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39화 (39/225)

너의 코드가 보여 (39)

오류는 총 12회.

복부에서 4번, 팔에서 5번, 다리에서 3번 일어났다.

거기까지 수천 개의 숫자가 오갔으니 많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정밀하고 세심한 심법 특성상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기도 했다.

라이놀이 가르쳐 주려는 ‘사자 심법’은 S등급의 스킬.

거기 견줄 만한 심법은 동대륙의 ‘천마 신공’뿐인데, 그런 심법에 오류?

“리안?”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드니 라이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네. 문제없어요.”

“피곤하면 내일 할까?”

고개 숙이고 있었더니 조는 줄 알았나 보다.

“존 거 아니에요. 생각하느라 그런 거지.”

“생각? 아, 미안. 내가 너무 빨랐지? 다시 천천히…….”

“그게 아니라요.”

말하고 조금 고민했다.

방금 입문한 놈이 대륙 제일 심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누가 봐도 웃기는 상황이다.

게다가 아직 확실하지도 않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애초에 오류가 아닐 수도 있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끙끙대고 있으려니, 라이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심각한 거야?”

“그건 아닌데, 조금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얘기라서요.”

“네가 황당한 소리 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맘 편히 말해 봐. 믿어 줄 테니까.”

“…….”

듣고 보니 또 맞는 말이다.

그래. 이제 와서 이미지 관리하기엔 좀 많이 늦었지. 마법 조작에 마법 감지. 최근엔 마력 보는 것까지 밝혀졌는데 이제 와서 무슨 내숭이냐.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 편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심법이 이상해요.”

“그럴 리 없어.”

“……”

단호하네. 단호박인 줄.

“아니, 믿겠다면서요?”

“믿을 만한 얘기를 해야 믿지. 아무리 네가 마력을 볼 수 있다 해도 지금 10분도 안 지났어.”

“그러니까 황당한 얘기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황당한 소리잖아.”

그러며 라이놀이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놓았다. 코드를 보니 ‘사자 심법’이 적힌 서적이다.

“이 심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

“…….”

당연히 알고 있지만, 입을 다물었다. 나도 아직 긴가민가해서다.

S등급에 붙는 수식어는 ‘완벽한’.

더 이상 손댈 곳 없다는 뜻이다. 설정도 그런데, 이리 쉽게 빈틈을 찾아냈다곤 나도 믿기 힘들었다.

라이놀이 책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여기 첫 부분이 언제 쓰였는지 알아? 200년 전이야. 당대 최고 검객 키안트 경이 직접 집필하신 부분이지.”

라이놀이 책 중간 부분을 펼쳤다.

“그다음이 150년 전. 그 당시 최고 검객이었던 아서 프란츠 경이 작성한 부분이고,”

그리고는 다시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120년 전 최고 검객이, 이쪽은 70년 전 최고 검객이 기록했지.”

하나하나 설명하던 라이놀이 책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 장. 이게 언제 작성됐을 거 같아?”

“……어제요?”

“50년 전이야. 당시 최고 기사였던 레닌 경이 작성했지.”

내 조크에 미동도 없이 라이놀이 답했다.

민망하네.

“50년 전을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더 나아질 부분이 없어서겠죠.”

“맞아.”

그리고는 라이놀이 어미 새가 알이라도 품듯 조심스레 책을 갈무리했다.

“수백 년 동안 당대 최고 검객들이 끊임없이 개선한 심법이야. 마지막으로 집필한 레닌 경은 수십 년 연구하고 겨우 한 줄 써 내렸지. ‘이 심법은 이미 완벽해서 더는 손댈 곳이 없다.’”

“…….”

두 줄 아닌가 싶지만 사소한 의문은 접어 두자.

“저도 확신 가지고 얘기한 건 아니에요. 확인해 볼 테니까 다시 한 번만 보여 줘요.”

“문제 있을 리 없다니까.”

“부탁드릴게요.”

“하아…….”

한숨 쉬면서도 라이놀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틀렸을 게 확실하니 한 번 보여 주고 말자는 생각이겠지.

이해는 간다.

나도 아직 확신 못 한 상황이니까.

잘못 본 게 맞으면 다행이지만, 찜찜해서 그냥 넘길 순 없었다. 이런 건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지.

라이놀이 앉은 자세로 숨을 들이쉬고, 곧이어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01101101…….

다시 속도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었다. 초인의 신체가 보조해 줬으니까.

그렇게 몇 바퀴나 돌았을까.

라이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때? 문제없지?”

“……음.”

“왜? 또 그래?”

오히려 더 발견한 게 문제다.

총 17회로 5개 늘었다. 새로 생겼다기보다는, 아까 놓친 걸 지금 확인한 느낌.

“……라이놀이 잘못 하고 있는 건 아니죠?”

“숙련도가 떨어질 뿐이지 방식은 틀렸을 리 없어. 안 그랬으면 애초에 가르쳐 준다고도 안 했겠지.”

확실히 그 성격에 제대로 익히지 않은 심법을 가르쳐 준다고 나설 리 없다.

그럼 진짜 심법 자체의 문제란 건데…….

가타부타 말없이 자세 잡았다.

설명 못 하겠으면 직접 해 보면 될 일.

보았던 코드들을 속으로 재생시켰다. 마력이 움직이던 경로, 중간중간의 마력 세기까지. 몇 번 보지 못했는데도 전부 생생히 기억났다.

‘초인’ 능력에 머리 좋아진다는 설명은 없을 텐데, 본판 자체 성능인가?

아무튼, 잘된 일이다.

처음 오류 난 곳까지만 해도 수십 번은 조절해야 하는데, 일일이 물어볼 필요 없으니까.

좁쌀만큼 모은 혼원력을 목 아래에 위치시켰다.

심법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움직이는 힘은 심상.

내가 바라면, 힘이 따른다. 숫자들을 생각하며 혼원력을 오른팔로 이동시켰다.

0, 약하게. 1, 강하게.

“크윽.”

내부를 직접 타격하는 듯한 감각.

신음이 헛기침처럼 새어 나왔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역시 처음부턴 무리였나 보다.

그래도 절반은 갔다.

예상보단 나은 편이다.

처음 시도할 땐 시작부터 각혈하는 게 보통이니까.

손으로 입가를 훑었다.

피가 묻어 나오진 않는다. 분명 그 정도 고통이었는데. 초인 신체가 장기까지 강화시켰나?

“괜찮아?”

“네, 일단은요.”

“무슨 일인데? 진짜 문제 있어서 그래?”

라이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아직 거기까진 가지도 못했어요.”

“근데 왜 각혈을 해? 1단계 수련 중에 그런 현상 있다는 건 들어 본 적 없어.”

“피 안 나왔어요. 루트는 진작 익혔고, 그냥 세기 조절하다 조금 실수했어요.”

“……뭐?”

라이놀이 뭔 소리냐는 듯 입을 벌렸다.

하긴, 1단계 루트도 못 익힌 놈이 2단계 강도 조절하고 있다니 황당할 만도 하다. 걷는 법도 못 배운 놈이 날고 있는 꼴이니까.

위험도도 딱 그만큼 차이 날 거다.

1단계가 실패해서 무릎 까지는 정도라면, 2단계는 조금만 실수해도 죽을 수 있다.

오죽하면 전투로 죽는 검사보다 2단계 수련하다 죽은 수가 더 많을 거란 얘기까지 나오겠나.

이 세계 사람들이 비교적 심법에 늦게 입문하는 이유기도 했다.

운동은 안 할지라도, 최소한의 신체 조건이 안 되면 너무 쉽게 죽으니까.

나야 초인 신체 덕에 걱정 없었지만.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해?”

“그냥 마력 세기도 보이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형체 없는 마력의 세기가 어떻게 보여?”

“형체 없어도 저한텐 보이잖아요. 같은 맥락인가 보죠, 뭐.”

라이놀의 얼굴이 굳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신경 끄고 다시 자세 잡았다.

1초 단위로 바뀌는 세기를 처음부터 전부 익힐 자신은 없지만, 애초에 완주가 목표는 아니다.

오류 생겼던 지점까지만 성공하면 되지.

혼원력을 다시 오른팔로 이동시켰다. 0, 약하게. 1, 강하게. 001110101……. 강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어느덧 팔의 중간.

처음으로 오류가 뜬 곳이다. 그 직전에 멈춰서 고민했다.

0과 1이 단순히 강도를 나타내는 거라면, 2는 무엇에 대한 오류지?

마력이 몸을 순회하는 동안 변화시키는 게 수천 번. 그중 열댓 번 놓치는 거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대륙 제일 심법이란 거다.

라이놀 말대로 수백 년간 최고의 검사들이 개선한 심법의 오류가 그리 단순할 거 같진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법의 운용은 기본적으로 흐르는 루트와 마력의 세기 조절.

루트가 틀렸다면 애초에 동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세기가 달랐다면 아까처럼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루트도, 세기도 아니라면 뭐지?

남는 건 속도뿐인데, 그건 숙련도와 관련된 거라 방식과는 무관했다. 세 가지 전부 아니라면, 답은 세 방법 모두 틀렸다는 것뿐.

“…….”

설정에도 없는 방법. 존재할 리 없는 방법. 세 방법 다 아니라면, 내가 찾아야만 한다.

갓 입문한 사람한테 너무 가혹하네.

투덜거리고 싶지만, 들어 줄 사람도 없다. 해도 욕이나 먹겠지.

투정 부리는 대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설정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해도 이 세상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건 나뿐이다.

내가 못 하면 아무도 못 한다.

그런 자신이 있었다. 아직 못 떠올렸을 뿐, 나는 분명 답을 알고 있다.

머릿속으로 마력과 심법에 관한 온갖 설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마침내 한 가지 설정이 떠올랐다.

마력의 역류.

기본적으로 심법은 루트와 세기가 전부 다르지만, 한 가지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다.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

팔에서 목으로 향하든 허리에서 머리로 향하든 제 맘이지만, 목으로 향한 힘을 팔로 되돌리는 예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아가던 힘과 돌아가는 힘이 충돌하며 내는 압력을 인간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련하던 검사가 심법 운용을 반대로 하다 몸이 터져 죽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거꾸로 오르기에 흐름을 역행하고, 흐름을 역행하기에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힘을 만든다.

S등급에 붙는 수식어 ‘완벽한’.

인간의 신체에 완벽한 기준은,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초인’의 신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커억!”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혼원력을 역류시켰다.

패스에 느껴지는 엄청난 압력. 마치 그만두라고 비명 지르는 것 같다.

고고히 흐를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난이도.

순행하는 힘과 역행하는 힘이 만나 그 기운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콰가가가!

몸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머릿속에 박힌다.

마치 안에서 파도가 치는 느낌이다.

몸이 한계라고 삐걱댈 때쯤, 순행하던 힘과 역행하던 힘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멈춘 것 같지만 움직였고, 움직이는 것 같지만 멈춰 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지만, 한가진 확실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EX급 스킬의 탄생]

[당신은 벨리아 대륙 최초로 등급 외 스킬을 만들어 냈습니다!]

[포인트 정산 중…….]

[존재하지 않는 업적에 정산이 불가능합니다!]

[긴급 구제 포인트 5,000점이 지불됩니다.]

그건 바로, 내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