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48)
“……그게 맞다는 뜻인가 아니라는 뜻인가?”
“둘 다 아닌데요.”
아까의 인자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나비드에게 말했다.
“질문이 뭔지 안다고 제가 대답할 이유는 없잖아요.”
“……허허, 소문을 중간까지만 들었나 보군.”
나비드가 고개를 저으며 책을 덮었다.
“대답을 거부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네. 그것도 매우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말일세.”
“그럼 죽여 보시죠.”
나는 반항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나비드가 눈을 치켜뜨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후회하지 않겠나?”
“곧 죽을 인간에게 말이 너무 많으시네.”
피식 웃으며 팔을 흔들자, 나비드는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다 결국 한숨 쉬며 무기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알았나?”
“방문객들의 신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일반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인정도 안 할 이름이지만,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질문하는 쪽은 보통 방문객이 아니라 집주인이죠.”
그런데 정작 질문을 하는 건 자칭 방문객들의 신인 아몬의 신관, 명백히 주객(主客)이 전도된 셈이다. 그리고 아몬은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주인을 죽여서라도 바로잡고 싶어 할 정도로.
[생명을 해한 적 있는가]
[해쳤다면 이유가 있는가]
[앞으로 해칠 예정이 있는가]
뭔가 있어 보이는 저 질문들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답을 한다는 행위가 중요할 뿐.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암살자의 신으로 알려진 아몬의 신도가 찾아와 저런 질문을 하면 당황해 이런 생각들을 떠올릴 거다.
생명은 벌레의 목숨까지 포함하는 건지부터 자신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건지, 정직함을 시험하는 건지 등등.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내려가다 보면, 굳이 답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까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간에 퍼진 인식을 교묘히 이용한 서술 트릭.
누가 짠 설정인지는 몰라도 진짜 머리 하나는 잘 썼단 말이지.
나비드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새에 거기까지 생각했단 말인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어요. 말이 조금 많으셔야지.”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 할 경우에만 죽일 수 있다는 건 교리의 한 구절일 뿐이네. 내가 그걸 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해 봤나?”
안 해 봤다.
나비드의 캐릭터 시트를 짠 건 바로 나니까.
광신, 맹목. 다른 아몬의 교도라면 어떨지 몰라도, 나비드가 교리를 어길 일은 절대로 없다.
“신도가 신의 가르침을 어기는 경우가 어디 있겠어요? 아몬께서 지켜보고 계실 텐데.”
“생각보다 세상엔 그런 자들이 많네. 내가 그중 하나일 수도 있지.”
“그래서, 영감님이 그중 하나인가요?”
나비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닐세.”
“그럼 문제 될 거 없네요.”
“아니. 아직 한 가지 남았네.”
“남은 거요?”
“나는 아직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했네. 엄밀히 말하자면 자네도 집주인이라 하기에는 모호한 상태지.”
나비드가 내려놨던 무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X럼이.
“……정식으로 초대 드리죠. 근데 그 빌어먹을 책은 어디 내버리고 오세요. 보기만 해도 기분 더러우니까.”
“권유인가?”
“집주인으로서의 명령이요.”
“허면 어쩔 수 없군. 받아들이지.”
나비드는 책을 내려놓더니 들어오려고 시늉했다.
아니, 진짜로 온다고? 책 두고 오라 하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일 없으세요?”
“자네 죽이는 게 일이었네만.”
할 말 없게 만드네.
“혹시 지금 초대를 거부하면…….”
“내 일을 마저 마쳐야겠지.”
죽인다는 소리를 참 쉽게도 한다.
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전력으로 도망치면 성공 확률은 몇 프로지?
“…….”
0프로다, 젠장.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을 모시기는 좀…….”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나?”
“얼른 안 들어오고 뭐 해요?”
문을 열고 몸을 피하자 나비드가 그 사이를 태연히 걸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날 죽일 생각이었다고는 상상도 못 할 태평한 표정으로.
아몬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면 저 얼굴 그대로 나를 죽였을 놈이다.
그리 생각하니 절로 배알이 꼴렸다.
“언제 갈 생각이에요?”
“방금 들어왔네만.”
한참 본 기분이니까 그러지.
“헤어짐은 언제 해도 이른 법이라 하더라고요. 어차피 그럴 바엔 아예 이르게 헤어지는 것도 한 방법 아니겠어요?”
“난 그리 생각하지 않네.”
“생각이 뭐 그리 중요해요? 마음이 중요하죠.”
“허허, 내 마음이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조르는군.”
이건 뭐 빈대도 아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그냥 조용히 좀 따라왔음 싶은데 나비드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허어. 정원 정돈이 잘 돼 있군. 누가 관리하나?”
“저도 모르겠네요.”
“자네 사는 집 아니었나?”
“어느새 보면 정리돼 있더라고요.”
“허면 집 안 청소는 누가 하나?”
“몰라요.”
“그럼 음식은…….”
“영감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나비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진짜 집주인이 누구인지 떠볼 생각이라면 소용없으니 그만하시죠.”
나비드는 잠깐 침묵하더니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네.”
없기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끝까지 방심 못 할 늙은이라고 생각하면서.
* * *
“잘 먹었네. 그리 보이지 않았는데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군.”
“다 드셨으면 그만 가시죠.”
“너무 재촉 말게. 안 그래도 일어나려던 참이니.”
나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헌데 자네는 내게 물을 게 없는가?”
“없는데요.”
그냥 갔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나비드는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뢰한 자가 궁금하지도 않은가?”
“물어본다고 알려 주지도 않을 거 뻔히 아는데 제가 왜 입 아프게 혀를 놀리겠어요?”
어차피 그럴 인간 한 명밖에 없기도 하고.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얼핏 친근한 척 굴고 있지만, 놈은 명백한 내 적이니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
분명 속으로는 내 사지를 뜯어 제물로 바치는 상상 중일 거다.
“흠! 아몬교에 대해 너무 잘 아는데, 정말로 교도가 아닌가?”
“저는 믿는 종교 없어요. 변질된 종교 들어갈 생각은 더더욱 없고요.”
“……변질된 종교?”
옷을 걸쳐 입으며 나갈 채비를 하던 나비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설마 아몬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요? 여기 다른 종교인이 또 있나?”
태연하게 답하자 순식간에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근원지는 당연히 나비드.
카시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인물을 다 합쳐도 저 마력에 비하지 못할 것 같다.
과연 중간보스다운 포스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정식으로 초대받고 식사까지 끝낸 상태에서 나비드가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아몬교가 일반적인 암살자와 구분되는 특성.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방문객인 신도는 건드릴 명분이 없다.
“그 말 취소하는 게 좋을 걸세. 아몬교의 신도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 그중에는 교리에 충실하지 않은 자들도 있지.”
“그 교리가 변질됐다는 겁니다.”
“……교리가 변질돼?”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나비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몬은 방문객들의 신이라 했죠.”
“……그렇네.”
“하지만 세간의 인식은 어때요? 암살자의 신. 좀도둑의 신. 아몬에게서 방문객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건 아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건 그쪽이죠.”
나비드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댁들이 하는 짓거리 좀 보세요. 방문객이라면서 의뢰받고 집주인 사냥이나 다니고. 어딜 봐도 암살자잖아요.”
“아몬께서 주인 노릇 못 하는 인간을 싫어하기 때문일세.”
“그게 교리를 이용하란 소리는 아니죠. 주인이 주인 노릇 못 하게 유도하는 것도 방문객의 도리는 아닌 거 같은데.”
“…….”
나비드는 말문이 막혔는지 침묵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기다렸다.
밥 지을 때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법.
지금은 몰아치는 것 보다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효과적이다.
생각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될 때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몬교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죠.”
“……지금 내게 아몬교에 대해 설파하려는 건가? 교에 50년을 몸담아 온 나에게?”
“50년을 몸담아 온 분이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영감님도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요.”
아몬이 암살자의 신이라 불리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끽해야 30년 정도 됐을까?
겨우 30년 전만 해도 아몬은 방문객들의 신으로 불렸단 소리다. 그리고 30년 전은 14대 교주, 현재의 교주가 취임한 해다.
“지금 교주,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런 불경한 일은 없네.”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나비드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의심의 빛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 생각대로라면 최근 들어 더 괴상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을 테니 아무리 광신, 맹목을 가진 나비드라도 의심 정돈 해 봤겠지.
나는 흔들리는 나비드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의 교주는, 아몬을 믿은 적이 없어요.”
* * *
떠나는 나비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 쉬었다.
만나서 엿 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
그래도 성과는 있으니 전혀 의미 없는 만남은 아니라 봐야 하나.
일단 아몬교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나비드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는 점.
원작대로라면 악의 축에 붙어 온갖 개짓거리 다 하고 다니는 놈들이니 저런 식으로 혼란을 주면 나쁠 것 없겠지.
그리고 아몬교의 습격 역시 바이론과 연관된 이벤트다. 그것도 그 녀석 파트 끝자락에 일어나는 이벤트.
설마 본편 시작도 전에 발생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사실, 스타팅 지점이 레이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유일하게 안도했던 점이 있다.
바로 바이론이 둥지 트는 곳이라는 것.
놈은 후반 갈수록 상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빨리 해치울수록 이득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바이론이 힘을 키우기 전 해치울 수 있는 레이튼이란 도시는 선택지로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뭐, 생활 수준을 제외했을 때의 얘기지만.
아무튼, 바이론이 계속 조용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해결 방법만 남았을 뿐.
“슬슬 끝낼 때도 됐지.”
생각보다 일찍 부딪혔고, 생각보다 일찍 싸우게 됐다.
아무리 초반이라도 지금 스펙으로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다. 게임에선 A등급 셋 정도는 혼자 꺾을 수준은 돼야 클리어 가능한 녀석이니까.
난이도로 치면, SSS급 정도는 되겠지.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계를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