듣습니다만…….”
“네놈 따위가 알 필요 없는 일이니까.”
“……그건 그렇지요.”
용병은 구겨지려는 표정을 최대한 폈다.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마법사에게 책 잡히고 싶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왕궁에서 저렇게 나온 이유도 짐작이 갔다. 2년 전이라면 애초에 뻔한 것 아닌가.
‘바이론……’
세 왕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A급 용병 탈주 사건. 전쟁 이후 나름의 평화를 즐기던 세 왕국 뒤통수를 후려갈긴 일이었다.
나중에 복귀한 용병들의 말에 따르면, 자의가 아니었다던가?
한둘이 하면 변명인데, 모두가 그리 말하면 그건 사건이다.
‘한동안 꽤나 시끄러웠지.’
세뇌니 최면술이니. 하여간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더란다. 결국 별일 없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왕궁이 저렇게 나오는 거 보면, 그 얘기들이 전부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이 언제까지 궁시렁 댈 건데? 돌아갈 거면 가고 공격할 거면 하고 빨리 정하지?”
흑발의 남자, 리안이 지루하단 듯 둘을 보며 하품했다. 그걸 본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리고 용병에게 눈짓했다.
“뭐 하나? 안 나가고.”
그 갑작스러운 말에 용병이 당황해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자네 말고 여기 누가 또 있나?”
“제가 왜…….”
“검사는 전방. 마법사는 후방. 이 당연한 걸 설명까지 해야 하다니.”
말이야 맞지만, 그건 서로 실력이 비슷할 때의 얘기다. 용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마법사는 그를 미끼로 쓰려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뭔가 있어 보이니 조심을 기하는 거겠지.
판단은 빨랐다. 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 주십쇼!”
“누가 보면 내가 자넬 죽이기라도 하려는 거 같군. 진짜 그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건 생각 못 하고 말이야.”
싸늘해진 목소리에 용병이 꿇을 때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법사의 표정을 살폈다. 무생물을 보는 듯한 얼음장 같은 얼굴. 그 순간 용병은 구걸을 포기했다.
‘씨X…….’
길 안내나 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인지. 하지만 한탄할 시간은 없었다. 용병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A급 용병과 6성급 마법사.
누가 더 강하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적수는 아니었으니까. 결국 상대 인성에 걸어야 한다는 소린데…….
‘용병 쪽이 낫다.’
이미 한 번 부딪혀 보지 않았던가. 그때 만약 상대가 마법사였다면 그는 애초에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바비큐처럼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겠지.
물론, 이쪽도 상대 변덕에 맡길 뿐이지만…… 적어도 마법사 쪽보다는 생존 확률이 높다.
용병은 반쯤 울상이 된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리안은 그 꼴을 보다가 혀를 쯧쯧 찼다.
“쇼를 한다 진짜.”
혹시나 쉽게 풀릴까 싶어 내버려 뒀더니 이게 뭔 짓인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선빵 치는 건데.
한숨을 내쉰 리안이 카일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툭 내뱉었다.
“네가 싸울래? 그동안 맞은 거 복수하고 싶을 거 아니야.”
“지, 지금 무슨 소리세요!”
릴리가 재빨리 제 아들을 감싸 안았다.
“카일은 검 한 번 들어 본 적 없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C급 용병 상대를…….”
“겨우 C급이지요. 마력도 못 쓰는 일반인. 조건은 비슷합니다.”
리안은 릴리 쪽을 보지 않았다. 그저 카일의 눈만 응시할 뿐이었다.
“어떻게 할래? 네가 정해. 여기서 뺀다고 계약 철회하고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말고.”
그 말에 카일도 눈을 마주 봤다. 리안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한참 응시하다가, 이내 카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싸울게요.”
“카일!”
카일이 자신의 어깨에 얹혀 있는 릴리의 손을 감쌌다.
“괜찮아요.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잖아요.”
“……전부 나 때문이야.”
“이게 왜 엄마 탓이에요. 찌질한 시장 새끼 탓이지.”
덜덜 떨던 릴리가 손을 떼고 카일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아들의 욕설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들어 보는 아들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던 것이다.
그렇게 바라본 얼굴에는, 희미하지만 꾸며 내지 않은 미소가 떠 있었다.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 마세요.”
카일은 멍한 얼굴인 어머니 어깨를 한 번 툭 쳐 주고 중앙으로 향했다.
“……나한테야 좋은 일이지만, 정말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
용병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카일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그동안 적당히 봐줬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저년에게 시장님 마음이 남아 있을까 해서 말이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카일은 몸을 풀며 용병을 힐끗 바라봤다.
“아저씬 말이 너무 많아.”
“……건방진 게.”
빠드득. 용병이 이를 갈고는 발걸음을 뗐다.
“어디 칼 맞고도 입을 놀릴 수 있나 보자!”
“그리고 예전부터 말하고 싶던 건데.”
카일은 본인에게 달려드는 용병을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아저씬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카일이 검을 피하고, 그 사이로 들어간 것은 단 한순간이었다. 용병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퍽! 그의 몸이 실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쿵!
“…….”
거리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 * *
“……저놈은 뭐지?”
침묵을 깬 건 마법사였다. 놈은 탐욕 가득한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력도 없는 인간이 저런 움직임을 할 수가 있는 건가?”
솔직히 나도 조금 놀랐다. 이길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저렇게 쉽게 끝낼 줄은 몰랐는데.
괜히 주인공이 아니란 건가.
뿌듯한 기색도 없이 덤덤한 얼굴로 걸어오는 카일을 릴리가 달려나가 맞이했다.
“카일! 다친 곳은 없어?”
“괜찮아요. 안 맞은 거 보셨잖아요.”
“혹시 스치기라도 했다든가…….”
“스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릴리가 한참 동안 부산을 떨어댔다. 그걸 겨우 진정시킨 카일이 나를 덤덤히 바라봤다.
“200골드로 하죠.”
“뭐?”
“계약금이요.”
요 당돌한 꼬맹이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100골드나 200골드나 지금 나한텐 푼돈이기도 하고.
“좋아. 대신 이직 불가 조항 넣는다.”
“상관없어요. 그런데…….”
“뭐 더 추가하고 싶은 조건 있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계속 꾸물거리길래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재촉했다. 카일은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으로 마법사를 가리켰다.
“저 사람 이길 수 있어요?”
“누구. 마법사?”
“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먼발치에서 몇 번 들은 적 있어요. 바르나울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라고.”
“그건 몰랐네.”
“아저씨가 질 거예요.”
아깐 의문문이더니 이번엔 단정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저씨 움직임이요.”
카일이 최대한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저는 아직 마력 못 느껴요. 하지만 몸놀림은 보죠. 솔직히 아저씨 움직임은 속도만 빠르지 제가 방금 쓰러뜨린 용병만도 못해요.”
정정하겠다. 말투도 단어도 거침이 없었다.
“저는 일단 살려 둘 거 같으니 저희 엄마랑 도망갔다가 나중에 다시…….”
“뭐, 그럴 수도 있지. 사실 나도 검 잡은 지 2년밖에 안 됐거든.”
“……그 나이에요?”
얼씨구.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 넌 어머니 모시고 멀리 좀 가 있어라.”
카일은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순순히 릴리를 데리고 물러났다.
계약서는 나중에 작성하기로 하고. 나는 멍한 표정의 마법사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에 훤하다.
“쟨 안 줘. 방금 계약하는 거 봤지?”
“……허락은 필요 없다. 어찌 됐건 당사자는 마력이 없는 일반인인 데다, 계약 주체는 곧 죽을 예정이니 말이야.”
마법사라 그런가. 상상력이 뛰어나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여기서 연구 거리를 발견할 줄은 몰랐군.”
“그놈의 연구, 연구. 어째 하나같이 그리 개성들이 없는지.”
“입 놀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금방 다물게 해 주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법사 주위에 숫자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MG-6-17]
[MG-6-36]
두 개의 6성급 마법. 이중영창이다.
자신할 만한 실력은 된다는 건가. 전투 마법사도 아닌데 이중영창이 가능하다는 건 충분히 자부심 가질 만한 일이긴 했다.
어쨌든 두 가지 모두 나만을 대상으로 한 마법이다. 카일 쪽은 어떻게든 생포해 보겠단 거겠지. 이러면 나야 오히려 편하다.
마법사는 내가 보는 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피식 웃었다.
“범위 공격은 아니지만, 속도 하나는 끝내주는 마법이지. 일단 발동되고 나면 3급이라 해도 피할 수 없을 거다. 지금이라도 빌면 봐줄 수도 있다만.”
“마법사랑 몇 번 붙어 본 적 있는데, 꼭 아가리로 싸우려는 경향이 있더라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다 보니 외로움이라도 타는 건지 원.”
“……후회하게 해 주마.”
패배가 약속된 말을 내뱉은 녀석이 영창을 마저 이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근처의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놈에게 날렸다. 미리 설정해 뒀을 마법사의 보호막이 조금 깎여 나갔다.
당황하는 듯하던 마법사가 금세 코웃음 쳤다.
“소용없다. 영창은 이미 끝자락이니.”
허언은 아닌지 주위를 돌던 숫자들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영창도 제법 빠른데. 연구소에 박히기 전에는 전투 마법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끝자락이란 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단 소리고, 나는 저 두 마법 모두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마법사가 영창을 마치기 전에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뭐?”
마법사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하긴, 마법사가 영창을 마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니까. 오히려 물러나는 놈은 처음 봤을 거다.
하지만 [MG-6-17]은 그런 상식의 빈틈을 파고든 기술이다. 가까운 상대를 자동으로 요격하는 트랩형 마법. 다가가지만 않으면 절로 사라질 거란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 지나지 않아 코드가 흩어지는 게 보였다.
“……우연인가?”
“뭔 소린지 모르겠네.”
시치미를 떼자 마법사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알 것 없다. 이걸로 끝을 내 주지.”
그러더니 남은 영창을 완성시킨다.
[MG-6-36]. 추격형 기술. 목표로 삼은 대상을 맞출 때까지 쫓아가는 마법이다. 요컨대, 아무리 내가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 한들 피할 수는 없단 뜻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력이 약하기도 했다.
나는 아까와 반대로 놈을 향해 돌진했다.
“하, 이미 늦었다. 마법은 이미 발동…… 뭐?”
신나서 중얼거리던 마법사가 놀란 듯 말을 멈췄다.
마법이 닿으려는 순간 내 주위를 감싼 장막을 본 탓이다. 검막은 아니었다. 그건 제자리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다른 방어 수단이 존재했다. 바로 ‘아지프의 약속’. 하루 한 번 공격을 자동으로 막아 주는 유물. 본래대로라면 6성급 마법까지 버틸 강도가 아니지만, 추적용으로 위력이 떨어진 6성급 마법 정도는 충분했다.
정신을 차린 마법사가 뭔가 중얼거리기 전에 검집 채 휘둘러 녀석을 가격했다.
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법사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홈런이다.
뭐, 방어막 남아 있었으니 죽지는 않겠지.
나는 검집을 허리춤에 메고 뒤돌아섰다.
“그만 계약서 쓰러 가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