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제260장 제가 살렸습니다? 自 活
“멈춰.”
하북성의 초입.
소국가 小國家 라고 불릴 정도로 드넓은 대륙의 성.
여기서부터 하북성의 영토라고 알려 주듯 거대한 현판에 하북 河北 이라 적힌 성문이 보임과 동시에 나는 마차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행렬을 멈추어 세웠다.
해가 저물어 황금빛의 노을이 점점 진해지며 어둠이 찾아오는 지금.
저 멀리서 끈적하고 더러운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행렬이 멈추자 나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차를 내린 나를 향해 행렬의 가장 선두에 있던 단진이 신법까지 펼치며 한달음에 달려오더니 곧 의문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곧.
퍼엉!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에 모든 일행들이 두 눈을 부릅떴고,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저곳의 대략적인 위치는?”
“하북성의 성도인 스좌장 石家庄 입니다.”
나의 물음에 이미 주변 일대들을 파악하고 있던 사마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깔끔한 사마천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왕일에게서 연락 온 곳과는?”
“반대 방향입니다.”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현재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은 하북성의 가장 동쪽이다.
그리고 하북성의 성도인 스좌장이 있는 곳은 여기서 가까운 서쪽.
즉, 원래의 목적지로 가려면 여기서 동쪽으로 가야 했고, 저 끈적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정반대인 서쪽이다 보니 들렀다 가기에는 시간 소모가 상당할 것이다.
그것도 일천 가까이 되는 행렬 전체가 움직이기에는 말이다.
“흠…….”
저 찝찝한 기운을 확인하기 위해 말 머리를 돌려 서쪽에 들러야 할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왕일이 알려 준 곳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어 턱을 쓰다듬던 그때.
“화약 냄새예요!”
마차에서 아스나가 문을 열고 내려서며 나에게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아스나를 바라보았고, 아스나는 나의 두 눈을 마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틀림없는 화약 냄새예요!”
“화약?”
“네! 화약은 무서운 무기예요! 저 정도의 양이라면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답했다.
그에 나는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뜬금없는 화약의 등장이다.
혹, 무언가를 연구하다가 폭발한 것일까?
‘아니, 그러기에는 연기의 양이 많아.’
그건 아닐 것이다.
아스나의 말대로 저 정도의 연기라면 적어도 이 층 이상의 거대한 전각에 큰 불이 난 것일 테니 말이다.
그에 내가 가만히 있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사마천이 입을 열었다.
“황궁에서 화약을 연구한다는 정보가 있긴 있었습니다.”
“황궁에서?”
“네, 아무래도 황궁과 관련 있는 일인 것 같으니 가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의 되물음에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나의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녀석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저곳으로 간다.”
나는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성도인 스좌장에 들리기로 결정했다.
그에 모든 일행이 짧게 대답했고, 곧 나는 걸음을 옮겼다.
“먼저 가지.”
가장 강하고 빠른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편이 효율적일 테니 말이다.
“교주님!”
뒤에서 녀석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나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마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말이다.
이렇게라도 답답함을 풀어야지, 느린 마차에 탄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고역이었다.
“교주님은 생명을 중시하는군요!”
점점 멀어지는 일행들에게서 들려오는 감탄 어린 아스나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나는 부지런히 발을 놀렸고, 잠시 후.
나는 반 시진(한 시간)이 되기 전에 스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좌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불길. 그곳으로 다가가니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 나의 두 눈에 비쳤다.
“호오?”
제법 훌륭한 기세를 내뿜으며 못생긴 사내랑 마주하고 있는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악과 그런 팽악을 마주하고 있는 못생긴 추남의 모습이 말이다.
예전 무림맹에서 보았을 때는 지 애비를 닮아서 못되고 찌질하게 굴던 녀석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금, 제법 무인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에 나는 흥미를 느꼈고, 곧.
주먹을 들어 팽악의 앞에 있는 못생긴 놈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퍼억!
나의 주먹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못생긴 놈.
그런 놈을 무시하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저 징그러운 놈은 뭐냐?”
“아…….”
나의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어버버 하는 멍청한 녀석.
그런 녀석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나는 곧 녀석의 바지춤이 젖어 있는 것을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지렸네.”
“…….”
아무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보니 지가 오줌을 지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녀석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본 나의 말에 녀석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라며 다리를 오므렸다.
뭐 오므린다고 되겠는가?
이미 지려 버린 것을 말이다.
그런 녀석을 보며 다시 피식 미소를 지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검은 연기가 자욱한 드넓은 장원, 하북팽가였던 곳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아! 북원의 존재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작은 공과 같은 물건을 들고 있었고, 그것을 던져 일대를 폭발시켰습니다. 생각지 못한 그 물건으로 인해 본가의 무인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
“거기까지.”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괴상하면서 강력한 물건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지금 이 상황까지 왔고, 그것이 화약의 무기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녀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어라.”
“본가의 식솔들을 살려 주십시오…….”
“알겠으니, 여기 있어.”
나의 말에 무릎을 꿇으며 살려 달라 청하는 팽악.
자신의 목숨이 아닌 가문의 식솔들을 살려 달라는 뜻이 담긴 절절한 녀석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퍽!
나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던 못생긴 놈의 안면을 그대로 후려쳤고.
쾅!
추욱.
나의 주먹 한 번에 안면이 함몰된 녀석은 다시 바닥에 처박힘과 동시에 몸을 추욱 늘어트렸다.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쯧, 더럽게.”
제법 강한 기운을 지녔지만 녀석의 몸에 지닌 기가 끈적하고 더러운,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더러운 마기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손을 가볍게 털며 인상을 찌푸렸고, 곧.
탓!
가장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곳, 하북팽가의 정문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크윽!”
도왕 刀王 이라는 별호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신위로 오르탄을 제압한 팽진혁.
오르탄을 제압하며 대부분의 내공을 소모하여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열기에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꽂힌 대검에 기대며 거대한 화마에 집어삼켜진 가문을 바라보았고, 곧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제길!”
자신이 강했더라면 절대 자신의 뒤로 이 괴한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본가의 식솔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고, 본인에게 충성한 무인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더 강했더라면…….
젊었을 적에는 도 한 자루를 들고 무림을 종횡하며 수많은 고수들과 대련을 하고 매일 밤 홀로 뼈를 깎는 수련을 해 왔지만 나이가 들고, 가주의 위에 오른 후 권력이라는 탐욕에 빠져 그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련을 멀리해 왔던 팽진혁.
그는 멍청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과거에 분노했고, 그것은 곧 스스로의 비참함이 되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팽진혁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부웅!
그러고는 힘겹게 바닥에 꽂혀 있던 도를 뽑아 강하게 휘둘렀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내공, 그것을 모조리 담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화르륵!
이미 모든 전각을 먹고 최고점의 힘을 키운 거대한 화마는 도왕 팽진혁의 도풍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더 위협적으로 몸을 키웠다.
팽진혁의 강한 도풍이 화마의 힘을 더 키워 준 셈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는 화마의 모습에 팽진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그때.
“!!”
슥!!
“크윽!”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척에 팽진혁은 황급히 몸을 틀었고, 곧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머금고 있는 곡도를 발견하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끈질긴 놈!”
심장을 비껴 나갔는지 가슴팍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일격을 내뻗은 오르탄.
“크큭.”
피를 머금은 상태로, 치아를 내보이며 괴상하게 웃는 오르탄을 보며 팽진혁은 천근만큼 무거워진 도를 들었다.
그리고.
서걱!
그대로 거대한 도가 휘둘러져 오르탄의 목을 베었다.
콰앙!
팽진혁의 도가 오르탄의 목을 벰과 동시에 뒤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고, 그에 팽진혁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몸을 돌렸다.
화륵!
절대의 경지인 화경에 오른 도왕 刀王 팽진혁.
내공을 전부 소모한 그의 모공에서 땀이 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화마는 끝이 없을 정도로 하늘 높이 치솟았고, 그 압도적인 위용에 팽진혁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늦었구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불길을 잡을 수 없었고, 오늘이 오랜 전통을 이어 온 하북팽가가 멸문할 날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저 끔찍한 화마에 휩쓸려 재만 남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팽진혁은 두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은 지금, 전신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열기와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털썩.
팽진혁은 결국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거대한 화마의 앞에서.
절대의 경지에 오른 팽진혁.
그가 거대한 화마의 앞에 결국 굴복한 것이었다.
“뭐 합니까?”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팽진혁의 귀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좋은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한심하다는 어조.
그, 어조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팽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존재.
“소교주.”
바로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말이다.
자신에게 무력감을 주었고, 또 격이 다른 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던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의 등장에 팽진혁이 떨리는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그런 팽진혁의 놀란 음성에 위극신은 한쪽 눈가를 찌푸렸다.
“지금은 교주입니다.”
“!!”
“그러니, 예를 갖추세요. 말 까지 마시고.”
여전히 변함없는 싸가지였다.
까칠한 어조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내뱉는 위극신.
그런 위극신을 보며 팽진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쾅!
“제발 본가를 살려 주게!”
팽진혁은 곧 이마를 바닥에 강하게 내려 찧으며 소리쳤다.
간절한 어조로 말이다.
자신보다 월등하게 강하다고 평가되는 위극신이었기에 어쩌면 이 거대한 화마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지금.
가문의 식솔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전부를 버릴 수 있었던 팽진혁의 간절한 어조에 위극신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 까지 말라니까?”
여전히 자신을 후배처럼 대하는 팽진혁의 말투를 지적했다.
그에 팽진혁은 고개를 들었다.
강하게 이마를 찧었기 때문일까?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팽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위극신을 올려다보았다.
“살아 있는 식솔들을 살려 주십시오.”
씨익.
팽진혁의 입에서 나온 극존칭.
그 극존칭에 위극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진작 그럴 것이지.”
웃음기 어린 말과 동시에.
스윽.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 전체가 묵색인 검.
“천마신검!”
천마의 상징과도 같은 신검을 보며 그가 정말 교주의 위에 올랐다는 것을 깨달은 팽진혁은 놀란 음성을 내뱉었고.
스윽.
곧, 허공에 가볍게 휘둘러지는 천마신검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없이 가볍게 휘둘러지는 천마신검.
화경의 경지에 오른 팽진혁의 두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저 검이 허공을 유유히 떠돌며 대기와 공존하는 자연의 기운과 공명하며 막대한 힘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가벼워 보이나, 한없이 무거워진 검이 휘둘러짐이 끝이 나고,
부웅!
하북팽가에는 거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력하면서도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
화가 나 폭주해 있는 거대한 화마를 마치 위로하듯 바람은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었고, 그에 반응하듯 화마는 몸체를 점점 줄여나가더니 곧 거짓말처럼 불길이 사라졌다.
휘익!
단 한 번의 검 휘두름으로 거대한 화마를 제압한 위극신.
그런 위극신이 검끝을 바닥으로 내린 다음 멍한 표정을 짓고 잇는 팽진혁을 내려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하북팽가를 살렸습니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그런 미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