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제255장 무림으로 武林行
“이제부터 네가 검마다.”
“검마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무인이 되겠습니다.”
“아니.”
검마, 아니 이제는 전대 검마가 되어 버린 단악선은 각오 어린 단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단진은 의문 어린 눈빛으로 단악선을 바라보았다.
이름에 어울리는 무인이 되겠다는 말.
무인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부정하는 단악선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단진의 의문스러운 두 눈빛에 단악선이 단진의 두 눈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인이 아닌, 검이 되거라.”
“아…….”
“교주님의 검으로서, 적들을 베어 넘기며, 교주님의 검이 뽑히지 않도록 네가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곧, 검마의 존재 이유다.”
“알겠습니다.”
단악선의 말에 감탄한 듯 탄성을 내뱉은 것도 잠시, 이어진 그의 말에 단진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새로운 교주가 된 천마, 위극신의 검이다.
무인이 아닌 검이 되어 주군의 앞을 가로막는 적을 베어 넘길 것이다.
그것이 곧 자신이 가야 할 길.
조언에 감탄한 듯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단진을 보며 단악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단진의 가려진 왼쪽 얼굴을 힐끗 보았다.
“곧,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 것 같더구나.”
“네.”
단악선의 물음에 단진이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교로 돌아와 자신보다 높은 성취를 이룬 구양적과 매일같이 대련을 하고, 절대의 경지에 접어든 위극신에게 수련을 받아 왔던 단진.
그 경험과 가르침으로 인해 화경의 경지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던 그였기에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단악선의 두 눈을 응시하였다.
그런 단진의 모습에 단악선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웃음기 어린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흉터 또한 없어지겠구나.”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화경의 경지.
그 경지에 오르면 가장 먼저 인간의 신체를 재구성한다.
모든 무인들이 바라는.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신체로 변형시켜 주는 환골탈태 換骨奪胎.
그것을 이루게 된다면 단진의 왼쪽 흉터는 물론, 그동안의 수련으로 인해 몸 곳곳에 새겨진 검흔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 단악선의 말에 단진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었다.
“어서 화경에 올라 교주님의 든든한 검이 되어야지요.”
“!!”
“흉터 따위,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흉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단진이다.
하지만 지금의 단진은, 아니 오래전부터 단진은 끔찍한 기억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흉터 따위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또한 보름달이 뜨던 날에도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다.
화경의 경지에 올라 이룬 환골탈태? 물론 좋다.
그것을 이루게 된다면 자신은 더 강해질 것이고, 그것은 곧 교주인 위극신의 훌륭한 검이 될 수 있는 길일 테니 말이다.
흉터가 아닌 오로지 위극신의 든든한 검이 되겠다는 단진의 일념에 단악선이 당황한 것도 잠시 곧 진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구나.”
자신의 아들 단진.
녀석은 검마 劍魔 라는 이름을 물려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자라 주었다.
단진의 훌륭한 마음가짐에 흡족한 단악선과 그런 아버지의 인정에 기분이 좋았던 단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부자 父子 의 옆.
“푸하하! 네가 권마 拳魔다!”
“푸하하! 알겠습니다!”
이장로 권마, 아니 원로원주의 뒤를 따라 원로원 소속이 된 구양문이 구양적에게 말했고, 구양적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검마와 마찬가지로 권마 또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또 같은 시각 같은 장소.
“…….”
“뭐 할 말 있습니까?”
가만히 야율민을 바라보기만 하는 야율진.
그런 야율진의 눈빛에 야율민이 삐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춘기의 소년처럼 삐딱한 자세와 말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야율민.
그런 아들을 보며 야율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너에게 창마 槍魔 의 자리를 주지 못하겠다.”
“뭐래.”
야율진의 말에 야율민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고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야율진을 바라보았다.
“다 늙어서 어른 취급도 못 받고 싶습니까?”
“말투가 싸가지가 없구나.”
“흥, 조용히 물러나십시오. 그럼 전대 창마…… 아니, 원로 대우를 해 줄 테니.”
다른 장로들과 같이 원로원으로 물러나라는 직접적인 야율민의 말.
그 말에 야율진이 눈가를 찌푸렸지만.
“받아라.”
이내 허리춤에 걸린 두 개의 단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
야율창가의 가주만이 소지할 수 있는 청홍창.
청색과 홍색으로 이루어진 단창으로 야율민의 무기와 같이 두 개가 합쳐지면 장창이 되는 무기였다.
야율창가의 독문무공과 잘 어울리는 그 창을 야율민은 가만히 받아들였고, 야율진은 그런 야율민을 보며 혀를 한 번 차고는 몸을 돌렸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야율민은 세대교체로 인해 창마 槍魔 가 되었다.
역대 창마 중 가장 젊었으며, 또 무력이 가장 얕은 창마로 말이다.
또 같은 그 시각.
“스승님…… 싫습니다. 저 이제 제자 된 지 반년이라고요오!”
환마의 제자가 되고, 술법을 배운 지 딱 반년.
그 반년 만에 천마신교의 장로가 될 위기에 처한 마독이 간절한 어조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런 마독의 눈빛과 어조에 환마, 아니 이제는 원로원 소속의 원로가 되기로 마음먹은 천소악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미안하다.”
“스승님!”
“그…… 정말 미안하다.”
“아! 스승님!”
“미안…….”
계속해서 사과를 하는 천소악의 모습에 마독은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의 나이, 이제 열여덟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되었으며, 술법을 배운 지 반년이 되었다.
헌데, 신교의 최고 술법사에게 주어지는 이름.
환마의 이름을 계승하라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에 마독이 계속해서 칭얼거리자.
“야, 닥치고 빨리 가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아이들을 지켜보던 위극신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움찔!
그에 마독이 움찔했고, 천소악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모자란 제자 녀석을 잘 부탁드립니다, 교주님.”
“뭐가 모자라?”
천소악의 부탁에 위극신이 귀찮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천소악과 마독이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환마가 된 마독이었으며, 술법을 배운 지 이제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헌데 모자라지 않다니?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말이다.
자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는 둘의 모습에 위극신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불안한 듯 잘게 떨리고 있는 마독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야, 너 솔직히 본교의 술법사들 중 환마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지 않냐?”
“음…….”
“게다가 지니고 있는 영력은 환마보다 더 강하지?”
“그게…….”
위극신의 물음에 마독이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위극신의 말이 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위극신은 다시 입을 열었다.
“환마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니 닥치고 환마의 이름을 받아.”
“교주님…….”
“받으라고.”
“명을 받듭니다!”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감동 어린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짜증 어린 위극신의 말에 마독이 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네 명의 장로들이 각자의 아들과 제자들에게 이름을 물려줄 때.
“서럽네…….”
아직 준비된 후계자가 없는 오장로 혈화만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천마신교에서는 원로원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으며, 최고 수뇌부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세대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 위극신을 포함한 네 명의 장로들.
그리고 그들을 도울 듬직한 수하, 광마대와 흑룡단, 흑천대가 걸음을 옮겼다.
대륙의 중심, 중원 무림으로 말이다.
* * *
“데려가 주셔서 감사해요.”
중원으로 나아가는 수백, 아니 일천의 행렬.
그중 가장 중심에서 일천의 무인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움직이고 있는 마차 안에서 아스나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아스나의 인사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주님의 능력이 필요해서 권한 거니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명 제국에서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파사국의 공주인 아스나.
동족의 명 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문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랑?”
“예?”
“하하! 아닙니다.”
나의 대답에 아스나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소리 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장난이라는 듯 말이다.
그에 아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그녀였기에 내가 안 알려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마차가 조용해지자 나는 고개를 돌려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 전, 아니 약 한 시진(두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안 됩니다!”
본교의 중원행이 결정된 후.
나는 가장 먼저 지마궁으로 걸음을 옮겨 아스나에게 중원행을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그런 나의 권유에 아스나는 흥분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키예프와 앤서는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게거품을 물었다.
절대 안 된다는 듯 말이다.
그런 두 노인의 격렬한 반대에 아스나는 움찔했고, 곧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안은 너무 감사하지만…… 힘들 것 같네요.”
아무리 공주라 하더라도 키예프와 앤서가 저렇게 반대하는 이상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는지 아스나가 미안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아스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스윽.
나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꺼내었다.
반으로 갈라진 금색의 목걸이.
그 목걸이를 꺼내 들자 아스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아스나 또한 이 목걸이를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환상 속에서 서은설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색목인이 서은설은 물론, 다른 아이에게도 목걸이를 걸어 주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황가의 의미 있는 물건, 보물과도 같은 물건인 듯했다.
아무튼, 그런 아스나의 표정을 보며 확신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은설과 이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쉿!”
흥분 어린 아스나의 말.
그 말에 나는 검지를 들어 올려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에 아스나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고, 곧 키예프와 앤서의 눈치를 살폈다.
황족의 물건이기 때문일까?
키예프와 앤서는 이 목걸이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에 나는 목걸이를 다시 옷깃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흥분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아스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공주가 지니고 있는 목걸이의 반쪽을 지닌 존재를 알지요.”
“!!”
“그 존재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가겠습니다!”
나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란 것도 잠시,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스나가 말했다.
그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 더 궁금해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바로 같이 가겠다고 대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설마 전생을 기억하고 있나?’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놀랐던 것도 잠시.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꼭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아스나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본인이 가겠다고 했으면 되었다.
물론 키예프와 앤서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반대는 반대다.’
노인네들 허리 안 다칠 정도로 가볍게 다져 주었다.
역시 세상은 동, 서양을 떠나 그냥 주먹이 최고인, 강자존 强者存 이었고, 그렇게 본교의 무림행에 아스나와 그의 호위 기사로서 키예프가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