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제271장 어찌해야 質問
“끄아아악!”
“제발! 제발! 살려 줘!”
쿵.
뒤로부터 들려오는 고통에 가득 찬 처절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두꺼운 철문을 닫은 나는 맞은편,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주윤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북원 전체를 끌어들이다니, 제정신 아닌 놈이야.”
고문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싱거울 정도로 자신이 했었던 모든 일을 상세히 실토한 황자징.
그로 인해 모든 정보를 얻게 된 내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말하자 그에 동조하듯 주윤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원과 전쟁을 할 생각이지?”
무거운 표정의 주윤문을 보며 내가 묻자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두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저 무거운 표정이 나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말이다.
녀석의 대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교로 돌아가 서은설과 혼례를 올리고, 그녀에게 집중하며 삶을 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또 멀어지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수백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
사사로운 나의 바람은 잠시 접어 두는 것이 맞았다.
그에 다시 한숨을 내쉰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나가자.”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산동성의 지하 감옥으로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에 코를 훌쩍거리며 말하자 주윤문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앞장선 나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밖을 나온 우리는.
“극신!”
“윤문!”
우리를 반겨 주는 아름다운 두 명의 여인, 서은설과 아스나를 만날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두 명의 여인들.
나는 서은설에게, 주윤문은 아스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들을 안심시켰고, 곧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무림인들과 황군들 때문이었다.
벌컥.
황제의 명을 받아 산동성의 통치를 담당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정문 너머에 마련된 넓은 마당에서 수십 명의 사내가 똑바른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황제 폐하와 무림대공을 뵙습니다!”
황제인 주윤문의 신변을 보호하고, 황제의 편에 서서 반역도와 적대한 나에게 붙여진 이름, 무림대공 武林大公.
황군의 수뇌부들과, 무림맹의 부맹주, 장로들.
그리고 사황성의 부성주와 무력대주, 본교의 장로들인 녀석들까지.
각 세력의 수뇌부 모두가 모인 이곳에서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
그런 나의 행동에 나와 나란히 있던 주윤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녀석의 두 눈을 마주하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제인 녀석의 권위를 세울 겸, 격려든 감사든 알아서 하라는 나의 배려였다.
그런 나의 뜻을 알았을까?
주윤문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군들과, 무림인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명 제국의 황제, 주윤문이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주윤문의 자기소개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했다.
황군, 무림 등 각자의 소속을 떠나, 천자 天子인 주윤문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는 모습은 웅장했고, 그런 웅장한 인사를 받은 주윤문은 그에 화답하듯 위엄 어린 모습과 기운을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 武林 이라는 이름으로 자치권을 지닌 그대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들은 짐의 백성이다. 그런 그대들을 배척하고 명의 원수와도 같은 북원의 무리를 끌어들여 해하려 한 짓, 비록 내가 한 짓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 짐이 부덕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에게 사과하겠다. 미안하다.”
“황공하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히 용서를 구하는 주윤문의 행동에 무림인들이 예를 갖추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무림인들이 대답에 주윤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조용히 내리깔고 있는 황군의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짐이 부덕하고 못났을 뿐.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죽여 주시옵소서! 폐하!”
황제인 주윤문이 반역도의 손에 의해 최악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황제와 나라를 지켜야 할 자들이 반역도를 도와 황제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잘못을 면천해 주려는 주윤문의 행동에 장군들은 면목 없다는 듯 나머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는 주윤문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깊게 읍하며 죄를 청하는 장군들.
그런 장군들의 행동에 살짝 한숨을 내쉰 주윤문이 손을 들어 가볍게 휘저었다.
휘잉!
“어어!”
그러자 산동성 관청 아래,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곧 무릎을 꿇은 장군들의 신체를 일으켰다.
그 기이한 현상에 장군들은 두 눈을 크게 떴고, 곧 주윤문의 가공할 내공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감탄했다.
그들의 주인인 황제가 보여 준 엄청난 신위에 경외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장군들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를 지운 주윤문이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반역은 끝나지 않았다.”
척!
주윤문의 입에서 나온 무거운 단어, 반역.
그 말에 황군, 무림인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세를 곧추세우고는 곧 결연한 눈으로 주윤문을 올려다보았다.
그에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 제국의 영토에 감히, 더러운 발을 디뎌 짐의 백성들을 해한 북원의 무리들. 짐은 그들을 벌할 것이다. 이의 있는 자, 있는가?”
“없습니다!”
주윤문의 물음.
그 물음에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지금 당장 황군은…….”
북원의 무리를 멸하기 위해 황군에게 진북 進北을 명하려던 순간!
“황제 폐하! 그리고 교주님!”
그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다급한 사마천의 음성이 주윤문의 말을 막아섰다.
그에 장군들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사마천의 다급한 표정을 인상을 굳혔다.
평소와 다른, 다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마천의 모습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사마천의 모습에 일제히 옆으로 물러나 길을 터 준 황군과 무림인들.
그들을 지나쳐 주윤문과 나의 앞에 도착한 사마천인 한쪽 무릎을 꿇었고, 곧 다급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남, 소림이 참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
사마천의 입에서 나온 다급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담긴 말에 나와 주윤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다른 성도에 들어가는 요충지인 하남.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소림이 참변을 당했다는 뜻은 곧, 다른 성도로 갈 수 있는 길이 뚫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애초에 소림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세력이었다.
정파 무림맹 전력의 삼 할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곳이 곧 소림이거늘, 그곳이 하룻밤 사이에 참변을 당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나와 주윤문이 놀란 표정을 짓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가 알려 준 대로, 바람을 이용하여 폭탄을 잘 막았습니다. 사찰의 피해가 조금은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현저히 적었고, 백성들의 피해도 전무했습니다.”
“헌데, 왜?”
사마천의 보고에 주윤문이 답답했는지 다급한 음성으로 다그쳤다.
그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북원이 세뇌시킨 아이들을 인질로 위장하여 소림에 들어가게 한 후…….”
“한 후……?”
“그대로 자폭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인간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리기를 포기한 북원의 끔찍한 행동에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분노 어린 표정을 지었다.
* * *
약초 향이 가득한 방 안.
그곳에서 나는 전신에 붕대를 두른 채 누워 있는 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왔는가?”
그런 나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잠에서 깬 공진이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곧 나를 발견하고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에는 붕대를 감지 않아 표정을 알 수 있었지만, 화상이 심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못난 얼굴, 더 못생겨졌네.”
“크크, 그런가?”
나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 공진.
하지만 곧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괴로웠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소림의 기본 근간이 외공 外功 이라서 말이야.”
신체를 단련하며 스스로를 수양하는 소림.
소림의 모든 무공은 천 년 전, 외공으로부터 시작되어 발전해 왔다.
그렇기에 소림의 제자이자 수호자인 공진은 어린 시절부터 외공을 꾸준히 수련해 왔고, 그로 인해 폭탄의 바로 앞에서 폭발에 휩쓸렸음에도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전신에 화상을 입은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나의 말에 공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는 건가?”
“아니, 이 정도 못생겼으면 그냥 죽는 게 나았겠다.”
“크클, 그럴 수는 없네.”
삐딱한 나의 말에 공진이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왜?”
죽을 수는 없다는 공진의 대답.
그에 내가 의문을 가지며 묻자, 공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나의 눈앞에서 자폭한 어린아이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모르지.”
직접 보지 못했는데 내가 알 리가 있겠는가.
그런 나의 대답에 공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공포였네.”
“…….”
“공포에 질려 두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었지.”
그래, 두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세뇌가 되었다 하더라도 어린아이는 아이.
스스로가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안다.
다 큰 어른도 죽음 앞에서는 무너져 밑바닥을 보이는 것을, 어린아이가 어찌 그것을 초연하게 버티겠는가?
그에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공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두려운 눈망울이 나를 응시하였네, 그리고 간절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지. 살려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
“도대체! 그 아이는 무슨 죄인가! 가족들의 품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가!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다니! 그것은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하거늘, 왜 어린아이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단 말인가!”
“공진.”
“어찌! 사람의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 맑고 순수한 아이에게!”
스윽.
“…….”
흥분으로 인해 붉어진 얼굴과 두 눈, 금방이라도 주화입마에 들 것만 같은 녀석의 모습에 나는 손을 뻗어 수혈을 짚었다.
공진 이 녀석은 지금 환자이다.
분노해서는 안 될, 절대 안정이 필요한 중환자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점혈로 공진을 재웠고, 곧 의원을 불러 일그러진 표정으로 인해 터진 고름을 닦으라 일렀다.
그에 흰 수건으로 공진의 얼굴을 닦은 의원은 곧 그 상처에 다시 약초를 발랐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다음 밖으로 나왔다.
“들었습니까.”
그렇게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보였다.
나의 외조부, 천진.
그리고 그의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노인, 전생에서는 기마기괴 氣魔奇怪 라 불리었으며, 내가 애용하는 옥색의 섭선, 뇌선의 주인이자 원 제국의 황족이었던 토구르가 말이다.
공진의 절규와 같았던 말.
그 말을 일부러 들리도록 기운을 조절했던 나의 물음에 토구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곧,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교주.”
“말하세요.”
“내가 어찌해야겠는가?”
나의 대답에 그가 말했다.
그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토구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에, 토구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내가 어찌해야 우리 원의 민족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는가?”
“…….”
“도대체 어찌해야! 우리의 아이들이 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
“도대체 어찌해야!”
털썩!
말을 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을까?
나에게 계속 의문을 표하던 토구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통곡하듯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계속해서 읊조렸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라는 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