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제267장 황군 皇軍
“지금 뭐라 했느냐.”
“송구합니다, 스승님.”
북원의 무인들이 올린 결과를 확인하며 대륙의 지도를 보고 있던 황자징.
그는 자신의 제자이자, 명 제국의 정이품 도지휘사를 보며 낮은 어조로 되물었다.
그런 황자징의 물음에 도지휘사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였고, 황자징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다시, 탁자에 팔을 기대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방효유라는 덫을 놓고, 천 개에 달하는 폭탄을 주었다. 황궁의 일부분이 파손될 것을 각오하고 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뭐? 놓쳐?”
“송구합니다, 방효유를 구한 자의 무력이 너무나도 높아서…….”
“그자가 누구지? 혈영인가?”
변명과도 같은 도지휘사의 말에 황자징이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도지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고,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에서 천마라 불리는 사내입니다.”
“또 그 사내인가…….”
황제인 주윤문의 마음을 돌려 무림 말살 대계를 중지시킨 것도 모자라, 중원 곳곳에 나타나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사내.
모든 일의 원인과도 같은 천마라는 이름에 황자징이 눈가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에 도지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자의 무력은 황제 폐하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흠칫!
도지휘사의 보고.
그 보고에 중얼거리던 황자징이 흠칫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은은한 달빛 아래.
전신이 피에 젖은 채 이만에 달하는 무인들을 학살하던 주윤문의 모습이 말이다.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난 황자징.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황제보다 더 강해……?”
“그렇게 판단이 됩니다.”
“…….”
도지휘사의 대답에 황자징이 두 눈을 감았다.
당장 이만의 숫자로도 황제를 잡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중에서는 십대고수에 버금가는 절대고수도, 구대문파의 장로급인 초절정고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인을 얕보았던 자신의 판단.
그 멍청한 생각으로 인해 자신의 숨겨진 힘을 모두 소모했던 황자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신을 가져오라.”
“어디에 보내시려 합니까?”
황자징의 명에 도지휘사가 의문 섞인 음성으로 반문했다.
그에 황자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선으로 보낸다, 황군 皇軍을 움직인다.”
각 전선에 위치하고 있는 제국의 백만대군.
그 대군을 끌어들이기로 황자징은 결정했다.
“스승님! 군부는 황제의 명만 따르는 이입니다! 자칫했다가는 우리가 황제에 반기를 든 것까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황자징의 결정에 절대 안 된다는 듯 도지휘사가 언성을 높였다.
그에 황자징은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안다, 하지만 천마라는 거물을 잡기 위해서는 황군을 끌어들여야 해.”
황제의 무력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던 황자징.
그는 다시는 무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에 더 이상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황군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고, 그런 황자징의 결정에 도지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스승님의 명을 따르지 않습니다.”
도지휘사의 힘없는 어조.
그 어조에 황자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현재 황제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산동악가에 있다고 하였나?”
“네, 그리고 그곳에는 천마라는 자와 그의 수하 일천이 있습니다.”
황자징의 물음에 도지휘사가 대답했다.
그에 황자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라는 사내는 황제를 납치하여 황궁을 협박하고 있고, 산동악가는 그런 천마를 도와 반란을 일으켰다.”
“!!”
“그 정도면 황군이 움직일 명분은 충분하겠지.”
그리고, 황제의 명령만 따르는 군부의 수장.
용호장군 마속과 금오장군 합천 또한 움직일 것이다.
* * *
“감사합니다.”
“그 말, 지금까지 해서 열 번째입니다.”
약초향이 가득한 방 안.
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방선을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에 방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고, 곧 고개를 돌려 침상에 누워 있는 방효유를 내려다보았다.
“많이 말랐네요…….”
긴 시간 동안 암실에 갇혀 최소한의 식량으로 버텼기에 피골이 상접해 있는 방효유.
그런 방효유를 보며 방선이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자 옆에 있던 악천후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살아 계신 게 다행인 거요, 그러니 부인. 그만 슬퍼하시오.”
그래도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악천후의 말에 동의하듯 방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의 옆에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훌륭한 정혼자를 두셔서 든든하시겠어요.”
“너무 훌륭해서 걱정이 되는 게 문제예요.”
방선의 칭찬에 서은설이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에 방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런 방선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방효유를 구출하는 동안 계속해서 걱정하고 있었을 방선의 체력을 생각하여 금방 물러가겠다고 말하자 악천후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예, 방에 술이나 보내 주십시오.”
아까부터 겁나 땡겼으니 말이다.
악천후의 감사 인사에 내가 가볍게 말하자 악천후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봬요.”
악천후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함께 있던 서은설 또한 인사를 하며 나와 함께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방을 나서고 복도를 걷자.
찰싹!
서은설이 나의 어깨를 때렸다.
갑작스럽게 일격을 허용하고 만 나는 어깨를 감싸 쥐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에 서은설이 표독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를? 왜 걱정해?”
“그럼 걱정 안 해?”
“나 충분히 강해.”
“그래도, 걱정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알겠다, 내가 잘못했다.
점점 높아지는 서은설의 어조에 나는 꼬리를 내렸다.
에휴, 강해지면 뭐 하는가.
내 여자한테는 한없이 약한데.
또 웃긴 게 뭔 줄 아는가?
저렇게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어도 귀여웠고, 나를 걱정해 주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이것 참.
최고의 호구는 나였던가?
헤실.
“뭘 웃어!”
그렇게 귀여운 서은설을 보며 웃자 서은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곧 서은설의 손을 잡았다.
“자, 걷자.”
“술 마시고 싶다며.”
“같이 마실레?”
“싫어, 혼자 마셔.”
나의 권유에 토라진 듯 짧게 대답하는 서은설.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서은설 또한 말없이 나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기를 잠시.
“사황성에서 연락이 왔어.”
서은설이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사황성은 괜찮지만 감숙의 피해가 크대. 그래서 인원을 파견 못 하겠다 하더라.”
“딱히 필요 없는데.”
미안하다는 듯 서은설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황성은 피해가 없어 다행이네.”
“아무래도 감숙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으니까.”
감숙성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사황성.
그들의 상황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주윤문이 이곳에 있는 한 나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사황성도, 무림맹도 자신들의 힘으로 버텨야 해.”
주윤문이 정신을 차리고, 또 황군을 정리할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그 사실을 언급하며 말하자 서은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서 폐하가 일어나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야.”
걱정스러운 서은설의 어조.
나는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주윤문 이 녀석이 일어나야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될 것이다.
* * *
“무슨 일이지?”
이른 아침.
마당에서 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던 나는 다급한 걸음으로 이곳에 달려온 사마천을 보며 물었다.
그에 호흡을 잠깐 고른 사마천이 자세를 바로 했고, 곧 입을 열었다.
“전선에 있던 황군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황군?”
“예.”
“흠…….”
사마천의 대답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는 군부는 황제의 명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할 텐데?”
“산동악가와 교주님이 황제를 납치했고, 그로 인해 반역을 시도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움직입니다.”
“하?”
뭔 개소리지.
반역은 지들이 저지르고 있으면서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워?
사마천의 대답에 내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말하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군의 숫자가 자그마치 십만이라고 합니다. 하니 대피하시는 것이…….”
“아니, 대피는 하지 않는다.”
사마천의 말에 나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십만입니다. 아무리 교주님이라 하더라도 십만은 힘듭니다, 만약 교주님이 십만의 군을 이겨 낸다 하더라도 그다음은 백만이 될 것입니다. 그러지 제발…….”
“시끄럽고, 우선 악가주에게 문 잘 걸어 잠그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원은 내원으로 몰아서 외원과 구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마천의 말을 끊고 조금의 양보도 없다는 듯 내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사마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주윤문에게.”
“네 알겠습니다.”
나의 짧은 대답에 사마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고, 곧 걸음을 옮겼다.
“아, 교주님.”
“좀 쉬셨습니까?”
주윤문의 방 앞에 도착하자 나를 반겨 주는 키예프.
그를 향해 내가 웃음기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에 키예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들어가시지요.”
대답을 함과 동시에 옆으로 살짝 비켜 길을 터 준 키예프.
그런 키예프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다음 방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 오셨어요?”
그에 아스나가 나를 반겨 주었다.
“…….”
묘하게 붉어진 얼굴로 말이다.
아무도 없이 방 안에서 단둘만이 있었고, 또 여자의 얼굴이 붉어져 있다?
뭐지?
붉어진 얼굴과 떨리는 동공의 모습에 나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했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
“…….”
수상했다.
더럽게 수상했다.
나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누가 봐도 수상하게 고개를 돌려 나의 눈빛을 피하는 아스나.
그런 아스나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곧 입을 열었다.
“잠시만 나가 주십시오.”
“네? 왜요?”
“저 녀석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의식 없는데요?”
나의 대답에 아스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듣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예? 듣는 게 가능해요?!”
“……?”
뭔데, 왜 저렇게 놀라는 건데.
나의 말에 아스나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난 몰라!”
붉어진 얼굴을 한 아스나가 자신의 두 볼을 감싸 쥐더니 곧 방을 뛰쳐나갔다.
“……?”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의문을 잠시 접어 두고.
손을 들어 기막을 친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침상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지?”
“…….”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주윤문을 향해 말했지만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주윤문의 모습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고 새X야.”
꼭 욕을 하게 만든다.
짜증이 어린 나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스윽.
쥐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던 주윤문의 상체가 일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