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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27화 (27/225)

너의 코드가 보여 (27)

“그래서, 어떻게 찾을 생각인데요?”

“그걸 밥 먹고 난 뒤에야 물어보냐?”

“이제 무르지도 못할 거 아니에요.”

주교도 가끔은 매가 약이라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그 성격에 가능할 거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때릴 수도 없고.

아직 힘 조절이 안 돼서.

“이제 돌아다녀 봐야지.”

“……아무 생각 없어요?”

“돌아다니면서 찾는 게 생각인데.”

“아무 생각 없구나.”

아리나가 크게 한숨 쉬었다.

“워낙 자신 있게 말하길래 뭔가 있나 기대했는데…… 그냥 막무가내였어요?”

쟤한테 저런 소리 들으니 다른 사람한테 듣는 것보다 2배는 더 기분 나쁘다. 비난도 자격 있는 사람이 해야지.

“기사님도 뭐라 말 좀 해 봐요. 이 큰 도시를 전부 돌아다니며 찾을 거라는데 괜찮아요?”

“성-기-사.”

“봐요. 기사님도 싫다잖아.”

아주 지랄을 한다.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NPC-1-CH-D]

[NPC-1-MC-C]

[NPC-2-AV-C]

남자 요리사 C등급.

남자 용병 D등급.

여자 모험가 C등급.

장애물들을 통과해 수없이 떠오르는 코드들.

어차피 대부분은 엑스트라. 알파벳이 아닌 숫자가 들어가는 코드만 찾으면 된다. 주연은 직업이 아니라 숫자로 표기되니까.

멀리 있는 코드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초인’의 힘.

한참 주변을 둘러보다 눈을 깜빡였다.

근처에는 없군.

눈을 매만지며 피로를 풀고 있자니, 아직 혼자 떠들고 있는 아리나가 보였다.

“벌써 얻어먹었으니 어울려는 드릴 건데요…….”

“그럼 잔말 말고 따라와. 확 한 대 때리고 싶으니까.”

“앗, 신관한테 그런 말 하면 천벌 내려요.”

“내리라지.”

그쪽은 이런 걸로 천벌 내릴 만큼 한가한 상황 아니니까. 그리고, 쟤한테 내리면 내렸지 나한테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사유는 신성모독.

아리나의 말에 대충 대꾸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구걸하는 아이들, 소매치기당하는 행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연히 장사하는 상인들. 언제나 대로의 레이튼이다.

엿 같다는 소리다.

“성기사…….”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옆을 바라보자, 라키안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존X 답답하네 진짜.

차라리 말 많은 게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애써 무시하려는데, 아리나가 입을 열었다.

“기사님이 슬프대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해석하냐?”

“그냥 대충 지껄인 거예요.”

“아, 그래.”

그냥 혼자 올 걸 그랬나? 찾은 다음 불렀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마음이 급해서 그쪽을 생각 못 해 벌어진 일이다.

신경 끄고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봤다.

‘초인’ 덕분에 눈이 아프진 않은데, 분석까지 해야 하니 조금 어지럽긴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찾았다.”

[MON-6-D]

레이튼의 건물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참새, 시르케의 사역마였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푸른 혈맥’에 대해 알아낸 경위.

아는 사람이 극소수에, 남은 기록도 없다. 마녀가 그걸 알아채는 건 게임 스토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알아냈다면, 답은 간단했다. 최근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 준 사람이 있지 않은가.

타냐 스트라우드.

녀석이 얘기할 때 사역마로 훔쳐본 거겠지. 자신에 대해 아는지 두려웠을 테니까.

“뭘 찾아요?”

“마녀.”

“……네?”

아리나가 멍청히 되물었다.

“뭐요?”

“마녀. 찾았다고.”

“……어디요?”

참새를 향해 손을 흔들자 바로 날아가 버렸다.

사역마는 시전자가 근처에 있을 때만 발동한다. 즉,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참새가 날아간 반대쪽을 바라봤다.

[NPC-2-142-3]

도시 외곽에서 떠오르는 코드.

유인을 위해 반대쪽으로 날린 것 같지만, 내가 이런 능력을 가졌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피식 웃고는 그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

* * *

“으음…….”

시르케가 침음을 내뱉었다.

마녀재판 이후 생긴 말버릇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할지 고민해야 하니까.

‘……다시 잡혀갈 순 없어. 절대.’

감정이라는 걸 느껴 본 적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감정이 아닌 생존본능.

그건 사람이 통과할 걸 전제하고 만들어 둔 재판이 아니었다. 재판이라는 이름의 처형. 실제로, 그녀 외의 생존자는 없었다.

‘괜히 감시했어.’

사역마의 눈에 비치는 소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무시할걸. 푸른 혈맥인지 뭔지에 관심도 없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이길 수 있어.’

떨리는 다리를 움켜잡았다.

두려움? 그럴 리가. 그런 건 느낄 수도 없지만, 느낄 필요도 없다.

저기서 주의해야 할 건 3급 성기사 뿐.

정면승부로는 어찌 될지 몰라도, 여기는 그녀의 홈그라운드. 깔아 둔 마법이 몇 개인가. 마법 발현을 눈치채는 꼬맹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라면 자신 있다. 알아도 소용없을 정도로 설치된 마법을 퍼부으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뭐야?”

그 소년, 리안이라고 했던가?

녀석이 사역마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사역마를 알아봤어?’

그건 마법이 형성되기 전에 눈치채는 것과 궤를 달리한다.

아예 다른 종류의 마법이니까.

“…….”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위치가 들통 난 건 아니니까. 반대편으로 사역마를 날려 보냈다. 낚여서 따라가도 좋고, 아니어도 문제없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성기사 일행이 이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연이겠지.’

그 생각이 불안감으로 바뀌는 건 5분으로 충분했다. 놈들이 정확히 그녀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기 때문이다.

시르케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괘, 괜찮아……. 전투는 예상했으니까.’

예상보다 훨씬 빠르긴 하지만, 애초부터 예정된 전투.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다면 간단히 이길 수 있다.

입구부터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움직이지 못하게 속박하는 마법, 산성액을 뿌리는 마법 등. 마법사의 홈그라운드에 쳐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멍청하다.

그때, 리안이라는 녀석이 다시 사역마를 보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괜찮아. 어떻게 마법을 파악하는지는 몰라도, 해제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그렇게 진정시키는데, 녀석이 모퉁이의 기둥으로 다가갔다.

설치해 둔 모든 마법을 총괄하는 마법진의 중추.

‘……괜……찮아.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몰라도, 보호는 확실히 해 뒀으니까.’

보통 발견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없다. 중요한 만큼 온갖 마법으로 지켜 둔 상태다. 여기 마법의 절반은 마법진 중추를 지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녀석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마법진에 뿌리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다시 불안감이 치오르는 순간, 빛이 번쩍이며 마법진이 무효화 됐다. 시르케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 * *

“와 번쩍이는 것 봐. 그거 뭐예요?”

“마법사의 황혼. 모험가들이 쓰는 거야.”

“뭔가 비쌀 거 같은 이름.”

“…….”

쟨 머릿속에 든 게 돈밖에 없나?

실제로 비싼 건 맞지만. 전의 모험가들 시체에서 얻은 건데,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역시 뭐든 있고 볼 일이다.

지금쯤이면 시르케도 똥줄 탈 거다.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마법을 무효화하는 마법 물품. 당연히 마법사만 만들 수 있는데, 지들 밥줄 끊는 물건이 좋을 리 있나?

마탑 공식 제작 금지 품목이다.

만들다 걸리면 마법사 자격 박탈.

즉, 돈 있어도 못 구하는 물건이란 뜻이다.

사실 보통의 경우엔 있어도 큰 문제로 보진 않는다. 마법진의 중추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성-기사.”

“기사님이 그걸 왜 쓴 건지 묻는데요?”

“대충 지껄이지 말고.”

“에이, 궁금하니까 그냥 말해 줘요.”

하여간 넉살만 좋아선.

가루가 든 병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6성급 이하 마법들을 무효화하는 물건이야. 마법사의 영역에 그냥 들어갈 순 없지.”

“싸울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그보다, 시르케인지 뭔지 하는 사람 여기 있는 건 맞아요?”

“안전제일주의라. 있는지 없는지는 이제 확인해 보면 되고.”

대충 둘러댄 후 몸을 돌렸다.

“라키안 경. 들어가기 전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성-기사.”

“안에서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키안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성기사-.”

……알겠다는 거 맞나? 알아서 잘하겠지. 나보단 저쪽이 훨씬 전투 전문가니까.

“너는 밖에 있어라.”

“네? 왜요?”

“말했듯이,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음…… 고기 없는 고기 수프 같은 거 사 줬으면 그랬을 텐데, 얻어먹은 게 있어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요.”

아리나가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나름 능력 있어요. 견습이긴 해도, 웬만한 정식신관들보다 나을걸요? 주교님이 괜히 예뻐하시는 게 아니라니까.”

“전혀 예뻐하는 거 같지 않던데.”

“주교님이 좀 무뚝뚝한 편이긴 하죠. 처음 보는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쟤 볼 때마다 한숨 쉬던 건 기억나는데.

“어쨌든, 너무 걱정을 사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사정 설명하고 데려가면 끝인걸.”

“그럼 다행이고.”

그럴 거 같지 않은 게 문제지.

태연히 지낸다고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고문 받고 멀쩡한 게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신관의 전투법은 알지?”

“나대지 않는다, 개기지 않는다, 깝치지 않는다!”

“……그래.”

말투가 저렴해서 그렇지 맞기야 맞는 말이다.

평상시에는 못 지키는 것 같지만.

“위험할 거 같으면 바로 뒤로 빠지고.”

“네에.”

아리나가 나른하게 말꼬리를 늘렸다.

잔소리라 생각하나 본데, 조금 이따가도 그럴 수 있는지 보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좁은 복도에 수없이 많은 방.

원래는 저 방마다 침입자를 격퇴하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었겠지. 시간을 지체하며 피해까지 주는 확실한 방법이다.

확인 못 한 방을 무시하고 지나갈 순 없잖은가.

열면 설치된 마법이 쾅!

그중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면 끝. 정석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이젠 아니지만.

“성기사-.”

라키안이 내부를 보고 바로 검을 꺼내 들었다. 한눈에 마법사의 영역임을 알아본 거다.

반면, 아리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검은 왜 꺼내요?”

“뒤에 서 있어.”

“네?”

얼 타는 녀석을 잡아끌었다.

어차피 긴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보호받는 게 최선이다.

라키안이 선두에 서 걸었다.

원래는 이런 좁은 구조를 이용해 공격하는 마법도 설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넓은 방이 나왔다.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넓은 홀.

그 중앙에, 시르케가 서 있었다. 아리나가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신전에서 왔는…… 꺄!”

재빨리 녀석을 뒤로 잡아 던졌다.

“가, 갑자기 왜 그래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녀석에게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바닥의 파인 자국.

아까는 없던 것이다. 영창 없이 시전 된 공격 마법이었다.

“진짜 마녀…….”

아리나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 벽에 뚫린 3개의 구멍 때문이다.

[MW-1-23]

마법 무기 설치형 23번.

분명 마나포였다. 대기 중의 마나를 응집해 발사하는 무기. 예상 못 하기도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건 앞으로 5년은 뒤에야 나오는 물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게 아니란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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