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57화 (57/225)

너의 코드가 보여 (57)

레이튼에는 진흙쿠키란 것이 있다.

진흙에 소금과 돼지기름을 넣어 굳힌 것인데, 그 모양이 마치 과자처럼 생겨 진흙쿠키라 불린다.

물론 그런 게 정상적인 음식일 리 없다.

일단 진흙에는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배 속에 뭐라도 들어갔으니 든든하긴 한데,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음식을 달라 소리치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흙에 있던 병균을 배 속에 직접 때려 넣는 셈이다. 당연히 몸이 멀쩡히 버틸 리 없다. 십중팔구는 병에 걸리고, 두셋은 죽는다.

얻는 것 없이 해악만 가득한 음식.

그들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식은 없더라도 옆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봐 왔으니까.

하지만 당장의 허기는 가신다. 잠시나마 지옥 같은 굶주림을 잊을 수 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당장 죽을 거 같으니까.

살기 위해 죽음을 먹는 사람들.

그것이 레이튼에서도 밑바닥에 위치한 빈민들이었다.

아니. 였었다.

“이번 주 실적은?”

“흑철 갑옷 24개, 흑철검 137자루요.”

“어디 보자. 갑옷이 100골드. 검이 15골드니까, 합이…… 4,455골드군.”

리안 상회의 지부장, 베이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저기서 절반이 순이익이다. 세상에 이런 노다지 사업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겨우 2년 된 상회가 이 정도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거라고는 세상 누구도 상상 못 하겠지.

그때 한 남자아이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돈도 아니면서 뭐 그리 좋아해요?”

“야! 너 미쳤어?”

“어, 얼른 사과드려! 저분은 지부장님이란 말이야!”

주변 아이들이 기겁해 말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불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돈 많이 벌어서 뭐? 우리한테는 곰팡이 낀 빵 조각 하나 주고 말 텐데. 아, 지부장님이면 저희 같은 떨거지들이랑은 좀 다르시려나?”

“저게 진짜…….”

경악한 얼굴로 상황을 보던 여자아이가 재빨리 고개 숙인다.

“죄…… 죄송해요, 지부장님. 쟤가 뒷골목에서 굴러먹던 애라 말버릇이 없어요. 제가 꼭 교육시킬게요.”

“지는 뭐 굴러먹은 적 없는 것처럼 말하네.”

“너어…… 진짜 제발 입 좀 다물어.”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남자아이가 코웃음 쳤다.

주변에서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남자아이에게 적대감을 끌어 올렸다.

상회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아이들이 대부분.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그 충성심은 이루 말할 바가 못 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상황을 지켜보던 베이크가 중재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끼이이익.

출입문이 활짝 열리고, 금발의 남자가 들어왔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지만, 동시에 한 줄기 성숙함도 느껴지는 얼굴. 수년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키. 거기에 차림새까지 완벽하니, 마치 동화 속 황족이라도 나온 것 같다.

“영감님, 무슨 일 있어요?”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그제야 정신 차리고 남자에게 옹기종기 모여든다. 투덜거리던 남자아이와 말리던 여자아이만 제외하고.

“리안 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요즘 너무 안 오시는 거 아니에요?”

“아! 밀지 좀 말아 봐!”

“너나 좀 밀지 마라 꼬맹아.”

리안의 말에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떨어진다.

“……그냥, 너무 달라붙지는 말란 소리였어.”

“풉.”

베이크의 비웃음 소리에 리안이 입가를 꿈틀거렸다.

“영감님은 지금 상황이 재밌나 봐요. 내가 밖에서 다 들었는데.”

“듣긴 뭘 들었다는 게냐?”

“영감님이 삥땅쳤다는 소리요.”

베이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삥땅을 쳐?”

“보수로 곰팡이 낀 빵 조각 하나 줬다면서요. 내 지갑에서는 그렇게 돈 나간 적이 없으니 영감님이 꿀꺽한 거겠지.”

“네 놈 줄 돈이면 모를까 내가 저 조막만 한 것들 줄 돈에서 삥땅을 치겠느냐?”

“어차피 같은 지갑에서 나가는 거니 차이도 없네.”

베이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욕설을 뱉기 전에 나오는 전조 현상. 리안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저 애예요? 곰팡이 빵 받았다는 게.”

“받기는……. 오늘 처음 온 놈이다. 보수는커녕 아직 일도 안 가르쳤어.”

“거 당돌한 놈이네.”

리안이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뚱한 얼굴로 쳐다보던 아이가 당황해 뒤로 물러선다.

“뭐, 뭐야? 난 댁 소문 같은 거 하나도 안 믿으니까 포기해.”

“소문?”

“레이튼의 성자라든가 대륙 최연소 무신이 될 거라든가 하는 헛소문 말이야!”

리안이 피식 웃었다.

“전자는 나도 안 믿으니 넘기고. 후자는 가능할 거 같은데?”

“뭔…….”

자신감도 저 정도면 병이다. 나르시즘이라 하던가? 어디서 주워들은 단어를 내뱉으려던 아이의 입이 다물어졌다. 리안이 다리를 굽혀 그와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보니까 자의로 온 건 아닌 거 같고. 누구랑 온 거야?”

“저, 저요.”

아까부터 남자아이를 말리던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친구가 그랬어요 리안 상회에 가면 일도 할 수 있고 보수도 넉넉히 챙겨 준다고. 그래서 같이 온 건데…….”

“일한 만큼은 챙겨 주지. 적어도 곰팡이 빵 준 기억은 없어. 그런데 저 꼬맹인 뭐가 문제냐?”

“워, 원래 저런 성격은 아니에요! 그냥, 얼마 전부터 여동생이 아파서…….”

“야! 내가 그 얘기 하지 말랬지!”

아이가 흥분한 얼굴로 여자아이한테 달려든다. 생각뿐이었다. 발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딱! 소리와 함께 이마에 미약한 통증이 느껴진다. 영문도 모른 채 아이가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영감님, 폭행죄 합의금이 얼마였죠?”

손가락을 호 불며 하는 말에 베이크가 혀를 끌끌 찼다.

“자경단이 제시하는 그거 말이냐? 그딴 거 지키는 놈이 어디 있다고.”

“자이어 테르베로츠가 만든 거잖아. 나라도 지키는 척해 줘야 뭐 말이 되지 않겠어요?”

“나도 모른다 이놈아. 10코퍼던가 20코퍼던가. 그때그때 당사자 맘이라.”

“그럼 신관 하나면 충분하겠네.”

피식 웃은 리안이 쭉 뻗은 다리를 툭 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이의 몸이 우뚝 선다. 자의가 아니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라 아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렇다는데 합의할래 말래? 마침 돈에 환장하는 신관 하나 알거든.”

“하, 하비?”

“얘가 정신이 나갔나.”

한숨 쉬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저쪽이 저런 상태라 그런데, 네가 대리 좀 맡아라.”

“대, 대리요?”

“보증 서라는 거 아니니 걱정 말고. 그냥 신관 하나 붙여 줄 테니 쟤네 집으로 안내만 해 줘. 안 그럼 자이어가 날 잡아먹으려 들 게 뻔하거든.”

“……할게요! 하게 해 주세요!”

“좋아.”

여자아이 머리를 쓰다듬은 리안이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쟤도 생각 바뀌면 다시 데려오고. 일할 사람은 항상 부족하니까. 그리고 영감님, 지금 시간 괜찮아요?”

“아직 정산이 남았다만…….”

“그럼 그거 끝나고 안쪽으로 좀 와 주세요. 할 얘기 있으니까.”

“10분이면 될 게다.”

“잠깐 수련하기 딱이네.”

“……수련에 미친 녀석 같으니라고.”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리안의 모습에 베이크가 혀를 쯧쯧 찼다.

하지만 그 뒤를 쫓는 아이들의 눈에는, 선망과 존경의 기색이 역력했다.

* * *

윙. 윙. 윙.

흑철검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공명한다.

이런 건 설정에 없었는데.

한동안 더 관찰하다 느껴지는 두통에 검을 집어넣었다.

푸른 혈맥의 각인. 바이론이 가지고 있던 그것이 검에 옮겨간 것이다.

아직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체를 움직이는 것과도, 마력을 다루는 것과도 그 궤가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정신 에너지라 해야 하나?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다 해도 바이론만큼의 힘은 나오지 않겠지. 원래 생물에만 작용하는 각인이니까.

하지만 지금도 상대를 잠깐 주춤거리게 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찰나의 순간에 결과가 결정 나는 전투에서 그 ‘잠깐’은 목숨과도 같다.

어쨌든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소리다.

검을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거슬리는 두통 탓이다. 심한 건 아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됐다.

하늘을 보니 여전한 모습이 보인다. 지구보다 큰 태양, 비교도 안 되게 많은 구름…….

한때는 저 하늘을 보며 그리움에 빠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저게 정상 같다. 태양이 한 손에 가려지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정신이 나간 거지.”

피식 웃으며 근처 풀밭에 앉았다. 바깥 공기를 마시니 금세 두통이 가셨다.

진짜 환경 하나는 최고라니까. 장점이 그것뿐인 게 단점이지만.

상념은 접어 두고 내부를 관조했다. 2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막강한 혼원력. 끊임없는 노력 덕도 있지만, 사실 영약의 힘이 더 크다.

하긴 어지간히 먹었어야지.

라이놀 가문 창고에서 나온 영약은 서로 나눠 가졌지만, 내 돈으로 구한 영약이 그 수십 배는 된다. 그렇게 부어댔는데 혼원력이 모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 그게 맞긴 한데…….

“…….”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하게 많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영약 떡칠하고 나오는 귀족들도 이 정돈 아닌데.

아니, 오히려 비교하는 게 미안한 수준이다. 또래 애들은 마력량 만으로 압살할 자신이 있을 정도니까.

물론 그만큼 내가 먹은 영약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다.

하지만 영약은 단기간에 섭취 시 효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법. 게다가 수련 기간도 2년뿐이다. 10년이 넘어가는 놈들과 다르게 말이다.

요컨대 지금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다.

이유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인간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신체만이 아니라, 안의 마력패스도 포함한 얘기다.

초인의 신체가 만들어 낸 마력패스와 EX급 스킬 혼원공. 그 둘의 시너지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좋았다. 모든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가 알던 어떤 존재도 이런 성장을 보여 주진 못했다.

1부 주인공이었던 ‘미친개 아이언’은 물론, 게임 내 최고의 천재로 불리던 ‘동방의 마지막 용’이나 ‘사자검 라이놀’도 마찬가지. 어느 하나 따라오지 못한다.

“뭘 실실 쪼개고 있냐?”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가를 매만졌다. 내가 웃고 있었나? 아닌데.

“영감님, 노안 오신 거 아니에요?”

“이놈이 근데. 늙으면 속마음도 다 읽히는 법이야! 속으로 얼마나 쪼개는지 밖까지 다 새어 나오더라.”

“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네.”

말은 태연히 했지만, 속으론 꽤 놀랐다. 바이론도 못 읽던 속내를 어떻게 읽었지? 진짜 늙으면 심안 같은 거라도 생기나?

베이크 영감님이 혀를 쯧쯧 찬다.

“네놈은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2년 전과 바뀐 게 없구나. 그때 무기점에서도 속내가 훤히 보였지.”

“그때 제 속내가 어땠는데요?”

“속엔 겁이 가득한 주제에 겉으론 드러내지 않으려 하더구나. 조막만 한 게 어찌나 용을 쓰던지…….”

그리곤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래. 뭐, 달라진 게 있긴 하군.”

“뭔데요?”

“적어도 지금은 꾸며 낸 표정이 아니구나. 뭐…… 보기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낫다.”

말해 놓고 무안한지 크흠. 헛기침을 연달아 내뱉는다. 이 영감님도 나이답지 않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실실 웃고 있자니 바로 호통이 날아온다.

“그건 됐고! 부른 이유나 말해 봐라.”

“별건 아니고요. 물건들 판매는 순조로워요?”

“순조롭다마다. 여기저기 짝퉁 생겨난 이후 좀 주춤하는가 싶더니, 네놈 말대로 브랜드 각인 새기고 가격을 올리니까 판매량이 오히려 널뛰더구나. 내려도 시원찮을 판에 올리라 할 때는 미친놈인가 했다만…….”

황당하다는 말투에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허영심에 기대 판매하는 물건이니까요. 비싸면 오히려 뽐낼 거리 생겨서 좋지. 기사는 무기나 갑옷에 별로 영향 안 받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도 갑옷을 장착용, 전시용, 보관용으로 세 개씩 구매하는 미친놈들이 나올 줄은 몰랐지.”

혀를 끌끌 찬 영감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묻는 거냐? 상회 일은 나한테 맡겨 놓고 신경도 안 쓰더니.”

“한동안 자리 좀 비워야 할 거 같아서요.”

“어딜 가려고?”

“받아야 할 물건이 있었는데, 이제야 연락이 닿았네요.”

“받을 물건?”

“네.”

대답을 마치고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천둥과 벼락의 힘을 머금은 번개의 돌, 뇌정석. 반쯤 잊고 지내던 물건이 이제야 연이 닿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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