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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코드가 보여-3화 (3/225)

너의 코드가 보여 (3)

게임에는 수천 개의 스킬, 특성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플레이어들이 쓰는 스킬들은 몇 가지로 정형화되기 마련이다.

유저들이 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스킬 세팅이 정해져 있을 뿐.

게임에서 검사 유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합은 ‘마력 검사’였다.

실제 검사 NPC들도 대부분 선택하고 있는 방법으로, 그 이론은 매우 간단하다.

오직 마력에 몰빵!

힘? 마력으로 강화하면 된다.

민첩? 육체 강화하고 빠르게 움직이면 끝이다.

체력? 그런 거 단련할 시간에 마나 회복력이나 늘려라.

검사라고 육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이 세계에는 만능의 마력이 있나니.

“비효율적이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 강화 계수가 신체 능력에 비례한다는 것.

1의 신체에 10의 마력을 주입하는 것보다 5의 신체에 5의 마력을 주입하는 게 훨씬 강하다.

물론, 유저들이나 NPC들이 그런 단순한 사실을 몰라서 신체 단련을 등한시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거다. 인간의 신체는 단련될수록 마력 패스가 좁아진다는 것.

1의 신체로 1의 마력을 모으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5의 신체로 1의 마력을 모은다면 어떨까? 최소 한 달은 걸린다.

마력을 먼저 모으고 신체를 단련하는 꼼수도 불가능했다.

마력에는 육체를 고정시키려는 힘이 있다. 마력이 많을수록 자연스레 잘 늙지 않고, 상처도 빨리 아문다.

세상사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따라오는 법.

신체가 발달할수록 마력 모으기가 힘들어지듯, 마력이 늘어날수록 신체가 발달하기 힘들어진다.

검사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딜레마.

신체와 마력. 둘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게 결과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비효율적.

효과적이지만 비효율적이라는 모순 앞에 대부분의 검사들은 신체 능력을 포기하고 마력을 선택한다. 신체엔 한계가 있지만, 마력은 한계가 없으니까.

“뭐, 나는 상관없지만.”

구입한 검을 가지고 돌아와 휘파람을 불었다.

무기를 지니니 아무것도 없을 때에 비교하면 안정감이 천지 차이다. 마음에 여유가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결론은 그거다. 몸이랑 마력 둘 다 챙기면 존X 세다는 거다.

유저들 공인 이론상 최강의 조합을 만들면 끝이다.

특성 ‘초인’을 지닌 마력 검사.

초인은 위에 나열한 모든 단점을 씹어 먹는다.

육체 능력은 인간을 초월하고, 마력 패스는 오히려 넓어진다. 문제는 하나.

“괜히 ‘이론상’ 최강인 게 아니지.”

초인 특성을 얻으려면 신체 단련만 10년은 해야 한다. 그것도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한 모든 시간.

당연히 10년 동안 마력도 못 모으고 퀘스트도 진행 못 한 시점에서 게임 오버. 인류는 멸망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이야기 끝.

그런 이유로 이론상 무적.

얻을 수만 있다면 최강 조합의 완성이지만, 완성할 시점에는 게임이 끝난다. 컨셉 플레이하는 놈들 아니면 아무도 시도 안 한다.

하지만 콘솔 창이 있다면 어떨까?

“콘솔 창.”

[명령어를 입력하세요.]

[현재 포인트: 5,000]

포인트 획득 방법을 몰라 아껴 두었지만, 당장 행동해야 하는 판이다. 괜히 아끼다 겨우 고블린한테 독침 맞고 죽기라도 하면 웃음도 안 나온다.

‘특성 초인 획득.’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특성 초인 획득.”

혹시나 싶어 말로도 해 봤지만 마찬가지다.

코드에만 반응한다 이건가?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조금 아쉽긴 하다. 애초에 콘솔 창이라는 게 코드만 입력 가능하기도 했다.

'SK-1-34'

[SK-1-34의 획득에는 1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역시 부족한가…….”

초인은 최고 등급의 특성이다.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두 배나 필요할 줄이야. 아쉽지만 하위 특성인 철인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고민하다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코드지?

누군가 날 여기로 보낸 것이라면 알아보기 쉽게 상태 창을 주는 게 낫다.

단순히 ‘남성 용병 C등급’이라고 표시하는 게 [NPC-1-MC-C] 이 지랄보다 훨씬 보기 편하지 않은가.

“……이유가 있다면?”

단순한 망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날 여기로 보냈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단순히 내가 개발자였기 때문에 코드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다.

하지만 상상하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자. 상태 창과 코드의 차이점이 뭐가 있지?

상태 창은 단순한 글자의 나열인 반면 코드는 알파벳과 숫자의 나열. 무엇보다 상태 창은 단순히 ‘표기’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유저가 게임을 건드려서 상태 창의 ‘초인’을 ‘걸인’으로 바꾼다고 쳐도 플레이어가 정말 걸인이 돼 버리는 건 아니다. 표기되는 글자만 바뀌었을 뿐, 코드는 그대로니까.

“코드는 생성, 변경이 가능하다.”

생성하는 것과 변경하는 쪽.

어느 쪽이 포인트 소모가 클 것인가.

[FD-1-001]

남은 육포를 꺼내 확인해 보았다. [FD-1-002], 고기 수프를 만드는 데 소모되는 포인트는 100. 반면 육포를 고기 수프로 만드는 데 소모되는 포인트는…….

“30밖에 안 든다.”

육포를 만드는 데 20포인트가 들어가니 육포를 만들고 고기 수프로 변경하면 50포인트를 아끼는 셈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코드 사용 방법을 대충 알겠다.

* * *

「초인(S)」

―육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마력 패스가 크게 넓어진다.

―신체 잠재력의 한계가 없어진다.

만드는 데 1만 포인트가 드는 S등급 특성을 코드 변경을 통해 겨우 4천 포인트로 획득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지만,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몸에 힘이 넘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단언컨대 태어나서 이렇게나 컨디션이 좋은 적은 없었다.

아직 마력은 없지만, 이 정도면 고블린에게 맞아 죽을 일은 없겠지.

“슬슬 용병 등록이나 하러 가 볼까.”

밖으로 나가 성격 좋아 보이는 사람한테 길을 물어 용병 길드를 찾아갔다.

화려하진 않지만 상당한 크기의 건물.

칼과 방패가 교차한 모양의 간판. 그 옆에 투박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필체로 용병 길드라 쓰여 있었다.

간판도, 건물 모양도 내가 설계한 것과 비슷했다. 새삼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우거도 겁먹고 도망갈 만큼 험악한 면상의 남자가 접수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씨X 용병 길드 접수원은 미모의 접수원이 국룰일 텐데. 왜 미인은커녕 드래곤이라도 잡으러 가야 할 거 같은 남자가 저기 앉아 있는 거야. 인류의 극심한 손해 아닌가?

아니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평가하는 건 나쁜 습관이지.

저런 외형에 반전매력으로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캐릭터는 이제는 흔하다 못해 꼭 등장하는 클리셰급 캐릭터 아니던가.

“안녕하세요. 용병 등록 좀 하러 왔는데요.”

“꺼져라 X만아.”

“…….”

생긴 대로 노네 X새끼가. 관상은 과학인가?

그때 내가 들어올 때부터 쭉 지켜보던 젊은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하하. 레칸 씨, 애한테 그렇게까지 겁줄 건 없잖아요.”

“네가 저놈 책임질 것도 아니면 꺼져라.”

“역시 레칸 씨, 너무 착하다니까.”

“…….”

멀쩡하게 생겼는데 또라인가 보다.

어떻게 저 문장에서 저런 감상이 나올 수 있지? 마음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대도 착한 감정은 1도 안 보일 것 같은 인간인데.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꼬마야, 네가 잘 몰라서 용병 일이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무기 들고 사람들 협박하고 다니는 거, 그거 전혀 멋있는 일 아니야. 일할 곳이 없어서 그런 거면 내가 아는 가게에 소개해 줄 테니 한번 가서 일해 볼래?”

“…….”

이 나이 먹고 길 어긋난 청소년 설득하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의 용병에 대한 인식이 저러니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저는 몬스터 사냥하러 나갈 거예요. 사람들 삥 뜯는 양아치 말고요.”

“뭐? 몬스터를?”

남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미안. 용병 되겠다고 오는 애들은 많이 봤는데 몬스터 잡을 거라는 녀석은 처음 봐서…… 검 휘둘러 본 적 있어?”

“아니요. 이 검도 방금 산 거예요.”

“그야 그렇겠지. 검 가격도 만만한 게 아닌데…….”

남자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마침 오늘 몬스터 사냥을 나갈 예정이기는 한데…… 가방도 있겠다 한번 짐꾼으로 따라와 볼래? 용병이 될지 말지는 그 이후에 결정하는 걸로. 어때?”

남자를 조금 바라보고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좋아요. 저도 혼자 나가긴 좀 무서웠거든요.”

“그래. 보수는 부산물을 나누는 걸로 하고…… 파티원 좀 불러올 테니 저기 가서 잠시 앉아 있을래?”

“네.”

* * *

레칸이 남자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이지?”

“생각은요, 무슨. 그냥 저 나이대 애들 특유의 근거 없는 치기죠. 밖에서 몬스터 한 번 보면 바로 그만두지 않겠어요?”

“흥,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녀석이.”

남자가 쓰게 웃었다.

20대의 나이에 B등급 용병이 된 그에게 앞가림도 못 한다고 말하는 건 레칸밖에 없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말만 저렇게 할 뿐, 걱정하는 마음으로 꺼낸 말인걸 알았다.

“안전한 곳으로만 다닐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레칸 씨, 애들 용병 되겠다고 찾아오는 거 싫어서 일부러 험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는데 적당히 해 둬요. 어차피 애들 반은 입구에서 레칸 씨 얼굴만 봐도 도망가는데.”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

“뭐…… 그렇게 말하시면 할 말 없네요.”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몬스터 잡겠다고 나서는 애는 처음인데 기대되지 않으세요?”

레칸이 얼굴을 찡그렸다.

“기대는 무슨. 처음 보는 놈 믿고 따라간다는 걸 보면 일주일도 안 돼서 뒤통수에 칼 맞고 뒤질 게 뻔하지.”

고아들을 꾀어 위험한 일에 써먹는 건 이 도시에서 얘깃거리도 못 된다.

다행히 남자가 그런 부류는 아니었지만 저렇게 순진해서는 이 도시에서 절대 오랫동안 못 살아남는다.

아이에게 너그러운 동네도 아니다.

이 동네에서 아이는 단순히 쓰고 버리기 좋은 소모품일 뿐.

딱 일주일 후면 뒷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될 팔자. 레칸은 그렇게 평가했다.

“또 그러신다. 제가 인상 좋기로 유명한 거 모르세요? 게다가…….”

그가 웃는 얼굴로 레칸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알아요? 의외로 재능 있을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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