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제272장 달콤한 제안 甘 提案
“천마라는 자와 명의 황제가 하남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황군은?”
“먼저, 천마와 황제가 움직이고 그 뒤를 따라오는 듯합니다.”
하남에 마련된 안가 安家.
그곳에서 수하의 보고를 듣던 북원의 반쪽짜리 황제, 울탄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울탄바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폐하, 황군이 하남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적어도 칠 주야는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황제를 죽일 적기입니다.”
“황제와 천마를 덮치자?”
“네!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바쳐 만들어 준 둘도 없을 기회입니다!”
동맹을 맺었던 황자징과 연락이 끊기고,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울탄바.
그는 가뜩이나 반쪽짜리 황제라 불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결과물도 없이 피해만 보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자, 결국.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수하들을 따로 모아 최후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바로, 훌륭한 전사들로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세뇌 교육한 어린아이들을 소림으로 들여보내 소림에 큰 피해를 주고, 그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황제가 이곳을 찾았을 때, 그를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여 명예를 챙기기로 말이다.
“명 황제와 함께 죽게 된다면 그 누구도 폐하의 정통성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병적으로 황제의 정통성에 집착하는 울탄바.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정통을 증명하길 원했고, 그 수하들 또한 그런 울탄바의 마음을 알기에 죽음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 수하, 투르의 말에 울탄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자랑스러운 북원의 황제. 후대에게 길이 남겨질 자랑스러운 황제가 될 것이다.”
“맞습니다!”
“예! 북원의 황제로서 당당하게 떠나시지요!”
울탄바의 말에 투르와 다른 수하들이 흥분 어린 어조로 동조했다.
그들 또한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사들.
그들의 이름이 후대에 남겨질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수하들의 뜨거운 감정에 동조하듯 울탄바 또한 가슴이 두근거렸고, 곧 기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우리 전사들의 인원은?”
“모두 삼천입니다.”
“꽤 많군.”
“모두 다, 폐하의 덕이지 않겠습니까?”
울탄바의 말에 투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울탄바.
비로 정통성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반쪽짜리 황제였지만 그는 제법 훌륭한 전사이자, 군주였다.
그렇기에 그를 진심으로 따른 이들이 많았고, 그중에서 가장 대표 격인 투르가 아첨하듯 말하자 기분이 좋은 듯 울탄바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화락!
기운을 일으켜 검은 불꽃을 소환하였다.
순식간에 울탄바의 오른팔을 뒤덮는 검은 화염과.
우웅!
그로 인해 불안한 기운을 내뿜으며 공명하는 대기.
“아아…….”
“오오!”
그런 울탄바의 모습에 마치 신성한 신을 보듯 투르와 수하들이 감탄했고, 울탄바는 그런 수하들에게 더욱더 강한 기운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전군, 출전을 준비하라.”
“명을 받듭니다!”
* * *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맹주.”
중원 최대의 명소임과 동시에 소림이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를 잡은 숭산 崇山.
늘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붐비던 숭산 입구에 마련된 소림의 임시 거처에서 외조부인 천진과 주윤문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해 보여 다행입니다.”
칠십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혈색을 지닌 천진.
그런 천진의 모습에 주윤문이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에 천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은덕 덕분입니다. 그때의 조언,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하, 조언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이지요.”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천진의 인사에 주윤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그렇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전에 따로 만난 적이 있으신가 봅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보면 둘은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주윤문이 천진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었고, 천진은 그런 주윤문의 조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물음에 천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따로 독대하여 은혜를 받은 적이 있네.”
외손자인 것을 떠나, 이제는 어엿한 마도 魔道 의 주인, 천마가 되어 버린 나.
그런 나를 향해 천진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사석입니다.”
“사석이라도, 한 세력의 주인이며, 나와 동등한 동맹일세, 어찌 말을 낮추겠는가?”
“그럼, 존대하세요. 극존대.”
“허허!”
애매하게 반존대하는 천진을 보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기만 했다.
웃음으로 넘기려는 것이었다.
거참,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애매하기 그지없는 천진의 행동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고개를 돌려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황군에게서 연락은 왔어?”
“응, 용호장군이 조장급 병사들만 데리고 오기로 했다. 한 칠 주야 정도 걸릴 것 같다는군.”
북원과 황자징의 망할 동맹으로 인해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네 개의 성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 가장 강한 나와 주윤문이 먼저 하남성으로 움직여 북원의 남하 南下를 막기로 하였다.
하남을 통과하면 중부에 위치한 성과 중부를 넘어 남부에 위치한 성들까지,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북원의 남하로 인해 엄청난 인파의 백성들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장군들과 장로들, 기타 무인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와 주윤문이 마음만 먹는다면 반나절도 안 되어 하남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격렬하게 반대하는 그들과 같이 움직이면 칠 주야라는 긴 시간이 걸려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갈 텐데 말이다.
뼈를 때리는 나와 주윤문의 말에 황군은 물론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먼저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무림연합에서는 부맹주와 부성주, 그리고 본교의 일장로가 오기로 했다. 각 세력의 대표 무력대 하나씩 해서 황군과 같은 숫자, 총 일천. 황군과 함께 움직일 거야.”
“칠 주야인가.”
“그렇지, 길지?”
황군과 연락을 주고받은 주윤문.
그리고 정 正, 사 邪, 마 魔 연합인 무림연합 武林聯合 과 연락을 주고받은 나.
주윤문의 정보에 나 또한 무림연합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에 주윤문은 지겹다는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에 동조하듯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에 주윤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 또한 주윤문의 두 눈을 마주하였다.
그러고는.
씨익.
동시에 서로 미소를 지었다.
“내기하실?”
“좋지, 내가 이기면 서역과의 교역에 관한 세금 내라.”
“양아치세요?”
“크큭.”
내기 요구로 교역 세금을 원하는 주윤문.
대대적으로 신강에 대한 자치권을 확립해 온 본교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전쟁 선포와도 같은 그의 조건에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우리가 먼저 가자.”
진지한 어조로 주윤문이 말했다.
북원의 습격을 기다릴 것도 없이 먼저 쳐들어가서 조지자는 주윤문의 말.
무리하기 짝이 없는 그 제안에.
“좋지.”
나는 큰 흥미를 느껴 버렸다.
주윤문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주윤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크흠!”
그에, 가만히 지켜보던 천진이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할 말 있으십니까?”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집중시킨 천진.
그런 천진을 보며 주윤문이 묻자 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진지한 눈빛으로 주윤문의 두 눈을 마주하였다.
“폐하.”
“말씀하세요.”
“부디 북원에 한 번의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 지금, 나와 극신이 말한 그 북원에 말입니까?”
“예.”
주윤문의 되물음에 천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이 손을 들어 탁자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우웅!
그의 몸에서 붉은 기류가 뻗쳐 나와 공간을 뒤덮었다.
녀석, 세게 나온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도 나는 속으로 그저 생각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나설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까지 긴장될 정도로 매서운 기운을 맘껏 내보인 주윤문이 모든 것을 굽어살피는, 절대자의 눈과 위엄으로 천진을 내려다보았다.
“맹주, 벗의 조부이기에 한 번의 말실수는 봐주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은 없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가득 담긴 주윤문의 말.
그 말에 천진 또한 자신의 부탁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아는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에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북원은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자그마치 일만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
“그런 북원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 감히 짐의 자식과 같은 백성들을 죽인 놈들을?”
자식, 많이 분노했나 보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말 까고 말이다.
뭐, 황제니 그럴 수도 있지, 애초에 녀석이 맹주인 천진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는 것도 다 나 때문일 테니 말이다…….
붉어진 두 눈과, 강해진 콧김.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주윤문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고 그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나는 주윤문이 화를 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무튼, 분노 어린 주윤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천진이 정순한 내공을 담아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말하라.”
천진의 말속에 담긴 정순한 기운으로 인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금 가라앉힌 주윤문.
그가 대답했다.
스윽.
주윤문의 대답에 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주윤문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어나라고는 하지 않았고.
천진은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북원의 왕은, 울탄바라는 자로 북원의 마지막 황제였던 자의 사생아입니다.”
“…….”
“그자 또한 황족의 피를 이었기에 제 벗이자, 원의 황태제였던 토구르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니, 과거를 잊고 속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보인 끔찍한 행동에 분노했고, 자신들의 민족들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여?”
“부디, 자비를 베풀어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북원은 명 제국에 충성을 바치며 평생을 형님 국가로 모실 것입니다.”
“…….”
천진의 말에 주윤문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당이 매력적인 조건이라 순간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에 기회를 포착한 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죽은 일만의 백성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원을 속국으로 둠으로써 북쪽의 야만족들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방의 야만족들이 움직이기 전에, 북원이 나서서 그들을 저지할 테니까요.”
“…….”
“폐하, 매년 겨울이 되면 북방의 야만족들이 제국을 습격하여 죄 없는 백성들을 약탈하지 않습니까? 매년 일만에 가까운 백성들과 병사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만약 북원에 한 번, 은혜를 베푸신다면 그 피해를 더 이상 입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았다.
지금 당장은 일만이라는 백성이 죽어 분노하여 그들을 멸하려고 하지만, 천진의 말대로 북원에 은혜를 베풀어 속국으로 삼는다면 북원은 당장 자신들 또한 살기 위해서, 또 그들의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서 북방의 야만족들을 막아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매년 겨울 쳐들어오는 골치 아픈 야만족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희생당하는 병사와 민초들의 수도 줄어들게 될 것.
명나라의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것을 콕 짚은 천진의 말에 주윤문이 흥미를 보인 듯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자 공간을 가득 메웠던 주윤문의 붉은 기운이 사라졌고, 턱을 쓰다듬으며 잠깐 고민하던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맹주.”
“하명하시옵소서.”
주윤문의 부름에 예를 갖춘 천진이 즉각 대답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옵소서.”
주윤문의 입에서 나온 긍정적인 말.
그 말에 천진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고, 주윤문은 그런 천진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토구르, 그자가 직접 북원의 신하들을 이끌고 와 짐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물론이옵니다.”
주윤문의 조건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천진.
그에 주윤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곧,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교주.”
“뭐?”
공적으로 대화하기를 위해 나를 교주라 부른 주윤문.
그런 녀석의 부름에 나는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이 짧다?”
“너도 짧아.”
“…….”
“…….”
“아무튼, 네 조부의 부탁이니 네가 정리해라. 난 안 나선다.”
“넌 뭐 하려고?”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나에게 알아서 정리하라는 주윤문의 말에 내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주윤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볼품없게 나서서야 쓰나. 근엄하게 뒤에 앉아서 수하들이 가져온 승전보를 받아들며 축하해 주어야지.”
“뭐래.”
지X이다.
무리하게 내공을 소모하여 거대하기 짝이 없는 적룡 赤龍을 소환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한 편의 경극을 펼친 놈치고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