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제243장 광신도 狂信徒
“교주님을 뵙습니다.”
파사국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본교에서 준비한 연회장.
지마궁에 마련된 드넓은 연회장에 입장한 나는 웬일로 먼저 도착해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천마를 발견하고는 신기한 표정으로 예를 갖추었다.
“늦었구나.”
“웬일로 일찍 오셨습니까?”
“불만이더냐?”
늦었다는 천마의 꾸중을 가볍게 넘어가고, 의문이 담긴 나의 물음에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에 나는 세상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천마신교의 주인공 아닙니까? 모든 교도들에게 있어서 교주님이 최고의 주인공일 텐데요.”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성격이 꼬이셔서 그런가? 저는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입니다만?”
“…….”
후후, 오늘도 내가 이겼다.
나의 마지막 말에 천마가 가만히 나를 노려보았다.
묘하게 살기까지 일렁이는 것이 아주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천마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쩔 건데?
이제 마음대로 때리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어렸을 적.
미치도록 강했던 천마였지만 지금은 뭐.
“후우…….”
보다시피 천마가 참는다.
크크.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앉아라.”
“넵.”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천마가 자신의 아래쪽에 위치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한 다음 빈 의자로 걸어갔다.
가장 상석에 위치한 천마의 의자.
그리고 반 단 정도 아래에 위치한 세 개의 의자.
그중 두 개는 나와 어머니인 천소화의 자리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본교에 방문한, 오늘의 주인공 아스나 공주의 자리였다.
“왔니?”
“네 어머니, 바로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아니야, 은설이는?”
“…….”
“이야기했구나?”
“네.”
아무래도 어머니 또한 알고 있었나 보다.
어두운 나의 얼굴에 어머니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의 등을 다독여 주었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 자리에 앉았다.
“모두 왔나.”
그렇게 내가 자리에 앉자, 천마가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기 전에, 본교의 인물들이 모두 참석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천마의 말에 옆에 서서 천마를 보좌하던 마뇌가 입을 열었다.
“우호법을 제외한 수뇌부 전부가 참석하였으며, 임무중인 광랑대주를 제외한 모든 무력대주가 참석하였습니다.”
“우호법은?”
“마의와 함께 있습니다.”
90이 다 되어 가는 마의.
본교의 살아 있는 역사와도 같은 마의는 현재 체력이 많이 떨어져 건강이 많이 악화가 되었다.
그런 마의에게 가족도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이곳 본전에, 친동생인 우호법이 있었다.
친형인 마의와 달리 절대의 경지에 올라 건강한 신체를 지닌 우호법은 잠도 자지 않고 마의의 옆을 지켰고, 사람들은 그런 둘을 보며 우애가 참 좋다며 감탄했다.
아무튼, 건강이 안 좋은 마의와 함께하기 위해 이곳에 불참했다는 마뇌의 보고에 천마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양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많이 순해졌다.
옛날 같았으면 당장 달려 나가 우호법의 목을 틀어쥐었을 텐데 말이다.
아, 우호법 할아버지는 예외이려나?
천마도 우호법에게는 예를 갖추는 편이니 말이다.
아무튼.
우호법과 광랑대주를 제외한 모두가 참석했다는 것을 확인한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회를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천마를 모셔 왔기에 그의 뜻을 눈치챈 마뇌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번 연회의 총책임을 맡은 인마궁주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고, 인마궁주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화답했다.
“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절정 최상급의 고수인 인마궁주.
그의 내공이 담긴 음성과 함께.
벌컥.
쿠우웅!
연회장의 굳건했던 문이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듯 웅장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흐음…….”
“허어…….”
검은색의 천으로 만들어진 처음 보는 양식의 옷.
신체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동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를 노출한 여인, 서은설과 똑 닮은 여인을 시작으로 전원 똑같은 의복을 맞추어 입은 기사들이 당당한 걸음으로 연회장에 들어섰다.
또각, 또각.
연회장에 울려 퍼지는 여인의 구두 굽 소리.
그 여인이 연회장의 정중앙에 멈추어 섰고, 곧.
“교주님의 환영, 감사드립니다.”
가슴 쪽에 손을 얹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였다.
노출된 그녀의 어깨와 쇄골. 동쪽의 사람들과 다른 새하얗기 그지없는 신비한 피부에 모든 사람들이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들이.’
물론 오대마가의 소가주들,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청춘이었기 때문일까.
서역의 문화를 자랑하듯, 당당하게, 또 그러면서도 절제된 노출을 보여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아스나의 행동은 높이 사 줄 만했다.
자기들의 나라에서는 저 복장이 흔한 연회 복장일 테지만 이쪽에서는 아니다, 즉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전부 받아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뜻이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곧, 교주와 인사를 마친 아스나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진짜, 닮았네.’
정말 닮았다.
붉은 머리칼이 흑발이고, 붉은 눈이 푸른색이었다면 서은설이라고 믿었을 정도로 같은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다르네.’
달랐다.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은설과 달리.
“안녕하세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모습은 말괄량이처럼 보였다.
초롱초롱한 두 눈빛 속에 담긴 호기심과, 장난기.
살짝 접혀 있는 눈 끝을 보니 한 장난 하게 생겼다.
“반갑습니다, 위극신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스나.
그녀의 인사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그녀 또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여기저기에서요.”
“제가 유명하긴 하죠?”
“그렇더라구요.”
젊은 나이이기 때문일까?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녀는 능숙하게 응답했고, 나 또한 그녀의 말을 능숙하게 받아 주었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스스럼없는 우리 둘.
주변 사람들은 우리 둘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와 그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한 장난 하시나 봐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기를 잠시.
그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그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제 벗이 장난기가 넘쳐서 이 정도는 익숙합니다.”
“어머, 정말요?”
나의 대답에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과장 어린 대답을 하였다.
그에 나 또한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공주보다 더 장난기가 심할 것입니다.”
“어머, 제 이상형이네요.”
“그 이상형 맞을 겁니다.”
“네?”
“웃는 모습이 멋진 친구거든요.”
“…….”
어라?
여기서 왜 멈칫하지?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계속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만나 보고 싶은 친구네요.”
다시 원래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제 한번 소개시켜 드리지요.”
전생에서 윤문의 연인이었던 아스나.
그녀를 보며 내가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그에 아스나는 장난으로 받아들이며 고맙다 인사를 하였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주윤문.
그 녀석은 저 여인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파사국의 연회 복장인가요?”
그때 나와 천마의 사이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에 아스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어쩌면 실례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본국의 문화를 보일 기회라고 생각되어 들고 왔습니다.”
“예쁘네요.”
꿈틀.
아스나의 대답에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리고 천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인간, 또 왜 저러나 모르겠다.
“정말요?”
천마의 반응이 워낙 미세하였기에 그것을 보지 못한 아스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고, 어머니는 진심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아스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혹시나 대부인께서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고 선물로 드레스 몇 벌을 챙겨 왔답니다.”
“아, 그 양식의 옷을 드레스라고 하나요?”
“네.”
“예쁘겠네요!”
아스나의 대답에 어머니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늘 단아한 옷을 입으며 기품 어린 미소를 짓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아스나처럼 노출이 강한 옷을 입는다?
그거 좀 싫…….
“싫다.”
“……?”
“아스나 공주는 그 말을 취소하도록. 본교는 파사국의 선물을 받지 않는다.”
“교주님!”
“헙!”
천마의 말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이어진 천마의 말에 장로들과 마뇌가 화들짝 놀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신교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파사국의 행동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동맹 관계인 둘은 서로 선물을 많이 주고받았으니 말이다.
헌데, 가만히 잘 있다가 갑자기 전면에서 선물을 거부한다니?
이 얼마나 뜬금없는 거절이란 말인가?
상당히 무례한…… 어떻게 보면 시비를 거는 것과도 같은 천마의 말에 장로들과 마뇌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역시 우리의 천마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아스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제 선물이 교주님의 심기를 거슬렸나 보네요.”
차갑기 그지없는 천마의 시선.
그 시선에 아스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다시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 드레스라는 옷, 마음에 들지 않는군.”
“본국의 문화입니다.”
“별로군.”
“…….”
어라, 이거 좀 센데.
거침없이 파사국의 문화를 깎아내려 버리는 천마.
거침없는 그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쩜 저렇게 한결같이 지 멋대로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감탄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교주님, 본국의 문화입니다.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천마의 무례한 발언.
그 발언에 얼굴이 붉어진 아스나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딱 봐도 엄청나게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나 같아도 화날 것이다. 제대로 무시당했으니 말이다.
그런 아스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존중할 가치가 없군.”
“교주님!”
천마의 비웃음 어린 말에 아스나는 결국 언성을 높였고.
스윽.
곧, 뒤에 있던 앤서와 키예프가 앞으로 나서서 아스나의 앞을 막아섰다.
“교주님.”
“뭐지?”
앞으로 나선 키예프의 차가운 음성.
그 음성에 천마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하자 키예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교에서는 동맹국인 본국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방금 전과 같은 발언은 본국의 문화를 무시한 무례한 발언입니다. 문화는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기둥과 같은 것, 지금 교주님은 본국의 근간을 부정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수평적인 동맹이지 천마신교에 소속된 집단이 아닙니다.”
저 노인네 말 잘하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하나 없이 또박또박 따지며 말을 하는 키예프를 보며 나는 내심 감탄했다.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어 구양적과 같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완전 반대였다.
천마에게 예를 갖추며 자신들에게 향한 무례한 발언을 사과해 달라는 그의 말.
그 말에.
피식.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우웅.
모든 장로들이 기세를 끌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키예프와 앤서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한마디에 저들이 이렇게 크게 반응할 줄은 몰랐을 테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천마가 잘못한 게 맞았다.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것은 상당히 무례한 발언.
까놓고 이야기해서 그냥 개념이 없는 거다.
그에 키예프는 그 사실을 언급하며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했다.
예를 갖추며 말이다.
뭐 하나 잘못된 것이 없었다.
하지만 키예프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감히 교주님에게…….”
“저런 건방진…….”
“개념이 없군요.”
천마신교 天魔神敎.
이곳에서 천마는 신 神 그 자체이며, 구성원들 모두가 천마의 강함에 매료된 광신도 狂信徒 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