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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60화 (60/225)

너의 코드가 보여 (60)

뇌정석을 흡수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초인’의 힘으로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밖으로 나올 때쯤에는 거의 온전해진 후였다.

“뭐 해요?”

“…….”

입구에서는 카시아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치맨가?

나이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뱀파이어가 치매에 걸린다는 설정은 없었지만, 어디 내가 만든 것 중 틀린 게 한두 가지던가. 대물림의 숲에서 너무 고생한 나머지 증상이 촉진됐을 수도…….

―드디어 나왔구나!

파닥파닥. 조그마한 형체가 두 쌍의 날개를 열심히 흔들어대며 날아온다. 콘시다. 게임에선 대물림의 숲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없는데.

하긴. 맞지 않는 설정 많다고 생각한 게 방금 전이고, 내가 만든 게임이 아니라 믿기 시작한 게 2년 전이다. 방구석 요정 하나가 집 밖으로 나온 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지.

콘시는 멀찍이 떨어진 채 두 쌍의 날개를 부들부들 떨어댔다.

―대체 어떻게 날 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멀리서 시련 내리면 그만이야.

확실히. 아까와는 다르게 손이 닿을 거리가 아니다. 학습 능력은 있는 건가.

나는 손가락을 살짝 까딱거렸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될 거 같은데.

콘시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멍청하긴. 숲에서 그리 오래 버티는 인간은 처음 봐서 적당히 봐줄 생각이었는데, 감히 날 건드려? 두고 봐. 내가 오늘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어 줄게.

솟구친 팔이 내려간다.

―내가 너에게 내릴 시련은…… 뭐야 그거?

치지직. 치지직.

심장 부근에서 시작된 뇌전의 힘이 검지로 이동한다. 출력은…… 모르겠다. 대충 전기 파리채 정도는 되지 않을까?

―뇌정석? 아니, 그건 숲에서도 막바지에 있는 건데……. 거기까지 갔다 쳐도, 어떻게 인간이 속성석을…….

파지직. 검지로 이동한 뇌전의 힘이 끝에서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다. 기운으로만 느껴지던 에너지가, 이제는 육안으로 보이는 번개의 모양을 띄운다.

심상찮음을 감지했는지 콘시가 내리던 팔을 들어 멈춰 자세를 취한다. 그런다고 멈출 리가.

―자, 잠깐. 우리 대화로 해결하자. 내가 잘못…… 엑.

뻗어 나간 전기가 콘시를 가격한다. 치직. 날개 멈춘 몸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혼원력으로 끌어와 손 위에 얹었다.

꾹 감긴 눈동자.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 쥔 두 손. 기절한 척이다.

“야.”

―…….

“번개 맛 좀 볼래?”

―왜, 왜요…….

콘시가 살며시 한쪽 눈을 뜬다. 나는 아직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카시아를 가리켰다.

“저거 네가 그런 거지. 무슨 시련이야?”

―……반복의 시련이란 건데. 최근 겪은 힘든 일을 계속 반복시키는…….

“일단 풀어.”

―나,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 진짜 굴뚝같은데. 일단 한 번 걸리면 두 시간 동안은 못 건드리거든.

치지직.

―지, 진짜야! 진짜예요!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뇌전을 회수해 자리에 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깐 망가진 몸 회복시킨다고 생각하자. 거의 온전히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신체 구석구석이 삐걱댔다.

―나는 그만 돌아가도 될까……?

손에서 벗어난 콘시가 쭈뼛거리며 물어왔다.

“안 되지.”

―왜?

“이따 저거 풀어 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안 풀어 줘도 두 시간 있으면 풀려.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됐으니까 얌전히 있어.”

다시 날아다니는 몸을 낚아채 손 위에 얹었다. 콘시가 우울한 얼굴로 주저앉는다.

―넌 어떻게 날 만질 수 있는 거야? 1급 기사라고 뻐기던 애들도 내 털끝조차 건들지 못했는데.

“적당히 힘줘서.”

―뇌정석 있는 곳까진 어떻게 들어갔어? 인간은 보통 그 반의반도 못 간단 말이야.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어.”

―그럼 뇌정석은 어떻게 흡수한 거야? 속성석을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건 정령들뿐이라고.

“얌전히 있으라 했던 거 같은데.”

퉁명스레 답하자 내 쪽을 보고 베. 혀를 내민다. 아무리 조절했다지만 물질적 타격을 입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일 텐데 깡도 좋다. 아니면 기억력이 3분 정도 되든가.

계속해서 중얼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 * *

“귀찮군.”

나뭇가지들이 계속해서 몸을 스친다. 인상을 찡그린 남자가 마력을 방출했다. 사사사사삭. 사방으로 뻗어 나간 칼날이 주변을 깔끔히 정리한다. 순식간에 숲 한가운데 빈 공터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만들어 낸 마법 같은 일에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죽여 버린다.”

자그마치 2년. 남자가 도망 다닌 시간이다. 2급 기사가 포함된 추격대를 떨쳐 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시X년…….”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악행을 폭로한 딸년은 왕국의 증인 보호 시스템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풀리지 않을 터.

그럼 일단 차순위다.

배은망덕한 딸년에게 도움을 줬다는 그 꼬마. 2년 전 죽이려다 실패한 그 녀석부터 노렸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도시에 무슨 꿀이라도 처발라 뒀는지 2년 내내 밖으로 나서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인 이름을 딴 상회까지 운영하는 놈이 말이다.

이제 슬슬 포기할까 하는 찰나. 대뜸 나온다 싶더니, 향한 곳이 대물림의 숲이다.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그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었다. 알아서 인적 드문 곳으로 가 준다는데 뭘.

“그런데…….”

패왕검 테오도르가 멀찍이 떨어져서 입구 쪽을 바라봤다.

“……저 둘은 뭐지?”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허공을 응시 중인 계집 하나. 조금 큰 모기 사이즈의 인간 형태가 하나.

주저앉아 있는 쪽은 뱀파이어 같았지만, 작은 쪽은 무슨 종족인지 가늠도 안 갔다. 정령이라기엔 등에 달린 날개가 걸리고, 페어리라기엔 인간과 너무 유사한 모습이 걸린다.

“희귀 종족인가.”

골치 아프게 됐군. 테오도르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뱀파이어 쪽은 상관없다. 넋 나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는 무려 3급 기사. 적어도 후작 급은 되어야 상대 가능한데, 그 정도나 되는 뱀파이어가 연합 땅 밖으로 기어 나올 리가 없었다. 놈들은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린 상태니까.

문제는 작은 쪽. 이종족은 널리 알려진 강한 부족보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종족이 더 무섭다. 대체 무슨 능력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까.

“…….”

포기해야 하나.

2년 만에 잡은 기회다. 이번에 놓치면 대체 언제 죽일 수 있을지 가늠도 안 간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게 2년 동안 추격대를 뿌리친 그만의 생존 비법인 것이다.

그렇게 테오도르가 고민에 빠진 사이. 리안은 손을 꼬집는 감촉에 눈을 떴다.

“뭔데.”

―계속 얘기했잖아! 다른 인간 오고 있다고!

“인간?”

―몰라. 난 분명 얘기했다? 죽든가 말든가.

콘시가 새침한 표정으로 날아올랐다. 리안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NPC-1-434-3]

패왕검 테오도르. 하긴, 이런 외진 곳까지 올 사람은 저 녀석뿐이긴 하지.

리안이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콘시. 심부름 하나만 해라.”

―내가 왜? 안에서 머리 다쳤어?

“부탁이야.”

……부탁? 당연히 전기 가지고 협박부터 할 거라 생각했는데. 콘시가 개운찮은 표정으로 다시 리안에게 날아갔다.

―아, 뭔데 그러는데.

“다가온다는 인간 위치 알겠어?”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 봐? 무서우니 내쫓아 달란 거지? 너도 이제야 내 위대함을…….

“그 녀석 좀 데려와 봐.”

―……뭐?

콘시가 날갯짓을 멈췄다.

―내쫓는 게 아니라?

“응. 도망치려 하면 아무 시련이나 걸어 버려. 똑똑한 놈이니까 그 정도면 벗어날 수 없다는 거 눈치챌 거야.”

―……혹시 둘이 친한 사이야?

일단 물어봤다. 요정은 생물이 가진 에너지를 읽는다. 저곳의 인간은…… 핏빛만이 가득하다. 수십 년간 저런 기운은 본 적도 없다.

그에 반해 리안은……. 칼날같이 날카롭지만, 베개같이 포근하다. 어지간해선 남을 해하지 않을 종류의 인간이다. 본인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돌아온 이유기도 했다. 저런 기운을 가지고 요정을 해할 리 없었으니까.

……뭐, 생전 처음 맞아 보는 전기가 따끔하긴 했지만.

아무튼, 콘시는 저 둘이 친할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원수야.”

―근데 왜 불러 오라고 해? 내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니. 그럴 생각 있어도 하지 마. 나 혼자 싸울 거니까.”

―…….

인간이 대물림의 숲에 온 것부터 이상했는데, 자살하러 온 거였나?

―저 인간이 너보다 훨씬 강한 거 알아?

“붙어 보기 전엔 모르지.”

―아니. 난 알아. 요정은 기운의 크기까지 볼 수 있단 말이야. 저 사람이 너보다 몇 배는 더 강해.]

“마력량으로 승부 결정 나면 기술은 왜 익히냐? 그냥 수정구 두고 쎄쎄쎄 하면 끝인걸.”

콘시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그것도 어느 정도지! 너보다 기운이 몇 배는 더 많다니까?

“나도 다른 쪽이 몇 배는 강하니까 상관없어.”

―다른 쪽?

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콘시는 황당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다른 쪽이라니. 신체를 말하는 건가? 확실히. 뇌정석이 있는 곳까지 갔다면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 못 할 정도로 강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콘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신체 능력이란 게 저 정도 격차를 메꿀 수 있는 건지. 저렇게 자신감 가질 근거가 되는지 말이다.

“네가 고민할 필요가 뭐 있어?”

리안은 풀던 몸을 멈추고 장비를 점검했다.

“나는 네 집에 무단 침입한 걸로 모자라서 던져 버리고, 전기까지 쐈어. 게다가 안에 있던 물건까지 날름 먹어 버렸지. 내가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데려오는 게 이득일 텐데?”

―뇌정석은 내 거 아니야. 그냥 거기 박혀 있던 거지.

“아무튼.”

콘시는 대답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전부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걸 행한 당사자가 얘기하는 건 어이없지만.

내가 왜 저런 놈을 걱정해야 하지?

보기 힘든 선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드물기야 하겠지만, 밖에 나가면 못 찾을 것도 아니다.

관념체를 만질 수 있는 인간이라서? 신기하긴 하지만, 그게 딱히 요정에게 이득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해가 되면 모를까. 없앨 수 있을 때 없애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콘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누구 죽으면 되게 찜찜하단 건 알아. 덩치 큰 놈들이 허구한 날 들어와서 그렇게 죽어 갔거든.

우어어어. 덩치들이 발버둥 치던 모습이 떠오른다. 콘시는 그런 거인들을 도울 수 없었다. 말을 안 들어 먹어서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련’으로는 생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일찍 발견하면 겁을 줘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게 할 수 있는 전부. 그것도 덩치 큰 놈들에겐 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절을 잘못해서 거의 죽일 뻔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부탁하면 특별히 들어줄게. 데려오는 쪽이 아니라 쫓아내는 쪽이면 말이야.

“그럼 더 걱정할 필요 없어.”

리안은 피식 웃었다.

“해볼 만하다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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