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제258장 하북팽가를 덮친 화마 河北彭家襲火魔 (1)
“왔는가.”
호북성 무한.
정도 正道 의 길을 걷는다 하여 정파라 불리는 무인들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무림맹의 주인, 현세대에서 가장 강한 무인들에게 주어지는 칭호, 삼황 三皇 중 일인이자,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인 천진은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급보로 날아온 서신을 내려놓고, 멀쩡한 문을 두고 창문으로 들어온 자신의 벗을 반겨 주었다.
천진의 벗이자, 원의 마지막 황족이라 알려진 노인.
그는 젊은 시절, 천진과 함께 수많은 협행을 행해 왔던 협객이었으며, 말년에는 제자에게 배신당해 구금당했던 존재였다.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한 허탈함에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천마신교의 소교주이자, 자신의 벗인 천진의 외손자인 위극신의 협행으로 인해 구출되었으며, 벗인 천진의 노력으로 모든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노인, 원의 마지막 칸의 일족인 토구르가 피식 미소를 지은 다음 천진의 맞은편에 위치한 빈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천진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천진의 배려로 인해 무림맹주 전각에 거주하고 있는 토구르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업무 시간에 사소한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무조건 업무 관련된 일만하는 천진의 칼 같은 성격을 말이다.
헌데, 지금은 업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불렀으니, 토구르의 입장에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토구르의 물음에 서신을 내려놓은 천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멀쩡한 집무실의 문을 힐끔 보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둑처럼 작은 문으로 다니는 것 보니 이제 팔팔한가 보군.”
“누구 덕분에 말이야.”
장난스러운 천진의 말을 받아 주듯 토구르 또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천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로 날 부른 것인가? 자네라면 이 시간에 절대 나를 부를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후우, 이 서신을 읽어 보겠나?”
단도직입적인 토구르의 물음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우고 한숨을 살짝 내쉰 천진이 손아래에 있던 서신을 들어 토구르의 앞으로 밀었다.
그에 토구르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탁자 위에 올려진 서신을 집어 들었고, 곧 빠른 속도로 서신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잠깐의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서신의 내용을 다 읽은 토구르.
그가 서신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하게도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군.”
서신 속에 적힌 정보.
그 정보를 읽은 토구르가 탄식 어린 어조로 말하자 천진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더 이상 원의 황족이 아니네. 괜히 나섰다가 혼란만 초래할 것이야.”
“자네가 나서서 혼란을 잠재울 수도 있지.”
천진의 반론에 토구르가 입을 다물었다.
천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구르가 입을 다물자 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진해서 북원의 황위에 오른 울탄바. 그는 정말 자네의 일족인가?”
“맞네, 마지막 칸이었던 형님의 사생아였지.”
“그랬나…….”
토구르의 확답으로 인해 진실을 마주하게 된 천진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대륙을 지배했던 원의 잔재이다 보니 명의 수뇌부들은 북원의 정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현 북원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혼란한 이 상황에서, 토구르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진실을 알게 된 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토구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북원이 목적으로 하는 곳은 이곳, 무림인 것 같지?”
“그렇지.”
서신에는 이러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간밤에 일어난 황궁의 혈사와, 유폐되었던 황제의 실종, 그리고 남하하는 북원의 군대와, 북원과 대치하며 국경에서 시간을 벌다가 그들과 함께 남하하는 황군들까지.
어느 정도 정세에 밝은 존재라면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목적하는 곳은 단 하나.
바로 대륙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 무림이라는 것을 말이다.
“황자징, 그자가 황제의 빈자리를 없애기 위해 무림을 향해 검을 겨누었어.”
황제의 빈자리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지금.
그것을 잊고 황궁의 힘을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 급하게 전쟁을 일으키려는 황자징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한 천진이 말하자 토구르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천진의 의견에 동의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 노인이 신음을 흘리며 턱을 쓰다듬었던 것도 잠시.
천진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정말 나서지 않을 것인가?”
“…….”
“자네가 나서면 빠르게 끝이 날 일이야.”
마치 아이를 유혹하듯, 달콤하기 그지없는 천진의 어투.
그 어투에도 불구하고 토구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에 천진은 한숨을 내쉬었고, 곧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집무실 끝에 위치한 창문 앞에 도착했고. 곧 그 창밖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타앗!”
“타앗!”
힘찬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르며 수련하는 무림맹의 무인들.
“호호!”
“하하!”
그런 무인들을 보조하며 무림맹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하녀들과, 하인들.
“꺄르르!”
하녀들과 하인들, 그리고 부모인 무인들을 따라 무림맹으로 들어왔고, 무림맹에서 지원하는 정책으로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이곳, 무림맹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무림을 지킬 것이네.”
“…….”
“그것이 수천, 수만의 목숨을 잃는 일이라 해도 말일세.”
비장하기를 넘어 살기까지 담긴 천진의 말.
그 말에도 불구하고 토구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 *
콰앙!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넓은 밤하늘에 고고하게 홀로 떠 있는 아름다운 달빛 아래.
거대한 대도 大刀 한 자루로 무림을 질타한 절대고수들의 고향이자, 하북성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수많은 무사들을 배출한 하북팽가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화마 火魔가 하북팽가의 오래된 전각을 덮쳤다.
“모두 검을 들어라!”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화마에도 불구하고 하북팽가의 주인이자, 도왕 刀王 이라는 영광된 별호를 지니고 있는 팽진혁이 당황하지 않고 거대한 도를 뽑아 강력한 도명 刀鳴 으로 주변을 환기시키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팽진혁의 도명과 외침에 어수선하던 것도 잠시.
모든 무인들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날카로운 눈빛과 기세를 내뿜으며 허리춤에 걸려 있던 도를 뽑아 들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호왕대는 나를 따라 정문으로 간다.”
“명!”
대도를 가볍게 휘둘러 전각 안을 덮쳐 오는 화마를 단번에 꺼트린 팽진혁.
그가 내공을 담아 소리치자 모든 무인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에 팽진혁은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하북팽가 최강의 무력대 호왕대가 팽진혁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콰앙!
“모두 뒤로 물러서라!”
오랜 시간 하북팽가를 당당하게 지켜 온 거대한 정문.
전통 어린 그 정문이 폭발로 인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보며 팽진혁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고는.
부웅!
거대한 대도를 휘둘러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용인들이 정문의 부서진 파편에 맞지 않도록 거대한 바람을 일으켜 한 곳으로 몰아내었다.
팽진혁의 거대한 대도의 휘두름.
그 한 번으로 인해 정문의 산산조각 난 파편은 물론, 폭발로 인해 가득했던 뿌연 먼지마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보였다.
“원 元의 오랑캐 놈들…….”
작은 공과 같은 물건을 손에 들고 있는 오백 명의 오랑캐.
한때 대륙을 지배했던 민족이었으나 지금은 패배자가 되어 버린 열등한 민족, 몽골족이 말이다.
원의 탄압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아 왔던 하북팽가, 그리고 그 피해의 당사자였던 팽진혁은 모습을 드러낸 북방의 민족들을 보며 이를 갈았고, 그런 팽진혁의 적개심에 가장 선두에 있던 근육질의 거대한 사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걸려 있던 곡도 曲刀를 꺼내 들었다.
“오르탄이구나.”
한때, 원의 촉망받는 무인으로 상당히 유명했던 오르탄.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살았으나 원의 멸망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오르탄을 보며 팽진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오르탄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무려 도왕이 한낱 오랑캐를 기억해 주다니, 이거 영광이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를 오랑캐라 비하하는 오르탄의 모습.
그 기괴한 모습에 팽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오르탄의 몸속에 가득한 기운.
끈적하기 그지없는 사이한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공인가?”
“크큭!”
팽진혁의 낮은 물음에 오르탄은 기괴한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그에 팽진혁이 얼굴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곧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데?”
위마참군, 아니 수라협성이라는 별호로 자신보다 더 놓게 평가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
젊은 나이에 보일 수 없는 엄청난 신위로 자신의 자존감을 바닥에 꺼트렸던 위극신의 기운.
그 순수하고 강력하던 마기와 달리 찝찝하고 끈적하기 그지없는 더러운 기운에 팽진혁이 의문을 표하였다.
그에 오르탄이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개소리, 던져라!”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팽진혁의 의문에 기분이 나빠졌던 오르탄.
그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백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수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들려 있던 작은 공에 꽂혀 있던 얇은 철사를 뽑았고, 곧.
붕!
동시에 하북팽가를 향해 던졌다.
“이런!”
저 작은 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위기상 이 엄청난 폭발이 저것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한 팽진혁은 놀란 표정으로 도를 휘둘렀다.
본가로 향해 날아오는 저 공들을 모두 반대 방향으로 날려 버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네놈 상대는 나다!”
오르탄이 날카로운 일격을 내지르며 팽진혁에게 달려들었고, 오르탄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저 작은 공들을 날려 버릴지 아니면 그냥 오르탄의 공격을 막아 낼지 잠깐 고민을 한 끝에.
부웅!
채챙!!
팽진혁은 도를 비틀어 오르탄의 공격을 막아섰다.
현재 하북팽가 제일고수인 자신이 상처를 입게 된다면 하북팽가에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콰콰쾅!
팽진혁의 선택은 틀렸다.
하늘을 뒤덮은 수백 개의 작은 공.
하북팽가의 최고 무력대인 호왕대의 무인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휘둘러 그 공을 날렸고, 무위가 비교적 낮은 일반 무인들은 날카로운 검기를 내뿜으며 작은 공을 배어 내었다.
조장급 무인들에 의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 작은 공은 아무것도 없는 도로를 폭발시켰고, 일반 호왕대 무인들의 도에 베여 버린 작은 공은.
콰콰쾅!
그 자리에서 그대로 폭발하며 일반 무인들을 그대로 덮쳐 버렸다.
“커억!”
엄청난 폭발음과 동시에 전신을 덮쳐 오는 거대한 불길, 그리고 수많은 파편들.
그 무서운 기운에 순식간에 전신을 허용하고 만 무인들은 그대로 두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작은 공, 단 하나.
그 하나가 하북팽가의 최고 무력대, 호왕대의 무인들을 절명 絶命시켜 버린 것이었다.
“팽수!”
“팽하!”
자신의 후배들인 무인들의 죽음에 팽진혁과 같이 작은 공을 저 멀리 날려 버린 호왕대의 조장급 무인들은 두 눈을 부릅뜨며 이제는 죽어 버린 자신의 후배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미 죽어 버린 무인들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그에 조장급 무인들은 거대한 살기를 내뿜음과 동시에 작은 공을 집어 던진 북원의 무인들을 노려보았다.
“아아…….”
그런 조장급 무인들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훌륭한 무인을 잃은 팽진혁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팽진혁의 맞은편.
거대한 대도에 곡도를 대고 힘을 주고 있던 오르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조심해, 저 작은 공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 거야? 저거 하나면 밀집해 있는 사람 수십 명을 단번에 죽일 수 있어.”
“괴물 같은 물건을 만들었구나.”
“새로운 세상을 여는 훌륭한 물건이지.”
살기 어린 팽진혁이 대답에 오르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팽진혁은 내가 맡는다! 두 개의 조는 호왕대와 맞서 걸음을 막고! 나머지 세 개의 조는 하북팽가로 진입하라! 그리고 모두 폭발시켜 버려!”
끈적하기 그지없는 마기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
그에 이백의 무인들이 살아남은 호왕대의 무인들에게 달려들었고, 나머지 삼백의 무인들이 품속에서 작은 공을 꺼내 들며 하북팽가 안으로 호왕대를 지나쳤다.
“어딜!”
“워어! 나랑 놀아야지!”
그에 두 눈에 불을 켠 팽진혁이 몸을 돌려 그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오르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팽진혁을 향해 곡도를 휘둘렀다.
그에 팽진혁은 이를 악물며 대도를 마주 휘둘렀고.
콰앙!
팽진혁의 뒤로, 하북팽가의 본가 내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