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제257장 산동? 아니, 하북 山洞不河北
“…….”
아무런 말 없이 걷기를 약 일각(15분).
걸음이 빠른 서은설의 뒤를 쫓기 위해 바삐 움직였기 때문일까?
점점 강해지는 발바닥의 고통에 아스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아스나의 마음을 눈치챘을까?
묵묵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던 서은설이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그에 아스나 또한 걸음을 멈추었고, 곧 뒤돌아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서은설의 푸른 두 눈을 마주하였다.
“아스나 공주님.”
“말씀하세요.”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정중한 어조.
그 어조에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한 표정을 지은 아스나가 대답했다.
서은설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아스나의 의지였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의지를 보이는 아스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은 조금 전과 변함없는 표정을 지었고, 곧 아스나의 붉은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주의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요?”
“!!”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말.
긴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지 못한 물음이 나오자 아스나는 조금 전의 각오가 무색해질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곧 고개를 살짝 흔들며 정신을 차린 다음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어…… 그게…….”
서은설의 입장에서 자신의 부모는 원망스러운 존재일 것이 분명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서은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스나 스스로가 자기도 모르게 부모를 원망하였다.
왜 자신의 형제를 버렸는지, 왜 자신의 형제에게 그런 큰 상처를 주었는지, 본인의 입장에서 조금은 이기적인 원망 말이다.
사랑을 받고 온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버림을 받은 당사자는 오죽할까?
스스로 깊은 생각을 하며, 서은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아스나였기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서은설의 마음이 다치지 않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런 아스나의 고민을 눈치챈 것일까?
서은설이 조금 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음…… 좋으신 분이에요. 어머니는 엄하시지만 저를 사랑해 주시고, 아바마마는 엄한 척하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 약한 분이지요.”
조금은 부드러워진 서은설의 어조가 효과가 있었는지 고민을 하던 아스나가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그에 서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아스나의 붉은 두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에게는 저의 존재를 알리지 마세요. 그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
서은설의 말에 아스나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슬픈 표정으로 서은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서 소저는 괜찮은가요?”
“무엇이요?”
“친부모의 존재를 보지 않아도요.”
“…….”
아스나의 물음에 서은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아스나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함께 본국으로 가요.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 봐요.”
“아니요.”
쌍둥이라는 진실에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은 아스나.
그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아스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옆에 있어 줄게요! 미신 따위는…….”
“저는 그분들을 보고 싶지 않아요.”
“!!”
자신의 말을 끊고 들려오는 서은설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힘찬 기색으로 말을 이어 나가던 아스나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말.
그 확실한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는 아스나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서은설은 다시 아스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분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저 지금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을 뿐.”
“…….”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아스나는 가슴이 미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는 서은설의 모습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너무나도 슬퍼졌고, 그로 인해 아스나의 두 눈가에 물이 고이더니 곧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아스나의 모습.
그 솔직한 그녀의 모습에 서은설은 결국 미소를 지었다.
“공주는 정말 착한 사람이네요.”
“서 소저…….”
“난 괜찮습니다. 당신이 부모에게 사랑받은 만큼, 저는 스승님에게 사랑을 받아 왔으니까요.”
아스나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서은설이 정말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에 아스나가 고개를 숙였고.
곧.
“흐윽!”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려 옴과 동시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아스나의 울음소리에 서은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으며, 사황성의 대주님들 또한 저를 귀여워…….”
“흐으윽!”
서은설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스나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곧.
“후에에엥!”
눈물 콧물을 흘리며 서은설에게 달려갔다.
와락!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 서은설.
충분히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스나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게도 서은설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울음을 터트린 아스나는 서은설의 품에 안길 수가 있었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우렁차기 그지없는, 아주 큰 아스나의 대성통곡이 울창한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그 대성통곡을 정통으로 마주한 서은설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떨리는 그녀의 신체를 위로하듯 등을 다독이면서 말이다.
* * *
스윽.
오랜만의 야영에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달빛을 올려보며 술을 기울이는 낭만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서은설의 기척에 손에 들려 있던 술병을 닫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은설의 기척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산책은 잘하고……?”
꽤 긴 시간 동안 산책을 하고 온 서은설을 반기기 위해 환한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나는 두 눈가가 두 눈동자만큼이나 붉어진 채로 은설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스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대 팼나?’
아스나가 마음에 안 들어 서은설이 아스나를 때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황했던 것도 잠시.
아스나에게 다가온 키예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공주님!”
거참.
누가 보면 칼이라도 맞은 줄 알겠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호들갑을 떠는 키예프를 보며 혀를 차던 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서은설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 알려 줄 거야.”
“…….”
저거는 내가 천마, 아니 원로원주에게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왜 그녀가 저 말을 하는 것일까?
얄미운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깜찍하기 그지없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귀여우니까 봐준다.
그런 나의 반응에 서은설 또한 살짝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야리꾸리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것도 잠시.
호들갑 떠는 키예프의 목소리에 서은설이 고개를 돌렸고.
‘저 영감탱이가.’
나는 이 달달한 분위기를 망쳐 버린 원인, 키예프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평소에는 진중하기 그지없는 양반이 왜 안 어울리게 호들갑을 떨어서 방해한단 말인가?
상당히 거슬렸다.
“나 잘래요.”
“공주님!”
“은설, 같이 자자.”
어이고.
엄청 친해졌나 보다.
키예프의 놀란 음성을 무시하고 서은설의 팔을 이끌며 마차로 가자는 아스나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무공을 얕게 익힌 여인이자 귀빈인 아스나에게 편안한 마차를 양보했기에 그녀는 마차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 마차에 함께 자자는 아스나의 제안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곧 마차를 향해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키예프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고.
“이봐요, 기사님.”
움찔!
나는 싸늘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정중한 어조와 달리 싸늘하기 그지없는 나의 어조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까?
키예프가 움찔하더니 곧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키예프의 두 눈을 마주하였다.
“우리 대련이나 합시다.”
* * *
“교주님.”
“왜.”
키예프와 대련을 마치고 상쾌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사마천을 보며 대답했다.
그런 나의 대답에 고개를 든 사마천이 입을 열었다.
“왕일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사마천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소식.
왕일에게서의 연락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그에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왕일과 헤어질 때 정보를 공유하고 동맹을 강화하자는 취지에 쾌속응 快速鷹 을 한 마리 내주었습니다.”
쾌속응 快速鷹.
대륙에서 가장 빠르고 똑똑한 매로, 영물로 구분되어 본교에서도 꽤 귀하게 다루어지는 비마각 飛魔閣 소속의 최고급 전서응 傳書鷹 이다.
“그거 줬었냐?”
아무리 차기 비마각의 각주이자 마뇌라고 하지만, 아직 사마천은 아무런 감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설혹 각주이자 총관과 같은 마뇌라 하더라도 쾌속응과 같은 최고급 전서응을 타인에게 선물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것도 본교가 아닌 타 세력의 무인에게 말이다.
그에 내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말하자 사마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정보를 다루는 데 큰 재능이 있습니다. 저 또한 차기 비마각의 각주로서, 그에게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런가?”
“네.”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확신 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뭐, 잘했다.”
왕일의 실력이야 내가 잘 알았으니 되었다.
사마천 이 녀석 또한 어디 가서 호구 잡힐 놈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에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사마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소식인데?”
“황제의 신병을 보호하고 있다 합니다.”
“!!”
놀랐다.
상당히 말이다.
사마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고, 그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자기의 의형이었던 윤문 공자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나 봅니다. 하여 황궁에 세작은 심지 못하더라도 황궁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제법이네.”
사마천의 설명에 나는 떨떠름한 어조로 왕일 녀석을 칭찬했다.
그래, 주윤문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황제와 이름이 같았으며, 범상치 않은 능력, 그리고 가문에 대한 비밀과 붉은색의 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헌데, 황궁의 주변에 눈을 심어 놓고, 황제의 피난을 도와 신병을 보호한다?
“하오문의 저력으로 가능한가?”
하오문은 사황성 소속의 일개 문파이다.
조금 과장해서 음지의 왕이라 불린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백만의 황군을 속이고 주윤문의 신병을 보호하기는 힘들었다.
그에 내가 의문을 가지자 사마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황제의 수하, 백 명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황군들의 시선을 돌렸다고 합니다.”
“!!”
“전에 잠깐 보았던 혈영, 그자가 속한 조직이라 하더군요.”
놀라웠다.
주윤문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무림 말살 대계의 중요한 열쇠와 같은 조직, 멸살대의 존재를 말이다.
‘설마하니 그 정도로 충심이 높을 줄이야…….’
그저 하나의 패라고 생각되었던 조직의 예상치 못한 높은 충심.
그 충심에 나는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혈영 血影 이라는 존재 또한 절대의 경지에 접어든 고수, 수하들의 희생과 고수의 노력, 그리고 하오문의 전력이 투입되어 간신히 빼돌렸다고 합니다. 또한 황군의 시선을 완벽하게 돌렸다는 소식도 함께였습니다.”
“제법이구나.”
“네, 훌륭한 녀석입니다.”
감탄 어린 나의 말에 동조하듯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다시 사마천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위치는?”
“하북성이라고 합니다.”
“운이 좋군.”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산동악가가 위치해 있는 산동성이다.
하북성의 바로 밑에 위치한 성으로 우리가 온 방향과 같았으니 돌아갈 필요는 없이 이대로 방향만 조금 틀면 되었다.
그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다시 사마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북성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모두에게 알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림맹에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하도록.”
“무림맹 말입니까?”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한 것도 잠시, 이어진 나의 명에 사마천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무림맹과 관계가 좋아졌다 하더라도 녀석 역시 천마신교의 교인.
평생을 적으로 살아온 무림맹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아무래도 껄끄러웠나 보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무림맹주 손자야.”
“아…….”
나의 말에 사마천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손자이자 동맹인 천마가 도와 달라는데 안 도와주면 안 되지.”
그럼 진짜 안 되는 거다.
까딱하면 잘난 손자 얼굴 못 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