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제245장 다 뒈진다 沒殺
‘정말 닮았어……. 아니, 그냥 나랑 똑같아.’
어색한 분위기 속.
하필 그 순간 약혼녀 이야기를 꺼낸 자신을 자책하던 아스나는 갑작스러운 여인의 등장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이목구비를 제대로, 다시 보니 자신과 닮았다고, 아니 똑같다고 말이다.
“크흠!”
옆에서 키예프와 앤서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스나는 무시했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 서은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바빴으니 말이다.
‘예쁘다…….’
분명 자신과 같은 이목구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서은설.
긴 흑발과 푸른 두 눈은 그녀가 차분하고 신비스럽게 보였으며, 동시에 꼿꼿하게 뻗은 허리와 가지런히 모아 포갠 양손은 그녀의 단아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차분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그 모습에 아스나는 감탄했고.
‘친해지고 싶다!’
그와 동시에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과 가족이라 하여도 믿을 만큼 똑 닮은 그녀, 그런 그녀를 보며 아스나는 흥미를 느끼던 것도 잠시.
멈칫.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가족……?’
그래, 가족이라는 단어의 이상함.
자신과 똑 닮은 얼굴을 지닌 서은설.
과연 가족이 아님에도 저렇게 같은 얼굴을 지닐 수 있을까?
“헐…….”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와서 이상함을 느낀 아스나가 소리를 내뱉자 가만히 있던 서은설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러고는.
딱!
흠칫!
아스나의 붉은 두 눈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똑같은 모양을 지녔지만 색이 다른 두 눈.
그 눈이 마주치자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아스나가 당황스러움에 버벅거리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반가워요, 공주님. 소교주의 약혼녀인 서은설이라고 합니다.”
“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은설이 싱긋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어 왔다.
연회가 시작되기 전, 천마궁에서 보았던 그녀는 분명 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어 왔다.
그 극명한 모습에 아스나가 당황해하던 것도 잠시.
-공주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키예프의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멍청한 표정을 지우고는 공주에 어울리는, 아니 아스나 본인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아스나 사파비라고 합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네.”
아스나의 인사에 서은설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고, 그에 아스나 또한 마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같은 이목구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그에 아스나 또한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가 같은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아스나와 서은설의 행동에 기사들과 무인들 또한 놀란 기색을 지우고는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분명 이상하지만…… 본인들이 조용하다. 거기에다가 대놓고 감히 누가 ‘어 두 분 정말 닮으셨네요?’ 할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에 그런 말은 절대 못 할 것이다.
그렇게 연회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침묵이 감돌게 된 연회장.
그 속에서 마치 혼자만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여유로운 자세로 술잔을 기울이던 천마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내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스나 공주.”
“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술잔을 든 천마의 부름에 어색함에 괴로워하던 아스나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런 아스나의 대답에 천마는 서은설을 슬쩍 바라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말이다.
그 미소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위극신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고, 곧.
“소교주의 약혼녀인 서은설과 상당히 닮았군.”
천마의 입에서 위극신이 가장 걱정한 발언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제정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절대 할 수 없는 말.
아쉽게도 천마는 제정신의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런 천마의 물음에 연회장에 있던 모든 인물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곳에 있던 모든 인물들이 궁금했으나 감히 꺼내지 못했던 말.
그 말이 생각지도 못하게 천마의 입에서 튀어나와 놀라웠던 것이다.
그런 천마의 물음을 받은 아스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에 그녀의 아래쪽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있던 노년의 기사, 키예프가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교주님. 깜짝 놀랐습니다. 소교주의 약혼녀가 공주님과 이렇게나 닮을 줄은 몰랐습니다.”
“닮았다?”
“네, 닮았습니다.”
천마의 장난스러운 음성에 키예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피식.
그런 키예프의 대답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아스나를 바라보았다.
“공주.”
“아, 네!”
천마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스나.
그녀가 짧게 대답하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주가 소교주의 약혼녀와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아…….”
“아니면 그냥 똑같은 건가? 마치 한 가족처럼 말이야.”
“교주님!”
어벙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아스나를 보며 천마가 짓궂은 어조로 말하자 결국 키예프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러한 키예프의 행동에.
챙!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신교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파사국의 인물들에게 겨누었다.
자신들의 신, 천마에게 언성을 높이는 불경을 저지른 키예프.
그들은 그런 키예프를 용서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손에 들린 검을 휘두를 기세로 키예프를 노려보는 신교의 무인들.
그런 무인들의 행동에 기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키예프와 앤서, 그리고 아스나를 둘러싸며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후 발검 자세를 취하였다.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왜 언성을 높이는 거지?”
그런 긴박한 상황 사이로.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천마가 웃음기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에 키예프가 두 눈을 부릅뜨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파사국에서 같은 외모를 지닌 쌍생아는 악마의 자식입니다. 황가에 대한 무례한 발언은 삼가셨으면 좋겠군요.”
키예프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음성.
그 음성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한껏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쌍생아? 갑자기 그 단어가 왜 나오는 거지? 나는 그저 공주와 소교주의 약혼녀가 마치 친자매처럼 닮아 보기 좋다고 하려 했는데 말이야.”
“…….”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아무런 말 없이 천마를 바라보는 키예프.
천마는 그런 키예프를 보며 어개를 으쓱였다.
얄밉기 그지없는 표정과 말투.
그 속에서 키예프는 알 수 있었다.
천마, 그는 본국에서 쌍생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키예프는 얼굴을 붉혔고, 옆에 있던 앤서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등 뒤, 창을 쥐었다.
“그거 뽑으면 죽어.”
그런 앤서의 행동에 씨익 미소를 지은 천마.
그가 나지막한 어조로 앤서에게 경고했다.
흠칫!
그런 천마의 경고에 앤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자신의 몸을 옭아매는 강력한 기운.
그 기운으로 인해 움직임이 통제당해 버린 것이었다.
그에 앤서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천마 天魔.
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헌데 이 정도일 줄이야!
동쪽, 명 제국 제일의 고수 중 한 명이라더니 그 소문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그에 앤서는 기운을 끌어 올리기 위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강한 천마라 하더라도 자신 또한 파사국 제일의 창기사.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앤서가 기운, 차크라를 끌어 올리려 하자.
“그만하세요.”
옆에 있던 아스나가 그런 앤서를 만류하였다.
“공주님!”
“가만! 제발, 가만히 계세요.”
아스나의 명을 거역하기 위해 언성을 높였던 앤서.
그는 높아진 아스나의 언성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해맑은 미소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아스나.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던 그녀가 자신에게 짜증 내고 있었다.
그에 충격을 받은 앤서, 그리고 키예프와 기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아스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파사국 인물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아스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서 소저.”
“말씀하세요.”
“혹,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떨리는 아스나의 물음.
그 물음에 파사국의 모든 인물들이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부디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고아입니다.”
“아…….”
서은설의 입에서는 절망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부모를 알 수 없는 고아라는 대답.
그 대답에 아스나는 물론 키예프와 앤서, 그리고 모든 기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에 서은설의 눈가가 꿈틀거렸고, 이내 그녀가 불쾌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에게 부모와도 같은 스승님과 이모님이 계십니다.”
“친부모는 누군지 모르시는 거죠?”
“그게 무슨 상관이죠?”
아스나의 집요한 물음에 서은설이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아스나가 서은설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서 소저는 저의…….”
“그만.”
아스나의 입에서 차마 나오지 못하는 끝말.
그 끝말을 듣기 싫었을까?
서은설이 차가운 어조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에 아스나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은설을 바라보았고.
“아…….”
곧,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서은설의 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자신과 달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서은설, 그녀가 아스나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사황성의 소성주, 그리고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위극신의 약혼녀, 서은설입니다.”
“…….”
“저는 서은설입니다. 알겠나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음성, 그리고 확고한 어조.
그 말에 아스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은설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스나와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
그에 아스나가 탄식을 내뱉었고, 곧.
몸을 돌려 천마를 바라보았다.
“교주님, 죄송합니다. 본국에서 쌍생아는 어둠을 지닌 악마의 자식, 세상을 멸망하게 만들 씨앗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키예프의 생각대로 아스나 또한 천마가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힐 증거가 없으므로 아스나가 사과를 건네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이다.
그에 천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재미없군.”
“이보시오 교주!”
천마의 짧은 대답.
채앵!
그 대답에 앤서와 키예프가 아닌 또 다른 중년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아 든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
그 기운에 신교의 장로들 모두가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감히 지존인 천마에게 언성을 높인 것과 검을 뽑은 행위.
그 무례한 행위는 곧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장로들이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움직이려 하자!
“그만.”
나지막하게 들려온 목소리가 장로들의 몸을 멈추어 세웠다.
뚜벅.
목소리 하나만으로 천마신교의 수뇌부인 장로들을 제압해 버린 사내.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위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가 대치하고 있는 틈으로 걸어 나왔고, 그의 발소리가 연회장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꿀꺽.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 공간에서 작지만 크게 울리는 위극신의 발소리.
그 발소리에 기사들은 물론 무인들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잠시 후.
위극신은 사내의 앞에 도착했고, 곧 차가운 눈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지?”
“파사국의 기사, 칼론이다.”
“그렇군, 기사 칼론, 그만 물러가라.”
“뭐요?”
“여기서 그만 입 닥치고 꺼지라고.”
마치 하급자에게나 내릴 법한 명령.
욕설까지 섞인 그 명령에 칼론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고는 다시, 소교주인 위극신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본국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거늘! 천마신교의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무슨 명예?”
칼론의 호통에 위극신이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칼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감히, 공주님을 웬 여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악마의 자식으로 매도하려 하지 않았…….”
콰득!
칼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커헉!”
칼론은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끝까지 못 들어 주겠군.”
칼론의 목을 틀어쥐어 그의 말을 끊어 낸 위극신.
그가 자신의 손에 붙들려 발버둥 치는 칼론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은설이가 악마의 자식일 리가 없지 않은가?”
“크윽!”
“너희는 공주의 명예를 생각하지? 나는 내 약혼녀 명예를 생각해.”
“크윽!”
“왜? 아직도 우리 은설이 너희 공주의 쌍둥이 자매인 거 같은가?”
“크윽!”
“그러면 악마의 자식이라며? 그럼 우리 은설이가 악마의 자식인가? 세계를 멸망시킬?”
“크윽!”
“진짜, 지X도 정도껏 해야지.”
점점 더 옥죄어져 오는 위극신의 손아귀!
그 강력한 손아귀 힘에 칼론의 얼굴은 점점 새하얘지기 시작했고.
“한 번만 더, 나의 약혼녀 앞에서, 아니 뒤에서도 쌍생아니, 악마의 자식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면.”
“거러럭!”
“그때는 다 뒈진다.”
추욱.
위극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게거품을 문 칼론의 몸이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