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코드가 보여-24화 (24/225)

너의 코드가 보여 (24)

“……마녀사냥?”

마침 최근에 만난 마녀가 하나 있기 때문에, 자꾸 생각이 안 좋은 쪽으로 향한다.

“평민. 바이론이란 자를 아나?”

그럼. 네 아버지가 소개까지 시켜 준 사인데.

그보다, 저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면 역시 그쪽이 맞는 거 같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레이튼의 암흑가를 수년 만에 지배한 사내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능력을 모르고 있지.”

“마녀사냥이랑 무슨 관곈데?”

“그 바이론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뭐? 바이론이?

놈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건 최소한 3년은 지나서다.

즉, 스토리가 꼬였다.

“그리고 키탄의 신전에 마녀사냥을 요청했지.”

“마녀는 보라색 머리에, 빨간 눈동자. 맞아?”

“이미 알고 있었나? 평민. 정보가 빠르군.”

젠장, 생각대로다.

이쪽도 최소 10년은 마녀인 걸 들키지 않았을 텐데.

“그쪽은 마녀가 아니라 신전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마녀 사냥꾼이잖아.”

“……그런 것까지 아나? 우리도 이번에 겨우 알아낸 정보인데…….”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자이어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바이론이 신패를 가지고 있었다.”

“…….”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이해됐다. 신전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해되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데다, 신패의 사용까지.

너무 지나치다.

마녀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어서?

아니, 그래도 과하다. 마녀가 바이론의 능력에 대해 아는 건 극히 일부. 그것도 짐작. 모습을 드러내고, 신패까지 사용할 가치는 없다.

생각해 보자.

바이론이 저렇게까지 조급하게 나오는 이유가 뭘까? 치명적인 약점을 들켜서겠지.

그렇다면 바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은?

‘푸른 혈맥.’

이해가 안 간다.

푸른 혈맥 자체는 치명적인 약점이 맞다.

제국의 핏줄이란 소리니까. 황족 취급도 못 받던 방계 출신이기는 하지만, 3 왕국이 그런 사정까지 봐주진 않을 거다.

문제는 이거다.

푸른 혈맥을 아는지가 아니라, 푸른 혈맥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것.

푸른 혈맥이라는 단어를 아는 건 문제될 게 없다.

제국 기밀 중의 기밀.

요컨대, 제국이 멸망한 지금 시점에서 아는 건 극소수란 소리다.

내가 밖에 나가서 ‘자장면 먹고 싶다!’ 소리쳐 봤자 누가 관심이나 주겠나?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데.

그 신중한 바이론이 부하에게 얘기할 정도로 아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알 방법도 없다. 그런데 놈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건, 마녀가 푸른 혈맥에 대해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너희 아버지는 어떻게 연관된 거야?”

“신전에서 아버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바이론이 그걸 두고 봤어?”

“신패로는 협조를 요청할 수 있을 뿐. 어떻게 해결할지는 관여할 수 없다. 평민.”

바이론 답지 않은 실수. 그만큼 다급하다는 소리다.

“일단 너희 아버지 좀 보자.”

스토리가 꼬였지만, 내게 유리하게 꼬였다.

* * *

“무슨 생각이십니까?”

“뭐가 말인가?”

제리스의 물음에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답했다.

“마녀사냥 말입니다.”

“아, 그쪽 얘긴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신전에서 들어온 공식 요청입니다. 바이론, 그자가 얽힌 일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신전에서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내 일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미소 지었다.

제리스가 이렇게까지 본인 생각을 주장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이번 결정이 충격적이라는 소리겠지.

“그리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격이 맞지 않습니다.”

제리스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마녀를 색출하고, 사냥하는 것은 신전의 주요 임무 중 하나. 그만큼 중요하고, 위험합니다. 그런 임무에 아무 능력 없는 꼬마를 보내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 능력 없는 꼬마라…….”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툭툭 쳤다.

“자네 관점에는 두 가지 허점이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일단, 마녀사냥이 신전의 주요 임무는 맞지. 하지만 그 대상자가 누구인가?”

“마녀 사냥꾼입니다.”

“그래. 그것도 마녀재판을 통과한 마녀 사냥꾼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죄송합니다.”

모른다는 뜻이다. 이상할 건 없다. 마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능력이나 재판 과정에 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마탑과 신전에서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마녀의 능력도 모르겠군.”

“……네.”

그 말이 책망하는 것처럼 들려, 제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게.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니. 자네를 마녀와 싸우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능력은 몰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자네 실력은 믿지.”

제리스의 발끈한 모습에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웃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둘이 싸우면 어찌 될지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5성급 마법사와 3급 기사.

누구한테 물어도 3급 기사의 손을 들어 주겠지. 안 그래도 대인전에 약한 마법사. 심지어 3급 기사는 6성급 마법사와 비교할 급이지, 5성급과 비교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5성급의 마녀라면?

‘글쎄.’

그 의문을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녀재판은 한 달에 걸쳐 이루어지네.”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입니까?”

제리스가 놀라 되물었다.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보통 재판 시작 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마녀의 목이 걸리는 걸 본 탓이다.

“그래. 하지만 한 달을 채운 건 지금까지 그 마녀 사냥꾼, 하나밖에 없지.”

“어째서입니까?”

그만큼 신전의 심문이 뛰어나서?

한 달도 필요 없이 마녀임을 밝혀내는 것인지도 몰랐다. 제리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이어진 테이어의 말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일주일도 안 돼서 자살하기 때문이네.”

“……대체 어떤 심문을 하기에…….”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첫날엔 손가락을 자른다더군. 그리고 사제의 치유로 다시 이어 붙이네. 그걸 열 손가락 번갈아 가며 반복하는 거지.”

“…….”

상상도 못 한 방법에 제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둘째 날은 발가락, 셋째 날은 손, 넷째 날은 발. 오 일째 되는 날에는 선택권을 준다지. 눈이 파일지, 혀가 뽑힐지.”

“…….”

“일주일 이후로는 들은 바가 없네. 버틴 자가 없으니까.”

“그게…… 의미는 있는 겁니까?”

저런 심문…… 아니, 고문을 받으면 마녀가 아니라 할지라도 자백할 수밖에 없을 터. 아무 의미 없지 않은가.

“의미는 있네. 적어도 심문받던 자가 마녀인지 아닌지는 밝혀낼 수 있으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마녀는 영창을 생략하고, 마법을 발현할 수 있네.”

“그건…….”

앞의 말과 이어지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제리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대인전에 약한 이유는 한 가지.

영창이 오래 걸린다는 것.

한데 주문을 외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보이지도 않는 공격들이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걸 상상하며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뿐이라면 마녀가 배척당할 이유가 없지. 오히려 추앙받으면 모를까.”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마녀는 영창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네. 못 하는 거지.”

“……예?”

“본인이 마법을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일세.”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탁자 위의 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법사가 이 컵을 깨부수고 싶다 하면 어찌하겠나?”

“컵을 깨부술 마법을 영창하겠지요.”

“그렇지. 그럼 영창이 필요 없는 마녀는?”

“……모르겠습니다.”

“간단하네. 그냥 상상하면 끝이지.”

쨍그랑!

테이어의 손에서 떨어진 컵이 산산조각 부서지며 내용물을 온 사방에 흩뿌렸다.

“마녀는 마법을 조절할 수 없네.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지지. 배척받는 이유도 그걸세. 아무리 선한 자라도 평생 나쁜 생각 한 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

“그럼 고문을 받을 때는 어떤가? 눈앞에 자신의 손을, 발을, 혀를 자르는 자가 있다면, 그자를 죽이는 상상을 참을 수 있겠나?”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단지 의심만으로 그런 고문을 당한다면, 어떤 성자라 할지라도 분노할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제리스는 참아 낼 자신이 없었다.

“여태까지 신전이 잡아넣은 용의자의 유죄율은 100프로였네. 진짜 마녀여서 심문관이 살해당하든, 고문을 못 버텨 자살하든, 결국 마녀로 몰아 버리니까.”

“……하지만 마녀 사냥꾼은 그 재판을 통과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유일한 예외지. 그 고문에서 한 달을 버틴 자. 신전의 100프로 유죄를 깨부순 자.”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런 자가 이제 와서 마녀라고? 웃기는 소리. 신전도 신패 때문에 협조하는 척할 뿐, 진짜 마녀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재판도 하는 시늉만 하겠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내 권위를 인정한다는 제스처에 불과해.”

“……바이론은 그걸 모르고 신패까지 썼다는 겁니까?”

“그것까진 모르겠군. 알 필요도 없고.”

“예?”

제리스가 의문을 가득 담아 테이어 테르베로츠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계 1순위였던 바이론 아닌가.

갑자기 저런 반응이라니?

의아해하는 제리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웃었다.

“허점이 두 개라지 않았나. 잊은 것 같군.”

“……다른 한 가진 무엇입니까?”

“자네가 아무 능력 없다 했던 꼬마. 그 꼬마가 바이론에게 두 번이나 비수를 꽂았지.”

바이론 휘하의 B등급 스캐빈져. 그리고, A등급의 검사와 이번에 팽 당한 마녀 사냥꾼.

“……사자검과 바람의 마도사의 공적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거하게 뒤통수를 맞을 뻔하기는 했지만, 사람 보는 눈은 아직 자신 있네. 그 둘은 아니야.”

잠시 숨을 고른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말을 이었다.

“나는 리안, 그 녀석이 이번에도 뭔가 보여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네.”

“그 꼬마한테 말입니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바이론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거든. 그 녀석이라면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일세.”

“……그 말대로만 된다면 신전의 제스처에 호의적인 대답을 보일 뿐 아니라 바이론이 노리는 것도 알게 되겠군요.”

“그렇지.”

“그 말대로 된다면, 말입니다.”

제리스가 고개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꼬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럼 내기하지 않겠나?”

“……내기요?”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곧 내 아들이 그 녀석을 데리고 올 걸세. 그때 자네가 은신한 채 가까이 다가가는 거지. 눈치채면 내 승리, 아니면 자네 승리. 어떤가?”

“진담이십니까?”

제리스가 얼굴을 구겼다.

은신이 특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꼬마에게 걸릴 정도로 허투루 수련하지도 않았다.

“싫으면 관두게.”

“하겠습니다. 한데…….”

“한데?”

제리스가 깨진 컵 조각들과 카펫에 물든 액체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건 제가 치워야 하는 겁니까?”

“……하녀를 부르지.”

* * *

“안 합니다.”

“……이유가 뭔가?”

“제가 개호구로 보이십니까?”

바이론의 목적을 알아내라, 이건 쉽다. 이미 짐작하고 있기도 하고. 문제는 놈이 눈 뒤집힌 상태라는 것.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태다. 괜히 벌집 건드리기 싫으니 나한테 떠넘기려는 속셈 아닌가.

“목숨 구해 줬더니 선심 쓰는 척 경고하고, 이젠 방패막이로 쓰려고까지 하시는데, 사람이 정도가 있지요.”

“……일단 진정하게.”

“진정? 지금 진정이라고 하셨습니까? 저 새낀 또 뭡니까? 수틀리면 협박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NPC-1-149-3]

방구석에 떠오른 코드를 가리키며 묻자, 굳은 표정의 남자가 스르르 드러났다.

노블레스의 검, 제리스.

“……어떻게 안 거지? 심지어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숨을 생각이면 좀 씻으시죠,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

제리스의 얼굴이 굳어지자, 테이어 테르베로츠가 급히 입을 열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제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닙니다. 존중이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여태까지 충분한 존중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노블레스의 수장에게, 친구의 아버지에게 보인 존중이지요. 틀립니까?”

“……맞네.”

“한데 가주님께서 저를 대하는 행동을 보면 도저히 생명의 은인을 존중한다고 보기 힘들군요.”

몸을 돌렸다.

망설임 없이, 단호해 보이게.

“앞으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의 빚은 바이론에 대해 경고해 준 것으로 까지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문 앞까지 도달해,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잠깐, 사과하지. 맨입으로 부탁할 생각은 아니었네. 원하는 걸 말해 보게.”

월척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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