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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5화 (5/225)

너의 코드가 보여 (5)

“오빠 진짜 미쳤어! 그런 소릴 듣고도 어떻게 참아?”

“다린.”

라이놀이 계속 흥분 상태인 다린을 툭툭 치며 내 쪽을 가리켰다.

날 보고 참아라, 뭐 이런 뜻이겠지.

효과가 있었는지 다린이 조금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못 참아. 다음에 만나면 마법부터 갈기고 볼 거니까 그때도 나 말렸다간 어떻게 되나 봐.”

“걱정 마. 그땐 나도 말릴 생각 없으니까.”

라이놀이 싸늘한 눈초리로 말했다.

하긴, 라이놀이라고 그런 소릴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참은 이유는 내가 있다는 거 하나뿐이었겠지. 아마 다음에 만난다면 다린의 마법보다 라이놀의 검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나는 내심 한숨 쉬었다. 그냥 나 신경 쓰지 말고 싸우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다. 이들 성격에 그런다고 싸웠을 거 같지는 않다.

당장이라도 칼 뽑을 분위기의 두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할 말은 해야 했다.

“아는 사람인가요?”

“……미안, 못 볼 꼴을 보였네. 나쁜 쪽으로 좀 유명한 인간이야. 소문뿐이긴 하지만.”

“소문은 무슨!”

다린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런 파티 이끌고 이런 데 다닐 이유가 뭐가 있는데? 더러운 스캐빈져 새끼들…….”

다린의 입에서 기어코 험한 말이 나왔다.

게임에선 욕하는 거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 귀중한 구경 하네.

스캐빈져는 강도질을 일삼는 용병 무리를 뜻하는 은어였다.

실제 스캐빈져와의 차이점은, 진짜는 단지 있는 시체를 청소할 뿐이지만 이쪽은 시체를 ‘만들어서’ 청소한다는 점이었다.

하……. 처음 나오자마자 만나는 게 스캐빈져라니.

운이 쓰레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라이놀과 다린과 있을 때 만난 걸 운이 좋다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이런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내 운이 쓰레기라는 건 증명된 거 아닐까.

한숨은 제쳐 두고 입을 열었다. 일단 대책부터 짜자.

“둘 다 오래 참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저 새끼들. 우리 따라오고 있거든요.”

“뭐?”

라이놀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아마 기척을 탐색하는 모양. 그렇게 한참 있더니, 곧이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리는?”

“음…… 제 걸음으로 5분 정도? 꽤 떨어져 있어요.”

“이상하군. 분명 우리 상대가 안 되는 건 알 텐데…… 리안을 인질로 잡을 생각인가?”

“흥, 고민해서 뭐 해?”

다린이 씩씩거렸다.

“다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리안, 저기 숨어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저를 인질로 잡을 생각만은 아닐 거예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태세의 다린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라이놀에 비하면 침착성이 부족하다. 이쪽이 더 나이대에 어울리는 거 같긴 하지만.

“한 명이 중간에 빠졌어요. 원군이라도 부르려는 거 아닐까요?”

“뭐? 넌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니? 누난 오늘따라 네가 낯설다…….”

“아니, 오늘 처음 만났는데 낯설고 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황당하네. 어쨌든 색적 방법에 대해선 말할 필요 없겠지. 아까 일이 있어서인지 대충 믿기는 하는 거 같고.

사실 애초에 설명할 자신도 없다.

“어쨌든 저희가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 정도 되겠네요.”

“……원군이 합류하기 전에 선수를 치든가, 함정을 파든가, 맞나?”

“맞아요.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못 써먹어요.”

“왜? 숫자가 늘어나기 전에 먼저 치는 게 낫지 않나? 그 왜 선수 필승! 이란 말도 있고.”

“……상대를 안 해 주겠군.”

역시 똑똑하다.

게임에서도 스캐빈져는 유저들의 혐오 대상이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중 뜬금없이 난입하는데, 정작 몬스터를 먼저 해치우지 않고서는 공격도 못 했다. 치고 빠진다는 설정이라.

“저희가 따라붙으려고 하면 동료들 있는 곳까지 도망칠 거예요. 결국 싸움은 정면 승부가 되겠죠. 저쪽 패거리가 몇 명인지 아세요?”

“꼭 파티를 짜서 같이 다니는 건 아니지만, 아마 저기서 더 해 봤자 5명 정도 아닐까?”

이쪽은 B등급 두 명과 나. 저쪽은 B등급 하나와 C등급 열.

B등급 하나가 보통 C등급 열 명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다린은 마법사.

분산되어 오는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면승부로는 불리하니까, 함정을 파죠.”

“……생각은 좋지만, 나는 반대한다.”

“왜?”

다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것보다 좋은 생각 있어? 난 모르겠는데.”

“확실히 함정을 파는 게 우리에게 유리하지. 하지만 리안은?”

“아…….”

다린이 그제야 깨달은 듯 나지막이 숨을 내뱉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했다. 함정을 파자니 내가 걸리는 거겠지. 숨겨 두자니 저쪽에서 낌새를 눈치챌 거고, 놔두자니 지킬 자신이 없을 테니까.

뭐, 사실 어느 쪽을 고르든 별 의미는 없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려는 순간. 먼저 입을 연 건 내가 아니라 라이놀이었다.

“괜찮아. 내가 최대한 디노를 빠르게 해치운다. 그리고 다린이랑 나머지 놈들 해치우면 돼.”

“뭐어, 그렇지. 나도 C등급 떨거지들한테 당할 만큼 약하지는 않고. 낙승이지, 낙승.”

애써 여유를 가장하고 웃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낙승은 개뿔. 처음 만난 꼬맹이 지키려고 목숨 거는 놈들이 어디 있냐? 호인도 정도가 있지.

“난 괜찮아요. 함정을 파죠.”

“하지만 리안.”

입을 여는 다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린의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였다. 아무리 B등급이라 해도 겨우 20대. 이런 상황에 익숙할 리 없다.

“미안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방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니까 한 번만 믿어 봐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초인 특성 달고 C등급 용병한테 당할 거 같지는 않았다.

* * *

“뭐? 야영 준비를 한다고?”

“그렇다니까요. 씨X, 집에 갈 생각이 없나?”

디노가 하늘을 쳐다봤다. 야영 준비를 하기엔 이른 시간일뿐더러, 보통 도시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 시간에 도시까지 걸어가고 말지. 누가 노숙을 하고 싶겠는가?

‘우리가 노리고 있는 걸 알아챘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세히 얘기해 봐.”

“뭐 얘기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겠수, 그 애새끼 있잖슴까? 그놈이 겁먹고 도망치다 다리라도 다친 모양이유. 어찌나 징징거리던지.”

“뭐? 다리를 다쳐?”

“근처에 오크 한 마리 있었는가 보오. 오크 면상 보자마자 줄행랑을 친 거지.”

“흠…….”

초보 용병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몬스터도 오크다. 땅딸막한 고블린이나 잡다 험악한 돼지 면상을 마주치면 검도 못 뽑는 놈이 부기지수다.

‘오크라도 만났다면 이상할 건 없지.’

고블린들이 주로 서식하는 숲이지만 오크가 없는 건 아니다. 꼬맹이가 오크를 눈앞에서 마주쳤다면 충분히 패닉에 빠질 만하다.

‘하늘이 돕는군.’

디노가 씨익 웃었다.

“준비해라. 저놈들 털면 1년은 놀고먹는다.”

오오!

스캐빈져들이 작게 소리쳤다.

그 인원이 총 열여덟 명.

라이놀의 예상을 한참 초과한 숫자였다.

* * *

지지직.

어설프게 만든 텐트 근처에서 모닥불이 타오르고, 그 앞에 라이놀이 앉아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저놈들 진짜로 노숙을 하네.’

디노는 기가 차서 생각했다. 저 둘 실력에 위험할 일이야 없겠지만, 노숙이란 그 자체로 굉장히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자야 하는 건 물론이요, 아무리 모닥불이 있다 해도 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불침번까지.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용병들도 야영은 최대한 피했다. 여기저기 쏘다니는 거지 같은 모험가 놈들이나 즐기겠지.

‘나 같으면 그냥 베어 버렸다.’

노숙을 하느니 다친 놈을 죽여 버리고 시체를 턴다. 그 돈으로 숙박과 술값까지 해결이다. 이게 일거양득이 아니고 뭔가.

‘멍청하기는.’

디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 목숨이 가장 싸구려인 시대 아니던가.

디노는 그 멍청함에 감사했다.

그 덕분에 자신들 같은 인간들이 먹고사는 것 아니겠나.

디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손을 내리면 이제 모든 용병이 캠프를 향해 화살을 발사할 거다.

잠들어 있는 마법사를 해치우는 건, 고블린 멱 따는 것보다도 쉽다.

‘그래도 조금 아쉽군.’

꼬맹이를 인질로 삼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했는데, 상황이 너무 잘 풀려 인질을 잡을 이유도 없어졌다.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며 디노가 손을 내리려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씨X! 숙여!”

디노의 말에 반응한 것은 두 명뿐. 그것도 경로에 있던 다섯 명은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크아악!”

“아악!”

그 대가로 그들은 하반신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젠장! 알고 있었나!”

눈치챌 방법은 없을 텐데!

이런 짓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다. 거리도 충분히 벌렸고, 소리도 죽였다. B등급이라 해도 눈치챌 건덕지가 없었단 말이다.

디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상치 못한 손해. 전력은 여전히 유리하지만, 목표는 ‘손해 없이’ 처리하는 거였다. 손해를 보는 순간 그건 사냥이 아니다. 싸움이지.

버러지들이 죽는 건 알 바 아니다. 오히려 떼어 줄 몫이 줄어드니 좋다. 문제는 그의 자존심이다. 습격하는데 ‘선빵’을 맞은 건 처음이다.

마찬가지로 라이놀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너무 많다.’

다린의 마법에 죽은 것이 다섯. 그런데도 열 명은 넘어 보인다. 그가 애초에 예상한 열 명을 훨씬 초과한 숫자다.

‘오늘 여기서 죽겠군.’

그는 절대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디노를 이길 자신은 있다.

같은 B등급에 경험도 그가 훨씬 많았지만, 그래 봤자 용병 출신의 양아치. 이름난 무가였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을 익힌 자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그가 디노를 해치울 때까지 다린이 C등급 용병 열세 명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라이놀의 판단은 빨랐다.

“다린, 리안 데리고 도망쳐.”

“그게 무슨 말이야! 미쳤어!”

“닥치고 말 들어!”

라이놀의 목소리에 다린이 움찔했다.

라이놀이 그녀에게 화를 내는 건 평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디노가 라이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신파 찍는 건 좋은데, 이쪽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누가 보내 준다고 했지?”

그가 씨익. 웃었다.

“그쪽한테 죽은 우리 애들 목숨값은 내고 가셔야겠는데.”

“지랄, 지랄하네!”

다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 번 들어와 봐! 순서대로 지옥에 보내 줄 테니까!”

“다린!”

“안 가! 못 가!”

다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빠도 알잖아, 나 체력 저질인 거. 도망쳐 봤자 금방 잡힐 거야.”

“…….”

“그리고, 내가 오빠를 두고 어떻게 가? 혼자 폼 잡기는.”

라이놀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검을 겨눴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디노를 쓰러트린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디노의 입가에 웃음이 돌아왔다.

어떻게 기습을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됐다.

그는 사람들이 죽기 전 하는 행동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반응도 못 하고 죽으면 시시하다.

버러지 몇 명 내주고 이런 장면 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이득이지.

게다가 재밌는 장면은 아직 하나 더 남았다.

“너희 둘은 저 꼬맹이 잡아서 팔부터 잘라 버려.”

“안 돼!”

남자 둘이 리안에게 다가가는 걸 보고 다린이 공격 마법을 준비했다. 그걸 본 용병들이 그녀에게 화살을 날렸다.

방어 마법을 쓰지 않으면 그 화살들이 다린의 몸을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법 한 번 못 쓰고 죽을 터. 마법사가 대인전에 약한 이유 중 하나다.

다린이 황급히 공격 마법을 취소하고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디노는 그 모습을 보고 웃다 검을 들어 올렸다.

챙!

“어이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그럼 우리도 놀아 볼까?”

으드득!

라이놀이 이를 악물었다.

상대는 공격할 마음이 없었다. 시간만 끌 속셈인 게 분명하다.

절망적이다.

그렇게 조급함이 커져 가는 순간.

뻥!

이 자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용병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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