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제241장 연인보다 친구 戀人, 親友
사람들은 종종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생각하고는 한다.
‘이 세상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느꼈다.
‘있으면 신기하겠다.’
신기함, 반가움, 그리고 경계심이 섞인 묘한 감정을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력이 풍부했던 아스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내심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제가 없어 외로웠던 자신의 친구, 동생이나 언니가 되어 줄 존재일 테이니 말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생각해 왔지만 막상.
“어…… 그…….”
자신과 같은 외모를 지닌 존재를 마주하게 되자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공간인 천마신교.
그 공간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외모를 지닌 여인.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놀라웠던 아스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스윽.
아스나와 똑같이 생긴 여인, 아니, 아스나와 같은 이목구비를 지녔지만 분위기가 너무나도 다른 서은설이 서둘러 걸음을 옮겨 그녀를 지나쳤다.
“저기요!”
그에 깜짝 놀란 아스나가 황급히 손을 뻗었다.
놀란 감정도 있지만 신기한 감정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구김살 없이 자라 온 아스나.
그녀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스윽.
무공을 배우지 않은 아스나가 절정고수인 서은설의 손목을 잡기에는 무리였다.
서은설의 손을 잡기 위해 뻗어졌던 아스나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아…….”
어느새 저 멀리 작은 점이 되어 버린 서은설을 바라보며 아스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따라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 서은설을 보며 아스나는 그 생각을 접었다.
“왜지?”
자신이 놀란 만큼 저 여인도 놀랐을 것이다.
헌데 왜 그냥 지나치는 것일까?
자신과 같이 신기해하고 호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아스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자신만큼이나 상대 또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그에 아스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지? 본국의 인물인가?’
푸른 두 눈을 지녔으며, 늘씬한 체형과 뚜렷한 이목구비.
틀림없는 자신과 같은 파사국이다.
헌데 자신의 일행 중에는 저런 외모를 지닌 인물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과 같은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신교의 인물인가?’
그것도 아닐 거 같다.
저 여인은 분명한 색목인.
색목인이 천마신교의 교도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능적으로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왜냐? 모르겠다.
그냥 감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아…….’
정말 뭔지 모르겠다.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요괴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모르겠다.
그렇게 홀로 깊은 고민에 빠지며 지끈거려 오는 두통에 인상을 찡그린 것도 잠시.
“공주님!”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선…… 움직이자.”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구석에 처박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무인.
그 무인에게 미안해서라도 아스나는 이 의문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스윽.
그러고는 몸을 돌려 무인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십오 년 전.
천소화가 천마궁에 자리를 잡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소교주전에서 지내던 야율령을 자신의 처소에 데려온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보이지 않았던 가여운 아이.
작고 예뻤던 아이는 야율창가에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배척을 받아 왔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충분히 사랑받았을 그 아이가 말이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로 인해 구원을 받았고, 곧 그의 오라비와 함께 소교주전에 머물게 되었다.
야율령이 소교주전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천소화는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 천소화는 야율령을 가엽게 여기었으며, 또 순수하고, 착하기 그지없는 그녀를 예쁘게 여기었다.
자신의 수양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야율령 또한 그런 천소화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야율령은 이차성징이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소화각에서 머물게 되었고, 시각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한 그녀를 위해 천소화는 방을 개조하여 큰 창문을 만들어 주었다.
소화각에 위치한 방 중, 가장 큰 창문을 지닌 방.
정원 바로 옆에 있던 향긋한 꽃 냄새가 아름답게 퍼져 있는 방의 주인인 야율령은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향긋한 꽃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잘 지내겠지?’
평화로운 지금 이 순간.
야율령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지켜 주던 소중한 사람을 말이다.
그렇게 그 사람을 상상하며 자연의 기운을 느끼던 것도 잠시.
야율령은 자신의 방으로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곧.
“은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한 동생의 등장.
그 등장에 반가웠던 야율령이 환한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언니…….”
두 귀로 들려오는 슬픔 어린 목소리에 야율령이 황급히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차분한 자세로 자신의 옆, 빈 의자를 가볍게 치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아무도 안 와. 그러니 혼자 있다 생각하고 푹 쉬어.”
오랜만에 만나는 서은설.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반갑다며 안아 주고 싶었지만 시력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한 야율령은 지금 서은설에게 가장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 야율령의 권유에 서은설이 걸음을 옮겼다.
스윽.
그러고는 야율령이 가리킨 의자에 자리했고, 야율령은 아무런 말 없이 그런 서은설의 옆을 지켜 주었다.
마치 시원한 그늘,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나무처럼 말이다.
그렇게 두 눈을 감은 야율령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옆을 지켜 주기를 잠시.
“흐윽!! 흑!”
옆에서 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은설의 어깨가 잘게 떨려 오며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러한 서은설의 울음에 야율령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지켜 주었고.
“흐윽!”
점점 서은설의 떨리는 어깨와 울음소리가 커져 갔다.
아주, 서글프게 말이다.
* * *
“소교주님, 연회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닥쳐라.”
“…….”
막 방문을 나서려던 찰나, 나를 막아서는 사마천의 말에 나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사마천이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았고, 나는 그런 사마천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연회는 불참한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파사국의 인물들을 환영하기 위한 연회.
천마는 물론 본교의 모든 수뇌부들이 참가하는 중요한 연회였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은설…….’
나에게 있어서 나의 연인, 서은설이 가장 소중했으니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가던 서은설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계속 떠올라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어떻게라도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서은설이 입으로 뱉어 내는 온갖 비수들을 담담하게 받아 내어야 했다.
그게 서은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죄였으니 말이다.
연회를 참석하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사마천이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닥쳐라.”
아니, 열려고 했지만 나의 말이 먼저였다.
온갖 이야기와 명분을 들이밀며 나의 참석을 종용할 사마천의 입을 원천 봉쇄한 나의 차가운 말.
그런 나의 말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사마천이 입을 다물었고, 나는 서둘러 걸음을 움직여 방을 나섰다.
절대의 경지에 들어선 나의 기감이 알려 주고 있었다.
“은설…….”
어머니의 거처, 그곳에서 서은설이 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내가 황급히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소교주님.”
차가운 인상의 미남자, 단진이 나의 앞길을 막아섰다.
아마 이 녀석도 사마천과 같은 마음이겠지.
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충언도 아끼지 않을 훌륭한 녀석들.
나는 그런 녀석들이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러나.”
나의 앞길을 막아선 단진.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말이다.
그 눈빛 속에 담겨 있는 위압감과 감히 나의 앞길을 막아선 단진의 행동에 대한 불쾌감.
그 감정들이 유형화된 기운으로 형성되어 단진을 압박했고.
“크윽.”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한 단진이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너도 말릴 생각인가?”
“아니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린 단진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야율민과 마독에게 물었고, 나의 질문을 받은 두 명은 두 손을 강하게 흔들며 부정했다.
오히려 나의 행동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은 한 편의 경극과도 같았지만 나는 지금 웃음이 나올 기분이 아니었다.
그에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서은설의 기운이 느껴지는, 소화각으로 말이다.
“서 소저는 령이와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다시 나의 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서 소저는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옆을 령이가 함께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두고 보시지요.”
그러고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창마 槍魔 의 여식, 야율민의 여동생인 야율령이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본교에 방문했던 서은설은 또래와 달리 성숙했던 야율령을 좋아하고 잘 따랐었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따뜻한 그녀의 분위기.
아마 그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았다.
본교를 떠나 사황성으로 돌아갔어도 나와 주고받은 서신만큼이나 야율령과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 왔던 서은설.
그런 서은설에게 있어서 야율령은 친구였으며, 언니였다.
그것은 야율령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그녀의 존재를 잠깐 잊고 있었던 나는 나의 걸음을 멈추어 세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를 붙잡은 목소리.
그 목소리 주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서은설, 지금 그녀의 옆에는 연인이 아닌 벗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슬픈 감정을 함께 공유해 줄 그런 친구 말이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정중한 어조로 충언 忠言을 건넨 단진의 모습……?
“……?”
왜일까?
분명, 야율령의 이름을 령이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그에 나는 당연히 목소리의 주인이 야율민이라고 생각했다.
야율령을 그렇게 부를 존재는 녀석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웬걸.
나에게 조언을 건네준 이는 야율민이 아닌 단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일절 관심 없는, 오로지 검 하나만을 죽어라 파는 그 단진 말이다.
그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뒤에 있는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천 또한 나와 마찬가지였나 보다.
놀란 녀석의 모습, 그 모습을 보인 사마천의 시선이 잠시 후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불안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에 나는 사마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
“…….”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단진을 노려보고 있는 야율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