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제259장 하북팽가를 덮친 화마 河北彭家襲火魔 (2)
“으어어…….”
하북팽가의 소가주이자, 맹호도룡 猛虎刀龍 이라는 별호로 불리며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팽악.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과 동시에 이곳저곳으로 비산하는 수많은 파편들.
“끄아악!”
“꺄아악!”
그 폭발과 파편에 맞아 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사람들이 죽어 갔으며.
화르륵!
거대한 몸체를 일렁이는 화마들이 하북팽가의 수많은 전각들을 덮쳐 들어갔다.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끔찍한 광경에 팽악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팽악의 뒤로.
“소가주님! 정신 차리십시오!”
호왕대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무력대, 오호대의 대주 팽변이 팽악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며 소리쳤다.
“아아…… 어어…….”
그런 팽변의 외침에도 팽악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런 팽악의 모습에 팽변은 이를 악물었고, 곧.
짜악!
손을 들어 팽악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
“아…….”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
그 고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팽악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런 팽악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한 팽변.
그가 다급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소가주님, 우선 피하시지요.”
“그게 무슨!”
팽변의 입에서 나온 피하라는 말.
그 말에 팽악이 어림도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에 팽변은 팽악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고, 다시 팽악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본가의 소가주입니다. 당신이 살아 있어야 하북팽가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호대주! 나는 하북팽가의 소가주입니다!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나중을 기약하시지요!”
팽악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팽변의 생각은 변함없는지 단호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에 팽악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고, 팽변은 그런 팽악을 뒤로 밀었다.
“어서 가십시오!”
까득!
잘게 떨리는 팽변의 두 어깨.
그 어깨를 멍하니 바라보던 팽악은 분한 나머지 입술이 터질 만큼 강하게 깨물었다.
그런 팽악의 앞, 하북팽가와 함께 이곳에서 죽기로 마음먹은 팽변이 도를 강하게 쥐며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오호대의 삼조는 소가주님을 모셔라! 그리고 일조와 이조는 나와 함께한다.”
“알겠습니다!”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팽변의 명령.
그 명령에도 불구하고 오호대의 대원들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 듯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팽악을 보호하듯 앞을 막아섰고.
“가시지요!”
삼조의 조장. 팽현이 팽악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런 팽현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팽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죽일 듯한 눈빛으로 북원의 무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두 도풍을 일으켜서 저 작은 공을 날려라!”
그런 오호대를 향해 날아오는 수십 개의 작은 공들.
그 작은 공을 본 팽변이 소리쳤고, 오호대의 모든 무인들이 대도를 휘두르며 최대한의 도풍 刀風을 일으켰다.
콰콰쾅!
그에 작은 공들은 날아오는 방향이 바뀌어 아무도 없는 빈 공터에서 폭발했고, 오호대원들은 북원의 빈틈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짓쳐 들어갔다.
그리고.
“꼭 살아남으십시오!”
팽변이 뒤에 있을 팽악에게 소리친 다음 북원의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소가주님!”
“…….”
“어서 가시지요!”
“…….”
멍하니 서서 그저 주먹만 꽉 쥐는 팽악.
팽현은 그런 팽악을 향해 내공을 담아 소리쳤고.
스윽.
팽악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팽악이 뛰다시피 걷기를 잠시.
“꺄아악!”
북원의 무인 하나가 한 여인의 복부를 관통시켜 죽이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관한 팽악은 두 눈을 부릅떴고, 곧.
손에 들린 도를 강하게 쥐었다.
“가셔야 합니다.”
그런 팽악의 마음을 알았을까?
뒤를 따르던 팽현이 침울한 어조로 팽악에게 말했다.
그에 팽악은 이를 꽉 물었고,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본가의 소가주입니다.”
“네, 그러니 후일을 도모하셔야…….”
“제가 지금 도망친다면 저는 본가의 식솔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놈이 됩니다. 그런 무능한 놈이 하북팽가의 이름을 이어서 무엇 합니까?”
“…….”
“그런 놈이 만든 하북팽가는 제 가슴에 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문이 아닙니다.”
“소가주님!”
“그만!”
답답하듯 팽현이 소리치자 팽악이 단호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러고는.
타앗!
서걱!
거대한 대도에 회색의 검기를 일으켜 본가의 하녀를 죽인 북원의 무인을 그대로 베어 넘겼다.
“저는 이곳에서 본가의 식솔을 지킬 것입니다.”
“소가주님!”
팽악의 각오 어린 말.
그 말에 팽현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진심이 담긴 팽악의 각오에 가슴이 울렸던 것이다.
하지만.
퍼억!
“죄송합니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절정 상급의 고수인 팽현은 팽악의 마혈을 짚었고, 팽현의 점혈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 팽악이 두 눈을 부릅떴다.
“내가 길을 만들 테니, 소가주님을 부탁한다.”
자신의 뒤를 따른 대원들에게 팽악을 부탁하고 가장 선두에 선 팽현.
대원들은 그런 팽현의 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신이 마비된 팽악을 업어 들었다.
붕!
서걱!
“끄악!”
그러고는 팽현이 휘두르는 도로 인해 만들어진 피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읍! 으읍!”
그에 팽악이 정말 가기 싫은 듯 신음 소리를 내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몸은 점혈이 되어 마비가 온 상태.
몸은커녕 입도 열리지 않았다.
그에 팽악의 두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이렇게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던 것이다.
그런 팽악의 모습에 오호대원들은 애써 못 본 척을 하며 꿋꿋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들 또한 팽악과 같은 마음이었다.
자신의 선배들과 같은 다른 무인들을 사지에 내버려 두고 비겁하게 도망가는 중이다.
옆에서 본가의 식솔들이 죽어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는 자신.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팽악을 꼭 살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무인들의 가장 선두.
좌우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전면을 향해 도를 휘두르던 팽현은.
쾅!
“!!”
곧, 자신의 도를 막아서는 한 사내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씨익.
자신의 도를 막고, 자신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짓는 중년의 사내.
하북팽가의 무인답게 거대한 근육으로 인해 덩치가 큰 팽현과 비교될 정도로 작은 체구를 지닌 중년의 사내였다.
“물러서라!”
그런 사내의 등장에 팽현은 두 눈에 불을 켜며 도를 다시 강하게 휘둘렀다.
일격에 사내를 베어 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전력이 담긴 팽현의 강력한 일격에,
서걱.
중년 사내는 가볍게 피하고는 그대로 팽현의 목을 베어 버렸다.
절정 상급의 경지에 오른 고수 팽현.
오호대의 조장이지만, 그것은 나이가 어려서였고, 무력만 따지자면 부대주급인 그가 단 일격에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조장님!”
그런 팽현의 사망에 팽악을 들고 있던 무인들이 두 눈을 부릅떴고, 곧.
“크크크.”
자신을 바라보며 기괴하게 웃는 사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자세를 낮추며 도를 강하게 쥐었다.
“그 녀석이 하북팽가의 소가주인가 보군.”
“네놈은 누구냐.”
마치 쇠가 갈리는 듯한 듣기 싫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삼조의 부조장인 팽추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사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르타.”
“추면괴 醜面怪!”
원의 마지막 세대의 이름난 후기지수였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만드는 못생긴 얼굴과 달리 뛰어난 무술로 이름을 떨쳤던 괴물이었다.
“아직 살아 있었나!”
원이 멸망하면서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원의 대표 무인.
그가 살아서 등장하자 팽추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에 아르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를 기억하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네.”
원이 멸망함과 동시에 사라진 명예들.
태어났을 때부터 끔찍하게 생겼던 얼굴로 놀림을 받았었으나, 곧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원의 멸망과 동시에 사람들의 찬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곧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두려운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얼굴에 대한 자격지심이 강했던 아르타는 자신을 알아본 팽추가 반가웠다가, 그의 두 눈에 깔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너도 내 얼굴이 무섭니?”
아르타의 소름 끼치는 어조의 물음.
그 물음에 팽추가 도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닥쳐라 망국의 괴물!”
“망국이라니…… 아직 북원이라는 이름이 건재하거늘.”
“곧 멸망될 나라이다!”
아르타의 말에 팽추가 소리치며 부정했다.
그에 아르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서걱!
그대로 팽추의 목을 베어 버렸다.
초절정급의 경지에 오른 고수 추면괴.
그의 검을 일류의 경지에 오른 팽추가 막아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팽추의 목이 잘리자 모든 조원들이 달려들었지만.
서걱!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조원들의 목과 몸이 분리가 되더니 곧 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
단 일합에 전멸한 오호대의 삼조.
그 모습에 팽악이 두 눈을 부릅떴고, 아르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런 팽악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탁!
그대로 팽악의 마혈을 풀어 주었다.
팽악의 마지막 발악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아르타의 해혈로 인해 점혈이 풀린 팽악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도를 주워 아르타에게 휘둘렀다.
삭!
그에 아르타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팽악의 도를 그대로 잡아 버렸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팽악의 도를 말이다.
그에 팽악이 두 눈을 부릅떴고, 아르타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런 팽악의 두 눈을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자, 무섭지?”
“…….”
아직도 피를 내뿜고 있는 조원들의 사이에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음침한 목소리로 묻는 아르타의 모습.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에 팽악의 두 눈에 두려움이 내려앉았다.
그에 아르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섭지? 무섭지? 무섭지?”
팽악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며 계속해서 무섭냐고 묻는 아르타.
그런 아르타의 모습에 팽악의 전신이 떨려 왔고, 아르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얼굴은 무서워.”
진한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상처받은 목소리.
그 목소리로 중얼거린 아르타가 고개를 들어 팽악의 두 눈을 바라보았고, 곧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너도 죽자!”
스윽!
그 말과 동시에 아르타의 손에 들린 검이 하늘 높이 솟았고, 팽악은 지지 않겠다는 두 눈을 부릅뜨며 아르타의 두 눈을 노려보았다.
죽더라도 당당하게 죽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아르타의 검이 그런 팽악을 향해 떨어지던 순간.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팽악의 도를 쥐고 있던 아르타가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그리고.
“저 징그러운 놈은 뭐냐?”
긴 흑발을 단정하게 묶은 잘생긴 미남자, 무림맹에서 보았던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이 팽악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에.
“아…….”
팽악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위극신은 그런 팽악을 내려다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지렸네.”
“…….”
웃음기 어린 위극신의 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팽악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가랑이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