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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7화 (7/225)

너의 코드가 보여 (7)

레이튼은 벨리아 대륙에서 유일하게 지배자가 없는 도시다. 제국을 토벌한 세 왕국이 이 도시를 불가침 지역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세 왕국 모두와 국경선이 맞닿은 레이튼을 평화의 상징으로 삼겠다.’ 였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체 레이튼의 무엇을 보고 평화를 떠올린다는 말인가?

돈 없는 피난민, 부모 잃은 전쟁고아, 팔다리 날아간 장애인, 땅이 없는 농부 등등.

레이튼 인구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이다.

알 만한 사람들이 보기에, 레이튼은 쓰레기통이었다. 세 왕국이 원하지 않는 인간을 모아 놓는 쓰레기통.

하지만 세상엔 재미있게도, 그런 쓰레기통이 어울리는 쓰레기들도 있는 법이다.

대표적으로는 범죄자들이 그러했다.

왕국에서는 항상 숨어 살아야 했지만, 레이튼에는 그들을 잡아갈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레이튼에 모인 놈들이 하는 일이야 뻔했다.

고아들을 착취해 돈을 버는 인간, 아예 조직을 만들어 버린 인간, 혹은 용병의 탈을 쓴 스캐빈져까지.

하나같은 쓰레기들이지만 제각기 놀던 그들을 모아 복종시킨 건 바이론이라는 한 명의 남자였다.

“그래서, 디노가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한테 당했다. 이 말인가?”

바이론의 목소리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그 앞에 선 용병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반년도 안 돼서 레이튼 암흑가를 집어삼킨 괴물이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그건, 단순히 강하다는 이유로 설명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예, 예! 정확히는 사자검 라이놀에게 목이 베였지만, 그 꼬맹이가 없었으면 디노 형님이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흐음…….”

바이론이 무덤덤한 얼굴로 용병을 바라봤다.

그 무덤덤한 눈빛이 마치 자신을 꿰뚫는 기분이 들어서 용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짓말은 아니네.”

“제가 어찌 거짓말을…….”

“전부 얘기한 것도 아니고.”

“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바이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도망쳤어?”

“그, 그건 디노 형님이 패배하시고 도저히 승산이 안 보여서…….”

“아니, 그거 말고.”

바이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 싸우기도 전에 도망갔잖아.”

“아, 아닙니다! 저는 디노 형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싸우다…….”

“습격에 디노를 제외하고 열여덟 명.”

용병의 입이 다물어졌다. 인원은 보고한 적이 없었다.

“마법에 다섯, 네가 얘기한 그 꼬맹이가 여섯. 도망친 일곱 중 우리 애는 너뿐이네?”

“그, 그걸 어떻게…….”

용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치 눈앞에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아, 됐어. 그냥 죽어라, 너.”

“잠…… 커어억.”

바이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병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단지 바이론의 말 한마디에 죽어 버린 것이다.

바이론은 그 모습에 시선도 주지 않고 창가로 다가갔다.

“마나도 없이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지. ‘푸른 혈맥’인가? ……재밌네, 나 빼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그가 창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세상에 푸른 혈맥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푸른 혈맥은 죽을 때 어떤 감정을 내뱉을까? 상상만 해도 기대된다.

* * *

“신체 훈련은 오히려 독이라니까!”

“저는 괜찮다니까요.”

“아니, 안 괜찮다고!”

라이놀이 후…… 하고 작게 한숨 쉬었다.

리안의 후견인이 되기로 한 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건 동시에, 리안이 그들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기간이기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첫날부터 검법을 배워야 했지만, 리안은 운동을 시작했다.

라이놀이 아직 리안에게 어울릴 검법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놀은 하는 수 없이 리안에게 도시 구경이나 하라며 용돈을 쥐여 줬다. 앞으로 고생할 게 뻔하니 미리 놀아 두라는 뜻이었다.

리안은 그런 라이놀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라이놀도 처음에는 그냥 기특했다.

저 어린 나이에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운동을 하던 리안이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밖으로 나간 것이다.

라이놀은 조금 실망했다.

겨우 하루 만에 질려서 놀러 나갔다는 생각이었다. 역시 애는 애인가. 생각하는 와중에 위층에서 자고 있던 다린이 내려왔다.

“하아아암. 좋은 아침.”

“아침은…… 해가 중천에 뜬 거 안 보여?”

“내가 일어나면 그게 아침이지. 근데 리안은 어디 갔어?”

“방금 나갔다. 놀러 간 거 같은데.”

“흐음. 운동은 벌써 질렸나 봐?”

“어차피 거기서 신체가 더 강해진다 해도 마력 패스만 좁아질 뿐이니까.”

다린이 라이놀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얼굴에 실망했다고 다 쓰여 있는데?”

라이놀이 움찔, 몸을 떨었다.

부정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그의 동생은 어릴 때부터 사람 표정 읽는 데 선수였다.

“……실망하지 않았냐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애초에 내가 검법을 못 고른 탓도 있고, 실제로 운동은 더 하지 않는 편이 좋기도 하고.”

“놀라고 돈 준 것도 오빠고 말이지.”

“……그래.”

라이놀은 다린을 쥐어박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제는 그가 부린 고집을 다린이 받아 줬으니까.

“별로 실망한 것도 아니야.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난 데다가, 재능이 묻히는 게 아까웠을 뿐, 리안이 혹시라도 다른 길을 가고 싶어 한다면 강요할 생각도 없어.”

“오, 어른스러운 대답. 혹시 올해 춘추가?”

“까불지 말고 올라가라.”

“넵, 어르신.”

“…….”

문제는 저녁에 터졌다.

쾅!

“꺅! 뭐, 뭐야?”

“젠장, 습격인가!”

1층에서 들려온 충격 소리에 라이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레이튼에서 강도가 드는 건 흔하지만, B등급 둘이 사는 집에 쳐들어올 간 큰 놈들은 없다.

숲에서 도망친 용병들이 복수하러 온 건가?

무리해서라도 다 죽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다급히 1층으로 내려가 보니 리안이 난처한 표정으로 부서진 벽을 보고 있었다.

“언제 돌아온 거야! 괜찮아?”

“아, 그…… 저는 괜찮은데…….”

“습격자는? 밖인가!”

“……네? 습격자라뇨? 아, 잠깐만요!”

라이놀은 습격자를 쫓아 밖으로 달려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습격자는커녕 지나가던 행인들이 두려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온 라이놀에게 리안이 상황을 설명했다.

“……맨몸운동이 너무 시시해서 흑철석을 사러 나갔다고?”

“네, 흑철석이 가장 무겁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그걸 휘두르다 놓쳐 버렸고.”

“……그,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서…….”

“몇 킬로짜리였는데?”

“……대장간에서 200킬로짜리라고…….”

“…….”

“……죄송해요.”

리안이 진심으로 후회하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라이놀은 잔소리하지 않았다. 벽은 고치면 되고, 천운으로 다친 사람도 없었으니까.

대체 몸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음 날부터 리안은 유료 훈련장으로 나갔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수련할 공간을 빌려주는 곳이었다.

라이놀이 더 이상의 신체 단련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설명했지만, 리안은 태연히 괜찮다고 할 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라이놀은 리안을 존중했다. 마력 패스에 대해 문외한도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저러는 건 병이다.

운동 중독.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역할을 길잡이 정도로 생각했기에, 리안에게 운동을 그만두라고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길잡이는 길을 제시할 뿐이다.

길로 잡아끌고 갈 수는 없다. 일주일도 안 되어 훈련장 주인이 찾아와 사정하기 전까진 그랬다는 소리다.

“돈은 전부 돌려줄 테니 제발 그 녀석 좀 훈련장에 못 오게 해 주시오!”

“일단 진정하고 말씀하시지요. 리안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잘못한 건 없소. 오히려 잘못은 내가 했지.”

“……무슨 말입니까?”

“내가 그 녀석 좀 쫓아내 달라고 용병 10명을 고용했거든.”

라이놀은 황당해져서 입을 열었다.

“아니, 잘못한 것도 없다면서 왜 그런…….”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소!”

주인의 기세에 라이놀이 움찔했다.

“그 녀석이 다녀가면 남아나는 기구가 없어! 바닥은 온통 부서지고, 벽엔 구멍이 뚫리고!”

“……말리지 그러셨어요.”

“용병 10명을 주먹으로 때려눕힌 녀석을 말이오?”

“…….”

“그리고 지금 말려 달라고 찾아오지 않았소.”

B등급 용병인 그보다 리안이 더 무섭다는 소리다.

주인을 돌려보내고 라이놀은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 * *

“그래서 그새끼 돈 돌려받았어요?”

“……그래. 안 받는다고 했는데 기어코 주고 가더라.”

“다행이네요. 안 돌려줬으면 멱을 따 버리려 했는데.”

라이놀이 한숨 쉬며 나를 쳐다봤다.

뭐? 나는 잘못한 거 없다.

“들어 보니 주인 입장도 이해가 가던데.”

“이해하긴 뭘 이해해요? 어떤 가게가 손님 내쫓으려고 용병을 고용해? 그것도 열 명이나.”

“……그건, 그렇다만.”

“애초에 부서진 것도 다 변상할 생각이었다고요. 대뜸 용병부터 고용한 게 누군데?”

옆에서 보던 다린이 제 오빠가 불쌍해 보였는지 한마디 했다.

“근데 변상하는 것도 애초에 오빠가 준 돈…….”

“줬으면 끝이죠. 애초에 이런 데 쓰라고 준 돈이잖아요?”

“……아니, 놀라고 준 돈이었는데…….”

“전 원래 이러고 놀아요.”

라이놀이 다시 한숨 쉬었다.

“그래 그 문제는 이제 됐어. 하지만 신체 단련은 그만둬.”

“전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래. 원래는 나도 네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네 재능은 너무 아까워.”

“그게 전부예요?”

“……너 운동 중독도 치료하고.”

라이놀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이 세계는 검 휘두르며 훨훨 날아다니는 세계관인데, 웃기게도 운동은 권장하지 않았다.

이 세계 사람들이 유독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그 시간에 마력 수련이나 하라는 식이어서 그렇지.

‘운동 중독’은 진짜로 병으로 등록까지 돼 있다.

심지어 그 기준은 하루 2시간이다.

하루 2시간 꾸준히 운동하면 병으로 본다는 소리다.

내가 훈련장을 많이 부숴 먹은 것도 그 탓이다. 뭔 훈련하라고 만든 훈련장이 그렇게 작단 말인가?

어쨌든 신체 단련을 그만둘 수는 없다.

‘초인’의 진짜 능력은 육체의 성능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육체의 ‘한계’가 없어지는 거니까.

단련할수록 강해지고, 마력 패스도 넓어진다.

“며칠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는 신체 단련해도 마력 패스 안 좁아진다니까요?”

“그런 신체는 없다니까. 기사들이 다 멍청해서 신체 단련을 안 하는 줄 알아?”

“저만큼 신체 단련한 사람은 있고요?”

“…….”

그 말에는 라이놀도 대답을 못 했다. 본 적 없었을 테니까. 옆에서 보던 다린이 중재에 나섰다.

“들어 보니 해결 방법은 간단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내일 마탑에서 마력 패스 테스트해 주는 날이거든. 그거 받아 보면 되잖아?”

“아…….”

“몰랐어?”

“아니, 우리 집엔 테스트기가 있었잖아…… 마탑에서 그런 것도 해?”

“응. 돈은 받지만.”

라이놀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아. 그럼 내일 그 검사 받아 보고 다시 얘기하는 걸로. 됐지?”

“하아…… 알겠어요.”

운동해야 하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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