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제256장 북원의 사정 北元事情
“여기입니다!”
깊은 밤.
인적이 드문 것을 넘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깊은 산속에서 한 사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
사삭!!
한 존재를 등에 업은 사내가 어둠과도 같이 나타나 다급한 사내의 안내에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다른 존재를 업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다급한 사내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고, 곧 조금 전의 사내와 마찬가지로 동굴 안에 들어섰다.
그렇게 모든 사내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쿠웅!
동굴 옆에 위치해 있던 거대한 바위가 저절로 움직이더니 이내 사내가 들어선 동굴의 입구를 막아섰다.
부우! 부우!
어두운 밤.
동굴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매끈한 절벽의 앞에는 밤 부엉이의 소리만이 감돌았다.
“멸살대주, 혈영. 맞습니까?”
동굴 안으로 들어와 업은 사내를 바닥에 눕힌 사내, 혈영을 보며 이곳으로 그를 안내한 사내, 하오문의 소문주 왕일이 물었다.
그런 왕일의 물음에 혈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왕일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맞소, 도와주신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소.”
심마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주윤문을 업고 이곳까지 피신해 온 혈영.
가족과도 같은 수하들을 미끼로 황자징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난 그가 자신을 도와준 왕일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하였다.
그에 왕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제 義弟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한 행동을 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는 왕일을 보며 혈영은 탄성을 내뱉었다.
의리 하나로 위험 따위는 생각지 않고 도움을 주는 왕일의 행동이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혈영의 감탄에도 불구하고 왕일은 가만히 누워 있는 주윤문에게 다가가 손목을 들어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스윽.
품속에서 작은 함을 꺼내었다.
“무엇입니까.”
그런 왕일의 행동에 혈영은 멈칫하더니, 이내 경계 어린 어조로 물었다.
최악의 상황이 되다 보니 은인인 왕일의 행동 또한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혈영의 경계에 왕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린 함을 열어 혈영에게 내밀었다.
“아……?”
함 속에 예쁘게 놓여 있는 작은 단.
그 단에서 나오는 청아한 향에 혈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대환단입니다.”
“!!”
이어진 왕일의 설명에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대환단 大還丹.
소림의 보물이며, 모든 무림인들이 원하는 천고의 영약으로 평범한 삼류무인이 복용하면 순식간에 절정고수로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최상급 영약이었다.
갑작스러운 최상급 영약, 대환단의 등장에 혈영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런 혈영의 모습에 왕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대환단을 거두었고, 곧 누워 있는 주윤문의 입으로 대환단을 집어넣었다.
천고의 영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윤문의 입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녹아내리며 스며든 대환단.
그에 왕일은 또다시 품속에서 작은 물병을 꺼내어 들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대환단.
그것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주윤문에게 먹인 왕일을 보며 혈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왕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공청석유입니다.”
뽕!
왕일의 대답과 동시에 물병은 맑은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동굴에는 조금 전과 같은 청아한 향이 가득 메워졌다.
그에 혈영은 두 눈을 부릅떴고, 왕일은 그런 혈영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공청석유를 주윤문의 입에 흘려 넣었다.
한 방울이면 일류고수를 절정고수로 만들고,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은 백 세까지 잔병 없이 살 수 있게 만든다는 천고의 영약.
그것을 자그마치 한 모금이나 말이다.
물병에서 나오는 공청석유의 엄청난 양에 혈영은 두 눈을 부릅뜨다 못해 실핏줄을 터트렸고, 왕일은 편안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있는 주윤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형님.”
걱정이 가득 담긴 왕일의 말.
그 말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은 주윤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 왕일은 입술을 깨물었고, 곧 고개를 들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혈영을 바라보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주십시오.”
그날 밤.
하오문에서 가장 발이 빠른 문도들이 각각 신강과 호북으로 움직였다.
* * *
“폭탄을 준비해 주지 않았나! 어서 시작하시오!”
깊은 밤.
중앙에 위치한 모닥불 불빛 하나에 의존한 천막 안에서 다급한 표정을 지은 노인이 소리쳤다.
그런 노인의 외침에 맞은편에 앉아 장작을 모닥불에 집어넣던 중년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폭탄은 받았으나, 다른 것은 받지 못했소.”
“폭탄이면 충분하지 않소!”
“황제, 주윤문.”
“…….”
중년인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다급함에 소리치던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황제가 필요하오, 다른 것은 필요 없지.”
그런 노인의 모습에 중년인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하찮은 오랑캐들이 보자 보자 하니,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후후, 오랑캐라고? 언제는 친우라더니.”
“어울려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크크.”
차가운 노인의 말에 중년인이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장작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노인의 차가운 두 눈을 마주하였다.
“나는, 분명 황제의 신병을 요구하였소.”
“주겠다.”
“우리가 나서지 않고, 그대들이 가져와야 우리가 움직인다는 약속이었지.”
노인의 대답에 중년인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에 노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거래는 없던 거로 할 텐가?”
“…….”
노인의 비웃음기 어린 말.
그 말에 중년인이 잠깐 침묵했다.
그에 노인이 피식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땅에 살게 해 주는 것에 감사해라. 마음만 먹는다면 북원의 대지는 물론, 민족 자체를 없애 버릴 수 있으니.”
노인, 아니 이제는 황제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게 된 황자징이 차가운 음성으로 경고했다.
그에 원의 황족이었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북원의 황제가 된 울탄바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황자징의 말이 맞았다.
원의 잔재라고 불리는 북원 北元.
북방의 민족, 몽골족이 세운 나라 원은 대륙을 넘어 서역까지 지배했으며, 몽골족을 제외한 타 민족들을 압박하고, 차별했다.
그에 오랜 전통을 지녔던 한족들이 몽골족에게 반발하였고, 대륙의 지배자였던 몽골족은 그런 한족들을 잔인하게 죽여 왔다.
그렇게 몽골족이 대륙을 지배하던 것도 잠시,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았던 몽골족의 천하는 곧, 한족 출신의 청년에게 무너졌고, 그 청년은 ‘명’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나라를 세워 원을 몰아내었다.
차가운 북방까지 말이다.
북방으로 밀려난 몽골족들은 다시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지만 그것은 요원했고, 그에 땅을 일부 줌과 동시에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해 주겠다는 황자징의 제안을 수락하여 임시적으로 그와 함께하기로 하였다.
분명 같은 목적을 지닌 동맹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울탄바는 황자징의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비록 황제를 생포하는 데 실패하고, 수많은 고수들을 잃었다 하더라도 황자징은 명실상부 명 제국의 최고 권력자였으며 그의 뒤에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족의 모든 인구보다 많은 병사들이 말이다.
그에 울탄바가 입을 다물자 황자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어서 시작하시오.”
비웃음이 가득 담겼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어조.
그 어조에 울탄바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현재 북원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뛰어난 무력으로 스스로 황족이라 칭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울탄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울탄바를 인정하고 황제로 모시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원 제국 출신의 전사들과 각 소수 족장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울탄바라는 이름을 지닌 황족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울탄바를 황제로 인정하는 파벌과 인정하지 않는 파벌이 존재했고, 두 개의 파벌은 끊임없이 대립하며 북원의 힘을 깎아먹고 있었다.
그에 울탄바는 명 제국의 황제가 필요했다.
왜냐고?
‘민심.’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명 제국의 황제를 몽골족들 앞에서 잔인하게 죽이고, 몽골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모든 몽골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파벌 또한 결국 자신을 인정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에 울탄바는 두 눈을 감았고,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진 후 입을 열었다.
“시작하겠소.”
“그렇지.”
울탄바의 확답에 황자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에 울탄바는 다시 황자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폭탄은 더 준비가 되오?”
“충분하오, 장인을 굴복시켰으니 말이오.”
주윤문의 명을 받고 화약을 개발했던 장인.
그 장인을 굴복시켜 모든 기술을 얻은 황자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에 울탄바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시작은?”
“하북팽가.”
북원에서 가장 가까운 하북성, 그리고 그곳의 지배자인 하북팽가.
그곳을 시발점으로 대계를 시작하라는 황자징의 말에 울탄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황자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모닥불로의 일렁이는 그림자에 뒤덮인 울탄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훌륭하게 해내 주기를 기대하겠네.”
“알겠소.”
* * *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깊은 밤.
노숙을 하기 위해 넓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은 후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키예프가 다가와 물었다.
그에 나는 빈 식기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산동으로 갑니다.”
산동성.
산동악가가 위치해 있는 곳이며, 주윤문의 유일한 아군인 방 학사의 여식이 안주인으로 있는 가문이다.
우선 방 학사의 여식이자, 악여화의 어머니인 방선을 만나는 것을 일 순위로 잡은 나의 말에 키예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은 다음 입을 열었다.
“앤서 경은 잘 돌아갔습니까?”
“아마 그렇겠지요.”
아스나가 나와 동행하게 되었을 때.
피를 흘리던 키예프가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바로 자신을 동행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에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무리 천마신교의 교주인 나라고 하더라도 동맹국의 공주를 덜렁 혼자 데리고 다니기는 그랬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랬다.
우리의 음식이 맞지 않았는지 아스나는 음식을 전부 남겼고, 그것을 파악한 키예프가 자기 나라의 말린 음식을 꺼내 아스나에게 건네었다.
만약 키예프가 없었다면?
‘골치 아팠겠지.’
우리 문화에 익숙지 못한 아스나 때문에 상당히 귀찮아졌을 것이다.
뛰어난 기사이면서, 동시에 아스나가 이곳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도움을 주는 키예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거도 잠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은설.”
“응.”
“힘들지는 않아?”
“괜찮아.”
나의 물음에 서은설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힘들면 말해.”
“왜 업어 주기라도 하게?”
“무등까지 태워 줄 수 있어.”
“나 무거워.”
“깃털만큼?”
피식.
계속된 나의 말장난에 서은설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 또한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꼬옥.
손을 뻗어 불안하게 떨리는 서은설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
아스나의 존재 자체로 계속해서 긴장하고 있는 서은설.
그녀의 심정을 파악한 내가 따뜻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에 서은설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고, 곧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공주.”
고개를 돌려 아스나를 불렀다.
“네, 서 소저.”
나와 서은설의 애정 행각이 부러웠을까?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아스나는 갑작스러운 서은설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에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식사는 많이 하셨나요?”
아스나의 가득한 식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이 물었다.
그에.
“네, 덕분에요.”
아스나는 예의상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걷죠.”
“저랑요……?”
“네.”
“…….”
서은설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스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서은설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서은설의 제안에 아스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아직도 앉아 있는 아스나를 내려다보며 서은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싫으신가요?”
“아니요, 걸어요.”
달빛에 비친 서은설의 아름다운 푸른 두 눈동자.
자신의 눈동자와 대비되는 그 눈동자에 정신을 차린 아스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걸음을 옮겼고, 아스나는 그런 서은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들이 떠나고.
“웬일입니까?”
웬일로 아스나의 뒤를 따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키예프를 보며 흥미로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키예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이 친해지시겠다는데 한낱 호위 기사인 제가 나서서 방해할 수는 없지요.”
“괜찮겠습니까?”
키예프의 대답에 내가 물었다.
그에 키예프가 식기를 내려놓고는 나의 두 눈을 응시하였다.
“상관, 있겠습니까?”
씨익.
아예 서은설과 아스나가 쌍둥이라는 가정을 배제시켜 버린 키예프.
그의 의문 어린 물음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상관없지요.”
나와 같이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키예프를 보며 웃음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