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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6화 (6/225)

너의 코드가 보여 (6)

뻥!

뻥!

모두의 시선이 날아가는 스캐빈져에게 몰렸다.

사람이 공처럼 날아가는 장면은, 생각 이상으로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마음대로 씨부리는 건 좋은데 말이야. 이쪽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X밥들이.”

검집 채로 스윙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타격감 죽인다.

야구는 보는 것만 좋아했지 직접 해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손맛이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그랬다.

“리, 리안?”

“아, 다린. 지원은 안 해 줘도 되니까 방어 마법 좀 펼치고 있을래요?”

“으, 응.”

다린이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직접 한 나도 신기한데 오죽할까.

사람을 검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직 거부감이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때리는 건 거부감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으로 공격하기 힘들다면 검집으로 공격하자!

지금의 몸으로 검집 채 사람에게 휘두르면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냥 어디 부러지는 정도를 기대했는데, 사람이 공처럼 날아갈 줄은 몰랐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어디 보자…… 이제 열한 명 남은 건가? 볼 부족할 일은 없겠다.”

내 중얼거림에 용병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 * *

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용병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이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 항상 칼부림 속에 살아가는 용병들이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에는 그들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이 검에 맞고 공처럼 날아가다니, 말이 되는가?

“씨, 씨X! 저 꼬맹이는 뭐야!”

“형님! 저 새끼 마나 없다고 했잖아요!”

“없는 거 맞으니까 닥쳐 봐!”

디노가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분명 마나는 없다.’

혹시나 싶어 다시 체크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저 꼬맹이의 몸에는 마나가 조금도 없다. 한데 저 괴력은 뭐란 말인가?

‘설마 그냥 신체 능력이라고?’

마나도 없이 저런 괴력이라니,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지만,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B등급 용병이라는 건, 사실상 용병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A등급까지 올라갈 실력의 용병이면 때려치우고 기사 하지 용병을 왜 하겠나? 대륙에 단 3명밖에 없다는 S등급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B등급 용병이라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란 뜻이다. 그리고 베테랑 용병이란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 몇 번 정도는 겪었다는 소리다.

디노의 판단은 빨랐다.

‘내가 해치워야 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이지만, 마나가 없으면 상대법은 간단하다. 검 채로 잘라 버리면 된다. 마나는 모든 물리력에 우선하니까.

문제는 눈앞의 라이놀.

‘상황이 역전됐군.’

디노가 쓰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 급한 것은 상대 쪽이었는데, 이제 시간이 부족한 쪽은 자신이다.

‘더 쓰러지기 전에 꼬맹이를 해치워야 한다.’

지금보다 숫자가 더 줄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디노가 소리쳤다.

“이봐! 내가 그 꼬맹이를 상대할 테니 너희는 여기 와서 시간을 끌어라!”

“B등급 상대로? 미쳤수?”

“잠깐이면 돼! 1분이면 된다!”

“1분?”

용병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B등급 상대라지만,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멍하니 리안 쪽을 바라보던 라이놀과 다린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도망치는 놈은 잡지 않는다. 하지만! 나한테 달려드는 놈은 무조건 벤다!”

“내 쪽도 마찬가지야. 달려드는 사람은 두 동강 날 줄 알아!”

그 말에 용병들이 판단을 마쳤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B등급 검사와 B등급 마법사.

1분이면 그들 중 절반은 죽어 나자빠지고도 남는다.

디노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딱 1분이면 된다! 저놈들 물건 팔면 얼마나 나올지 생각해!”

“지랄! 쉬운 일이라고 해서 따라왔더니!”

남은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가 뒷걸음질 쳤다. 디노를 따라다니던 용병을 제외한 전원이었다.

“씨X, 애초에 이렇게 많이 모은 것부터 이상했어. 우린 빠질 테니 알아서들 하쇼!”

“이런 개새끼들이! 시간만 끌면 된단 말이다!”

용병이 디노를 비웃었다.

“B등급 상대로 시간 끌다 몇이나 뒤지라고? 게다가 저런 괴물 꼬맹이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아무튼, 우린 빠질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용병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디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도망치는 용병들을 쳐다봤다.

라이놀이 그런 디노에게 검을 겨눴다.

“솔직히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 상황이 좀 바뀐 것 같죠?”

라이놀은 씨익 웃었다.

“디노 씨는 보내 줄 생각 없으니까 포기해요.”

디노도 마주 검을 겨누며 생각했다.

‘X 됐군.’

* * *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라이놀이 하품을 하는 리안을 바라봤다.

그 모습만 보면 단순한 아이처럼 보인다. 단순한, 이라기에는 너무 잘생기긴 했지만.

어찌 됐든, 저 모습을 보고 사람을 날려대는 괴력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직접 본 라이놀도 믿기 힘들 정도니까.

열여섯이나 됐을까?

용병이 되겠다며 길드에 찾아오는 고아들은 흔하다. 레이튼에서 고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구걸을 할 게 아니라면 결국 양아치 용병을 선택할 수밖에.

그랬기에 리안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렇다 할 기대를 하진 않았다.

몬스터 잡겠다는 아이가 처음이긴 했지만, 한 번 나가 보면 금세 겁먹고 돌아가겠지. 그 정도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안다.

“리안, 잠깐 다린이랑 얘기 좀 나눠도 될까?”

“네? 아. 뭐, 그러세요. 그럼 저는 먼저 길드에 가 있을게요.”

“고맙다. 금방 갈게.”

리안이 길드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라이놀이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리안의 후견인이 되고 싶어.”

“뭐?”

라이놀의 뜬금없는 말에 다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했는데, 이 인간이 미쳤나?

“후견인이 뭔지는 알지?”

“당연하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알고?”

“물론.”

“귀족만 가능한 것도 알아?”

“모를 리가 있나.”

“그럼 이제 귀족도 아니면서 왜 지랄인데!”

다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르고 고운 말만 쓰려고 했는데, 어제부터 그게 너무 힘들다.

“귀족은 아니어도 귀족이긴 했잖아. 게다가, 가문의 재산이나 보물들도 남아 있고.”

“그거 안 쓴다며!”

다린은 어이가 없었다.

제국이 망한 후, 가문의 숨겨진 보물고를 털자고 한 건 그녀였고, 가문을 나간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며 반대한 건 그녀의 오빠였다.

주인 없는 보물이 무슨 죄냐며 그녀가 설득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 뭐?

그리고!

털 거였으면 애초부터 용병질 안 했지!

“주인 없는 보물이 무슨 죄겠냐. 후학을 위해 쓴다면 조상님들도 기뻐하지 않을까?”

“그거 내가 했던 말인 거 알지?”

다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진정하고 좀 생각해 보자. 후견인이 그렇게 쉽게 뱉을 단어는 아니잖아. 나도 리안은 마음에 들지만,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잖아.”

“음…… 생각했어.”

“……그래서?”

“후견인이 될래.”

“아악!”

다린이 본인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인간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중증이다. 애초에 리안이 그렇게 힘이 센 이유도 모르지 않는가!

“다린, 진정하고 들어 봐.”

“듣기 싫어.”

“저 나이에 저 정도 육체야. 마력 패스가 그만큼 작아졌을 테니 한계는 있겠지만, 영초 쑤셔 먹이면 최소 2급 기사는 확정이라고!”

“오빠야말로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버려두기엔 저 재능이 너무 아깝잖아.”

“전혀 안 듣고 있네…….”

다린이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우린 리안이 강한 이유도 모르잖아.”

“타고났나 보지."

“……영초를 얼마나 먹여야 할지도 모르고.”

“있는 만큼 먹이면 되지.”

“……인성이 어떤지도 모르고.”

라이놀이 다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리안 인성에 문제 있어 보여?”

“그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눈칫밥 엄청나게 먹은 다린이다.

리안을 본 건 어제가 처음이지만, 인성 문제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특정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건 사소한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 나오는 거니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웠고, 이해심이 넓었으며, 배려심이 넘쳤다.

그건 라이놀의 그 긴 잔소리를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들었다는 게 증명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만난 상대에게 후견인은 좀 과하다.

“아무리 그래도 후견인은…….”

“대신 실험실 차려 줄게.”

“콜!”

……거절하기엔 너무 큰 미끼였다.

* * *

“후견인이 되고 싶다고요?”

“그래. 리안 네가 원한다면, 이지만.”

무슨 얘길 하려고 둘이 남나 했더니 이쪽이었나. 후견인이야 나에게는 나쁠 것 하나 없는 이야기다.

문제는 후견인 쪽.

내가 뭔가 잘못하면, 후견인이 책임을 진다.

게다가 후견인은 나에게 물질적으로 지원할 의무가 있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건 도의적 책임뿐.

사실상 호구 계약인데.

“아니, 어제 만났는데 뭘 믿고 그런 제안을 해요?”

“리안, 너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하루만 봐도 사람 인성이 보인다.”

“…….”

지랄.

그렇게 사람을 잘 봐서 마지막에 뒤통수 맞고 죽냐? 그리고, 애초에 내가 라이놀보다 나이도 많다.

이 세계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없나?

하루 보고 사람 인성을 어떻게 판단해.

“사람 그렇게 쉽게 믿다간 큰코다쳐요.”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뒤통수치는 사람 못 봤지.”

“많은데요.”

내 퉁명스러운 답변에도 라이놀은 태연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숨만 절로 나온다.

그보다 다린은 어떻게 된 거지?

라이놀이 동생 동의도 없이 막 결정할 정도로 막무가내도 아니고, 이런 인간관계 쪽에선 다린이 더 신중할 텐데.

마지막에 라이놀이 죽은 것도, 다린이 있었다면 막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 사건 전에 사망하니까.

“다린도 동의한 거예요?”

“으, 응? 나? 나야 당연히 바로 동의했지!”

“다린은 그래도 좀 정상인 줄 알았는데…….”

“다린에게는 실험실을 차려 주기로 했다.”

“오빠!”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이해됐다.

미끼에 낚였구나.

게임에서도 툭하면 용병 관두고 마법 연구하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뭐 저야 나쁠 거 없죠. 뭘 줄 수 있는데요?”

내 말에 다린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리안…… 그렇게 안 봤는데 뻔뻔한 구석도 있었네.”

“하루 보고 사람 판단하지 말라고 했죠? 그리고, 준다는데 받을 건 받아야죠.”

“역시 사내라면 당당한 구석도 있어야지.”

“오빤 진짜 맛이 갔구나?”

한숨 쉬는 다린을 뒤로하고 라이놀이 말을 이었다.

“너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는 귀족이었다.”

알고 있다.

그것도 무가로 이름 높던 귀족가.

“워낙 어릴 때 가문을 나와서 마력 심법은 알려 줄 수 없지만, 검술을 가르쳐 주고, 영초를 지원해 줄 수 있어.”

라이놀이 숨을 한 번 내쉰 후 말을 이었다.

“리안, 네가 그렇게 강한 이유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이건 알아 둬. 너는 신체가 강하지만, 그만큼 마력 패스가 좁아졌을 거야. 영초 없이 마력을 키우는 건 불가능해.”

“…….”

특성 ‘초인’ 덕분에 마력 패스는 오히려 넓어졌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안 그래도 영초가 필요하기도 했고.

“저도 받기만 하는 건 그러니까 한 가진 약속드릴게요.”

“뭐를?”

“이 선택. 절대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요.”

후원 좀 해 준 대가가 두 사람 목숨이면, 둘에겐 남는 장사 아니겠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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