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
―여기가 끝이야.
남자의 모습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히 말을 이었다.
―여기가 세계의 끝.
―끝……이라고?
그 앞에 있던 검을 든 남자가 대답했다.
―그래. 애초부터 가능성은 없었어. 이게 유일한 결말이야.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백, 수천 개의 평행세계를 들여다봐도 다른 결말은 없었어.
―그럼, 내가 해낸 모든 일은……?
검을 든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미안.
남자의 안쓰러워하는 표정과 함께 세계가 암흑 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엔딩 X같네.”
차마 게임이 X같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문제는 엔딩이다. 어째 후반부부터 싸하더라니…….
“아니, 잘 나가다가 엔딩을 왜 이딴 식으로 만들지?”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 하지만 꼭 해피엔딩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배드엔딩은 배드엔딩 나름의 맛도 있지. 그래.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면.
많고 많은 엔딩 중에서도 최악의 엔딩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거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아, 시X 꿈’ 엔딩.
“진짜 되는 게 없네…….”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역시 욕하는 글 천지였다.
[제목: 제작자 어머니 안녕하시냐?]
제발 안녕하시길 빈다.
―안녕하시면 니가 뭐 어쩌게 ㅂㅅ아
ㄴ만수무강 하셨으면 좋겠다고
[제목: 지금 엔딩 봤는데 실화임?]
진짜 미안. 하고 끝이라고? 지금 뭐라도 더 나올 줄 알고 검은 화면에서 30분째 켜 둔 상태임
―아, 미안하면 어쩔 수 없지 ㅋㅋ
ㄴ그건 맞지 ㅋㅋㅋㅋ
―진짜 그게 끝 맞으니까 불쌍한 컴퓨터 그만 굴리고 얼른 게임 삭제해라 이런 거 담고 있는 하드디스크가 불쌍하다
[제목: 이딴 식으로 엔딩 낼 거면 그냥 다시 리안한테 넘기지]
아무리 못해도 이것보단 낫지 않겠냐?
―응 싸지르고 튄 책임감 없는 새끼보단 낳아~
ㄴ낳긴 뭘 낳아 ㅂㅅ아
ㄴ공짜 겜 하면서 책임감 운운하는 수준 ㅋㅋㅋ
ㄴ리안이 책임감 없는 건 아니지 돈 한 푼 안 받고 3년을 제작했는데……그것도 마지막엔 무료로 개발 코드까지 풀고 갔고
[제목: 리안 돌아와 제발]
엔딩 좀 다시 내 줘…… 후원도 할게…….
―이미 없는 제작자입니다.
―코드 넘기고 소식 한 번 없는데 지도 게임 만들던 거 잊어버렸다는 게 학계 정설.
“…….”
무얼 숨기랴. 저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원작자 리안이 나인 것을…….
한숨을 내쉬며 커뮤니티를 나갔다.
‘벨리아 대륙 전기.’
강철의 아르곤.
신비의 칼페온.
이종족 연합 겔리안.
악의 제국 카디안.
세 왕국과 주인공이 연합해 악의 제국을 멸망시키는 1부, 그리고 이계의 존재들을 막는 2부로 나누어진 흔하디흔한 판타지 게임이다.
문제는 그게 내가 만든 게임이라는 거다.
3년을 만들다 지쳐 포기해 버렸던 게임.
만들어 둔 게 아까워 인터넷에 공유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사람들이 이것저것 추가해 가더니, 결국에는 내 흔적을 찾는 게 더 힘들어진 누더기 같은 게임.
“하아…….”
혼자서 3년을 제작한 게임이다. 애정이 없을 리가 없다. 잊어버렸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겨 놓고 이래저래 참견하는 꼴이 될까 봐 있는 티만 안 냈을 뿐.
일을 하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커뮤니티에 들러 소식을 확인하고, 엔딩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바로 플레이하기 위해 본업까지 제쳐 두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런 엔딩은 좀 아니지…….”
중간에 포기한 주제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입맛이 쓰다.
마우스를 움직여 개발 페이지에 들어갔다.
[Hello, world!]
프로그래머들에게 가장 익숙한 글자가 떠오른 후, 이런저런 단어가 화면에 드러났다.
[MON-2-174-1]
[NPC-1-134-2]
[CS-24]
몬스터 암컷 174번 암흑 구렁이 새끼.
NPC 남자 134번 레이놀드 청소년기.
저주마법 24번 실명.
간단하게 입력할 수 있도록 상태를 요약해 놓은 코드들. 개발에서 손을 놓은 지 3년이나 되었건만 뭘 의미하는 코드인지 아직도 전부 기억이 났다. 그 정도로 영혼 팔고 몰두하긴 했지.
콘솔 창을 열어 뭔가 입력했다 지우기를 수십 번. 결국 한숨을 내쉬며 창을 닫았다.
사람들 말대로 다시 잡아 볼까 했지만…… 여기까지다.
중간에 포기한 것도 나.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긴 것도 나.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걸 보고도 방치한 것도 나.
몇 년을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원작자랍시고 엔딩을 새로 만드는 것도 우습다.
그래, 내가 뭐라고 이제 와서 엔딩을 다시 만드나?
사람들도 지금에야 엔딩을 보고 원작자 돌아오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사실 아마추어인 나 혼자 제작하던 시절보다 수많은 능력자의 손을 거쳐 가다듬은 이후가 게임으로서 훨씬 완성도 높긴 했다.
그걸 이제 와서 내가 다시 손대면 아마추어가 프로한테 ‘게임 진짜 조까치 만드셨네요.’ 욕하는 꼴밖에 더 되겠나.
‘그래도 내가 만들었으면 해피엔딩으로 만들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느껴지는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